환관의 요리사 220화 외전 14화
한때 수많은 이가 넘나들었을 산의 문턱에는 피비린내만이 맴돌았다.
턱 끝까지 차오른 숨을 몰아쉬며 헐떡이던 소년은 비강을 파고드는 비릿한 철분 냄새에 신음하며 고개를 들었다.
하지만 그의 눈에 보인 것은 굳은살 박인 여인의 손바닥뿐이었다.
소년이 의아한 표정을 짓자 단혜림은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가로저었다.
“보기 좋은 광경은 아닐세.”
“이미 볼 꼴 못 볼 꼴 후궁에서 다 보고 왔습니다.”
코웃음 친 소년은 시야를 가리는 그녀의 손을 피해 한 걸음 앞으로 내디뎠다.
그러고는 조금 전 자신의 허세를 후회했다. 치밀어 오른 욕지기를 참기 위해 한참 동안 입을 닫고 있었던 소년은 간신히 씹어뱉듯 한마디를 내뱉었다.
“눈 뜨고는 못 보겠군요.”
“그러게, 보지 말라 하지 않았나.”
“이 정도일 줄은 몰랐지요.”
지나치게 끔찍한 광경은 되레 현실감이 느껴지지 않았다.
장례를 치르기 위해 우선 장의사는 한동안 바늘과 실을 잡고 살아야 할 것이다. 과연 조각을 다 짜 맞출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장의사가 부디 바느질이 능숙한 이이기를 기도하며 시선을 돌린 소년은 그 목불인견의 참상에서 눈을 떼지 않는 단혜림의 담대함에 혀를 내둘렀다.
“멍청한 질문인 것을 알고 있습니다만, 괜찮으십니까?”
“이상하군.”
“이상한 질문이긴 했지요.”
“질문 말고, 시신 말일세.”
먹은 흔적이 없지 않은가.
단혜림의 말에 마음을 다잡고 갈기갈기 찢어진 시신을 바라본 소년은 그녀의 주장을 뒷받침할 근거를 찾아내지 못한 채 다시 단혜림을 바라보았다.
소년의 시선에 한참 동안 고민하던 단혜림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내장이 고스란히 남아 있네.”
“내장 말입니까? 그러고 보니…… 예, 그렇군요.”
“보통 짐승은 사냥감의 내장부터 먹어치우지. 본능적으로 그 부위가 가장 빨리 상하고, 또 가장 영양가가 풍부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야. 하지만 이 시신에는 내장을 먹어치운 흔적이 없어.”
짐승은 배가 고프지 않으면 굳이 사냥을 나서지 않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을 습격한 이유는.
단혜림은 손짓으로 산길을 가리켰다.
뒤늦게 그녀의 손끝을 따라간 소년은 선명하게 남아 있는 흔적을 발견하고는 소스라치게 놀라 단혜림을 돌아보았다.
산길에는 무거운 물체를 질질 끌고 내려온 듯한 긴 흔적이 남아 있었다.
“보았으니 알겠지. 이자는 이곳에서 습격당한 것이 아니네. 조금 더 깊은 곳, 산속에서 습격당한 후 호랑이에게 물린 채로 질질 끌려온 것이지.”
“그리고 호랑이는, 이 자리에서 사람을 찢어발겼단 말씀이군요. 도대체 왜…….”
“어째서일 것 같은가.”
굳이 배가 고프지 않은데도 사람을 습격하고, 굳이 사람의 시선이 미치는 곳까지 끌고 내려와 시신을 훼손한 이유.
그 비합리적인 행동의 이유가 달리 뭐가 있겠나.
단혜림의 질문에 소년은 쓰디쓴 숨을 내쉬며 대답했다.
“경고. 혹은, 복수겠군요.”
“난 후자일 가능성이 더 크다고 보네. 경고였다면 한 번으로 끝났겠지. 하지만.”
“호환은 한 번으로 끝나지 않았지요. 도시가 망해갈 때까지 말입니다. 복수로군요. 배를 채우기 위해서, 자신의 생명을 연장하기 위해서가 아닌 복수를 위한 사냥이군요. 그 이유는…….”
소년은 굳이 그 이유를 추측하려 애쓰지 않았다. 그 답을 알려줄 이가 도착했기 때문이었다.
