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벨업 머신 156화
이브(2)
“이건 ”
광산의 옆에 그려진 정체불명 의 문양.
북쪽만 표시된 나침반의 모습이 거 대하게 새겨져 있었다.
“왜 이런 문양이?”
한성은 눈살을 찌푸리며 중얼거렸다.
잉그리움 제국을 나타내는 문양은 기도하고 있는 천사였다.
초대 황제와 사랑을 나눴다고 알려 진 대천사 세라핌을 기리기 위해서 였다.
잉그리움 제국은 이 문양에 대한 애착이 굉장히 강했기 때문에 모든 국가기관을 비롯한 사설 단체에 이 문양을 새기는 것을 의무화시켰다.
즉, 어떤 시설에 가더라도 어지간 하면 천사의 문양이 그려져 있다는 것이다.
“어디의 문양일까요?”
티리아 또한 처음 본다는 표정으로 북쪽만 그려진 나침반의 문양을 바 라보았다.
한성이 가늘게 눈을 뜨며 대답했 다.
“글쎄요. 잉그리움 제국은 천사의 문양 이외에 다른 문양을 사용하면 엄벌에 처하게 했다고 들었는데 오리하르콘 광산은 국가에서 관리 하는 주요 전략 시설이었다.
그런 중요한 시설에 잉그리움의 제 국을 상징하는 천사의 문양 이외에 다른 문양이 새겨져 있다는 것은 확 실히 이상한 일이었다.
“잠시만요.”
주변을 살피던 영식은 북쪽만 그려 진 나침반이 새겨진 비석을 손을 쓰 다듬었다.
무언가로 긁어낸 듯이 울퉁불퉁한 감촉이 느껴졌다.
“……원래 있던 문양을 지우고 새 롭게 새긴 것 같군요.”
“그렇다는 건……
“저희가 오기 전 누군가 먼저 이곳 에 들른 것 같습니다.”
영식은 가늘게 눈을 뜨며 비석에
새겨진 문양을 살폈다.
정확한 시기는 알 수 없었지만 대 전쟁 이후 누군가가 이곳에 왔다고 밖에 볼 수 없는 흔적이었다.
“음……. 동부에서는 본 적 없는 문양이니 남부? 서부……? 일까요.”
한성은 복잡하다는 표정으로 눈살 을 찌푸렸다.
“그것까진 알 수 없지만…… 골치 아프게 되었군요.”
영식은 눈살을 찌푸리며 몸을 돌렸 다.
누군가 이미 이곳에 들렀다는 것은 오리하르콘 광산이 다른 사람들에 의해서 털렸을 수도 있다는 의미였 다.
“일단 안에 들어가서 확인해 보 죠.”
영식은 그렇게 말하며 광산의 입구 로 발걸음을 옮겼다.
“……역시. 이미 누군가 와서 오리 하르콘을 털어 간 게 확실한 것 같 군요.”
오리하르콘 광산 내부를 살피던 영
식은 짧은 한숨과 함께 입을 열었 다.
처음 정체불명의 문양이 광산 앞에 새겨져 있을 때부터 조금은 예상하 고 있었던 일이었다.
애초에 오리하르콘 이외에 대전쟁 이후 이곳을 찾을 이유 자체가 없었 다.
‘쯧.’
영식은 아쉽다는 표정으로 혀를 찼 다.
블랙큐브와 달리 오리하르콘은 영 식에게만 가치 있는 물건이 아니었 다.
SS급 이상 레어 아이템의 제조에 사용되니 노리는 존재가 많은 것이 당연했다.
‘아깝네.’
영식은 텅 비어버린 광산 안을 바 라보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오리하르콘을 추출해서 얻을 수 있 는 S랭크, SS랭크 금속 코어는 그에 게 엄청난 가치가 있는 물건이었다.
지금 보다 훨씬 더 오버스펙의 기 계들을 만들 수도 있었고, 무기들의 강화도 가능했다.
폭발적인 성장이 약속된 물건을 다 른 누군가 한발 앞서 가져갔다고 생 각하니 짜증이 밀려올 정도였다.
‘뭐, 누가 가져갔든 탓하긴 어려운 노릇이지만.’
도굴꾼이 자신보다 빨리 보물을 챙 겨 간 다른 도굴꾼을 욕할 수는 없 었다.
주인이 없는 보물이었으니 먼저 가 져간 쪽이 임자인 것은 당연했다.
“누가 가져간 걸까요. 남부에서는 아르난 제국군 밖에 중앙까지 올 수 있는 존재는 없을 테니 아니겠 고…… 서부일까요?”
한성은 고민에 잠긴 표정으로 턱을 쓰다듬었다.
“서부의 유명 길드 중 하나 아니겠 습니까?”
“아뇨. 서부에는 길드 개념이 없습 니다.”
“길드 개념이 없다고요?”
“예. 그곳은 국가 자체가 모두 몰 락해 버려서요. 강력한 소환자들을 중심으로 부족 단위의 단체를 만들 어 활동한다고 들었습니다.”
