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턴 플레이어 140화
55장 밤의 환영(2)
“조금 춥네요.”
거짓말이었다.
신성한 축복이 그녀를 보호하고 있었기 때문에 추위가 침투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것을 잘 모르는 테일러는 자신의 망토를 벗어 실비아에게 건넸고 망토를 고정하고 있던 고위 기사 브로치는 서코트에 고정했다.
“고마워요.”
실비아는 환한 미소를 애써 가면으로 가리며, 망토를 받아들어 몸에 걸쳤다.
그 모습을 본 일리아, 그녀의 입가에 그려졌던 미소가 점차 희미해졌다.
고요한 시간이 이어지는 가운데, 찬란한 빛을 발산하는 둥근 달이 검은 구름에 가려졌다.
보다 깊은 어둠이 깔리고 은밀하게 몸을 숨기고 있던 그림자 기사단 소속 암살단이 움직였다.
“컥!”
“윽!”
날카로운 단검 두 자루가 바람을 찢고 날아가, 보초를 서고 있는 병사 두 명의 목에 박혔다.
두 병사는 짧은 비명과 함께 힘없이 쓰러졌고 그 시체를 밟고 그림자 기사단원들이 전진했다.
“적습이다!”
급조한 망루에서 주변을 경계하고 있던 기사는 자신을 노리고 날아온 단검을 완갑으로 쳐낸 뒤, 적이 나타난 사실을 널리 알렸다.
가벼운 무장을 갖춘 전령이 깃발을 흔들었고, 경종 옆에서 대기하고 있던 병사가 경종을 울렸다.
경종 하나가 울리자, 다른 경종도 울렸다.
경종 소리가 야영지를 뒤흔들었다.
깃발을 든 전령이 말을 타고, 루시드가 있는 곳으로 달려왔다.
“동쪽에서 적습입니다.”
전령은 말에서 내리지도 않은 채 보고했다.
“모두 검을 뽑아라.”
루시드가 다소 긴장된 표정으로 검을 뽑아들었다.
왕실 근위기사들을 시작으로, 기병대 병력이 모두 검을 뽑고 창을 들어 올렸다.
테일러 또한 전쟁의 나팔을 검집에서 뽑았다.
[전쟁의 나팔 소리가 울려 퍼집니다. 아군의 사기가 증가합니다. 지휘관이 살아 있는 한 절대 패주하지 않습니다.]
마력 파장이 아군 기병대를 덮쳤다.
효과를 받은 아군 기병들의 눈이 어둠 속에서 빛을 발했다.
“신속하게 이동한다!”
루시드가 큰 소리로 외치며 말을 몰았다.
그 뒤를 따르며 테일러는 입을 열었다.
“이동한다!”
루시드의 명령을 거듭 강조하며 말을 몰았다.
하급 장교들이 루시드의 명령을 기병대 전체에 전파했고 기병대가 동쪽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들을 막는 이들은 없었고 매우 빠른 속도로 이동했다.
동쪽에 순식간에 도착할 수 있었고, 고위 마법을 준비하고 있는 그림자 기사단과 조우했다.
루시드의 눈이 날카롭게 빛났다.
“상급 장교 제피우스!”
루시드가 누군가를 호출했다.
집결한 기병들 사이로 갑옷 대신 깔끔한 군복만을 갖춰 입은 중년의 기병이 말을 타고 달려나왔다.
“상급 장교 제피우스, 부름에 답합니다.”
“귀관은 휘하 기병대를 이끌고 즉시, 적을 타격하라.”
막사 등의 장애물이 많았기 때문에 루시드가 지휘하는 기병대 전체가 공격을 시도할 수 없었다.
“명령을 받듭니다!”
상급 장교 제피우스는 약 250명 정도 되는 수의 휘하 기병대를 이끌고 그림자 기사단을 향해 돌진했고 루시드는 다른 상급 장교 두 명과 귀족 지휘관을 한 명 더 투입해 퇴로를 봉쇄했다.
“침착해라. 우선 고위 마법을 기병대에 퍼붓는다. 그리고 기병전을 위해 진형을 변경한다.”
암살단의 조장은 침착하게 지시를 내렸다.
고위 마법사 2명이 준비된 고위 마법을 돌진해오는 제피우스의 기병대를 향해 쏘았다.
먼저 거대한 불덩이 여러 개가 쇄도했다.
“방어 마법은 전개하라!”
제피우스 휘하의 고위 마법사와 마법사들이 방어 마법을 전개하여 고위 마법을 막아냈으나, e다음 순간 땅이 갈라지고 용암이 솟구치는 것은 막지 못했다.
“크아아악!”
“으아악!”
솟아난 땅에 걸려 말이 넘어지고 기병이 앞으로 튕겨져나갔다.
뜨겁고 붉은 용암이 솟구쳐 기병대를 덮쳤다.
