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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 머신-201화 (201/284)

레벨업 머신 2()1화

봄바람⑴

“다소…… 무식한 방법을 사용하는 건 어떻겠습니까?”

“무식한 방법?”

“구체적인 방법에 대해서는 안에 들어가서 얘기하죠. 저희들끼리 해 서 될 얘기도 아니니까요.”

영식은 바로 앞에 있는 황성 집무 실의 문을 슬쩍 바라보며 그렇게 말 했다.

서강준은 고개를 끄덕이며 안으로 들어갔다.

- 끼익.

“오랜만이군.”

“이번에 창세교 조사에 도움을 주 지 못해서 정말 미안하군.”

안으로 들어가니 아르난 제국의 최 고 수뇌부라고 할 수 있는 제이슨과 알렉, 백강현, 포르테의 모습의 보였 다.

“안녕하세요, 영식 씨.”

“응? 너 머리색이 왜 그래? 그 사 이 폭삭 늙기라도 한 거야?”

그들의 반대편에는 레비아탄 길드 의 박시아, 강하린, 천태황의 모습이 보였다.

그 옆에는 한울 길드의 배영훈과 배성훈의 모습도 보이고 있었다.

살바토르 길드가 창세교 조사로 서 부에 가있는 동안 그들은 제국 수뇌 부를 도와 동부 연합의 세력을 과 시, 제국과 연합의 동맹을 대대적으 로 선전하는 역할을 맡았다.

영식이 의도적으로 일으킨 제국 내

불안감 조성이 창세교의 침입으로 불 같이 확대되는 바람에 ‘우리 동 맹의 힘은 이 정도로 강하다. 걱정 하지 마라’라는 메시지를 퍼뜨려야 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예, 알렉 씨의 몸은 괜찮으신가 요?”

“이제 멀쩡해졌네.”

알렉의 대답에 영식은 고개를 끄덕 였다.

알렉은 이미 초인의 경지에 발을 디딘 강자였다. 치명상을 입었다고 해서 몇 개월간 몸져 누워 있거나 하지는 않았다.

“그보다 어제 포르테 장군에게 창 세교를 궤멸시켜 준 자네들에게 사 례를 하고 싶다는 얘기는 들었는 가?”

“예. 들었습니다.”

영식은 고개를 끄덕이며 제이슨을 바라보았다.

“그 사례로는…… 지금 제국이 보 유하고 있는 영웅 이벨린의 유산을 생각 중이네.”

“?예?”

“영웅의 유산이요?”

제이슨의 말에 영식과 티리아는 당

황스럽다는 표정을 지었다.

분명 창세교를 궤멸시킨 것이 큰 업적이라고는 하지만 영웅의 유산이 라니?

그건 만약 아르난 제국을 구해냈다 고 해도 쉽게 건네 줄 수 없는 귀 중한 물건이었다.

영웅 라그나의 유산인 쌍식을 사용 하는 유나만 봐도 영웅의 유산이 가 진 힘이 규격 외라는 것은 쉽게 알 수 있었다.

90레벨 대 소환자에 불과했던 그 녀를 강하린급의 랭커로 만들어준 것은 순전히 쌍식의 힘이었으니까.

‘그리고 얼마 전에 더 강해졌지.’

지난 창세교와의 전투에서 유나는 쌍식의 힘을 각성했다.

아직 완전한 각성까지는 한참 멀었 지만 그래도 전에 비해서는 비교하 기 힘든 힘을 손에 넣을 수 있었다.

유나의 경우를 생각하면 영웅의 유 산은 과거 죽은 영웅들의 힘이 담겨 져 있을 확률이 높았다.

즉, 그 힘을 완전히 계승하게 된다 면 전설로 회자되는 영웅과 비슷한 급의 힘을 얻을 수 있다는 의미였다.

그런 귀중한 물건을 고작 ‘사례’ 따위로 주려고 하는 제이슨의 생각 이 이해되지 않았다.

“하하. 대체 무슨 생각이냐는 표정 들이로군.”

“아…… 솔직히 말씀드려서 왜 그 렇게까지 귀중한 물건을 주려고 하 시는지 이해가 되지 않아서요.”

영식은 솔직하게 대답했다.

냉정하게 생각해서 이번 일의 사례 로 영웅의 유산은 너무 과했다.

“우선 첫 번째 이유는, 제국에서 이 무기에게 선택 받은 이가 없기 때문일세.”

