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9.
나는 유현재의 눈을 피하지 않고 그대로 바라보았다. 눈꼬리가 살짝 처져 순한 인상을 주는 얼굴과 달리 표정은 잔뜩 굳어 있었다. 빛을 받고 그대로 머금은 눈동자는 어쩐지 조금 축축해 보이기도 했다. 잡티 하나 없이 깨끗한 피부와 고급스럽게 생긴 이목구비는 언제나 유현재를 그 자체로 돋보이게 해 주었지만, 간혹 내게 지어 보이는 이런 표정들은 적응이 되지 않을 정도로 습기 가득한 늪 같기도 했다.
“날씨도 많이 좋아졌고.”
“그러게.”
“앞으로도 그럴 것 같아.”
“그런가?”
나는 모호하게 대답하며 슬쩍 뒷걸음질 쳤다. 유현재는 내가 멀어진 만큼 앞으로 다가왔다. 심장이 목구멍으로 튀어나올 것처럼 뛰기 시작했다. 붉은색은 사람의 감정을 고조시킨다더니 틀린 말이 없었다. 갑작스레 파도처럼 몰려온 감정이 이성을 휩쓸고 내려갈 것만 같았다.
“너.”
“…….”
“처음에도 이렇게 다가가면 눈을 감았는데.”
“…어?”
“똑같네.”
무슨 이야기냐 물어볼 새도 없이 유현재의 얼굴이 다가와 가볍게 입술을 포갰다. 나는 쿵쾅거리며 뛰는 심장이 부디 혀끝을 통해 유현재에게 전해지지 않기만을 간절히 바랐다.
*
“완전히 깜깜해졌네.”
“해 떨어지니까 춥다.”
“그러게. 얼른 가자, 집에.”
유현재가 내 팔을 가볍게 잡았다. 나도 모르게 팔이 경직되어 유현재가 이끄는 대로 끌려갔다. 오히려 나를 잡아끄는 유현재 또한 마찬가지인 것 같았다. 기묘한 정적이 흐른 후 우리는 다시 걷기 시작했다.
첫 키스라 하기 애매모호한 그 행위가 끝나고 나는 한동안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입술이 맞닿기 전 마지막으로 했던 그 말의 진위에 대해선 굳이 묻지 않았다. 얼마 전에도 생각했듯 유현재의 기억이 돌아온다고 해서 바뀔 것도, 좋아질 것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오히려 나는 유현재가 이 이상의 뭔가를 기억하지 않길 바랐다.
“애들 다 갔네.”
“그러게. 너무 늦었나 보다. 우리도 교문 닫히기 전에 얼른 가자.”
“응.”
아무도 없는 운동장은 그 어떤 때보다도 넓어 보였다. 우리는 손을 맞잡지도 않고, 애매하게 팔을 쥔 채로 말없이 걸었다. 걸을 때마다 살짝씩 겹쳐지는 팔뚝의 온기가 뜨거웠다. 이상한 느낌이었다. 누군가와 살결을 닿기만 하는데도 온몸이 뜨거워지는 것은.
닫히려는 교문을 겨우 통과한 우리는 얼마 가지 않아 골목 안 벽에 기대어 서 있는 누군가와 마주쳤다.
“오랜만이네.”
차수현에게서는 은은한 담배 냄새가 났다. 한 자리에서 몇 대는 피운 모양인지 발치엔 다 타버린 꽁초가 가득했다. 유현재가 경계심 가득한 얼굴로 차수현을 쳐다보았다.
“우리 기다린 거야?”
“아니면.”
“…….”
“내가 여기에 있을 이유가 뭔데?”
“되게 꼬였네, 형.”
“형?”
차수현이 어이가 없다는 듯 실소했다. 그리고 맞잡은 우리의 팔을 천천히 내려다보았다.
“재밌게 사네, 찬희야.”
“형도 재밌게 살아 봐. 그럼 되잖아.”
“글쎄, 나도 그러고 싶어서 이것저것 방법을 찾아봤었는데 잘 안되더라.”
“따로 얘기 필요해?”