고위 마법 한 방에 50명이 넘는 수의 기병이 목숨을 잃거나 낙마하여 전투를 수행할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
“속행한다!”
상급 장교 제피우스는 포기하지 않았다.
그는 기동력을 잃지 않은 상태에서 적을 타격하여 큰 피해를 줄 생각으로 속행을 명령했으나, 그 모습을 본 테일러는 고개를 저었다.
“끝났군.”
“어째서죠?”
테일러의 혼잣말을 들은 실비아가 질문했다.
테일러는 손가락으로 그림자 기사단 진영을 가리켰다.
“진형이 변경되었습니다. 기병전에 아주 효율적인 진형입니다. 특히 속도가 붙은 기병을 상대할 때 아주 좋은 진형이지요.”
테일러의 말대로 그림자 기사단의 조장이 지시를 내려 변경된 진형은 기병 돌격에 대응하기 위해 만들어진 진형으로, 속도가 붙은 기병 제압에 아주 뛰어난 효과를 보였다.
마법 공격에 생각보다 많은 수의 아군을 잃는 것으로 인해 상급 장교 제피우스의 이성이 날아간 것 같았다.
그러지 않고서야 왕립 사관학교를 졸업한 그가 그림자 기사단의 진형을 알아보지 못했을 리가 없었다.
“제기랄.”
루시드 역시 욕설을 내뱉었다.
상급 장교 제피우스의 행동에서 그의 패배가 훤히 보였기 때문이었다.
“테일러!”
“부르셨습니까? 루시드.”
자신을 부르는 루시드의 다급한 목소리에 테일러는 즉시 그의 호출에 응했다.
테일러가 옆으로 이동하자 루시드는 입을 열었다.
“테일러, 자네의 기병대가 놈들을 정리해줘야 할 것 같네. 보아하니, 제피우스의 기병대는…….”
“무슨 말씀인지 알겠습니다. 즉시 준비하도록 하겠습니다.”
테일러는 고개를 끄덕인 뒤 물러났다.
그런 그를 루시드는 신뢰가 가득 담긴 눈동자로 바라보았다.
루시드의 예상대로 상급 장교 제피우스의 기병대는 그림자 기사단에 의해 처참하게 깨졌고, 상급 장교 제피우스는 목숨을 잃었으며, 그의 부관이 살아남은 기병들을 통솔하여 간신히 귀환했다.
테일러는 미리 준비하고 있던 휘하 기병대를 이끌고 이동했다.
상급 장교 제피우스가 큰 실수를 범하긴 했지만 둘이 충돌하면서 그림자 기사단도 조금의 피해는 입었다.
진형이 재정비되기 전에 노리는 게 좋다고 판단한 테일러는 즉시 기병대를 움직인 것이다.
하지만 그런 테일러의 생각과는 다르게, 그림자 기사단원들은 신속하게, 즉시 진형의 재정비를 끝냈다.
“적이 진형의 재정비를 끝냈습니다!”
하급 장교가 보고했다.
“돌격한다.”
테일러의 의지는 흔들리지 않았다.
그는 돌격 속행을 명령했고, 기병대는 그의 명령에 따랐다.
“선제공격! 마법 공격으로 선제공격하라!”
마법전에선 선제 공격이 중요했다.
그리고 가이우스는 캐스팅 속도가 빠른 편이었다.
그림자 기사단 소속 고위 마법사 2명이 캐스팅을 끝내기도 전에 가이우스의 캐스팅이 끝났다.
“진형을 무너뜨려 보겠네!”
가이우스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그림자 기사단이 모여 있는 곳의 땅이 거세게 흔들렸다.
몸이 격하게 흔들리는 것으로 인해 고위 마법사들의 집중이 분산되고 캐스팅 중이었던 고위 마법 두 개 중 하나가 중단되었다.
중단되지 않은 고위 마법도 지진으로 인해 집중이 분산되어 캐스팅 속도가 순간 저하되었고, 그 틈에 또 다른 고위 마법사 크리스의 고위 마법 캐스팅이 끝났다.
하늘에서 날카로운 얼음 비가 쏟아졌다.
그림자 기사단의 고위 마법사는 캐스팅하고 있던 공격 마법을 중단하고 마력 소모가 큰 대신 순식간에 캐스팅을 끝낼 수 있는, 일종의 비장의 방어 마법을 완성해 그림자 기사단의 피해를 최대한 줄였다.
하지만, 공격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불의 정령 군주가 소환된 것이다.
일리아가 소환한 불의 정령 군주는 거대한 입을 열고 붉은 화염을 토해냈다.
“크아아악!”
“으아아악!”
그림자 기사단원들은 신속하게 회피했지만, 미처 피하지 못한 그림자 기사단원 2명이 붉은 화염에 휘말렸다.
