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전드 1957-111화 (111/400)

Round 111. 대승, 그리고 후원

역습 기회.

직접 치고 들어가서 날린 30미터 중거리 슛이 골대에 빨려 들어간 순간, 준영의 머릿속으로 지난 몇 달간의 일들이 스쳐 지나갔다.

2026년에서 1957년으로 시간 이동.

알버트를 비롯한 프레드로 일가와의 만남.

빌 섕클리의 팀에 몸담았다가 맷 버스비의 이단아가 된 일.

그리고 결국 막지 못한 뮌헨의 비행기 사고까지!

그 모든 일을 겪어 오면서 드디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주장으로 필드에 섰다.

“잘 봐라. 이게 21세기 축구다!”

더러운 야유를 퍼붓던 셰필드 응원단의 콧대를 납작하게 만드는 골 세리머니를 펼친 준영.

그는 선제골로 반색을 하고 있는 동료들에게 외쳤다.

“봤지? 정신만 똑바로 차리면 못 이길 상대가 아니야!”

확실히 사기가 부쩍 오른 것이 보인다.

하지만 방심은 금물.

오늘 유나이티드가 FA컵 5라운드에서 만난 상대는 셰필드 웬즈데이 FC다.

현재 리그 22위로 퍼스트 디비전 최하위 팀이지만, 토트넘의 덜미도 잡은 전적이 있기에 절대 얕봐선 안 된다.

‘뭐, 얕본 것은 셰필드 쪽이려나?’

아마 저 꼴찌들은 몰락한 맨유를 잡고 도약해 보리라고 마음먹고 덤벼들었을 것이다.

만약에 좀 전의 혼전 상황에서 걷어 내지 못하고 실점으로 이어졌다면 양 팀의 분위기는 정반대가 되었을 터.

“자, 다시 수비한다! 전방부터 확실히 견제해!”

“알겠습니다, 주장!”

골을 넣은 후 5분은 정말 조심해야 한다.

흥분하거나 안이하게 대처하다 패스나 대인 마크에서 실수가 나올 수 있으니까.

더구나 꼴찌 팀이라고 하지만, 셰필드에는 만만하게 볼 수 없는 선수도 있었다.

바로 알버트 퀵솔이라는 공격수였는데, 움직임과 패스가 상당히 날카로웠다.

“빌, 저 퀵솔이란 녀석에게서 눈을 떼면 안 돼요.”

“걱정 마. 껌딱지처럼 붙어 있을 테니까.”

그렇게 요주의 대상을 빌 포크스에게 1차로 맡겨 두고, 준영은 또 다른 상대 공격수나 우리 편의 움직임을 주시했다.

그러면서 우리 편의 움직임이나 대응이 시원찮으면 어김없이 목소리를 높였다.

“어이, 퍼기! 좀 더 앞에서 확실히 견제해!”

“프레디! 앞으로 나가지 말고 로니를 도와줘!”

“셰이! 측면 마크 확실히 해! 크로스 못 올리게 막으라고!”

그러나 아무리 지시를 내려도 상대가 그것을 뚫고 들어올 때가 있다.

그때는 준영이 직접 쫓아가서 공격을 저지하고 공을 빼앗아 냈다.

“주장! 여기요! 여기!”

준영이 공을 잡자, 최전방에 있던 알렉스 퍼거슨은 열심히 손을 흔들어 댔다.

‘참 나, 수비는 설렁설렁하더니만.’

지금 공격 상황에선 역습하기 매우 좋은 위치에 있었다.

공을 앞으로 살짝 차 놓은 준영은 알렉스 쪽으로 길게 롱 패스를 보냈다.

‘우와! 자로 재고 차나?’

알렉스는 절로 탄성을 토했다.

이미 훈련할 때도 준영의 실력을 봤지만, 이렇게 깔끔하고 정확한 패스는 볼 때마다 경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가슴으로 받아 전진하는 쪽으로 공을 떨어트려 놓은 알렉스는 곧장 셰필드 골문 쪽으로 돌진했다.

