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랭커 사용 설명서-35화 (35/115)

35.

졸업식은 오전의 적당한 시간에 시작했다. 미지근한 열기로 가득 찬 강당 내부에서 나는 무료하게 단상을 바라보았다. 졸업에 대한 아쉬움을 이야기하는 노래가 울려 퍼졌지만 전혀 공감되지 않았다. 반 아이들이 몇 명 찾아와 쭈뼛거리며 말을 걸어왔다. 뒤쪽에 서 있던 녀석들의 부모와 눈이 마주쳤다. 차라리 부모 쪽이 내게 찾아와서 앞으로도 친하게 지내자고 하면 진정성은 있었을 것 같은데.

나는 나보다 앞쪽에 서 있는 기다란 형체를 습관적으로 흘끗 쳐다보았다. 녀석 또한 마찬가지로 별 미동도 없이 앞만 바라보고 있었다.

“찬희는 S고 간다고 했지?”

옆에서 얼쩡거리던 놈 하나가 물었다. 나는 괜스레 화들짝 놀라 유현재의 등에서 시선을 뗐다.

“응.”

“역시 좋은 곳 가는구나.”

“운이 좋았어.”

교실로 이동하라는 지시가 스피커 곳곳에서 흘러나왔다. 나는 몸을 돌려 천천히 출구 쪽으로 걷기 시작했다. 뒤따라오고 있을 유현재가 손끝 거스러미처럼 자꾸만 신경 쓰였다. 손을 넣고 있던 외투 주머니에서 진동이 여러 번 울렸다. 핸드폰에서 나는 소리였다. 나는 발신인을 확인하자마자 인상을 찌푸렸다. 받지 않을 수는 없었기에, 천천히 통화 버튼을 슬라이드 했다.

-우리 찬희, 졸업식은 잘 끝냈고?

“왜 전화한 거야?”

-그런 말 하면 섭섭하지.

“그냥 전화할 인간이 아니니까 그렇지.”

-까칠하네. 이따 짜장면이라도 한 그릇 사 주려고 했는데.

“그딴 거 필요 없어.”

-공부는 좀 더 했어?

나는 바람 빠지는 소리를 내며 웃었다.

“선생이냐?”

-차라리 내가 선생님이면 좋겠다~ 말 안 듣는 학생 혼내기라도 하게.

“했어. 했으니까 걱정하지 마.”

-그래?

한재민이 만족스럽다는 듯 웃으며 졸업 잘 끝내라는 형식적인 말을 건넸다. 그게 끝이냐고 묻기도 전에 통화가 끊겼다. 황당함을 느끼기도 잠시, 강당 입구에서 커다란 굉음이 들려왔다. 잘못 들었나 싶을 정도로 비정상적인 소리였다. 사람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정말 거짓말처럼, 공간이 찢어지는 듯한 모습과 함께 블랙홀이 조금씩 드러나기 시작했다. 나는 차마 움직이지 못하고 점점 커져가는 그 검은 구멍을 바라보았다. 게이트였다. 게이트가, 학교 강당 입구에 나타났다.

모두 대피하라는 누군가의 외침과 함께 사람들이 멀리 달아나기 시작했다. 반대로 강당 안에 갇힌 사람들은 안쪽으로 밀려 들어왔다.

“가만히 있어.”

어느새 내 뒤에 선 유현재가 나지막하게 말했다. 나는 그 와중에도 유현재에게서 몸을 떨어트렸다. 게이트는 어느 정도 몸집을 불리더니 천천히 진동하기 시작했다. 보통 게이트가 진동하던가. 실제로 본 적이 없었으므로 알 수 없었다. 다만, 내가 알고 있는 이론으로 게이트는 지진을 내지 않았다. 또 이렇게 대비 없이 민간인에게 노출되지 않았다. 보통 게이트는 나타나기 며칠 전부터 해당 장소 전방에 파장을 일으켰다.

“절대 움직이지 마.”

유현재의 말에 나는 조금 욱했다. 분명 어제까지도 명확히 선을 그어 넘어오지 말라고 경고했는데 또다시 아무렇지 않게 말을 거는 게, 내 말을 무시한 것 같아 짜증 나기까지 했다.

“나한테 명령하지 마.”

“명령이 아니고.”

나는 뒤를 돌아보았다. 유현재는 조금, 절박한 얼굴이었다.

“부탁이야.”

“어제 분명히 제대로 내 생각을 말했다고 생각했는데.”

“알아. 이해했어.”

“그런데 왜.”

“그냥 부탁도 안 돼?”

