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전드 1957-60화 (60/400)

Round 60. 자극이 아닌 쇼크

처칠은 축구에 대해서는 크게 관심을 두지 않았다.

평소에 리그가 어찌 돌아가는지는 관심이 없지만, 국가 대항전은 달랐다.

국가의 명예를 두고 싸우는 또 다른 전쟁이었으니까.

그래서 그 전쟁에 나가는 전사들의 이름은 기억하고 있었다. 스탠리 매튜스라든가, 빌리 라이트라든가.

그래서 영국 대표도 아닌 동양인 선수에 관심을 둘 이유가 없었다.

그저 그런 선수였다면 있는 줄도 몰랐으리라.

하지만 존 Y. 리라는 녀석은 달랐다.

자신이 잘 아는, 영국의 자랑스러운 선수들을 쓰러트린 이방인.

대체 얼마나 잘난 녀석일까.

궁금해서 직접 만나 봤는데, 정말 보통내기가 아니었다.

전직 제국 총리를 앞에 두고서도 당황하지 않고, 조목조목 제 할 말을 다 하는 배짱이 있었다.

그런 녀석의 축구 실력은 어떨까?

세간에 알려지기로는 굉장하다던데 과연 어느 정도일까?

궁금해서 지난번에 약속한 대로 오늘 경기를 보러 왔다.

그런데 이놈은 정말 달랐다.

마치 투우사처럼 화려한 기술로 관중들을 매료시키고 있었다!

방금 전에도 공을 가운데 두고 두 다리를 잽싸게 휘젓는다 싶더니 순식간에 상대를 제쳐 냈다.

‘멋지군!’

처칠의 입에서 저도 모르게 탄성이 터져 나왔다.

하지만 진짜 멋진 장면은 그다음에 튀어나왔다.

페널티 박스 밖에서 준영이 찬 슈팅이 골대를 넘어갈 듯하다가, 갑자기 방향을 꺾어 뚝 떨어진 것이다.

골키퍼는 반응조차 못한 채 그대로 당했다.

“우와아아아-!”

마치 마법 같은 궤적의 무회전 슛에 관중석에서 경악의 탄성이 터져 나왔다.

처칠도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버렸을 정도.

“이런 세상에!”

“대단하죠? 준이 그러는데, 공을 강하게 차서 회전력을 줄이면 슈팅 궤적이 불규칙해진대요.”

리즈의 설명은 처칠의 귀에 들리지 않았다.

아무리 과학적인 원리가 있다 한들 그것을 실현해 내기란 쉽지 않다.

이렇게 불가능이라 여겨지는 일을 가능하게 만드는 자들은 경배를 받기 마련.

그 때문에 올드 트래퍼드의 관중들은 낯선 이방인에게도 아낌없는 박수와 찬사를 보내고 있는 것이다.

‘변화와 혁신을 불러올 자극… 아니, 저 녀석은 자극 수준이 아니군.’

그야말로 쇼크.

MI6에서 요주의 인물로 꼽은 저 수상쩍은 녀석은 정체되어 있던 영국 축구에 아주 신선하고 화끈한 쇼크를 안겨 주고 있었다.

그리고 처칠 본인에게도.

‘그래, 이런 맛에 축구를 보는 거로군.’

같은 요리라도 조미료가 다르면 맛 또한 다른 법.

존 Y. 리라는 조미료를 뿌린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축구는 처칠을 흠뻑 매료시키고 있었다.

***

전반을 2 대 0의 스코어로 기분 좋게 마친 맨유는 후반전에도 우세를 이어 갔다.

다만 아스톤 빌라도 마냥 당하고 있지는 않았다.

“침착해! 단 한 번의 기회를 살리면 추격의 발판을 마련할 수 있어!”

휴튼 감독의 독려를 받은 아스톤 빌라 선수들은 역습을 노렸다.

그리고 예상보다 빠르게 기회가 찾아왔다.

바비 찰튼의 중거리 슛을 잡아 낸 골키퍼 나이젤 심즈가 수비수 지미 더그데일에게 보냈다.

그리고 이것이 최전방에서 쇄도하는 공격수 데릭 페이스에게 연결되었다.

「오, 데릭 페이스, 공을 살려 내서 치고 나갑니다! 마크 존스가 옆에 있었지만, 멍하게 있다가 놓쳐 버리고 말았군요.」

라디오 중계 캐스터의 말대로 맨유의 수비수 마크 존스는 상대 공격수를 완전히 놓쳐 버렸다.

뒤늦게 쫓아갔지만, 이미 탄력이 붙은 데릭을 따라잡기는 힘들었다.

“큰일 났다. 무인지경이야!”

“아니, 저 자식, 왜 멍청한 짓을 해서…….”

맨유 팬들이 안절부절못하는 사이, 데릭 페이스는 순식간에 페널티 박스 가까이 달려갔다.

‘흥, 수비 라인을 너무 올렸다고.’

