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전드 1957-61화 (61/400)

Round 61. 미래 예측

“존, 자네는 대체 그걸 어떻게 알아맞혔나?”

괜한 의심을 살까 싶었던 준영은 적절하다 싶은 변명을 했다.

“소련은 보기보다 기술이 발전한 나라니까요.”

“하긴, 지난 전쟁 때 빨갱이 놈들이 만든 탱크가 뛰어나긴 했지. 그래도 로켓 기술까지 앞설 거라곤 생각하지 못했는데…….”

“소련은 독일의 기술자를 많이 끌고 갔다고 들었습니다.”

“맞아. 그랬지. 미국도 그랬으니까.”

처칠도 지난 전쟁 때 영국 본토를 폭격했던 V2로켓의 개발자들이 미국과 소련에서 연구를 하고 있단 이야기는 들었다.

이렇게 두 나라가 우주 개발에 나서는 동안, 영국도 가만히 있지는 않았다.

개발 중이던 블루 스트릭 탄도 미사일을 이용하여 인공위성을 쏘아 올리는 계획을 나름 진행해 가고 있었던 것.

하지만 소련이 선수를 치면서 세계 최초라는 타이틀을 빼앗기고 말았다.

“그래도 미국이라면 모를까, 소련이 최초의 인공위성을 쏘아 올릴 줄이야……. 노르웨이 놈들이 남극점을 정복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도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아문센의 남극점 최초 정복은 영국의 자존심을 구기게 했을 뿐이다.

하지만 이번 스푸트니크 쇼크는 안보를 위협하기에 충분했다.

“2차 대전 때 독일의 로켓처럼, 러시아의 로켓이 인공위성 대신 핵폭탄을 싣고 떨어질 수 있는 거지.”

“그, 그럼 3차 대전이 터진다는 말입니까?”

긴장감에 낯빛이 굳은 조셉을 보며 처칠은 가늘게 웃음을 지었다.

“다행히 전쟁이란 게 그리 쉽게 터지진 않아. 3차 대전이 일어날 거였으면, 한국 전쟁이나 수에즈 전쟁 때 확전이 되었을 테니까.”

“맞아요. 3차 대전은 없을 거예요.”

리즈의 말에 처칠은 흥미로운 기색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아주 자신만만하게 단언하는군. 그럴 만한 근거라도 있나?”

“그게… 독일과 전쟁하면서 피해가 컸으니까요.”

“맞는 말이야. 내가 아는 소련 측 인명 피해만 해도 3,000만에 가까우니까.”

그것도 한창 일할 시기의 젊은 세대들이 많이 죽었다.

이를 겨우 10여 년 만에 회복하기란 불가능했다.

“하지만 소련은 여전히 1억이 넘는 인구와 광활한 국토를 갖고 있지. 이미 미국과 맞설 만한 군사력을 갖추고 있고.”

“네, 그렇지만…….”

“그런데도 그 공산당 녀석들이 나중에 전쟁을 일으키지 않을 거라고 보는가? 온 세상에 붉은 혁명을 일으켜야 한다는 놈들인데?”

처칠의 반박에 리즈는 할 말이 없어졌다.

사실 3차 대전이 없다는 건 준영에게 들어서 알고 있을 뿐이다.

왜 세 번째 전쟁이 일어나지 않았는지, 어쩌다 소련이 망했는지는 자세히 듣지는 못했다.

“소련은 기본이 부족합니다.”

리즈가 진땀을 흘리고 있을 때, 준영이 대신 대답했다.

처칠의 흥미 어린 시선이 준영에게로 돌려졌다.

“기본이 부족하다니?”

“아무리 뛰어난 재능을 가진 선수라도 체력과 기술 등의 기본이 부족하면 성장하기 어려운 법이라서요. 그렇게 기본이 중요한 건 축구뿐만이 아닙니다.”

스포츠뿐만 아니라 사회나 경제, 국가도 마찬가지다.

든든한 기반과 역량이 있어야 안정적으로 발전해 나갈 수 있다.

“소련이 막강한 군사력을 가진 건 사실이죠. 하지만 그들은 민생도 어렵고 내수에 도움이 될 경공업 육성도 소홀히 했죠.”

“하긴, 그래서 지난 전쟁에서 미국에게 지원을 받아야 했지.”

준영이 알기로 이런 불균형하고 불안정한 경제는 소련이 망할 때까지 발목을 잡았다.

그리고 21세기 러시아에서도 개선이 되지 않았다.

“그에 반해 영국은 여기 조셉과 같은 뛰어난 사업가들도 있고, 여러 산업이 골고루 발전해 있습니다. 기반은 튼튼하니 집이 낡았다 해도 뜯어고치는 덴 문제없죠.”

“그러니까 우주로 나가는 게 딱히 뒤처지더라도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건가?”

“예, 대항해시대에도 첫발을 내디딘 건 스페인이지만, 이후 패권을 잡은 건 영국이 아닙니까?”

“하하하하핫!”

카페 안에 처칠의 웃음소리가 쩌렁쩌렁하게 울렸다.