“호오.”
영식은 처음 듣는 정보에 흥미롭다 는 듯 눈을 빛냈다.
남부와 동부는 교류가 많아 그만큼
자주 소식을 접할 수 있었지만 서부 의 경우 소식을 접하기 쉽지가 않았 다.
“그렇다면 그 소환자가 만든 부족 중 하나일 것 같군요. 일단 동부, 남부가 아니라면 서부밖에 그 후보 가 없으니…… 영식은 그렇게 말하여 날카롭게 눈 을 빛냈다.
‘아니면.’
만약 자신의 힘과 창조주가 사용하 는 힘이 같은 종류의 힘이라고 한다 면.
창조주 측에서 오리하르콘 광산을
털어 갔을 가능성 또한 충분했다.
오리하르콘을 통해서 얻을 수 있는 재료는 그들이 탐낼 만한 가치가 있 었으니까.
“북쪽만 표시된 나침반이라…… 나 중에 돌아가면 한번 알아보도록 하 겠습니다.”
한성 또한 자신이 정보를 찾은 광 산이 모두 털려 있자 씁쓸하다는 표 정을 지으며 말했다.
“그럼 저쪽만 마저 돌아보고 돌 아……
?철컥. 철컥.
돌아가자는 말을 하려 했던 영식의
귓가에 익숙한 쇳소리가 들려왔다.
기계 몬스터들이 몸을 움직일 때 흘러나오는 금속음이었다.
“기계 몬스터로군요.”
영식은 눈살을 찌푸렸다.
오리하르콘 광산을 털어 간 것이 창조주들일 수도 있다는 그의 가설 이 조금 더 명확해지는 기분이었다.
-지이잉
“제가 처리하고 올게요, 주인님.”
“잠깐만 기다려.”
영식은 앞으로 나서려는 루시아를 한 손을 들어 말렸다.
아직 기계 몬스터의 종류도, 전력 도 파악되지 않은 상황에서 섣부르 게 그녀 혼자 보내는 것은 위험했 다.
그녀와 비슷한, 혹은 더 강한 개체 의 기계 몬스터가 등장할 수도 있는 가능성 또한 완전히 배제할 수 없었 다.
“모두 전투 준비를 해주세요.”
티리아는 여섯 장의 날개를 펼치며 전투 준비를 지시했다.
길드원들 사이에 팽팽한 긴장감이 내려앉았다.
?철컥.
“……오우거라.”
“후훗. 저 정도라면 제가 혼자서 처리할게요.”
눈앞에 나타난 기계 몬스터는 익숙 하게 봐오던 오우거였다.
오우거의 몸에 건틀릿처럼 생긴 기 계 장갑을 양팔에 장착하고 있는 괴 물 기계 몬스터 중에서도 가장 많은 개체이며 또한 가장 약한 힘을 가진 개체 였다.
“알았어. 아, 금속 팔 부분은 파괴 하지 마.”
영식은 오우거를 통해 문양의 단서 를 얻을 수도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그렇게 말했다.
“……알겠어요, 주인님.”
루시아는 영식이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을 다시 보기 싫었지만 명령에 거스를 수는 없었다.
그녀는 라이트 세이버를 들고 가볍 게 발을 박차려고 했다.
그때 였다.
[자, 잠시만요!]
오우거는 두 팔을 앞으로 저으며 다급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뭐……?”
“이건 또 무슨……
오우거가 말을 한다는 듣도 보도 못 한 일에 길드원들의 표정이 경악 으로 물들었다.
[저는 여러분과 싸울 생각이 없습 니다.]
오우거는 두 팔을 위로 들어 항복 의사를 보냈다.
루시아는 당황스러운 표정으로 영 식을 돌아보았다. 그를 죽여야 할지 말아야 할지 전혀 알 수 없는 상황 이었다.
“……어떻게 오우거가 말을 할 수 있는 거지?”
영식은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인간과 대화할 수 있는 지성을 가 진 몬스터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드래고니안만 하더라도 인간과 비 슷한 지성을 가지고 있었고, 극소수 지만 몇몇 몬스터 중에는 인간 이상 의 지성을 가지고 있는 몬스터도 있 었다.
하지만 오우거는 몬스터 중에서도 가장 본능에 따라 움직이는 몬스터 였다.
대화는커녕 테이밍조차 불가능한 괴물.
그런 몬스터의 대표가 바로 오우거 였다.
[안녕하세요. 제 이름은 이브입니 다. 이곳에서 인간분들을 만난 건 처음이네요.]
오우거는 흉측한 입가를 일그러트 리며 정중하게 고개를 숙였다.
“이브?”
“저 얼굴에……?”
흉측한 외모와 너무나도 괴리감이 심한 그 이름에 길드원들은 허탈한 웃음을 보였다.
영식은 복잡하다는 표정으로 이마 를 만지며 그에게 물었다.
“……넌 누구지?”
[음……. 어려운 질문이네요.]
이브는 기계 팔을 들어 턱을 쓰다 듬으며 말을 이었다.