“아니. 나는 여기서 말해도 돼.”
차수현은 유현재가 서 있든 말든 상관없다는 얼굴이었다. 아마 차수현이 지금 하려는 얘기는 유현재가 알아선 안 될 그 무언가 중 하나일 것이었다.
“현재야, 너 먼저 집에 가 있어.”
유현재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나를 내려다보았다. 차수현의 몰골이며 표정이 보통이 아니었으니 걱정스러울 만도 했다.
“엄마한텐 수현이 형이랑 저녁 먹고 들어간다고 해 주고.”
“…찬희야.”
“갑자기 혼자 보내서 미안.”
나는 유현재와 잡고 있던 팔을 천천히 놓고 차수현에게 고갯짓했다. 차수현은 다행히 아무 말 없이 나를 따라와 주었다. 본인 또한 반정부 단체와 엮여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제삼자가 알아 봤자 좋을 게 없다고 판단했겠지. 멍하니 서 있는 유현재를 뒤로하고 우리는 골목을 따라 큰길로 나갔다. 프렌차이즈 카페에 들어간 나와 차수현은 평소와 다름없는 표정으로 음료를 주문한 뒤, 적당한 자리를 골라 마주 앉았다. 누가 보면 영락없는 친구, 혹은 친한 형 동생 사이로 보일 터였다.
“계속 생각해 봤어.”
“어떤 걸?”
“네가 어떻게 그 사실을 알았는지.”
“고작 그 따위 이유로 찾아온 거야?”
‘그 따위’라는 말에 차수현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하지만 차수현은 끝끝내 화를 꾹 참아내며 말을 이어 갔다.
“그리고 왜 갑자기 이 일에 손을 떼려 하는지.”
“손을 떼는 게 아냐, 다만…….”
“유현재를 죽이기 싫어진 거겠지.”
차수현이 무미건조한 표정으로 내 말을 가로챘다. 나는 대답 대신 아무런 말을 하지 않는 것으로 침묵을 메웠다.
“너도 알다시피 진짜 감정이란 건 돌이켜보면 우스울 정도로 하찮잖아?”
“글쎄.”
“하찮지. 적어도 너에겐 정말 하찮지.”
“하고 싶은 말이 뭐야?”
“언제까지 그 거짓말이 통할까?”
나는 빠르게 표정을 굳혔다. 주도권을 틀어쥔 차수현은 여전히 무미건조한 표정으로, 그러나 아까보다는 조금 더 확신에 찬 눈빛으로 나를 보았다. 거짓말이라니. 거짓말.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아버지였다. 아예 켕기는 게 없었던 건 아닌지라, 차수현의 반 협박에 마냥 당당할 수 없는 내 자신이 답답했다.
“무슨 소리야?”
나는 최대한 표정을 가라앉힌 채 모른 척 찻잔을 들었다. 냉정하게 생각해 보자면 차수현이 아버지와 김구현, 그리고 유현재의 관계를 알 리 없었다. 아니, 없어야 했다.
“형이 죽은 게 유현재 때문이 아니라 너 때문이란 거.”
나는 그 입에서 나온 의외의 말에 눈을 크게 떴다.
“감쪽같았네, 찬희야.”
“그걸 어떻게…….”
“어떻게 알았는지가 중요한가?”
차수현의 고저 없는 목소리에 나는 다시 입을 다물었다.
“웃긴 거야, 나는.”
“…….”
“네 영악함이.”
차수현이 생각하고 있을 ‘유찬희’의 의도는 뻔했다. 아버지의 권력을 이용해 유도현의 죽음의 원인을 유찬희가 아닌 유현재로 만든다. 평생 자신의 죄나 뒤집어쓰고 살 줄 알았던 무능력자가 점점 힘을 얻으니, 이젠 형의 복수라는 얼토당토않은 목표로 그들이 공모하는 강령술의 능력을 얻기 위해 반정부군에 협조한다. 고작 열등감 하나로 유현재를 누르기 위해 죽은 형을 소환하려 한다. 그것도 자신 때문에 죽은 형 유도현을.
