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턴 플레이어 139화
55장 밤의 환영(1)
갑자기 테일러가 자세를 바꾸자 산 크루소 백작은 조금 당황했다.
방어 자세를 고집하던 그가 공격 자세를 취했다.
산 크루소 백작은 테일러의 속내를 파악하기 위해 머리를 굴리며 뒤로 조금 물러나 거리를 벌렸다.
“놓치지 않는다!”
테일러가 보법을 밟아 거리를 좁혔다.
그 속도는 산 크루소 백작이 놀랄 정도로 빨랐다.
“이럴 수가!”
산 크루소 백작은 갑자기 빨라진 테일러의 움직임에 경악하며 검을 고쳐 잡았다.
테일러가 전쟁의 나팔을 휘둘렀다.
옆에서 목을 노리는 정직한 공격이었지만 그 속도는 너무 빨랐다.
피하기엔 이미 늦었다.
“큭!”
산 크루소 백작은 검을 들어 올려 전쟁의 나팔을 막아냈으나 생각보다 강한 힘이 실려 있는 탓에 신음성을 흘렸다.
생각보다 강한 충격에 산 크루소 백작의 자세가 조금 흔들렸다.
그리고 그것을 테일러는 놓치지 않았다.
그는 전쟁의 나팔을 신속하게 회수한 뒤 빈틈을 노리고 찔렀다.
산 크루소 백작 역시 검을 회수한 뒤 방어를 위해 휘둘러 테일러의 전쟁의 나팔을 쳐냈다.
산 크루소 백작의 검에 깃든 검은 마력검이 조금 희미해졌다.
그것을 본 테일러는 입가에 미소를 그렸고, 산 크루소 백작의 면갑 아래 얼굴엔 당혹감이 깃들었다.
“제기랄.”
여러 번의 공격이 오고 가고, 산 크루소 백작은 점점 희미해지는 자신의 마력검의 모습에 욕설을 내뱉었다.
반면에 테일러는 입가에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결사의 의지 스킬 효과가 극대화된 이후, 주도권은 테일러가 잡게 되었다.
테일러의 검격은 산 크루소 백작이 자세를 제대로 갖추지 않으면 받아냈을 때 충격을 분산시키기 힘들 정도였다.
게다가, 받아내게 되면 어김없이 마력검을 이루고 있는 마력이 일부 해산하면서 검은 마력검이 희미해지고 있었다.
모든 게 테일러의 계획대로 돌아가고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테일러의 전쟁의 나팔과 산 크루소 백작의 검이 충돌한 순간, 산 크루소 백작의 검은 마력검이 산산조각 났다.
테일러의 두 눈이 날카롭게 빛났다.
동시에 전쟁의 나팔이 움직였다.
산 크루소 백작의 검을 잘라낸 순간, 그는 잘린 검을 버리고 단검을 뽑아들었다.
마력검은 없었지만 잘린 검보다는 위협적이었다.
하지만 테일러의 움직임은 단검으로 어떻게 해 볼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단검을 휘두르고 테일러의 공격을 회피하며 버티던 산 크루소 백작은 결국 얼마 버티지 못하고 테일러가 휘두른 전쟁의 나팔에 치명상을 입고 쓰러졌다.
테일러는 쓰러진 산 크루소 백작의 등을 발로 밟고 전쟁의 나팔로 목을 잘라냈다.
그리고 잘린 목을 들어 올리며 입을 열었다.
“산 크루소 백작이 죽었다!”
* * *
황금 군단 군단장 산 크루소 백작의 죽음.
그것은 신호탄이었다.
산 크루소 백작의 죽음에 힘입어, 대대적인 토벌이 시작되었고 825년 1월.
아이반 왕자가 움직인 기병대들은 황금 군단 분견대 전원을 확실하게 토벌하는 것에 성공했다.
“수도를 방어한다.”
아이반 왕자는 수도를 방어하기 위해 군대를 움직였다.
추가로 소집된 북부의 영지군과 합류하여 11만의 병력을 보유하게 된 아이반 왕자의 군대는 수도 방어를 위해 남쪽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수도까지 향하는 길.
아무런 방해가 없을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은 안일한 생각이었다.
늦은 밤이 찾아오자 아이반 왕자의 군대는 야영지를 세우고 휴식했다.
소수의 경계병이 야영지 주변을 순찰했고 정찰대가 주변을 정찰하여 혹시나 있을지 모르는 적의 공격에 대비했다.
그런데, 야영지를 순찰하는 정찰대를 피해 야영지 근처로 숨어드는 그림자 수십이 있었다.
그들은 아주 은밀하게 움직였다.