“이 애송이 자식!”

“원숭이가 설치니까 우리가 우습게 보이냐?”

상대 수비수들이 접근해서 거칠게 마크했다.

하지만 알렉스는 끈덕지게 공을 지켜 내고는 돌파를 계속해 갔다.

그렇게 페널티 박스로 들어와서 슛!

그물을 크게 출렁이게 했지만, 아쉽게도 옆 그물이었다.

“우와아아아!”

어린 선수의 저돌적인 움직임에 홈팬들은 환호와 갈채를 보냈다.

“쳇, 아깝네!”

알렉스는 성에 차지 않았지만, 그의 공격은 셰필드의 간담을 서늘하게 하기에 충분했다.

이미 준영에게 선제골을 먹고 두 번째 골까지 내줄 뻔한 아찔한 상황이 펼쳐지자, 셰필드 선수들의 발걸음은 전진보다 후진이 더 많아졌다.

당연히 유나이티드는 이 상황을 놓치지 않았다.

전반 20분, 콜린 웹스터가 프레디의 패스를 받아 날린 슈팅이 상대 골키퍼의 선방에 튕겨 나갔다.

이후 이어진 코너킥에서 숀 코너리의 헤딩이 골대를 살짝 넘어가는 아쉬움이 있었다.

전반 35분에는 상대 수비수의 패스를 가로챈 알렉스가 페널티 박스에서 슈팅을 시도하다 태클에 걸려 넘어지기도 했다.

“파울!”

“페널티킥이다! 페널티킥!”

홈팬들의 환호성이 터져 나왔지만, 심판은 고개를 저었다.

알렉스가 걸려 쓰러지기 전 셰필드 수비수가 먼저 태클로 공을 밖으로 걷어 냈다고 봤기 때문.

당연히 알렉스는 펄쩍 뛰었다.

“심판 아저씨, 이거 페널티킥이라고요! 반칙이 맞단 말입니다!”

“시끄러, 꼬마야. 자꾸 시끄럽게 굴면 퇴장시킨다.”

심판의 구두 경고에 알렉스의 입은 옷을 걸어도 될 만큼 쭉 튀어나왔다.

“망할 코털 자식! 우리가 홈팀인데…….”

“그만 투덜대고 코너킥 공격 준비나 해.”

코너킥 담당은 콜린 웹스터.

그는 공격 가담을 하러 올라온 준영을 잠시 응시하다 곧장 공을 차 올렸다.

“칭크가 뛴다!”

“붙어! 헤딩 못하게 하라고!”

준영에게 3명의 마크맨이 달라붙었다.

앞에서 같이 뛰는 놈, 뒤에서 몰래 유니폼을 잡는 놈, 위험하게 팔을 휘두르는 놈까지.

‘줄줄이 낚이는군.’

준영이 슬쩍 공을 뒤로 흘리자, 배후에 도사리고 있던 숀 코너리가 달려들며 헤딩슛을 날렸다.

깜짝 놀란 골키퍼가 공을 쳐 낸 순간, 알렉스가 리바운드 볼에 발을 가져다 댔다.

“Goal! Go-al!”

“와, 결국 저 애송이 녀석이 넣었군!”

“대단한 놈이야. 분명히 데뷔전일 텐데…….”

스코어보드에 2 대 0으로 고쳐지는 광경을 본 유나이티드 팬들은 감격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어떤 이들은 눈물을 글썽이기도 했다.

팀이 거의 공중분해된 상황에서 홈에서 꼴찌 팀에게 수모를 당하는 게 아닌지 걱정했었으니까.

하지만 유나이티드는 무너지지 않았다!

“주장, 저 어땠습니까?”

준영은 으스대는 알렉스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이때가 아니면 언제 퍼거슨 경을 쓰담해 보겠는가.

