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턴 플레이어 141화
56장 수도 공격(1)
알버트가 검을 뽑자 훤히 뚫린 구멍에서 검에 찢긴 내장 조각들이 붉은 피와 함께 쏟아졌다.
조장은 힘없이 쓰러졌다.
“주군. 적을 침묵시켰습니다.”
알버트가 보고했다.
테일러는 전장을 살폈다.
그림자 기사단은 후퇴를 시작했지만 루시드가 미리 대기시켜 둔 기병대에 의해 퇴로가 차단되어 양쪽에서 집중적인 공격을 받고 무너졌다.
끝까지 무기를 버리고 항복하는 그림자 기사단원은 없었다.
최후의 한 명조차 무기를 들고 끝까지 싸우다가 집중 공격을 받고 쓰러졌다.
적과 아군이 흘린 피가 차가운 땅을 적셨다.
“생존자를 찾아라.”
테일러가 명령을 내렸다.
이제 포로를 잡을 시간이었다.
숨만 붙어 있다면 실비아가 신성 기도문으로 부상을 회복시킬 수 있었기 때문에 테일러는 휘하 기병대에게 숨이 붙어 있는 생존자를 찾을 것을 지시했다.
수색 끝에, 포로 4명 정도가 확보되었다.
처음 보고된 생존자는 6명이었다.
하지만 그중 2명은 성녀 실비아 그레이의 신성 기도문으로도 살릴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한 상처를 입은 탓에 회복이 불가능했다.
최종적으로 살아남은 4명은 즉시 아이반 왕자의 직속 고문부대로 넘겨졌다.
피도 눈물도 없는 고문 기술자들이 회복한지 얼마 되지도 않은 그림자 기사단원들을 고문했지만, 그들은 끝까지 침묵을 지켰다.
고문 도중, 동료 한 명이 고문을 견디지 못하고 목숨을 잃었지만, 그들은 조금의 흔들림도 없이 침묵을 지켰다.
“후우!”
넓은 막사 안에 루시드와 테일러가 술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정확히 설명하자면 루시드 혼자 술을 마시고 있었고, 테일러는 곁에서 안주를 집어 먹으며 루시드의 푸념을 들어주고 있었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네. 왕자 전하의 말씀에 의하면 고문 기술자들의 고문을 받으면서도 놈들은 침묵을 지키고 있다고 하네.”
“참으로 곤란해졌군요.”
“그렇다네. 아주 곤란해졌지.”
테일러가 동조하자 루시드는 고개를 끄덕이며 술잔을 입가로 가져갔다.
단번에 술잔에 가득 담긴 술을 비운 루시드는 홀로 술병을 들어 술잔을 채우며 입을 열었다.
“뭔가 좋은 방법 없겠는가?”
“실은 가이우스가 생각해낸 방법이 하나 있습니다.”
“말해보게.”
루시드의 눈이 빛났다.
테일러는 가이우스가 생각해낸 방법에 대해 설명했다.
설명을 끝까지 들은 루시드는 술잔을 내려놓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상당히 괜찮은 방법인 것 같네. 즉시 왕자 전하께 보고하고 오겠네.”
루시드는 즉시 움직였다.
그는 가이우스가 생각해내고 테일러가 전달한 방법을 설명했고, 아이반 왕자는 즉시 계획을 실행할 것을 명령했다.
즉시 계획이 실행되었다.
가이우스가 생각해낸 계획은 가짜 야영지를 만드는 것이었다.
가짜 야영지를 만들어 그림자 기사단을 그곳으로 유인한 뒤 준비한 마법 함정으로 소탕하는 것이었다.
물론 그림자 기사단이 바보가 아닌 이상, 평범한 가짜 야영지로는 속이기 힘들었다.
그래서 가이우스는 고위 마법사 전원이 인식장애 마법을 유지하는 것을 제안했다.
고위 마법사 전원이 동원되는 만큼, 혹시라도 갑작스럽게 적의 증원이 나타나 아군을 공격한다면 큰 피해를 보겠지만 테일러와 루시드, 그리고 아이반 왕자는 대담하게 계획을 진행하기로 결정했다.
빈 막사와 허수아비 등으로 구성된 가짜 야영지가 완성되었다.
남은 것은 인식장애 마법 캐스팅과 마법 함정 매설이었다.
만약의 상황에 대비해, 방어를 위한 극소수를 제외한 고위 마법사 전원이 마법 함정 설치와 인식장애 마법 캐스팅에 투입되었다.
마침내 완벽한 함정 설치가 끝났다.
아이반 왕자가 지휘하는 군대는 조금 떨어진 곳에서 야영지도 없이 모습을 숨기고 있었고, 루시드가 지휘하는 대규모 기병대가 가짜 야영지 주변에서 잔당 소탕을 위해 대기하고 있었다.