경계병들은 그들의 모습을 보지 못했고, 마침내 그림자들은 야영지에 도착했다.
그림자들이 검을 뽑아들었다.
칠흑과 같은 마력검이 어둠의 빛을 발산하고 중앙에 선 고위 마법사가 강력한 마법을 캐스팅했다.
“마력 파장이 퍼졌다. 곧 적의 병력이 올 것이다.”
“그전에 막사를 타격하고 신속하게 후퇴한다.”
그림자들이 대화를 나누었다.
그들은 그림자 대공이 남기고 간 그림자 기사단 소속 암살단 병력이었다.
그림자 대공이 그들에게 남긴 명령은 하나.
아이반 왕자의 군대가 수도로 내려오는 것을 최대한 지연시키라는 것이었다.
“강력한 거 한 방 날린다.”
고위 마법사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하늘에서 거대하고 붉은 불덩이가 지상으로 떨어졌다.
붉은 불덩이는 병사들이 자는 막사가 모여 있는 곳을 강타했고, 막사 6개가 불길에 휩싸였다.
“되었다. 이탈한다.”
습격의 지휘를 맡은 암살단 조장이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림자 기사단은 신속하게 야영지를 이탈하기 위해 움직였다.
“적습이다!”
“모두 깨워!”
경계병이 적습을 알리며 경종을 울렸다.
자고 있던 병력이 모두 일어났다.
“기병대는 색적 행동에 나서라! 보병대는 진형을 갖춰 적습에 대비하라!”
야간 경계 지휘를 맡은 귀족 지휘관이 목이 터져라, 외쳤다.
전령들이 그의 명령을 전파하기 위해 사방으로 흩어졌다.
명령이 전파되자 기병대와 보병대가 움직였다.
만약의 상황에 대비하여 대기하고 있던 기병대 수백이 움직였다.
“찾아라! 적을 찾아라!”
기병대가 야영지 주변을 들쑤시고 다녔고.
“적습에 대비하라!”
보병대가 진형을 갖춰 공격에 대비해 야영지를 수비했다.
“하급 장교 칼레디스입니다! 도저히 적을 찾을 수 없습니다!”
“하급 장교 노세프입니다! 개미 새끼 한 마리도 찾을 수 없었습니다!”
색적에 투입되었던 기병대 소속 하급 장교들이 보고했다.
찾을 수 없을 수밖에 없었다.
그들이 정찰 및 색적을 하고 있을 때 그림자 기사단은 이미 야영지를 이탈해 안전한 곳에 도착한 뒤였다.
습격은 며칠 동안 밤마다 이어졌다.
매일 밤마다 그림자 대공의 명령을 받은 그림자 기사단 소속 암살단의 병력이 은밀하게 움직여 야영지를 습격했다.
습격당할 때마다 많은 수의 병력이 희생되거나 하진 않았지만 매일 밤 습격이 계속되다 보니, 아이반 왕자가 지휘하는 군대의 병력은 제대로 잠을 자기는커녕 쉴 수도 없었다.
매일 밤 공격이 계속되고, 군의 피로도는 하늘을 찌르고 있었다.
야간 공격이 시작된 지 일주일 되는 날 오전, 지휘관 회의가 소집되었다.
“누구 방법이 있으면 말해보게. 사소한 것이라도 상관없네.”
아이반 왕자가 피곤한 얼굴로 말했다.
공격이 시작되고 아이반 왕자 또한 잠을 자지 못했다.
그래서 그의 얼굴엔 깊은 피로가 녹아 있었다.
“야영지 주변을 마법 함정으로 도배하는 건 어떻습니까?”
어떤 귀족이 말했다.
마법 함정.
적이 들어오는 순간 발동되고 강력한 폭발을 일으킨다.
습격에 대처하기에 아주 좋은 방법으로 보이겠지만 여긴 큰 문제가 있었다.
“야영지 주변에 마법 함정을 매설하면, 아군의 행동이 제한됩니다. 기동력을 상실한 상태에서 적이 대규모 마법 폭격을 시도한다면 꼼짝없이 몰살당할 것입니다.”
테일러가 차분하게 마법 함정을 야영지 주변에 설치하면 안 되는 이유를 설명했다.
귀족은 입을 삐죽 내민 채 고개를 푹 숙였다.
마법 함정은 좋은 방법 같았지만, 인간끼리의 전투에선 인간을 대상으로 설정하기 때문에 아군도 표적이 된다는 것이 문제였다.
그런 마법 함정은 야영지 주변에 대량으로 매설할 경우, 아군의 움직임이 제한된다.
움직임이 제한된 상태에서 적의 원거리 마법으로 폭격한다면 아주 큰 피해를 당하게 될 것이다.