영식은 석연치 않다는 표정으로 침 음을 삼켰다.

“제국은 기본적으로 병장기를 사용 하는 순수한 전사를 선호하네. 영웅 이벨린의 유산인 지팡이를 다룰 수 있는 고위 마법사 자체가 많지 않지.”

제국 3군을 다스리는 장군 모두가 근접 계열 전사라는 점에서 병장기 를 다루는 입지가 높다는 것은 쉽게 추론 가능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그걸 사례로 준다는 건 이해하기 힘든데요.”

영식은 가늘게 눈을 뜨며 제이슨을

바라보았다.

대체 그가 무슨 꿍꿍이로 저런 제 안을 하는 건지 쉽게 이해할 수 없 었다.

아주 긍정적인 사고를 하자면 어차 피 다루지도 못할 무기 동, 남부 연 합의 전력 상승을 위해 투자하겠다 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건 너무 낙천적인 생각이었다.

제이슨이 무슨 호구도 아니고 그런 사람 좋은 짓을 할 리가 없었다.

“하하. 나에 대해서 신뢰가 좀 부 족한 것 같군. 물론…… 자네의 생 각대로 사소한 부탁이 하나 있기는 하네.”

“……들어보죠.”

영식은 깊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입 을 열었다.

영웅의 유산이라는 것은 영식의 입 장에서도 굉장히 탐나는 물건이었다.

살바토르 길드에서 지팡이를 다룰 수 있는 사람은 꽤나 많았다.

채린, 아라에 이어 한성이나 태영 까지 기본적으로는 지팡이를 사용하 는 클래스였다.

‘뭐…… 모두 선택 받지 못할 수도 있지만.’

그럴 경우엔 그때 가서 방안을 생 각하면 될 문제다.

영웅의 유산을 받지도 않았는데 선 택을 받지 못할 상황을 생각하며 설 레발을 치기에는 그 무기가 가진 유 혹이 너무 강했다.

“그 조건이란, 자네가 포르테 장군 과 혼인하는 걸세.”

“..예?”

_쿵!

“뭐, 뭐라고요?!”

“폐, 폐하?”

의자를 박차고 일어난 티리아가 다

급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포르테 또한 당황스러운 표정으로 제이슨을 바라보았다.

“포르테 장군도 슬슬 결혼을 준비 할 나이가 아닌가. 그라면 아주 좋 은 신랑감이라고 생각하지 않나?”

동부에서 상대할 자를 찾기 어려운 강력한 무위.

연합의 2인자라는 막대한 권력.

현재 영식 정도의 영향력을 가진 남자는 대륙 전체를 뒤져도 손에 꼽 을 정도였다.

“하, 하오나……

포르테는 더듬거리는 목소리로 영 식 쪽을 슬쩍 바라보았다.

“……무슨 생각이시죠?”

영식은 가늘게 눈을 뜨며 제이슨을 노려보았다.

제이슨은 입가에 미소를 띠우며 아 무렇지도 않다는 목소리로 말했다.

“동맹 관계를 돈독하게 만들기 위 해서네. 그리 특이할 일도 아니지 않은가.”

거대 세력 간 동맹 관계에서 그 동 맹을 견고히 하기 위해 혼인이란 수 단을 이용하는 경우는 무척 흔했다.

최근에서야 ‘결혼은 사랑하는 사람 끼리 하는 것이다’라는 인식이 퍼지 고 있지만 사실 거의 모든 시대에 걸쳐서 결혼은 훌륭한 정치수단으로 사용되어 왔다.

동부와 남부의 확실한 동맹을 증명 하기 위함이라는 목적만 놓고 본다 면 포르테와 영식이 결혼하는 것은 이상적인 그림이었다.

‘이 능글맞은 늙은이가.’

영식은 일그러진 표정으로 제이슨 을 바라보았다.

그가 무슨 의도로 저런 말을 하는 건지 추측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단테리온에 대한 정보는 아직 알려 주지 않았지만 창세교가 가졌던 전 력에 대해서는 이미 그에게 전해준 이후였다.

즉, 그는 살바토르 길드가 수백에 달하는 슈트 군단을 궤멸 시킬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다는 정보를 알 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영웅의 무기’라는 달콤하기 짝이 없는 미끼로 살바토르 길드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영식을 손에 넣을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그의 의도가 뻔히 보인다고 하더군}

도 그가 내민 미끼가 너무 탐스럽다 는 점이었다.

