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벨업 머신 157화
이브(3)
[……사실 저희도 공장에 대한 자 세한 정보는 모릅니다. 그저 탈출하 기 바빴거든요.]
이브는 과거를 회상하듯 씁쓸한 목 소리로 대답했다.
“누가, 어떻게 끌고 갔는지 기억나 는 건?”
[저희를 처음 끌고 간 건 같은 기 계 몬스터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저 희와 비교도 할 수 없게 강했고, 저 희는 저항할 수 없었죠.]
“흠……
영식은 짧은 침음을 삼키며 눈살을 찌푸렸다.
혹시 창조주가 직접 그들을 끌고 갔다면 그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 기대했는데 그건 아닌 것 같았다.
“그곳에 대해서 기억나는 건 없 어?”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처음 눈
을 떴을 때로군요. 아마 이건 여기 에 있는 모두가 느꼈을 겁니다.] 이브는 공동 안에 있는 몬스터들을 돌아보며 말을 이었다.
[처음 눈을 떴을 때, 머릿속에 아 주 강렬한 메시지 하나가 떠올랐습 니다.]
“메시지?”
[예. 인간을 죽여라, 라는 메시지였 죠. 몸 전체를 집어삼키는 듯한…… 아주 강렬한 명령이었습니다』
이브는 그때를 떠올렸는지 공포에 질린 표정으로 몸을 떨었다.
[마치 자신이 아닌 다른 누군가가
몸을 지배하는 듯한 기분이었습니 다. 절대적인…… 신적인 존재의 목 소리라고 할까요.]
“신적인 존재라……
이브의 말을 들은 영식은 딱딱하게 표정을 굳혔다.
“너는 어떻게 그 명령에 저항할 수 있던 거지?”
[글쎄요……. 그건 저도 모르겠습 니다. 다만, 계속해서 생각했습니다. 이대로 지배당하기는 싫다고, 자유 를 찾고 싶다고 갈망했습니다.]
이브는 쑥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머 리를 긁적였다.
[절대적인 시스템에…… 저항했다 고 할까요.]
? ?
신적인 존재.
절대적인 시스템.
그 단어에 생각이 미치니 머리가 뜨거워졌다.
-치익.
익숙한 잡음과 함께 시야가 일그러 졌다.
이브의 모습에 누군가의 모습이 순 간적으로 겹쳐 보였다.
‘뭐지?’
아주 익숙하게 느껴지는 형상이었 다. 영식의 머리가 더욱 뜨거워졌다.
‘누구지?’
어딘가 그립게도, 씁쓸하게도, 슬프 게도 느껴지는 그 모습.
짙은 안개에 가려 보이지 않는 그 누군가의 모습을 떠올리고 싶다고 영식은 생각했다.
-치익.
[현 상태에서는 해당 정보에 접근 할 수 없습니다.]
≪으..”
영식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파지직거리는 소리와 함께 순간적 으로 그의 몸에서 푸른색 스파크가 튀어 올랐다.
[무슨 문제 있으신가요?]
“……괜찮아. 신경 쓰지 마.”
영식은 이마를 움켜쥐며 나지막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이브의 말이 이어졌다.
[그 시스템에서 벗어나고 난 이후 에는…… 그저 그곳에서 도망치고 싶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습니다. 그때 지금 제 동료들을 만났죠. 모 두 저와 같은 결함품들이었습니다.]
“그 공장에서는 어떻게 도망쳤지?”
[음……. 공장에서 도망치는 것은 어렵지 않았습니다. 감시하는 존재 도 없고 모두 자동화가 되어 있었기 때문에 몰래 빠져나오는 것은 어렵 지 않았죠. 오히려 나온 이후가 더 문제였다고 할까요.]
“나온 이후가 더 문제였다고?”
[예. 그때부터는 밖에 있는 ‘지배당 한’ 기계 몬스터들과 싸워야 했거든 요. 특히 그 괴물은…….]
“괴물‘?”
[공장 주변에는 아주 강력한 괴물 이 있었거든요. 최근에는 사라진 모 양입니다만……. 여하튼 저희는 그 공장을 탈출하여 이곳에 숨어들었습 니다. 그 뒤로는 이 주변을 탐사하 며 새로운 거처로 옮길 준비를 하고 있죠.]
“이곳에 숨어든 지 얼마나 지났 지?”
[오래되지는 않았습니다. 반년…… 정도일까요.]
“그럼 그동안 연…… 식량은 어떻 게 해결했어?”
영식은 연료라고 말하려고 했지만 이내 식량이라 말을 바꿨다.
