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턴 플레이어 138화
54장 추격(3)
기병대는 헤일린 마을로 진입했다.
300여 마리의 군마가 머물 공간은 마을 내에 없었기 때문에 마을 외곽의 공터에 묶어 놓았다.
그리고 만약을 위해 병사들을 배치했다.
말을 묶어두고 마을 안으로 깊숙이 진입하자 마을 사람들이 기병대를 반갑게 맞이해주었다.
아직 눈물 자국이 채 마르지 않은, 슬픔이 완전히 떠나가지 않은 얼굴이었지만 자신들의 목숨을 구해준 테일러의 기병대를 반갑게 맞이했다.
테일러는 가볍게 손을 들어 올리는 것으로 그들의 환영에 응답했다.
“이곳입니다.”
촌장이 걸음을 멈추었다.
도착한 곳은 마을 중앙이었다.
마을 회관이 있는 마을 중앙에는 축제나 행사가 있을 때를 위해 비워둔 넓은 공터가 있었다.
공터의 중앙에는 소와 돼지 등의 동물들이 꼬챙이에 관통당한 상태로 뜨거운 모닥불에 구워지고 있었다.
“테일러, 언제까지 세워둘 셈이야?”
레드가 불평했고, 테일러는 병사들을 너무 오래 세워 두었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다.
“앉아도 좋다.”
그렇게 말하며 테일러는 촌장의 안내를 받아 마을 회관 계단 앞에 앉았다.
그의 오른편에 일리아가 당연하다는 듯 앉았고, 실비아는 잠시 고민하다가 왼편에 앉았다.
“허허허, 양손에 꽃이군요. 고위 기사님.”
그 모습을 본 촌장의 말이었다.
일리아는 얼굴을 살며시 붉히며 테일러의 옆에 바짝 붙었고 실비아는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기사와 병사들은 고기가 꽂혀 있는 모닥불 주변에 빙 둘러앉았다.
고기가 익어가면서 향긋한 냄새를 사방에 전파했다.
냄새를 맡으니 테일러도 배가 고픈 것 같았다.
중심도시를 나서고 짧은 시간이지만 육포와 마른 과일 등으로 식사를 해결한 기사와 병사들은 굶주린 늑대처럼 고기를 뜯어 먹고 있었다.
테일러와 파티원들 역시 고기를 잡고 뜯었다.
“성기사님은 불편하지 않으십니까?”
마을 사람 한 명이 식사 중에도 전신 판금 갑옷을 벗지 않는 알폰스 그레이를 놀랍다는 표정으로 바라보며 물었다.
알폰스는 입으로 가져가려던 닭의 다리를 잠시 접시에 내려놓고 입을 열었다.
“불편하지 않습니다. 지켜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언제라도 방심할 순 없습니다.”
알폰스의 대답에 마을 사람은 납득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한참 고기의 맛을 즐기고 있을 때였다.
앳된 외모의 소녀와 소년들이 테일러에게 다가왔다.
그들은 여기저기서 꽃을 따서 급하게 만든 꽃다발을 테일러에게 건넸다.
“살려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들은 한목소리로 말했다.
꽃다발을 받아든 테일러는 희미한 미소를 입가에 머금었다.
“고맙다.”
테일러의 말이 끝나자 소녀 소년들은 어딘가로 사라졌다.
처음 받아보는 꽃다발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마음가짐이 새로워지는 느낌이었다.
“가이우스.”
테일러는 열심히 고기를 뜯고 있는 가이우스를 불렀다.
고기를 잔뜩 집어넣어 양 볼을 부풀린 가이우스의 시선이 테일러에게 향했다.
그는 입 안에 가득 넣은 것들 힘겹게 삼키고는 입을 열었다.
“무슨 일인가.”
“꽃다발에 보존 마법을 걸어주실 수 있으십니까?”
“어렵진 않지.”
가이우스는 바로 행동했다.
보존 마법이 걸린 꽃다발을 테일러는 조심스럽게 가방에 넣었다.
그리고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어두운 밤하늘이었지만 오늘따라 맑았다.
* * *
“으악!”
날카로운 창이 죄 없는 마을 사람의 가슴을 관통했다.