술기운에 기우뚱거리는 몸을 태감에게 기댄 채 가까스로 당도한 중년인은 그 참혹한 광경을 보자마자 속에 담아두었던 것을 전부 게워내었다.
고형물을 전부 게워내고 나서도 한참 동안 멀겋고 시큼한 위액을 게워낸 끝에 구토를 멈춘 중년인은 시고 씁쓸한 침을 삼키며 숨을 골랐다. 하지만 차마 고개를 들지는 못했다.
창백하게 질린 중년인에게 다가선 소년은 가만히 그의 떨림이 멎기를 기다렸다.
코끝이 저릴 만큼 진득한 피 냄새로 코가 마비될 때쯤, 소년은 중년인에게 그 이상의 여유를 주지 않았다.
“어르신.”
참변이 일어난 현장에 어울리지 않는 어린아이의 목소리에 섬뜩함을 느낀 중년인은 쭈뼛거리며 소년을 바라보았다.
지나치게 끔찍한 광경을 목격한 결과 소년의 얼굴은 차갑게 얼어붙어 있었다.
“어르신. 저희에게 알려주실 것이 있으시지요?”
“무, 뭘 말하는 거요. 난 할 말 없소.”
제 아들뻘 되는 아이에게 말을 높이고 있다는 사실을 중년인은 깨닫지 못했다.
그리고 그 점을 굳이 지적할 필요도 없었기에 소년은 다시금 부드러운 어조로 채근했다.
“호랑이가 사람을 습격하게 된 원인 말입니다. 혹시 아시는 것 없으십니까.”
“난 모르오. 그, 그리고 그것을 알아서 어찌하려는 것이오.”
“어쩌긴요. 이 이상 인명피해가 나게 두고 볼 수는 없지 않습니까.”
누군가는 호환을 해결해야지요.
무미건조하게까지 느껴지는 소년의 대답에 중년인은 믿을 수 없다는 투로 되물었다.
“당신이?, 당신들이 도대체 뭔 수로 호환을 해결한단 말이오. 이름난 사냥꾼도, 태수도 해결 못 한 일을.”
“저희야 그저 도시에 잠시 들린 길손입니다만, 어려운 상황을 모른척할 만큼 박정하지는 않습니다,”
“그렇다 하여.”
“그리고, 도시의 변고를 윗선에 알릴 만큼의 연줄도 있지요.”
말문이 막힌 중년인은 당혹스러움과 회한에 얼룩진 시선으로 소년에게 물었다.
당신에게 정녕 그럴 만한 권한이 있단 말이오? 당신은 그런 위치에 있는 사람이오?
눈을 통한 대화가 그리 신통치 않다고 생각한 중년인은 목소리를 가다듬고는 육성으로 질문했다.
“혹시 감찰관이라도 되는 거요? 황제 폐하께서 홍문의 백성들을 긍휼히 여기셔서 당신들을 보낸 거요?”
“뭐, 비슷한 거라고 해두지요.”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니지 않습니까.
소년이 긍정을 종용하자 중년인은 홀린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니지. 댁이 감찰관이든 뭐든.”
“중요한 건 홍문의 호환이 해결되는 일이지요.”
“그럼…… 내가 사정을 이야기하면, 호랑이를 잡는 데 도움이 되겠소?”
“최소한 모르는 것보다는 낫지 않겠습니까, 어르신.”
싱거운 태도로 피식 웃은 소년은 등 뒤를 돌아보고는 진저리치며 말했다.
그의 등 뒤로는 아직 피가 굳지도 않은 시신이 널브러져 있었고 사방은 피비린내가 진동했다.
대화를 나누기에 적절한 장소가 아님은 모두가 동의하는 바였다.
“일단, 자리를 옮기는 게 어떠십니까. 이런 소름 끼치는 곳에선 나오려던 말도 도로 들어가겠군요. 시신은 저희끼리 추스를 방도가 없으니 도시로 가 사람을 보내도록 합시다.”
말을 마친 소년이 성큼 마을로 향하자 태감과 단혜림 또한 말없이 그를 따라 걸어 내려갔다.
우울한 표정으로 시신이 있는 방향을 힐끗 본 중년인은 고개를 한번 숙이고는 소년의 등을 잰걸음으로 쫓아 내려갔다.