나는 입을 다물었다. 그러는 와중에도 소란은 커졌다.

“질서를 지켜 대피해 주세요! 곧 헌터들이 올 테니 그때까지만 안전을 지켜 주세요!”

누군가의 우렁찬 외침에도 혼란은 가중되었다. 강당 바닥은 이제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했다. 비명 소리가 들려왔다. 벽에 금이 가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사람들이 금이 간 벽에서 멀리 떨어졌다. 게이트의 구멍은 이제 사람이 들어갈 수 있을 정도로 커졌다. 근처에 다가갔다간 영락없이 빨려 들어갈 수도 있을 터였다.

“혹시 학부모님 중 2급 이상의 헌터나 실더가 있으실까요!”

누군가의 커다란 목소리에 모두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고 웅성대기만 했다.

“없으신가요!”

그 말과 함께 쾅 소리가 들리며 무언가 바닥에 떨어졌다. 사람들은 이제 혼비백산하여 제정신이 아닌 듯했다. 주위 사람들은 사정없이 내 몸을 치고 지나갔다. 게이트가 완전하게 입을 벌리고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조금 더 멀어지기 위해 뒷걸음질을 침과 동시에, 천장에서 무언가 파스스 떨어져 내리기 시작했다.

아버지가 왔으면 일이 조금 더 빨리 진정이 되었을까. 나는 그런 생각을 했다. 전투부 고위 간부가 위험해지면 대비는 누구보다 빨리 진행될 것이었다. 나는 사람들을 따라 뛰다 말고 걸음을 멈췄다.

함께 몸을 피해야 할 유현재가 움직임을 멈춘 채 심장을 움켜쥐고 서 있었다. 얼핏 봐서는 괴로워하는 것 같아 보이기도 했다.

“야! 뭐 해!”

유현재가 내 쪽을 흘끗 쳐다보더니, 다시 천천히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내 다시 몸이 무너져 내렸다. 무릎을 꿇은 유현재가 끙끙거리며 몸을 떨기 시작했다. 나는 결국 왔던 길을 거슬러 뛰었다.

“학생! 거기로 가면 안 돼!”

누군가 내게 소리쳤다. 유현재가 가쁘게 숨을 몰아쉬며 나를 바라보았다.

“왜 이러는 거야?”

“심장이….”

“아파? 아픈 거야?”

“조금….”

“업힐 수 있겠어?”

나는 유현재를 업으려 했지만 때맞춰 다시 진동하기 시작한 바닥 때문에 함부로 움직일 수가 없었다. 떨어지는 콘크리트 조각들이 점점 커지기 시작했다. 이대로라면 강당 자체가 무너질 수도 있었다. 죽는 건가? 이대로 죽는다면, 그래. 어차피 다시 살아 돌아가 내 방에 앉아 있을 테니 상관없을지도 몰랐다. 그렇지만 죽음의 공포는 아무리 경험해도 적응이 되지 않는 고문과도 같았다. 고통은 익숙해지더라도 이미 경험한 아픔은 사라지지 않는다. 나는 떨리는 팔에 겨우 힘을 주고 유현재를 일으켰다.

“일단 가.”

“뭐라고?”

“너 혼자라도 가라고.”

나는 말없이 손에 더 힘을 실었다. 그냥 두고 갈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몸이 기울면서 학부모들이 앉아 있던 의자들이 굴러오기 시작했다. 의자 몇 개에 몸을 맞고 나니 생각보다도 더 얼얼했다. 유현재가 드디어 몸을 일으켜 내 뒤를 따라왔다. 나는 의자 하나를 들고 방패 삼아 옆을 막으며 걸어갔다. 쿠르릉거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대각선 위에서 단상이 떨어져 내렸다. 간발의 차로 단상에 맞는 걸 피하고 나니 손이 더 심하게 떨려왔다. 유현재가 중얼거렸다. 뭐라 하는지 하나도 알 수 없는 말이었지만, 나는 그걸 재차 물어볼 여력이 없었다.

사각지대에서 날아온 의자가 배를 가격했다. 입고 있던 교복 셔츠를 뚫고 날카로운 무언가가 살갗을 찢었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상처 위에 손을 얹으니 금세 피가 배어나왔다. 순간적으로 동공이 크게 확장됐다. 유현재가 이쪽을 바라보았다.

뒤늦게서야 마나를 이용해 무언가를 해보려 했지만 역부족이었다. 총이나 칼같이, 살상이 목적인 무기들로 훈련은 계속해서 했어도 주변의 물건들에 마나를 넣어 사용하는 건 해보지도 않은 영역이었다. 나는 속절없이 떨어지는 돌조각들을 온몸으로 막아야 했다.