어찌나 웃음소리가 컸던지, 다들 눈을 휘둥그렇게 떴을 정도였다.

“실례했군. 모처럼 유쾌한 이야기를 들어서 말이야.”

황혼이 지는 제국과 늙어 버린 자신을 보며 하루하루 우울함만 늘어 가고, 웃을 일도 없었다.

하지만 이제 처칠은 미래에 대한 걱정과 우려를 다소 떨쳐 낼 수 있었다.

그래, 영국은 약해지거나 실패하지 않을 것이다!

“존, 자네는 확실히 평범한 축구 선수는 아니군.”

“아뇨. 그냥 남들이 모르는 걸 조금 알고 있는 정도입니다.”

“그게 바로 특별하다는 거지.”

처칠은 MI6에서 이 녀석을 왜 복잡한 심정으로 주목하고 있는지 알 만했다.

지금은 일개 축구 선수일 뿐.

하지만 남다른 식견을 봐서는 분명히 다른 쪽으로도 큰일을 해낼 만한 인재가 틀림없다.

‘그게 이 나라에 다시 햇살을 비추는 일이라면 더할 나위 없겠지.’

앞으로 몇 년을 더 살 수 있을지 알 수 없다.

하지만 어디서 나타났는지 모를 이 녀석을 지켜보는 건 아주 재미있을 것 같았다.

***

표정이 한결 밝아진 처칠은 한동안 담소를 나누다 호텔로 돌아갔다.

그가 떠난 후, 조셉은 두 눈을 반짝이며 준영을 바라보았다.

“와! 역시 형님은 대단하군요! 처칠 총리까지 알고 계시다니!”

“알게 된 지 얼마 되진 않았어. 그런데 계속 날 형님으로 부를 거야?”

“물론이죠! 처칠 총리가 감탄한 식견을 가진 분을 어떻게 형님으로 모시지 않겠어요?”

안목과 구상.

사업에서 중요한 능력이다.

시장의 동향을 파악해야, 그리고 시장에서 필요로 하는 제품을 개발해야 성공할 수 있으니까.

“제가 그동안 좀 알아봤습니다. 형님이 지인들을 통해서 하고 있는 사업들을 말입니다.”

“그건 아이디어를 제공한 정도인데?”

“그것만 해도 대단한 거죠!”

전부 혁신적인 사업들이었다.

따기도 쉽고 가벼운 알루미늄 캔 생산, 간단한 경기장 구조물로 수익을 얻는 광고 사업.

더구나 자동차 쪽으로도 애S턴 마틴의 회장 데이비드 브라운과 친분이 있다고 했다.

듣자 하니 새로운 안전벨트와 시트를 고안해 냈다고 하던가?

“사실 형님을 저희 사업에 끌어들이려 한 건 형님이 갖고 있는 샘플 때문이었지만, 이번 기회에 확실히 알았습니다! 중요한 건 샘플이 아닌 형님 자체라는걸요!”

준영이 주었던 샘플, 축구화나 정강이 보호대 등등.

조셉은 그것이 어떤 나라에서 사용되고 있는 게 아닌, 준영이 생각해서 특별히 만들어 낸 물건이라고 보았다.

유럽 쪽에도 문의했지만, 이와 흡사한 제품이나 소재가 없었기 때문.

“일전에도 제안을 했지만, 이젠 진심으로 요청할게요. 저희 사업에 동참해 주시길, 지혜를 나누어 주시길 말입니다.”

두 손을 모아 간청하는 조셉의 눈에는 진심이 담겨 있었다.

옆에서 듣고 있던 리즈는 준영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준, 어떻게 할 거예요?”

“어떡하고 말고 할 것도 없어. 조셉을 만났을 때 이미 생각해 놨으니까.”

준영은 조셉에게 손을 내밀었다.

“난 여기 와서 하고 싶은 일을 정했어. 하지만 나 혼자선 이루긴 벅찬 목표이지. 조셉 네가 날 도와준다면 네가 필요로 하는 지식을 나눠 줄게.”

“감사합니다, 형님!”

이로써 구상만 했던 의류 사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할 수 있게 되었다.

스포츠뿐만 아니라 패션 분야로도 성공할 자신이 있었다.

어떤 것이 유행할지, 무엇이 대히트를 칠지 알고 있으니까.

‘후후후, 앞으로 미니스커트의 시대가 열리지. 리즈같이 다리가 예쁜 미녀들을 위한…….’

머릿속으로 미니스커트를 입은 리즈의 모습을 그려 보던 준영.

그에게 조셉이 다시 말을 건네 왔다.

“아, 형님, 한 가지 여쭐 게 있는데요.”

“뭔데?”

“형님도 아시겠지만, 요즘 사람들이 스포츠나 피트니스 쪽으로 관심을 보이고 있잖아요.”

“그렇지. 건강이나 미용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 많으니까.”

“저희도 지금은 신발을 만들고 있지만, 앞으로 스포츠나 피트니스 분야의 상품 개발을 해 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은데, 형님 생각은 어때요?”