모두 사실이었다. 적어도, 이 시나리오의 유찬희는 그랬다. 어떤 사람이 봐도 악마 같고 악랄한 발상을 가진, 열일곱의 머리에서 나온 게 맞는 건가 싶을 정도로 교묘한 인간이었다.
지금 여기서 내가 선택할 수 있는 대답은 정해져 있었다. 어차피 내가 한 일이 아니라고 변명도 할 수 없는 처지였거니와 한다 치더라도 증거 같은 것은 하나도 댈 수 없었다.
“내가 뭐라고 대답하길 원해?”
“뭐라고?”
“그렇게 대답해 주려고.”
“너 진짜 사이코패스냐?”
나는 무감한 얼굴로 차수현을 쳐다보았다.
“형은 형이 아직까지도 유도현을 좋아할 줄 알았어?”
“뭐라고?”
“아직까지도 미련하게 죽은 인간 유골가루나 만지고 살 줄 알았냐고.”
“말조심해. 나는…….”
“왜? 내가 모를 것 같아?”
“나는… 그런 게 아냐.”
“그런 게 뭔데? 사랑?”
“…그래.”
“사랑도 아닌 그 감정을 가지고 십 년이 넘게 나를 통해서 유현재를 괴롭힐 생각만 했다고?”
차수현이 더 이상 대답하지 못하고 입술을 꽉 깨물었다. 피가 통하지 않는 입술은 금세 하얗게 질렸다.
“그게 진짜 사랑이 아니라면 지금 와서 나한테 이따위 걸로 협박까지 했을까?”
“네가 뭘 알아.”
“알지. 왜 몰라.”
우습게도 차수현의 감정은 그 누구보다 내가 가장 잘 알고 있었다. 누군가를 놓지 못하고 어떻게든, 그림자라도 만져 보려 하는 추악하고 질척질척한 마음. 안타깝게도 예정된 시나리오 때문에 죽은 유도현과 달리, 나는 계속해서 아무것도 모르는 유현재를 볼 수 있다는 점만 뺀다면 차수현과 나는 너무나도 똑같은 위치의 인간이었다.
“나도 그렇거든.”
“뭐?”
나는 느리게 눈을 깜빡였다. 주변의 모든 것이 생경하게 느껴졌다. 내 입으로 직접 내 감정을 제삼자에게 토로하는 것은 오랜 삶을 살아오면서도 난생처음이기 때문이었다. 무거운 입술을 떼고 나는 겨우 몇 음절의 단어를 토해냈다.
“나는 사랑이라 그래.”
“…무슨 소리야.”
“형이 십 년을 놓지 못하고 구질구질하게 구는 그 감정. 형은 사랑이 아니라고 하는 그거.”
“…….”
“내가 느끼고 있다고. 유현재한테.”
*
집으로 돌아가자마자 흔치 않게 유현재가 거실에 앉아 있는 모습이 보였다. 아버지, 어머니까지 함께 있는 모습이었다. 식사를 할 때를 제외하고 저 세 명이 모이는 일은 없었기 때문에 조금 낯설었다.
“왔니?”
엄마는 조금 피곤한 얼굴로 내게 희미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아버지는 내 눈을 마주하지 않고 목석처럼 앞만 바라보고 있었다.
“무슨 일이에요?”
주어가 정확하지 않았지만 아마 이 자리에 있는 모든 사람은 이해했을 터였다. 나는 일단 먼저 유현재의 표정을 살폈다.
“찬희야.”
엄마가 어려운 말을 꺼낼 것처럼 입을 우물거렸다. 나는 참을성 있게 뒷말을 기다렸다.
“아버지가 아는 분 중에, 랭커 관련해서 해외에서 학교를 운영하는 분이 있는데.”
“네.”
“혹시 입학할 생각이 없냐고 하더구나.”
“…그래요? 전 딱히 생각 없는데.”
“찬희 너 말고.”
“……그럼,”
나는 유현재를 바라보았다. 유현재가 나를 향해 작게 미소 지었다. 순간 그 모습이 정말 바보 같아 보였다.
“현재를 보내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