이윽고, 그림자 기사단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미 루시드가 지휘하는 기병대에게 한 번 전멸을 경험한 뒤였기 때문에, 평소보다 4배 정도 많은 수의 그림자 기사단원이 투입된 것으로 보였다.
“드디어 왔군. 저주받을 놈들.”
레드가 욕설을 내뱉으며 수통에 몰래 담아온 술을 한 모금 마셨다.
테일러는 눈을 날카롭게 빛내며 전방을 주시했다.
“좀 더 깊숙이 들어오면 마력을 주입하여, 마법 함정을 격발시킨다.”
루시드가 지시를 내렸다.
그림자 기사단은 깊숙이 진입하여 막사를 공격하기 위해 고위 마법을 캐스팅했다.
“지금이다!”
그리고 그 순간 루시드가 명령을 내렸다.
고위 마법사들이 일제히 마력을 주입하였고 마법 함정이 폭발했다.
강력한 폭발이 그림자 기사단을 덮쳤다.
“크아아악!”
“으아아악!”
마법 함정들은 연쇄적으로 터져 나갔고, 그림자 기사단원들은 그대로 휘말리게 되었다.
그림자 기사단 소속 고위 마법사와 마법사들이 방어 마법을 전개했지만, 가짜 야영지를 가득 메우고 있는 마법 함정의 연쇄적인 폭발을 전부 막아낼 순 없었다.
가짜 야영지의 마법 함정이 모두 폭발했을 때, 남은 그림자 기사단의 수는 10명이 되지 않았다.
“제압한다!”
루시드가 명령을 내리자 포로를 잡기 위해 구성된 특수부대가 투입되어 그들을 제압했다.
그리고 아이반 왕자 직속의 고문부대가 고문을 진행했다.
대부분이 침묵을 지켰지만, 입을 여는 그림자 기사단원이 한 명 있었고, 덕분에 아이반 왕자는 병력을 보내 은신처를 습격할 수 있었다.
은신처에는 그림자 기사단원 500명 정도가 숨어 있었다.
그림자 기사단은 소탕되었고 아이반 왕자의 군대는 다시 수도로 움직였다.
* * *
825년 2월.
라이필트 린데일 후작의 해상 군단 해병대와 그림자 대공이 지휘하는 그림자 기사단이 합류했다.
해상 군단의 추가 병력과 그림자 대공의 합류로 인해, 수도로 진격하는 프랑츠 제국의 군대는 7만 정도의 수가 되었다.
수도 인근의 영지군이 총 집결하여 수도 근처에 방어선을 구축했다.
그 방어선을 그림자 대공의 군대가 공격하기 시작했다.
“직접 참전하시는 겁니까?
방어선 공격이 시작되고 며칠의 시간이 지났다.
그림자 대공은 답답한 마음에 직접 마병기 어둠 무희를 들어 올렸다.
그 모습을 본 남작의 작위가 있는 그림자 기사가 질문했다.
그림자 대공은 시험 삼아 어둠 무희를 허공에 대고 몇 번 휘둘러보며 입을 열었다.
“내가 나서야 할 것 같아서 말이지. 난 질질 끄는 것은 싫어한다.”
“대공, 전선은 위험합니다.”
라이필트 린데일 후작이 우려를 표했다.
지휘관이 목숨을 잃는다면 군의 사기가 저하되는 것을 피할 수 없었다.
린데일 후작의 말에 그림자 대공의 눈에 살기가 띄었다.
“내가 저런 것들에게 죽을 것으로 생각하나?”
수많은 목숨을 앗아간 그림자 대공이다.
그의 살기는 상당히 짙었다.
짙은 살기에 라이필트 린데일 후작은 자신의 실수를 깨달았다.
그는 창백한 얼굴로 무릎을 꿇었다.
“대공. 저의 결례를 용서해주시길.”
“다음이 마지막 지원이라고 했지?”
“네. 그렇습니다.”
그림자 대공의 질문에 라이필트 린데일 후작은 고개를 끄덕였다.
프랑츠 제국 수도에서 내전의 조짐이 보이고 있었기 때문에 함부로 병력을 뺄 수 없었다.
그림자 대공의 거듭된 요청에 병력을 조금 빼내올 수 있었긴 했지만 많은 수는 아니었다.
“내가 적장의 멱을 따겠다. 적이 흔들리는 순간, 공세를 취하도록.”
“명을 받듭니다.”
라이필트 린데일 후작이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그림자 대공은 입꼬리를 끌어 올리며 말도 없이 전장으로 뛰어나갔다.
엄청난 속도였다.
그 뒤를 10여 명의 그림자 기사가 뒤따랐다.
모두 작위가 있는 그림자 기사였다.
“적장이다! 마법 공격!”