그러니까 카운터를 먹는 게 당연하지.

차가운 미소를 지은 데릭 페이스는 레이 우드 골키퍼와 일대일의 기회를 얻었다.

골키퍼의 다리 사이로 슛을 할까, 살짝 제치고 꽂아 넣을까.

후자를 택한 그가 한 번 더 치고 나가려는 순간, 갑자기 커다란 게 앞을 턱 막아섰다.

‘이, 이놈이 언제……?’

당황하는 사이, 그의 앞을 막은 거인은 진로를 차단하고 공을 가로채 갔다.

「아! 데릭 페이스, 마지막에 공을 빼앗깁니다. 유나이티드의 5번 존 Y. 리가 팀을 위기에서 구해 냅니다. 방금 전 정말 엄청난 스프린트를 보여 줬습니다.」

바로 눈앞에서 그 상황을 목격한 휴튼 감독은 입을 다물지 못했다.

“무슨 스피드가…….”

190센티미터대의 장신이 성큼성큼 발을 내딛는다 싶더니 순식간에 데릭을 따라잡았다.

거기다 침착하게 막아서서 깔끔하게 공을 빼앗기까지.

“정말 말도 안 되는 놈이군.”

압도적인 피지컬, 빠른 스피드, 뛰어난 테크닉, 거기다 넓은 활동력에 강한 지구력까지.

마치 축구의 신에게 은총이란 은총은 다 받은 것 같지 않은가.

“도대체 저런 녀석을 누가 상대한단 말이야. 도대체 누가…….”

휴튼 감독이 넋두리를 늘어놓고 있는 사이, 데이비드 펙의 추가 골이 터졌다.

약 5분 후인 후반 23분에는 토미 테일러가 승리를 확정하는 네 번째 골을 터트렸다.

연거푸 얻어맞는 동안 아스톤 빌라 선수들은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들어간다고 생각했던 추격 골이 실패하면서 생긴 허탈감이 너무나 컸던 탓이다.

모처럼 기회를 잡아도, 필드 어디에서나 보이는 거인을 보자니 공격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멀리 있어도 코앞에 있는 것처럼 신경 쓰였다.

슛이나 패스를 할 때도 너무 성급하거나, 너무 신중을 기하느라 찬스를 놓쳐 버리곤 했다.

공격수들만 그런 게 아니라 수비수들도 마찬가지.

언제 치고 올라와 수비진을 휘젓고 강슛을 날리지 않을까 하는 불안한 마음을 떨치지 못했다.

즉, 팀 전체가 주눅이 들어 버렸다.

그런 상태에서 제대로 된 플레이가 나올 리 만무했다.

“제길, 진짜 탱크라도 끌고 와야 하나?”

“스탠리 매튜스나 빌리 라이트도 당했을 정도이니…….”

아직 시간은 많이 남았지만, 빅토리아 시대의 제왕은 전의를 잃었다.

패배는 면하기 어려웠지만, 그들은 한 가지는 확실히 알았다.

‘저 거인을 막을 선수를 구하지 않는 한, 유나이티드의 독주를 막을 수 없다!’

이것은 아스톤 빌라 선수들만 느낀 것은 아니다.

이미 준영을 상대한, 그리고 앞으로 만나게 될 팀들도 지각하고 있었다.

***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끝날 때까지 실점을 허용하지 않았고, 4 대 0의 대승을 거두었다.

경기가 끝나고 마크 존스는 준영의 어깨를 툭 쳤다.

“고마워, 존. 덕분에 살았다.”

“실수는 누구나 하는걸. 아까 그거 오프사이드라고 봤던 거지?”

“맞아. 네가 하는 식으로 라인을 살펴보고 한 건데……. 생각보다 어렵구나. 오프사이드 트랩이란 거.”

마크는 머쓱한 표정으로 머리를 긁적였다.

처음에 준영이 나타났을 때 그는 탐탁잖게 여겼다. 자신의 경쟁자가 될 게 뻔했으니까.

실제로 주전에서 밀렸고, 필드보다 객석에 있는 시간이 더 많았다.

하지만 마냥 질투만 하진 않고, 열심히 보면서 준영의 플레이를 훔쳐 배웠다.

오프사이드 트랩도 그중의 하나였다.

“이건 많은 연습이 필요하지. 그리고 수비수끼리 호흡도 잘 맞춰야 하고.”

“역시 어렵군.”

“그래도 너라면 금방 익힐 수 있을걸. 앞으로 같이 연습해 보자고.”

현재 주전에서 밀리긴 했지만, 마크 존스는 헤딩과 태클이 뛰어난 수비수였다.

맨유가 2연속 우승을 하는 데 공헌했고, 유러피언 컵에서도 좋은 활약을 보였다.

실제 잉글랜드 대표팀에 선발된 적이 있고, 빌리 라이트의 후계자로 주목을 받고 있다고.

“그 전에 담배 좀 끊어. 끊기 전에 좀 줄이고.”