[저도 제 자신의 존재에 대해서는 정확히 알지 못합니다. 그저 추측하 기로는…… 결함품, 이라고 부르는 것이 가장 적절할 것 같네요.]
“결함품?”
[예. 저는 ‘공장’에서 빠져나온 결
함품입니다.]
이브는 어딘가 씁쓸하게 느껴지는 목소리로 말했다.
공장, 이라는 단어에 영식의 표정 이 딱딱하게 굳었다.
기계 몬스터들의 부품에 구조파악 을 했을 때가 떠올랐다.
끈적끈적한 액체가 든 유리관이 늘 어져 있는 칙칙한 공간.
“……그 공장이라는 곳에서 기계 몬스터들을 만들고 있는 건가?”
[.이미 저와 같은 몬스터를 만
나신 적이 있으신 모양이군요.]
영식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브는 다시 또 씁쓸한 미소를 입 가에 머금으며 말을 이었다.
[맞습니다. 그 공장에서는 몬스터를 잡아 와 병기로 만들고 있죠. 저 는?… 병기가 되다 만 모양입니다만.]
“너는 그 공장에 잡혀가기 전부터 사람과 대화할 수 있었나?”
영식의 물음에 이브는 천천히 고개 를 저었다.
[아뇨. 공장에 잡혀가기 전에는 여 러분들이 알고 계신 평범한 오우거 와 다르지 않았습니다. 본능에 따라 움직였고, 사냥감을 찾아 숲을 돌아 다녔죠.]
이브는 자신의 머리를 긁적이며 말 을 이었다.
[하지만 ‘실험’을 받던 도중 지성, 이라고 표현할 만한 것을 얻었습니 다. 다시 태어난 기분이었죠.]
“어째서 그 공장을 탈출한 거지?”
[그곳은…… 지옥이었으니까요.]
이브의 눈이 깊게 가라앉았다.
[몬스터들의 비명이 끊이질 않는 곳이었습니다. 병기가 된 그들을 보 고 있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무너질 것 같았죠. 그래서…… 탈출했습니 다. 저와 같은 결함품들을 모아서.]
“……지성을 가진 몬스터가 너 혼 자가 아니야?”
[하하. 잠시 이리로 와주시겠습니 까?]
이브는 그렇게 말하며 몸을 돌려 걸어갔다.
길드원들은 딱딱한 표정을 지으면 서도 그의 뒤를 따라갔다.
“여긴?…”
이브를 따라 도착한 장소는 광산 깊은 곳에 있는 칙칙한 공동이었다.
그곳에는 수십 마리의 몬스터가 모 여 불안한 표정으로 이쪽을 바라보 고 있었다.
[초, 촌장님.]
[이들은……?]
이브와 같은 오우거부터 시작해서 자이언트 터틀, 싸이클롭스, 만티코 어까지.
이전에 싸웠던 기계 몬스터들의 무 리와 흡사한 조합을 가진 몬스터 무 리였다.
다만 그들과 다른 점은 지금 공동 에 있는 몬스터들은 흉포한 괴성이 아닌 불안감에 찬 목소리로 몸을 떨 고 있다는 점이었다.
[진정하세요, 여러분.]
이브는 차분한 목소리로 그들을 진 정시 켰다.
영식에게 고개를 돌린 이브는 나지 막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저와 함께 공장을 탈출한 몬스터 들입니다. 모두 실험을 받던 도중 지성이 생긴 결함품…… 들이죠. 저 희들은 공장을 탈출한 후 이곳에 숨 어들어 생활하고 있었습니다.]
“촌장님이라는 건 또 뭐야?”
[하하. 우스울 수도 있으시겠지 만…… 이 작은 광산을 거점으로 마 을을 만들었거든요. 저희 결함품들 만 모인 마을을요.]
이브는 부끄럽다는 듯이 머리를 긁 적였다.
영식은 복잡한 표정으로 기계 몬스 터들을 바라보았다.
‘대체 이게 무슨 일이지?’
기계 몬스터들이 지성을 가지게 된 것만으로도 경악할 만한 일인데 거 기에 더해서 마을까지 만들다니.
그의 상식으로서는 이해하기 힘든 일들이 연달아 일어나고 있었다.
[인간 여러분들이 보기엔 좀 그러 실 수도 있지만…… 다들 착하고 온 순한 몬스터들입니다. 그러니 부디 적의를 거둬주세요.]
이브는 이쪽을 바라보며 긴장된 표 정을 짓고 있는 길드원들에게 말했 다.
“허……
“이걸 뭐라고 해야 할지……
길드원들 또한 허탈한 웃음을 흘리 며 고개를 저었다.
싸울 의지조차 생기지 않을 정도로 충격적인 광경이었다.
?
영식은 굳게 입을 다문 채 생각에 잠겼다.
공장.
이브가 말한 그 단어가 계속해서 그의 머릿속을 맴돌았다.
어이브.. 라고 했던가?w
[예.]
“그 공장이라는 곳에 대해서 자세 히 알고 싶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