그림자 대공을 알아본 왕국군 상급 장교가 검 끝으로 그림자 대공을 가리키며 마법 공격을 요청했다.
상급 장교의 외침을 들은 마법사 4명과 고위 마법사 1명이 마법을 쏘았다.
찬란한 빛과 함께 마법들이 쏟아지는 순간, 그림자 대공은 비릿한 미소를 흘리며 입을 열었다.
“내가 처리하도록 하지.”
그가 어둠 무희를 휘두르자 검은 그림자 검이 수십 개 생겨났다.
어둠 무희를 한 번 더 휘두르자 그림자 검들이 쏟아지고 있는 마법들을 향해 쇄도했다.
그림자 검과 충돌한 마법은 허공에서 빛과 함께 폭발했다.
“죽여라! 적장이 저기 있다!”
기병대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냥 기병대가 아니었다.
기사단이었다.
30여기의 기사단이 기병창을 겨눈 채 돌진해왔다.
“주군을 엄호하라!”
그림자 기사들이 그림자 대공의 앞으로 나섰고 그림자 대공은 어둠 무희를 이용해 마든 그림자 검들을 기사단에게 쏘았다.
비처럼 쏟아지는 그림자 검 세례에 기사단은 순식간에 전멸했다.
“이럴 수가.”
“너무 강하다.”
그림자 대공의 무력에 방어선을 구축한 사우스 왕국군은 경악했다.
그림자 대공에 대한 소문은 들었지만, 설마 이 정도로 강할 줄은 예상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들이 경악하는 사이, 그림자 대공과 소수의 그림자 기사들은 그들을 막아선 보병대마저 뚫고 지휘부를 향해 빠른 속도로 진격하고 있었다.
“호위대! 적을 저지하라!”
자작의 작위를 가지고 있는 지휘부 호위대장이 다수의 고위 기사가 포함된 호위대를 이끌고 그림자 대공의 앞길을 막았다.
“조금 귀찮은 녀석들이 등장했군.”
그림자 대공은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고위 기사가 다수 포함된 호위대는 그림자 대공에게도 조금 귀찮은 적이었다.
그림자 대공은 마병기 어둠 무희를 겨누며 입을 열었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비켜서면 목숨만은 살려주지.”
“그럴 수 없다!”
그림자 대공의 말에 호위대장이 큰 소리로 외쳤다.
그림자 대공은 유감스럽다는 표정으로 어둠 무희를 들어 올렸다.
“유감이군. 내 앞을 막고서 살아남은 자는 없다!”
그러면서 어둠 무희를 힘차게 휘둘렀다.
어둠 무희가 지나간 자리에 그림자 검들이 생성되었다.
“가라!”
그림자 검들이 호위대를 노리고 쇄도했다.
“방어하라!”
호위대의 마법사들이 방어 마법을 전개했다.
전개된 방어 마법이 대부분의 그림자 검을 막아냈다.
방어 마법이 막아내지 못한 그림자 검은 고위 기사들이 마력검으로 쳐냈다.
그 모습에 그림자 대공은 눈살을 찌푸렸다.
“정말 귀찮군.”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그림자 대공과 그림자 기사들의 모습이 사라졌다.
호위대가 뒤늦게 기척이 느껴지는 방향으로 몸을 돌렸을 땐, 이미 그림자 대공과 그림자 기사들이 진형 깊숙이 침입하여 검을 휘두르고 있었다.
“크아악!”
“으아악!”
순식간에 고위 기사 6명이 치명상을 입고 쓰러졌다.
그림자 대공의 강함은 마병기 어둠 무희에서도 나오지만, 그림자 대공 본인의 무력도 무시할 수 없을 정도였다.
그는 프랑츠 제국 최정예 무력 집단 그림자 기사단의 기사단장이었다.
만약 약하다면 결코 그 자리에 올라오지 못했을 것이다.
“저지하라! 반드시 저지해야 한다!”
호위대장이 사력을 다해 외치며 그림자 기사와 검을 마주했지만 유감스럽게도 호위대장은 고위 기사 작위가 없는 평기사였고, 마력검의 사용이 가능한 그림자 기사에게 유린당하고 목숨을 잃었다.
“지휘관을 죽였다!”
호위대장을 죽인 그림자 기사단 죽은 호위대장의 머리를 잘라 들어 올리며 소리쳤으나, 정예로 구성된 지휘부 호위대의 사기는 쉽게 저하되지 않았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뿐이었다.
그림자 대공이 미친 듯이 날뛰며 고위 기사들을 도륙하자 호위대의 사기가 서서히 저하되기 시작했다.
마침내, 고위 기사와 고위 마법사들이 모두 죽고 기사와 병사, 그리고 마법사들만 남게 되자, 호위대는 사방으로 흩어져 버렸다.
“주군! 길이 열렸습니다!”
그림자 기사가 보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