이브는 살아 있는 생물로서 자유를
찾기 위해 창조주들의 지배에 저항 한 존재였다.
그런 그의 의지를 존중해 주고 싶 었다.
[하하. 아주 가끔 숲까지 나가서 식 량을 구해 왔습니다. 아주 소량의 식 사만 해도 오랫동안 활동할 수 있기 때문에 크게 문제되지는 않았어요.]
영식과 비슷하게 극소량의 식량으 로도 오래 활동이 가능한 것 같았 다.
둘의 얘기를 가만히 듣고 있던 한 성이 앞으로 나서며 물었다.
“그럼 밖에 있던 그 마크도 이
브……씨가 새겨 넣은 것입니까?”
한성은 몬스터에게 ‘씨’라는 존칭 을 붙이기 어색한지 살짝 말을 흘리 며 물었다.
그의 말에 이브는 고개를 저었다.
[북쪽만 표시된 나침반을 말씀하시 는 거죠? 그건 저희가 오기 전부터 새겨져 있었던 표식입니다.]
“흐 ”
“……그렇다면 결국 오리하르콘의 행방을 찾기는 어렵겠군요.”
한성은 아쉽다는 듯이 혀를 찼다.
이브를 통해 대충 얘기를 들은 영
식은 티리아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티 리아.”
“예, 영식 씨.”
“그 공장 이라는 곳, 한번 가봐도 될까?”
티리아는 굳게 입을 다물고 고민에 잠겼다.
그녀는 공장이라는 곳이 어떤 곳인 지 정확히 알지 못했다.
하지만 둘의 대화를 들으니 기계 몬스터를 만들어내는 곳이라는 것을 추측하기는 어렵지 않았다.
“……예. 가봐야 할 것 같아요.”
애초에 이 원정은 기계 몬스터의 정체를 파악하기 위해 출발한 것이 었다.
원정의 목적을 생각한다면 공장이 라는 곳에 가야 할 이유는 충분했 다.
‘그리고……
그녀는 이브에게 시선을 옮겼다.
그녀가 이제까지 봐왔던 오우거라 고는 생각할 수 없는, 따듯한 인상 의 괴물.
그런 그들을 명령에 복종하는 노예
로 만들고 있는 곳을 가만히 내버려 둘 수 없다는 생각도 들었다.
“이브, 그 공장이라는 곳이 어디 있는지 알려줘.”
[……그곳에 가실 생각이신가요?]
이브의 물음에 영식은 천천히 고개 를 끄덕였다.
이브는 공동 안에 있는 기계 몬스 터들을 잠시 돌아보더니 굳은 결심 이 선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혹시 저희들도 데려가 주실 수 있 나요?]
“너희들을?”
[예. 아직 그 지옥 속에 있을 동족 들을…… 가만히 내버려 둘 수 없어 서요.]
-철컥.
이브는 주먹을 굳게 쥐며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영식은 그런 그의 말에 무겁게 눈 빛을 가라앉히며 고개를 돌렸다.
영식과 티리아의 시선이 허공에 얽 혔다.
“알았어. 그럼 안내를 부탁할게.”
[감사합니다.]
이브는 방긋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숙였다.
오우거의 외형 탓에 흉측하기 짝이 없는 미소였지만 영식은 그의 미소 가 조금도 혐오스럽다는 생각이 들 지 않았다.
광산을 나온 영식 일행과 이브는 바로 공장으로 향했다.
이브를 따라나선 기계 몬스터들이 앞장서 길을 안내했다.
공장은 소환자들이 ‘영웅의 무덤’ 이라고 부르는 장소, 과거 대전쟁이 일어났던 중앙 지역에 위치했다.
중앙 지역에 도착하니 박시아의 말 대로 멀쩡한 형태로 남아 있는 잉그 리움 제국의 황성이 보였다.
“공장은 어디에 있는 거지?”
주변에 보이는 것은 끝없이 펼쳐진 황무지와 제국의 황성뿐.
황성은 개인적으로 큰 관심이 있었 지만 지금 당장 갈 수 있을 만한 상황은 아니었다.
[저곳입니다.]
이브는 손을 들어 한 부분을 가리 켰다.
그가 가리킨 곳에는 아무것도 없는 황무지뿐이었다.
‘아니.’
가만히 그 장소를 바라보던 영식의 표정이 굳었다.
모래로 뒤덮인 황무지 아래, 불길 한 무언가가 있는 감각이 느껴졌다.
영식은 스캔을 사용해서 안을 살필 까 고민하다가 이내 그 생각을 접었 다.