* * *
중년인은 길삼이라 했다. 그는 홍문에서 피혁상을 하고 있었으며 도시의 경기가 침체되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큰 부를 일구어 도시 사람들의 존경을 받던 이였다.
“그것도 다 옛날 말이오. 이제는 술 한 잔 사 먹을 돈이 없어 전전긍긍하는 신세지.”
점심에 그토록 술을 마셨는데도 길삼은 부득불 술을 마셔야 입이 열릴 것 같다고 주장했다.
본 광경이 원체 충격적인 것이었기에 일행 또한 마다하지 않았고, 그들은 점심에 찾았던 주점을 다시 찾았다.
항아리째 술을 주문한 큰손님이 어지간히도 기억에 남았는지 점소이는 그들을 기억하고 있었다.
“주문하시겠어요?”
“청주를 항아리째 내주시오. 그리고 안줏거리도.”
점소이는 기다렸다는 듯이 지게에 술 항아리를 지고 왔다.
맑은 술이 가득 담긴 술독에 바가지를 담근 길삼은 잔에 옮겨 담을 시간도 아깝다는 듯 바가지째 술을 들이켰다.
“크흐, 이제야 좀 꼬였던 혀가 풀리는 것 같군.”
“그렇다면 다행이군요.”
“그래. 바쁘신 양반들 너무, 끅. 오래 붙들고 있는 것도 예의가 아니지.”
아직 점심에 마신 주독이 빠지지 않았는지 길삼은 금세 불콰하게 취해서는 딸꾹질하기 시작했다.
안주로 나온 말라비틀어진 육포 쪼가리를 씹던 소년은 그의 딸꾹질이 멎었을 때쯤 입을 열었다.
“그래서, 홍문에서 피혁상을 하셨다고요?”
“그렇수다. 꽤 벌이가 괜찮았지. 아시다시피 홍문은 원래 상인들이 드나드는 곳 아니오. 상인들은 다른 건 몰라도 옷차림새 갖추는 데는 돈을 아끼지 않거든. 덕분에 귀하다는 가죽은 전부 만져봤소. 그 귀하다는 백호 가죽에 서방에서 들여온 사자 가죽. 가만히 있으면 눈두덩이에 서리가 앉는다는 북방에서 들여온 백곰 가죽은 정말 비싸게 팔렸지.”
그렇게 돈도 벌고 명성도 얻으며 승승장구하다 보니 운 좋게 홍문의 상인회에서 작게나마 감투도 쓰게 되었수. 좋았지, 그때까지만 해도.
즐거웠던 시절을 이야기할 때는 헤벌쭉 올라가 있던 길삼의 입꼬리가 서서히 경련하기 시작했다.
“그때 욕심을 부리지 말았어야 했는데.”
욕심을 조심하라는 옛 경구를 떠올릴 때는 늘 과욕의 대가로 패가망신한 이후의 일이다.
입술을 깨문 길삼은 다시금 그 말을 되풀이했다. 그때 욕심만 부리지 않았더라면, 어쩌면…….
길삼은 천천히 술잔을 기울였다.
“그것 아시오? 사냥꾼과 피혁상에게는 같은 불문율이 있다오.”
“무엇입니까?”
“새끼는 취급하지 않는다. 아무리 탐이 나더라도.”
술을 퍼붓던 길삼은 자신에게 모인 시선에 쓴웃음을 지으며 손을 내저었다.
“그렇게 감격스러운 눈으로 보지 마쇼. 측은지심이니 생명존중이니 하는 거창한 이유 때문이 아니니까.”
“그럼 어째서?”
“뻔하지 않소. 새끼를 잡으면 재수가 없으니까. 뒤끝도 찝찝하고.”
“어미에게 보복당하지요.”
소년이 맞장구를 치자 길삼은 쿨럭거리며 웃어 대었다.
몇 차례 기침하여 갈라진 목을 술로 적신 후, 길삼은 길게 끌었던 이야기의 마무리를 위해 입을 열었다.
“육 개월 전이었소. 꾀죄죄한 꼴의 사냥꾼 두 놈이 가죽을 가지고 오더군. 그것도 새끼 호랑이 가죽을.”