유현재는 숨을 내쉬더니 이제 아예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내 어깨를 붙잡았다. 방금 전과는 다른 결연한 얼굴이었다.

“미안.”

갑작스러운 사과에 내가 고개를 저었다. 유현재는 내가 들고 있던 의자를 받아 들고 날아오는 것들을 모두 받아쳤다. 나는 유현재의 손에 이끌려 근처에 있는 방송실로 들어갔다. 다행히 방송실 내부는 방음 부스가 설치되어 있어, 바깥과는 다르게 피해가 없는 편이었다.

“괜찮아?”

유현재가 방송실에 들어오자마자 내 배의 상처를 살폈다. 상처는 치명적일 정도는 아니었지만 충분히 깊었다. 유현재의 얼굴이 낭패로 물들었다.

“미안해.”

“사과하지 마.”

“나 때문에.”

나는 당황해하는 유현재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았다.

“내가 나한테 신경 쓰지 말라고 했잖아.”

“응.”

“네가 필요하지 않다고 했잖아.”

“응.”

“너한테 못되게 굴었잖아.”

“응.”

우리의 눈이 마주쳤다.

“근데 왜 이래.”

“…모르겠어.”

“넌 왜 맨날 모르니.”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럼 넌 왜 그러는데?”

이번엔 유현재가 내게 물었다. 나는 눈을 두어 번 깜빡였을 뿐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유현재가 채근하듯 다시 물었다.

“네가 나한테 신경 쓰지 말라고 했잖아.”

“…응.”

“네가 나 필요 없다고 했잖아.”

“어.”

“너, 나한테 계속 못되게 굴었었잖아.”

피가 묻지 않은 손을 들어 마른세수를 했다. 뭐라고 대답하면 좋을지 이런저런 경우의 수를 생각해 보았지만 마땅한 답이 떠오르지 않았다.

“근데, 왜 항상 헷갈리게 해.”

“현재야.”

나는 건조한 눈가를 꾹꾹 누르며 유현재의 이름을 제법 다정하게 불렀다.

“난 진짜 멍청한가 봐.”

어, 맞아. 나는 너무 멍청해. 답을 알고 있으면서도 매일 너라는 감정에 휩쓸려서 오답을 선택하고 만다. 호흡을 할 수 없을 정도로 공포스러운 죽음을 매번 직면하면서도 또 시스템에 저항하고 만다.

“도저히… 외면할 수가 없어.”

유현재는 가만히 내 말을 들어주었다.

“그게 너무 힘들어. 진짜 넌 모를 거야.”

“미안.”

매번 미안하다 하는구나, 너는. 아무것도 모르면서.

그때 바깥에서 새된 비명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유현재와 나는 동시에 눈을 맞추고 방송실 문을 열었다. 게이트에서 성인 남자의 덩치만 한 기이한 생물체가 꾸역꾸역 빠져나오고 있었다. 전투부 지하에서 봤던 연습용 몬스터와 비슷한 모양새였다. 학부모 중 헌터가 몇 명 있었던 모양인지 앞으로 나와 그것들을 상대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끊임없이 나오는 몬스터에 비해 고작 두세 명인 헌터의 숫자는 터무니없이 적었다.

“우리 학년 유일한 1급이 나거든.”

유현재가 불안한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근데 내가 가만히 있으면… 그건 아무래도 좀 그렇지.”

“찬희야.”

“다 죽을 거야. 이대로는.”

나는 주변에 굴러다니는 의자 다리를 들고 김구현에게 배웠던 기술을 최대한 응용해 봤다. 마나를 일정한 물체에 주입하면 되는 것이었기에 총이나 칼과 원리는 똑같았다. 문제는 원리만 똑같았다는 데 있었다. 공격용 소품과 일반 사물은 당연히 효율성 면에서 현저히 떨어졌다. 쇠붙이를 들고 몬스터에게 휘두르자 커다란 소리와 함께 어느 정도의 타격감이 느껴졌다. 이럴 줄 알았으면 체술이라도 배워 둘 걸 그랬다. 상처를 입은 몬스터가 내 쪽으로 몸을 돌렸다. 징그러운 피부가 출렁거리며 벌어지더니, 곧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냈다. 나는 다시 몸에 힘을 실었다.

그때였다. 아까완 차원이 다른 타격 소리와 함께 몬스터가 저 멀리로 날아갔다. 누가 봐도 마나를 실은 힘이었다. 나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옆을 쳐다보았다. 유현재가 놀란 표정으로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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