창에 관통된 남자는 붉은 피를 왈칵 토해내며 고통스러워하다 천천히 힘을 잃더니, 이내 숨이 끊어졌다.
“그만! 나머지는 살려두어라!”
어둠 속에서 산 크루소 백작이 모습을 드러내며 소리쳤다.
산 크루소 백작의 명령은 신속하게 전파되었고, 마을에서 벌어지는 학살이 멈추었다.
“모두 사로잡아라.”
황금 군단의 기사와 병사들은 새롭게 떨어진 명령을 수행했다.
마을 사람들을 죽이는 대신 포로로 잡기 시작했다.
“모두 죽이고 이동하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황금 군단의 고위 마법사가 질문했다.
산 크루소 백작은 하얀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하하하. 그것보다 더 좋은 방법이 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아이반 왕자가 우리를 토벌하기 위해 병력을 움직였다고 들었다.”
고위 마법사는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이었다.
아이반 왕자는 흩어진 황금 군단 분견대를 토벌하기 위해 마찬가지로 분견대를 조직해 움직였다.
“그렇다면 우리를 쫓는 자들 역시 있겠지!”
“그거야 당연한 것 아니겠습니까?”
고위 마법사는 한숨을 쉬며 대답했다.
산 크루소 백작은 입꼬리를 끌어 올렸다.
“함정을 판다. 적의 움직임이 확인되면 저 포로들을 모두 마을 안에 풀어놓을 것이다. 그리고 소수의 병력으로 포로 사냥을 시작한다. 나머지는 매복했다가 놈들이 마을 안으로 들어온 순간 급습한다.”
괜찮은 작전이었다.
산 크루소 백작 또한 자신이 생각해낸 작전에 감탄하고 있었다.
고위 마법사도 입꼬리를 끌어 올렸다.
“그렇다면 마력 주입식 마법 함정을 설치해도 좋을 것 같습니다.”
마력 주입식 마법 함정.
그것은 특정한 종족이 들어오면 무조건 발동하는 일반 마법 함정과는 다르게, 마력을 주입하는 순간 발동하는 마법 함정이었다.
그래서 매복 작전 등에 자주 사용되는 마법 함정이었다.
“그것 또한 좋겠군! 지금 당장 준비하라!”
“예. 알겠습니다.”
검은 의도가 고개를 들었다.
* * *
“정찰 활동을 하던 왕국 정보부 특수 요원 2명이 라포 마을 근처에서 연락이 두절되었다는 본대의 통신입니다.”
본대와의 통신을 끝낸 크리스가 통신 내용을 보고했다.
테일러는 군사 지도를 펼쳤다.
라포 마을, 여기서 멀리 떨어져 있진 않았다.
서두른다면 1시간 안에 도착할 수 있는 거리였다.
“통신이 두절된 시각은?”
“30분 정도 전입니다.”
크리스의 대답에 테일러는 군사 지도를 접어 안장에 고정된 가방에 집어넣었다.
라포 마을까지 1시간이 걸린다.
운이 좋다면 적 병력이 라포 마을을 발견하기 전에 아군이 먼저 라포 마을에 도착해 적과 맞서 라포 마을을 수비할 수 있을 것이다.
“즉시 이동한다.”
테일러는 잠깐의 고민도 없이 명령을 내렸다.
기병대가 움직였다.
1시간 정도 시간이 흐르자 기병대는 학살이 벌어지고 있는 라포 마을 인근에 도착할 수 있었다.
“우리를 발견하지 못한 건가, 계속 학살을 하고 있어.”
눈이 좋은 레드가 육안으로 상황을 확인했다.
다수의 기병대가 모습을 드러냈음에도 불구하고 학살을 멈추지 않는 적들의 모습에 레드는 어이가 없다는 듯 말했다.
테일러 또한 황당했다.
헤일린 마을을 구원한 이후에도, 1번의 전투가 더 있었다.
그 마을에서 학살 행동을 하고 있던 적 보병대 역시 아군 기병대가 모습을 드러내자 학살을 그만두고 즉각적으로 전투를 위한 움직임을 보였었다.
그런데 지금은 무슨 상황이란 말인가.
충분히 가까이 접근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학살을 멈추지 않았다.
“돌격한다.”