게다가 회피 행동으로 인해 힘들게 재정비한 진형이 무너지고 말았다.
조장이 불의 정령 군주를 역소환시켰지만 재정비한 진형이 무너진 것은 치명적이었다.
테일러와 기병대가 거의 코앞에 다가왔고, 가이우스의 고위 마법이 한 번 더 그림자 기사단을 덮쳤다.
연쇄 전격에 의해 그림자 기사단원 십여 명이 죽음을 맞이했다.
그리고 테일러와 기병대가 그림자 기사단을 덮쳤다.
테일러가 휘두른 전쟁의 나팔에 그림자 기사단원 한 명의 목이 날아갔다.
치명적이며 빠른 일격에 그림자 기사단원은 대응하지 못했다.
뒤이어 돌격해오는 기병들이 창과 검으로 그림자 기사단원을 공격했다.
그림자 기사단원들은 보병임에도 불구하고 엄청난 도약을 선보이며 기병들과 전투를 벌였다.
진형이 무너진 탓에 그림자 기사단의 피해도 심각했지만, 기병대의 피해도 적지는 않았다.
그림자 기사단은 프랑츠 제국에서도 최정예, 결코 쉬운 상대가 아니었다.
“포로를 잡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난전 중, 상급 장교가 다가와 물었다.
그림자 기사단의 은신처를 묻기 위한 포로 생포를 말하는 것이었다.
매일 밤 같은 자들이 급습하진 않았을 것이다.
그들은 교대로 움직였을 것이고, 분명 주변에 은신처가 있을 것이다.
“살아남은 놈을 잡아서 고문하면 된다.”
테일러가 대답했다.
상급 장교가 고개를 끄덕이는 순간, 단검이 날아와 상급 장교의 가슴에 박혔다.
“크윽.”
상급 장교는 아찔한 통증에 눈앞이 아득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는 버티려 했지만, 온몸의 힘이 순식간에 빠져나갔고 말 위에서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힘없이 낙마했다.
“네놈의 머리를 뽑아주마!”
조장을 맡은 그림자 기사가 서슬 퍼런 살기를 흘리며 테일러의 앞에 다가왔다.
“우리를 먼저 넘어야 할 것이다.”
알버트가 기사 2명과 함께 그림자 기사의 앞을 막아섰다.
테일러는 알버트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알버트, 제가 상대하겠습니다.”
“저도 활약할 기회를 주십시오. 주군.”
알버트의 요청에 테일러는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합격한다.”
알버트는 말을 끝내기 무섭게 조장을 향해 몸을 날리며 마력검이 깃든 검을 휘둘렀다.
두 검이 부딪치며 날카로운 소음이 퍼졌다.
알버트가 조장의 검을 높이 쳐올린 틈에, 기사가 옆으로 스치듯 지나치며 검으로 조장의 허리를 공격했으나, 아쉽게도 그의 검은 두꺼운 갑옷에 막혀 조장의 몸에 상처를 입히지 못했다.
그가 마력검의 사용이 가능한 고위 기사였다면 조장에게 치명성을 입힐 수도 있었을 것이다. 또 다른 기사가 갑옷의 약한 곳을 노리고 검을 찔렀지만, 조장은 이미 검을 회수한 뒤였다.
“옆으로 피해!”
동료 기사가 경고했지만 검을 찌른 기사가 몸을 피하기엔 이미 늦고 말았다.
조장의 마력검은 기사의 검을 깨끗하게 자르고 목까지 날려 버렸다.
머리가 없어진 몸은 붉은 피를 분수처럼 쏟아내며 비틀거리며 낙마했다.
“내가 놈을 상대하겠다. 경은 빈틈을 노리고 개입하도록.”
“알겠습니다. 후안 경.”
기사는 능숙하게 말을 움직여 뒤로 물러났고, 알버트는 말을 몰아 조장의 앞으로 다가갔다.
두 기사는 서로를 잠시 동안 노려보며 시선을 교환했다.
그리고 어느 순간 서로를 향해 달려들었다.
조장은 인간의 한계를 돌파한 것 같은 엄청난 높이로 도약했다.
그리고 아래로 점점 내려오면서 단검을 4~5개 정도 꺼내 알버트를 향해 던졌다.
하나하나가 갑옷의 약한 부분을 노리는 치명적인 공격이었다.
알버트의 승마술은 뛰어난 편이었다.
그는 말을 움직이면서 단검의 대부분을 피해내고 피하지 못한 나머지 단검들은 검으로 쳐냈다.
개입할 준비를 하고 있던 테일러는 전쟁의 나팔을 내리고 병사들의 지휘에 집중했다.
테일러가 기병대의 지휘에 집중하고 있는 사이, 알버트의 검이 그림자 기사단 조장의 복부를 관통했다.
“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