‘고작’ 결혼으로 영웅의 무기를 얻 을 수 있다니.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 이상한 제안 이었다.

‘결혼은 절대 안 돼.’

제이슨은 모르고 있겠지만 그에게 호감을 보이고 있는 여인들 중에 그 호감이 과한(?) 존재가 하나 있었 다.

안 그래도 질투가 심한 루시아의 귀에 결혼 소식이 들어가기라도 했 다가는 무슨 일이 일어날지 예측할 수 없었다.

농담이 아니라, 포르테의 신변이 위험했다.

물론, 억지로 명령을 내려서 루시아 의 행동을 강제하는 것은 가능했다.

문제는 그렇게 강제한다고 그녀의 감정까지 강제할 수는 없다는 점이 었다.

루시아뿐만이 아니다.

아라, 티리아도 이런 일로 그가 결 혼을 받아들인다면 그와의 관계가 삐걱거릴 것이 분명했다.

이제야 그녀들의 마음을 받아들이 고 좋은 관계를 만들 생각을 하고 있는 영식에게 있어서 반갑지 않은 소식이었다.

‘거절할까?’

영식은 굳게 입을 다문 채 고민에 잠겼다.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거절하면 될 문제였다.

하지만.

‘……미끼가 너무 커.’

영웅의 유산이라는 것은 ‘마음에 들지 않는다’라는 이유로 거절하기 에는 너무 달콤한 미끼였다.

단순히 개인적인 욕심 때문만은 아

니었다.

살바토르 길드에는 지금 한명이라 도 더 강력한 전력이 절실한 상황이 었다.

비단 살바토르 길드만의 문제는 아 니었다. 지금 ‘인류’에게는 강력한 힘을 가진 존재가 절실했다.

그는 이번 사건에서 단테리온이 가 진 경이로운 힘을 보았다.

그것도 그가 전력을 다한 힘은 아 니었을 것이다.

그런 터무니없는 힘을 가진 강자들 을 상대하기 위해서라도 ‘영웅의 유 산’은 반드시 필요했다.

8영웅들은 과거 대전쟁에서 창조주 중 하나를 직접 죽였을 만큼 강한 존재였으니까.

‘어떻게 한다.’

영식은 망설이는 눈빛으로 제이슨 을 바라보았다. 제이슨은 그의 머릿 속을 읽기라도 한 듯이 씨익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의 미소를 본 영식의 표정이 거 칠게 일그러졌다.

제이슨도 알고 있는 것이다.

제안을 거절하기에는 그가 상당한 강수를 상대에게 던졌다는 것을.

‘이렇게 된 이상.’

영식은 진지한 눈빛으로 제이슨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죄송하지만 전 포르테양과 결혼할 수 없습니다. 이미 제 마음을 준 여 인이 있거든요.”

영식은 그렇게 말하며 옆에 앉은 티리아의 몸을 자신 쪽으로 끌어당 겼다.

“여, 영식 씨?!”

그녀는 갑작스러운 영식의 행동에 새빨개진 표정으로 주변을 살폈다.

“ 호오?

제이슨은 그의 대답이 의외라는 듯 이 놀랍다는 눈빛으로 영식을 바라 보았다.

“하지만.”

영식의 말이 이어졌다.

“다른 사람을 추천해 드릴 수는 있 습니다.”

“흐음. 다른 사람이라.”

제이슨의 표정이 살짝 일그러졌다.

아무리 생각해도 살바토르 길드에 서 영식 만큼 탐나는 사람은 없었다.

“그분은 제가 이 세계에 처음 왔을 때부터 함께해 온 동료입니다. 사실 친형제나 다름없는 사이죠.”

“호오.”

‘친형제’라는 그의 말에 제이슨의 눈이 반짝였다.

그가 이렇게 당당하게 친형제라고 말할 정도라면 보통 사이는 아닐 것 이다.

그의 목적은 살바토르 길드를 제국 과 밀접한 관계로 만드는 것. 그렇 다면 영식에게 있어 소중한 동료를 포르테와 이어주는 것도 한 방법이 었다.

“영식 씨, 설마……

티리아는 그가 누굴 얘기하고 있는

지 알 것 같다는 표정으로 영식을 바라보았다.

“제 형님의 이름은 김길수입니다. 든든한 탱커임과 동시에 아주 자상 한 남자죠. 포르테양과는 잘 어울릴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40대 독신.

김길수에게 뒤늦은 봄바람이 불어 오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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