테일러는 살기를 흘리며, 명령을 내렸다.
상급 장교가 다급하게 입을 열었다.
“하지만 함정일 수도 있습니다!”
“귀관의 말도 틀린 것은 아니지만, 더 이상 생명의 불꽃이 꺼지는 것을 묵과할 수 없다.”
상급 장교의 말도 틀린 것은 아니었다.
함정일 가능성이 충분했다.
하지만 테일러는 상급 장교의 의견대로 따를 생각이 없었다.
이대로 있다가는 마을 사람들이 모두 죽어버릴 것이다.
그건 용납할 수 없었다.
“돌격!”
테일러는 다시 한번 명령을 내렸다.
하급 장교들이 명령 전파를 위해 다시 한번 입을 열었다.
“돌격하라!”
돌격 명령이 떨어지고 기병대가 무서운 속도로 적들을 향해 돌격했다.
말발굽 소리가 점점 가까워지자 학살을 행하던 황금 군단의 기사와 병사들은 행동을 멈추고 방어를 갖추었다.
하지만 그들은 소수였고, 기병대에 의해 순식간에 제압 당했다.
“마을의 규모보다 사람들의 수가 너무 작은 것 같습니다.”
젊은 하급 장교가 조심스럽게 의견을 내놓았다.
레드가 무엇인가를 확인하고 두 눈을 빛내며 다급하게 입을 열었다.
“뭔가 이상해! 도망치자!”
“마법 함정이네! 어서 피해야 하네!”
가이우스 또한 다급하게 외쳤다.
그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환한 빛과 함께 마법 함정이 발동했다.
날카로운 마법의 칼날이 마법 함정 위에 서 있는 모든 군마의 다리를 깨끗하게 잘랐다
다리가 잘린 군마들이 울음소리를 터뜨리며 쓰러졌다.
군마들이 쓰러지면서 270여기의 기병들이 일제히 무너지듯 쓰러졌다.
“모두 죽여라!”
마을 회관의 문이 박살 나고 그곳에서 산 크루소 백작이 달려나왔다.
그의 곁을 따라나선 고위 마법사가 든 스태프가 빛을 뿜어냈다.
하늘에서 거대한 불덩이가 떨어졌다.
“안 돼!”
불덩이는 정확히 테일러를 노리고 있었다.
테일러는 말과 함께 쓰러져 적의 고위 마법에 대응하기 힘들어 보였다.
일리아는 이를 악물고 바람의 정령 군주를 소환했다.
소환된 바람의 정령 군주는 테일러를 대신해 불덩이를 맞았다.
아주 큰 피해를 본 바람의 정령 군주가 비틀거리는 순간, 마법 몇 발이 바람의 정령 군주를 공격했고 그는 찢어지는 듯한 비명과 함께 역소환되었다.
소환한 정령 군주가 치명적인 피해를 보고 정령계로 역소환된 충격으로 일리아가 비틀거렸다.
“포위하라, 그리고 철저하게 죽여라!”
산 크루소 백작이 명령을 내리며 테일러와의 거리를 좁혔다.
지휘관으로 보이는 테일러를 제거하여 기병대의 사기를 꺾고 지휘계통에 혼선을 주기 위함이었다.
혼란스러운 와중에, 정신을 수습한 2명의 기사가 테일러를 보호하기 위해 검을 들고 산 크루소 백작에게 달려들었지만, 산 크루소 백작이 한 번 검을 휘두르자 두 기사는 치명적인 피해를 당해 힘없이 쓰러졌다.
“적 지휘관은 제가 맡습니다. 알버트, 지휘를 부탁합니다.”
전쟁의 나팔에 마력검이 깃들었다.
눈앞의 상대는 한눈에 보기에도 강한 실력자로 보였기 때문에 테일러는 긴장하여 다소 경직된 몸을 천천히 부드럽게 풀며 거리를 좁혔다.
면갑의 시야 구멍 사이로 산 크루소 백작의 살기 어린 눈동자가 보였다.
“황금 군단의 군단장 산 크루소 백작이다.”
산 크루소 백작은 먼저 자신을 소개했다.
테일러 또한 자신을 숨길 이유는 없었기 때문에 소개를 하기 위해 입을 열었다.