“하하, 그건 무리야.”

어느새 입에 큼지막한 담배 파이프를 문 마크는 씩 웃음을 지었다.

그 모습에 준영은 고개를 가로저을 수밖에 없었다.

***

“당연히 무리지. 암, 그렇고말고.”

경기 후, 준영을 만난 윈스턴 처칠은 마크 존스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웃음을 지었다.

“그 친구, 축구는 몰라도 인생은 좀 아는군. 담배 없이 무슨 낙으로 살겠나.”

“하지만 각하, 운동선수에게 흡연은 나쁜걸요.”

리즈는 흡연의 해로움을 준영뿐만 아니라, 학교 테니스 코치에게서도 누누이 들어왔다.

학칙으로도 흡연은 금지이지만, 일부 학생들 중에는 이를 어기는 애들이 있었다.

선생님들은 애들이 철없이 영화에 나온 여배우들의 행실을 따라 한다며 한탄하곤 했다.

“뭐, 그렇다고 한들 근절은 쉽지 않을 게야. 미국인들의 금주법이 실패한 것만 봐도 알 수 있지.”

“예, 기호품이란 게 그리 쉽게 손절할 수 있는 건 아니니까요.”

준영도 커피를 애용하고 있었다.

적당한 양의 카페인은 신경계를 자극해서 운동 능력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되니까.

“아무튼 존 자네 덕에 이 늙은이도 축구에 재미를 붙이게 되었어. 올리버 그 녀석이 왜 그리 환장하는지 이제 알겠더군.”

“올리버? 그게 누굽니까?”

“빅 올리버 말이야. 내 딸과 이혼한 오스트리아 출신의 광대 녀석. 그놈은 런던 서쪽에 있는 팀을 응원하고 있다더구만.”

전에 무솔리니를 본받아 총살시키고 싶다고 운운했던 시원찮은 사위가 그였던 모양.

‘런던 서쪽의 팀이라……. 첼시 아님 풀럼인가?’

준영이 잠시 생각에 잠겨 있을 때였다.

그의 일행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카페로 황급히 들어서는 사람이 있었다.

거칠게 숨을 내쉬며 누군가를 급히 찾던 그는 준영을 보고 반색을 했다.

“아, 여기 있었군요!”

‘조셉 포스터잖아?’

미래 Ree복의 창업자.

그가 준영에게 다가와 반갑게 말을 건넸다.

“형님, 한창 찾았습니다!”

“네? 왜 준에게 형님이라고 하시죠?”

영문을 몰라 하는 리즈에게 준영은 웃으며 사정을 설명해 주었다.

“지난번에 나랑 내기를 했거든. 내가 이기면 형님으로 모시라고 했어.”

“맞습니다. 그래서 형님이 이겼죠!”

그렇다고 곧바로 형님으로 대할 줄이야!

생각 이상으로 조셉은 화통한 성격이었던 것 같았다.

가만히 듣고 있던 처칠도 관심을 보이며 대화에 끼어들었다.

“둘이 무엇을 두고 내기를 한 건가?”

“헉! 초, 총리 각하!”

뒤늦게 처칠을 알아본 조셉 포스터가 깜짝 놀라 모자를 벗으며 예를 취했다.

“처음 뵙겠습니다, 각하. 소생, 볼턴에서 제화업을 하는 죠셉 포스터라고 합니다.”

“그래, 반갑네. 이젠 총리도 아닌 야인이니 그리 어려워할 필요 없어. 그나저나 둘이 무슨 내기를 했지?”

“예, 각하. 그것이…….”

조셉은 손에 들고 있던 신문을 테이블에 펼쳤다.

그 신문의 1면을 본 처칠은 곧장 낯을 찌푸렸다.

안 그래도 이미 오전에 접한 뉴스였기에.

“스푸트니크, 소련 놈들이 세계 최초로 쏘아 올렸다는 인공위성이 아닌가. 그런데 그걸로 내기를 했다고?”

“예, 존 형님은 조만간 소련이 인공위성 발사에 성공할 거라 했고, 저는 아니라고 봤었죠.”

“뭐? 그걸 예상했다고?”

놀란 처칠이 동그랗게 뜬 눈으로 준영을 보았다.

새삼 MI6의 요원 번즈에게서 들은 이야기가 떠올랐다.

그렇다 보니 그냥 놀라고 넘어갈 수가 없었다.

***

처칠의 둘째 딸 사라 처칠과 결혼했던 빅 올리버는 배우에 광대였다고 하지만, 원래는 바이올리니스트였다고 합니다.

사실 그의 부친은 오스트리아 남작이었는데, 가계가 유태인이라 2차 대전 시절에는 나치의 블랙리스트에 올라가기도 했다는군요.

1936년 영국에 와서는 열성적인 축구 팬이 되었는데, 브랜트포드 FC의 서포터로 활동하다 나중에 클럽 부회장까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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