“잘했어. 이제 다시 수비한다.”

“네, 수비! 공격이 최선의 수비죠!”

데뷔전 데뷔 골에 신났던지 알렉스는 다시 상대 선수들에게 달려들어 인터셉트를 시도했다.

다른 선수들도 애송이에게 지지 않겠다는 듯, 훨씬 활발한 움직임을 보였다.

‘좋아, 일단 기선은 제압했다.’

경기 초반엔 위태롭긴 했지만, 그래도 전반전에는 2 대 0의 스코어로 끝낼 수 있을 듯했다.

‘물론 이 정도 점수로 끝내서는 안 되지.’

최대한 골을 많이 넣어야 한다.

셰필드를 확실히 밟아 주고 다음 라운드로 넘어가야 다른 상대도 유나이티드가 아직 건재하다는 것을 알 테니까.

***

후반에도 맨유의 우세는 계속 이어졌다.

셰필드는 퀵솔의 침투를 이용한 간헐적인 역습 외에 별다른 공격을 못했다.

이에 반해 유나이티드는 높은 볼 점유율로 경기를 주도해 나가며 추가 골을 만들었다.

후반 70분에 측면 수비수 셰이가 공격 가담에서 세 번째 골을 성공시켰다.

이후 전방에서 내내 상대 수비를 흔들어 대던 숀 코너리와 콜린 웹스터도 한 골씩 추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5 대 0이라는 화끈한 점수로 FA컵 다음 라운드로 진출했다.

“축하드립니다, 형님.”

셰필드와의 경기 다음 날.

조셉 포스터가 준영을 찾아와 셰필드전 승리를 축하해 주었다.

“다들 정말 놀랐습니다. 겨우 2주도 안 되는 시간에 팀을 재건했으니까요. 정말 형님은 대단한 것 같아요.”

“뭘, 진짜 애쓴 사람은 머피 코치님인걸.”

준영의 손사래에 동석하고 있던 알버트는 너털웃음을 지었다.

“자네 공이 영 없진 않잖나. 자네가 데려온 소년이 대활약을 했으니 말이야.”

“저도 그렇게 잘할 줄은 몰랐습니다.”

지미 머피도 예상외였다며 정말 좋아했다.

사실 그는 알렉스의 득점은 그리 기대하지 않았다.

그저 어린 녀석이 과감하고 투지 어린 모습을 보여 동료 선수들의 사기와 의욕을 고양시키는 정도의 활약으로 족하다 봤다.

그런데 다득점으로 가는 발판이 되는 추가 골을 넣었으니!

“하지만 이걸로 좋아해선 곤란하죠. 아직 넘을 산이 많으니까.”

당장 다음 경기, 리그 31라운드 상대는 노팅엄 포레스트.

최근 2연패의 부진을 겪고 있지만, 리그 상위권에 있는 강팀이다.

“그들과의 경기 결과에 따라, 진짜 평가를 받게 될 겁니다.”

“그렇겠군. 그 경기, 힘들 것으로 예상되지만 그래도 어제 대승을 한 기세를 이어 간다면 해볼 만하다고 생각하네.”

“네, 어떻게든 좋은 결과를 내려고요. 아직 침상에 있는 감독님과 동료 녀석들을 생각해서라도…….”

던컨을 비롯해 부상 선수들도 어제의 대승을 전해 듣고 기뻐하며 축하 전화를 해 왔다.

특히 버스비 감독은 목멘 목소리로 감사를 표해, 머피 코치나 준영의 마음을 북받치게 했다.

“아, 형님, 안 그래도 부상당한 유나이티드 선수들을 도울까 해서 기부금을 좀 챙겨 왔습니다.”

“고마워, 조셉.”

부상도 부상이지만, 당장 선수나 그 가족의 생계도 큰 문제였다.

이를 돕기 위해 많은 이들이 성금을 내놓고 있었다.