“사우스 왕국 고위 기사이며, 왕국군 기병대 지휘관 테일러다.”
“하, 테일러라고?”
테일러의 이름을 들은 산 크루소 백작의 눈동자에 깃든 살기가 짙어졌다.
테일러라는 이름은 산 크루소 백작에게 있어서 익숙했다.
주군인 그림자 대공을 곤란하게 만든, 그 이름을 산 크루소 백작은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면갑 아래 숨겨진 산 크루소 백작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나는 정말 운이 좋군.”
희미한 웃음을 흘리며, 산 크루소 백작이 자세를 고쳤다.
방어를 철저하게 무시한, 오직 공격만을 위한 자세였다.
테일러 또한 산 크루소 백작의 자세를 읽었고 마른 침을 삼키며 한걸음 뒤로 물러나며 방어 자세를 취했다.
산 크루소 백작은 테일러가 구사하는 파마의 검에 대한 정보를 대략적으로 알고 있었다.
검끼리 충돌이 많아질수록 마력이 해산되어 자신이 불리해질 것이란 것을 잘 알았기 때문에 강력한 공세를 취해 순식간에 테일러에게 치명상을 입히겠다는 속셈이었다.
테일러 또한 그런 산 크루소 백작의 속내를 읽을 수 있었기 때문에 방어 자세를 취했다.
“푸른 눈의 학살자라고 불리는, 이 몸의 검을 받아내 보아라!”
날카로운 외침과 함께 산 크루소 백작의 몸이 사라졌다.
테일러는 전신의 감각을 예민하게 하여 주변을 탐색했다.
“뒤냐!”
뒤에서 살기와 함께 기척이 느껴졌다.
테일러는 재빨리 몸을 돌렸다.
산 크루소 백작이 검은 마력검이 깃든 검을 휘두르고 있었다.
테일러는 산 크루소 백작의 검을 눈으로 좇아 예상 경로에 전쟁의 나팔을 가져갔다.
검을 막아내기 위해서였으나, 산 크루소 백작은 자신의 검과 테일러의 전쟁의 나팔이 충돌하기 직전에 검을 회수했다.
파마의 검 효과로 인한 마력 소모를 피하기 위해 산 크루소 백작이 생각한 방법이었다.
테일러의 전쟁의 나팔과 충돌하기 직전에 검을 회수하는 것.
그것으로 인해 파마의 검의 효과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었다.
충돌하지 않으면 공격당할 수도 있는 상황에선 사용할 수 없는 방법이고, 고도의 집중력을 요했지만 파마의 검과 대적할 땐 아주 효과적인 방법이었다.
산 크루소 백작의 공격이 이어졌다.
테일러는 침착하게 방어에 임했다.
산 크루소 백작은 계속 전쟁의 나팔과 충돌하기 직전에 검을 회수하는 것으로 파마의 검 효과를 회피했다.
산 크루소 백작의 꼼수에 테일러는 미칠 지경이었다.
테일러의 검술 실력은 훌륭했지만, 작위가 있는 그림자 기사들과 비교하면 조금 부족한 수준이었다.
그 부족한 것을 메워 주는 게 파마의 검 스킬이었다.
그런데, 그게 사실상 무력화되니 힘겹게 전투를 이어갈 수밖에 없었다.
산 크루소 백작과 전투를 이어가면서 아주 잠깐씩 여유가 생길 때마다 주변을 둘러보았지만, 아군의 상황도 희망적이진 않은 것으로 보였다.
알버트의 합류나, 가이우스나 크리스의 지원을 기대할 수 없었다.
일리아도 이어서 소환한 바람의 정령 군주가 역소환되는 바람에 상당한 충격을 받아서 테일러를 돕는 게 불가능했다.
계속되는 공격에 테일러의 체력이 바닥을 보이려는 순간, 희망이 찾아왔다.
[아군의 50%가 전사했습니다. 결사의 의지 스킬의 효과가 극대화됩니다. 공격력과 방어력이 대폭 상승합니다.]
많은 아군이 전사한 것은 안타까운 일이었으나, 스킬의 효과 극대화는 반가웠다.
테일러는 자세를 고치며 입가에 미소를 그렸다.
“반격의 시간이다. 산 크루소 백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