만약 이 안에 있는 것이 기계 몬
스터 공장이라면 스캔을 사용하는 것은 위험했다.
“……확실히, 저기 아래에 뭔가가 있구만.”
황현은 바닥에 손을 가져다 대며 날카로운 목소리로 말했다.
-철컥. 철컥.
[이곳으로 오시면 됩니다.]
바닥을 살피던 이브가 발걸음을 옮 겼다.
[일단 이곳이 입구긴 한데요…….]
이브는 곤란하다는 표정으로 바닥 의 모래를 손으로 쓸었다.
손으로 쓰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마 치 굴착기로 파내듯 순식간에 땅이 파였다.
모래가 걷힌 땅에 금속으로 된 문 이 나타났다.
[탈출할 때는 안에 버튼이 있었는 데…… 밖에는 따로 입구를 여는 버 튼이 없어서요. 무기로 부수고 강제로 들어가는 방법밖에 없을 것 같아요.]
이브는 그렇게 말하며 고개를 돌려 만티코어를 바라보았다.
[부탁드릴게요.]
[알겠습니다, 촌장님.]
만티코어는 고개를 끄덕이며 거대 한 입을 벌렸다.
그 입에는 살바토르 길드에게도 익 숙한 플라즈마 블라스트 발사 장치 가 달려 있었다.
“잠시만.”
영식은 이브의 앞을 가로막으며 금 속 문에 손을 가져다 대었다.
“구조파악.”
-띠링.
[구조파악이 성공하였습니다.]
[해당 장치의 제어권이 ‘영식’에게
주어집니다.]
-우우우웅.
-철컹!
직경 50미터는 될 법한 거대한 문 이 천천히 열리며 지하로 향하는 계 단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곳이 기계 몬스터들을 만들어내 는 공장인가.’
영식은 밑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쭉 이어져 있는 계단을 내려다보며 눈을 빛냈다.
[이, 이거……』
“들어가자.”
놀라고 있는 이브에게 자신의 능력 에 대해서 설명해 줄 시간은 없었 다.
영식은 계단 아래로 발걸음을 옮겼다.
이브의 말대로 딱히 가디언이나 접 근을 방해하는 장치가 있지는 않았다.
밖에 안드로이드 군단을 대기시켜 둔 살바토르 길드는 아무런 방해 없 이 공장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여긴?
“마치 만화에 나오는 미치광이 과 학자의 실험실 같군요.”
공장 안에 들어간 길드원들은 표정 을 일그러트리며 주변을 둘러보았 다.
공장 전체에 늘어져 있는 수십 개 의 유리관.
그 안에 들어 있는 몬스터들.
쉼 없이 움직이는 기계장치와 그 기계장치에 의해 모습이 변하고 있 는 유리관 안의 몬스터.
한성의 말대로 미치광이 과학자의 실험실을 떠올리게 만드는 장소였다.
“다른 기계 몬스터가 보이지는 않네.”
[완성된 기계 몬스터들은 바로바로
밖으로 이동하기 때문입니다. 이곳 에는 잡혀 온 몬스터들과 병기로 개 조되고 있는 몬스터만 남아 있어요.]
영식은 고개를 끄덕이며 앞으로 걸 어갔다.
[저희는 이 안에 잡혀 온 몬스터들 을 풀어주겠습니다.]
“잠깐. 우선 공장 안을 조사해 보 고 나서 움직여 줘.”
영식은 그렇게 말하며 길게 늘어진 유리관을 넘어 공장 중앙으로 걸어 갔다.
‘이렇게 큰 공장이면 그 동력원이 있을 텐데.’
영식은 동력원을 찾아 주변을 살폈 다.
동력원을 찾는데 오랜 시간이 걸리 지는 않았다.
공장의 중앙.
피부가 따끔해질 정도로 강렬한 에 너지를 뿜어내고 있는 기계장치가 바로 눈에 들어왔다.
그 기계장치 주변으로 마치 혈관처 럼 뻗어 있는 금속관들이 기계장치 에서 홀러나오는 에너지를 주변으로 퍼트리고 있었다.
“?저건.”
공장의 동력원으로 추정되는 기계 장치.
공장 중앙에서 강렬한 에너지를 끊 임없이 뿜어내고 있는 그 장치를 본 영식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그의 기억 속에 남아 있는 물건이 었다.
“설마 여기에서 이걸 찾을 줄이 야……
영식은 허탈한 표정으로 동력원을 향해 걸어갔다.
영식은 거대한 공장을 가동시키고 있던 동력원을 향해 손을 뻗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