“제가 발언해도 되겠습니까?”
잠시 침묵이 내려앉은 가운데, 루시드 필리스터가 무거운 침묵을 깨고 말했다.
아이반 왕자가 고개를 끄덕이자 루시드는 자리에서 일어나 입을 열었다.
“오늘 밤도, 놈들은 공격해올 겁니다.”
루시드의 말에 지휘관 회의에 참석한 지휘관 모두가 고개를 끄덕이며 동조했다.
일주일 동안 적들은 하루도 빠짐없이 매일 밤 야영지를 습격했다.
당연히 오늘도 습격해 올 것이다.
루시드는 고개를 돌려 아이반 왕자를 바라보았다.
“제게 기병대 3천의 지휘권을 주시면 오늘 밤, 놈들을 반드시 처리하겠습니다.”
“좋네. 필리스터 경, 그대에게 기병대 3천의 지휘권을 주겠네. 부지휘관은 누구로 하겠는가?”
“부지휘관은 고위 기사 테일러 경으로 하겠습니다.”
부지휘관 자리를 누구에게 줄 것인지 묻는 아이반 왕자의 물음에 루시드는 망설임 없이 테일러라고 대답했다.
루시드와 테일러에게 번갈아 시선을 준 뒤 아이반 왕자는 입을 열었다.
“경들에게 모든 것을 맡기겠네.”
그 말을 끝으로 아이반 왕자는 회의를 해산시켰다.
회의가 해산되고 테일러는 파티원들이 머무는 곳으로 귀환했다.
“어떻게 되었나?”
돌아온 테일러를 본 가이우스가 질문했다.
가이우스의 눈 밑엔 짙은 다크서클이 자리 잡고 있었다.
가이우스는 귀한 고위 마법사였기 때문에 습격이 있을 때마다 긴급 소집되어 적의 원거리 마법 공격에 대비해 방어 마법을 전개할 준비를 해야만 했다.
그래서 그는 지금 졸음과 치열한 전쟁 중이었다.
가이우스보다 더하진 않지만 다른 파티원들도 비슷한 상황이었다.
특히 기병대 지휘관이 된 테일러는 긴급 소집되어 적의 공격에 대응하기 위해 움직인 적이 많았다.
“또 밤을 새워야 할 것 같습니다.”
“이런, 제기랄.”
테일러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레드가 욕설을 내뱉었다.
며칠 동안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하면서 그의 신경은 극도로 날카로워져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 놈들을 잡는다면 더 이상 밤을 새우지 않아도 될 겁니다.”
“그건 당연한 거 아냐?”
레드가 피곤한 눈으로 쏘아붙였다.
테일러는 쉽게 말을 잇지 못하고 입을 다물었다.
“진정하세요. 레드. 이 모든 게 테일러 때문은 아니지 않습니까?”
알폰스가 나섰다.
레드는 고개를 끄덕이며 물러났고 테일러는 작전 개요를 설명했다.
그리고 다시 밤이 찾아왔다.
테일러가 지휘하는 기병대 3백이 포함된 기병대 3천이 야영지 중앙에 집결했다.
집결한 기병 전원은 적습을 알리는 경종이 울리면 즉시 이동하여 적을 타격하기 위해 말에 올라탄 채 밤을 보내고 있었다.
테일러가 지휘하는 기병대는 루시드가 지휘하는 영지군 소속 기병대 바로 옆에 배치되었다.
임시지만 전선에 나온 왕실 근위기사단의 지휘를 맡은 만큼, 루시드의 곁엔 왕실 근위기사단 소속 기사 몇 명이 붙어 있었다.
다른 기사들보다 조금 더 화려한 망토와 갑옷을 입은 그들은 피곤한 얼굴로 묵묵히 시간을 보냈다.
“흠.”
밤바람이 차가웠다.
테일러는 걱정스러운 눈으로 일리아와 실비아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북부의 겨울은 춥다.
특히 밤에는 차갑고 날카로운 칼바람이 불었다.
두꺼운 옷을 입었다고는 하지만 여자의 몸으로는 북부의 밤을 야외에서 지새우는 게 쉬운 일은 아닐 것이라고 테일러는 생각했지만 일리아는 하이 엘프였고 실비아는 성녀였다.
일리아는 추위에 대한 면역이 있었고, 실비아는 신성한 축복이 추위를 막아주고 있었다.
“춥지 않으십니까?”
그것을 잘 모르는 테일러는 걱정이 되어 두 여자에게 질문했다.
일리아는 대답 대신 미소를 보였고 실비아는 고개를 옆으로 돌리며 입을 열었다.
“조금 춥네요.”
거짓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