“나쁘지 않아. 오히려 운동화를 만들며 쌓은 명성을 잘 살릴 수 있겠지.”

“그렇죠? 근데 마땅히 생각나는 게 없더라고요. 역기나 철봉 같은 건 무겁거나 크고…….”

그 말을 들은 리즈가 슬쩍 대화에 끼어들었다.

“가정에서 누구나 손쉽게 할 수 있는 거면 좋지 않을까요?”

“예, 그러면서 가볍고 거추장스럽지 않으면 좋을 거라 생각해요.”

“그럼 공이나 줄넘기가 딱 좋겠네요.”

조셉은 고개를 저었다.

만드는 건 어렵지 않지만, 공이나 줄넘기는 너무 단순해서 주목받기 힘들었으니까.

“그럼 롤러스케이트 같은 건요?”

“그건 쉽게 할 수 있는 게 아니잖아요. 넘어지면 다칠 수 있고. 위험하지 않으면 좋겠어요.”

조건이 너무 까다로운 건 아닐까.

그때, 뭔가 곰곰이 생각하고 있던 준영이 빙긋 미소를 지었다.

“딱 좋은 게 있네. 그것도 2개나.”

“2개씩이나요?”

반색을 하던 조셉은 준영이 필기도구를 찾자 냉큼 품에서 수첩과 연필을 꺼내 건넸다.

그것을 건네받은 준영은 그림을 그리며 설명을 했다.

“하나는 이거야. 돌이나 동전 같은 것을 천에 묶어서 적당한 장식을 한 다음에 발로 차며 노는 거지. 오래 하면 운동도 돼.”

“생긴 게 배드민턴 셔틀콕이랑 비슷하군요.”

“그래, 제기라고 해. 제기차기는 한국의 오랜 민속놀이지.”

쉽게 할 수 있고, 별로 크지도, 무겁거나 거추장스럽지도 않다.

“괜찮아 보이네요. 딱히 위험할 게 없으니 제가 원하는 조건에 딱 맞아요.”

“그렇지? 두 번째는 이거야. 이것도 놀이랑 운동을 병행할 수 있어.”

“이건… 공이잖아요?”

“아, 그냥 둥그렇게 그려 놓으니 그리 보일 만도 하겠네.”

준영은 중간에 사람 그림 하나를 첨가했다.

하지만 조셉도, 리즈도 그림만으론 쉽게 이해를 하지 못했다.

준영이 설명을 덧붙인 다음에야 비로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물건이군요.”

“이거 장담하는데, 만들면 대히트를 칠 거야.”

준영은 자신만만하게 장담했다.

이건 실제로도 히트를 친 물건이니까.

***

월요일 오후.

학교에서 돌아온 앤지는 창가에 앉아 패션 잡지를 보고 있었다.

그때 밖에서 동생이 커다란 굴렁쇠같이 생긴 고리를 들고 노는 모습을 보았다.

“Let it go, Let it go~ Can’t hold it back anymore~”

어제 준영이 보여 준 만화 영화의 노래를 부르며 허리에 건 고리를 돌리던 카린.

하지만 몇 개 하지 못하고 금방 땅바닥에 고리를 떨어트리고 말았다.

“우, 왜 이리 안 되지?”

“그거 뭐니?”

“훌라후프란 거야. 아까 조셉이라는 아저씨가 시제품이라며 주고 갔어. 오빠야가 그러는데 이렇게 돌리면서 노는 거래.”

“그거 재밌니?”

“떨어지는 걸 안 떨어지게 하면 재밌댔어.”

“재미없다는 거구나.”

카린은 훌라후프를 앤지에게 내밀며 말했다.

“작은언니도 한번 해 봐.”

“난 그런 망측한 놀이는 안 해.”

고리를 떨어트리지 않으려면 계속 허리를 돌려야 하는데, 그건 숙녀가 할 만한 행동이 아니다.

어른들이 보면 분명 역정을 낼 터.

“오빠야가 그러는데, 많이 하면 허리가 가늘어진다던데?”

“관심 없어.”

앤지는 다시 잡지로 고개를 돌렸다.

계속 페이지를 넘기던 그녀는 잡지 모델들이 입은 의상을 유심히 살펴보다 자신의 허리를 만져 보았다.

마음에 드는 옷들은 죄다 허리의 맵시를 강조하고 있었으니까.

‘가늘어진다고 했었지?’

카린은 금방 싫증이 났던지 저택을 찾아온 친구들과 놀고 있었다.

앤지는 동생이 두고 간 훌라후프를 들고 방으로 향했다.

숙녀가 해선 안 될 망측한 놀이.

하지만 눈에 안 띄면 상관없을 것이다.

***

사실 훌라후프 비슷한 건 기원전 이집트에도 있었습니다. 이후 그리스나 로마로 전파되었고, 14세기 영국에서도 꽤 유행했습니다.

그러다 사장되었는데, 20세기 와서 미국의 장난감 회사 웸오에서 플라스틱 훌라후프를 만들어 다시 대히트를 치며 유행했지요. 잘 팔렸지만, 아주 옛날부터 있던 거라 특허는 인정받지 못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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