허더스필드의 빌 섕클리 감독도 지난번에 금일봉을 전달했고, 라이벌인 맨시티 선수단도 기부금을 보냈다.

“덕분에 숨통이 좀 트이긴 했지만, 구단의 자금난은 여전해.”

“하긴, 부상 선수들의 장기 치료와 재활에 드는 비용이 굉장하다고 들었어요.”

“거기다 팀을 재건하는 과정에서 든 금액도 만만찮았어. 2군이나 유소년 선수들과 재계약을 맺거나, 퍼기 같은 신입 선수들 영입에도 돈을 썼으니까.”

그 때문에 하드먼 회장은 끙끙 앓고 있는 중이다.

사실 그의 입장에선 돈보다 더 큰 걱정이 있었다.

바로 팀의 미래가 의심받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

현재 프로축구팀은 경기장 입장 수익이나, 자금력 있는 후원자의 지원으로 팀을 꾸려 가고 있었다.

그런데 맨유가 더 이상 강팀이 아니라고 알려지게 된다면?

당연히 관중은 줄고, 후원자는 등 돌리게 되는 것이다.

‘잠깐, 21세기의 기업 스폰서십 방식을 도입한다면?’

실제 역사의 아D다스나 나2키 등이 그랬다.

유니폼 오른쪽에 자사 마크를 달아 홍보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자금을 들여 프로축구팀이나 국가대표팀들을 후원했던가.

‘안 그래도 눈앞에 Ree복, 아니 나2키 사장님이 있구만. 뭐, 나도 공동 창업주이긴 하다만.’

리즈 덕에 나2키의 상표를 잽싸게 선점한 조셉 포스터.

준영은 그에게 말을 건넸다.

“조셉, 우리 나2키 말인데,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후원을 한번 해 보는 건 어때?”

“예? 그건 좀…….”

“나도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를 하자는 건 아니야. 주는 만큼 받는 것도 있어야지.”

그러면서 준영은 21세기 스포츠 업계에서 흔한 기업 스폰서십 방식을 넌지시 알려 주었다.

설명을 들은 조셉은 관심 있는 기색을 보였다.

“유니폼에 상표를 다는 조건으로 후원금을 준다라……. 저도 들은 적은 있어요. 분명히 남미에서 그런 식으로 한다고 그랬죠.”

‘벌써 그쪽에선 그렇게 하는구나.’

그러나 전례가 있음에도 조셉은 난색을 표했다.

“그런데 유니폼에 알아볼 수 있게 상표를 넣으려면 굉장히 커야 할 텐데요. 더구나 멀리 있는 관중들이 제대로 알아볼지도 미지수고요.”

“그건… 확실히 그렇겠네.”

사실 21세기에 기업 스폰서십 활동이 활발하게 된 것은 TV 중계 기술 발전 때문이다.

중계 카메라로 경기 상황이 클로즈업되면서 유니폼의 상표도 덩달아 시청자에게 곧잘 보이게 된 것.

하지만 1958년 현재는 이를 기대할 수 없다.

TV 중계 기술도 부족하거니와, 풋볼 리그 중계 자체를 안 하고 있으니까.

‘이거 그냥 접어야 하나?’

포기하려던 그때, 준영의 머릿속에 아주 좋은 묘수가 떠올랐다!

***

스포츠 업계에서 유니폼을 이용한 기업 스폰서십 마케팅은 1950년대 남미 우루과이 페나롤이란 축구팀에서 처음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몇 년 후, 이 방식이 유럽에도 전파되어 프랑스, 덴마크, 오스트리아 등에서도 도입되었는데, 상당한 반발을 불러왔습니다.

기업 상표 달자고 팀 엠블럼을 내렸으니 말입니다.

그러다 1970년대에 와서 팀 엠블럼은 왼쪽, 기업 마크는 오른쪽에 다는 방식으로 협의가 이루어졌고, 이것이 현재까지 그대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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