“그걸 사셨군요.”
“평소였다면 늘씬하게 두들겨 패서 쫓아냈을 거요. 다 크지도 않은 호랑이를 잡아 가죽을 벗기다니, 그런 상도덕도 없는 놈들이랑 거래할 만큼 궁색한 놈은 아니었수다.”
그런데 이상하게, 그날은 그 새끼 호랑이 가죽이 탐나더이다. 흠집 하나 없이 윤기가 자르르 흐르는 털가죽이 어쩜 그리도 근사하던지.
지금도 그 털가죽이 눈앞에 아른거리는 것처럼 몽롱한 눈을 한 길삼을 보며 소년은 쐐기를 박았다.
“그리고 그때부터 호랑이가 출몰했겠군요. 제 새끼의 가죽을 벗겨간 사냥꾼을 잡기 위해.”
“아마 그럴 거요.”
“그 후로 사냥꾼들은 어찌 되었습니까? 가죽은요?”
“사냥꾼 놈들은 팔자마자 도망치듯 도시를 떠났소. 그리고 가죽은 며칠 후 비싸게 산다는 사람이 있기에 냉큼 팔아버렸지. 그리곤 이 꼴이오. 사냥꾼들이 줄줄이 잡아먹히니 가죽을 대줄 사람이 없어 내 사업도 망하고, 덩달아 도시까지 함께 망하는군.”
어째, 도움은 좀 되셨소?
걱정스러운 길삼의 눈을 마주 본 소년은 고개를 까딱였다.
“예.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어르신.”
“도대체 어디에 도움이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도움이 됐다니 다행이오. 부디 잘 됐으면 좋겠구려.”
“허허, 그럼 저희는 이만 일어나겠습니다. 잔금은 미리 치러둘 터이니 원하시는 만큼 드시고 가십시오.”
사무적인 태도로 인사한 후 자리에서 일어난 소년은 가기 전 점소이에게 두둑한 전낭을 맡기고는 주점을 나섰다.
멀거니 소년을 올려다보던 길삼은 또다시 술독을 끼고 앉아 이젠 누구도 들어줄 일 없는 넋두리를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주점을 나서는 순간까지 그를 곁눈질하던 태감은 소년의 귀에 속삭이듯 말했다.
“그의 남은 생이 그리 행복할 것 같지는 않구나.”
“사람 일은 모르는 겁니다. 혹시 압니까. 호랑이 문제가 해결되고 도시가 다시 정상화되면 그도 다시 정신을 차릴지. 한때 크게 장사를 했던 경험을 살려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도 있겠지요.”
“아니면 남은 생을 술독에 빠져 허랑방탕하게 날려 버릴 수도 있겠지. 물론 그건 그의 선택이니 우리가 왈가왈부할 문제는 아니지만.”
주점이 있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려 혀를 찬 태감은 묵묵히 장원을 향해 걷는 소년을 보며 되물었다.
“이제 어쩔 셈이냐.”
“뭐든 해야겠지요. 이대로 두고 볼 수만은 없지 않습니까.”
“경사로 사람을 보내자꾸나. 마차를 타고 느긋하게 와 일주일이라는 시간이 걸렸지, 준마를 탄 파발꾼이라면 사흘이면 도착할 게다. 폐하께 보고 드리고, 병력을 요청하자꾸나.”
“사흘이라. 태감께선 짐작 가십니까? 그 사흘 동안 몇 명이나 되는 사람이 죽을지.”
마치 우스갯소리인 양 쾌활한 어조로 말하는 소년의 목소리에는 약간의 웃음기도 담겨 있지 않았다.
웃을 수 없는 것은 태감 또한 마찬가지였다.
잠겨 있는 목소리로 태감의 제안을 반대한 소년은 도착한 장원의 정문 문고리를 잡은 채 멈춰 섰다.
소년은 전날 그의 호위무사가 했던 제안을 다시 떠올리고 있었다.
‘간단한 일이요. 호랑이를 사냥하면 될 일이지.’
그녀의 왕이 멈춰 서자 단혜림 또한 소년의 두 발자국 뒤에서 멈춰 섰다. 그리고 가늘게 떨리는 왕의 눈동자를 응시했다.
“단 호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