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벨업 머신-38화 (38/284)

레벨업 머신 038화

블랙큐브의 힘(1)

“하우우우……

길드 하우스로 복귀하는 길, 채린 은 이마를 두 손으로 누른 채 신음 을 흘리고 있었다. 영식에게 의미심 장한(?) 질문을 하자마자 번개처럼 달려든 유나에게 뒤통수를 세게 얻 어맞았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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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해 유나 언니……

“너무한 건 네 머리겠지.”

울상을 짓는 채린에게 유나는 날카 로운 목소리로 말했다. 그녀의 말에 채린은 움찔 몸을 떨었다.

“하하?

영식은 그런 그녀들의 뒷모습을 바 라보며 가벼운 웃음을 흘렸다. 그런 그에게 길수가 다가왔다. 그의 뒤에 는 아라가 흉흉한 눈빛으로 길수를 바라보고 있었다.

길수는 아라의 눈치를 살피며 헛기 침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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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흠.”

길수는 헛기침을 내쉬면서도 고개 를 돌려 아라 쪽을 힐끔힐끔 쳐다보 았다. 그녀는 단호한 눈빛으로 길수 를 바라보고 있었다. 영식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그에게 시선을 돌렸다.

“무슨 일이신가요?”

“크흠. 그, 그러니까 말일세. 오해 는 하지 말게. 정말 순수한 호기심 에 물어보는 거니까.”

길수는 영식의 시선을 피하며 어색 한 미소를 지었다. 영식은 이해할 수 없는 그 행동에, 의아하다는 표 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길수는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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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을 살짝 움켜쥐며 영식에게 물었 다.

“자네 저, 정말 달려있긴 하나?”

영식은 설마 길수가 이런 것을 물 어볼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는지 허 탈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길 수는 그 시선을 애써 피하며 연신 헛기침을 내뱉었다.

영식은 깊은 한숨을 내쉬며 그의 말에 대답했다.

“예. 달려 있습니다. 그리고 어떤 구조로 되어 있는지는 전혀 모르겠 지만, 성욕도 느끼고 커지기도 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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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영식의 몸은 단순히 ‘기계’라고 표 현하기에는 부족한 부분이 너무 많 았다. 다른 사람들보다 그 정도가 덜하긴 하지만 그도 피로를 느끼고, 체력이라는 것이 존재하며, 물과 음 식을 먹을 수 있었다.

성욕도 그런 그의 ‘인간 같은’ 요 소들 중 하나였다. 해본 기억이 없 으니 실제 성행위가 가능할지는 확 신할 수는 없었지만 일단 커지긴(?) 했다.

“아, 그런가.”

길수는 영식의 말에 어쩐 일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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밝은 표정으로 연신 고개를 끄덕였 다. 그는 껄껄 웃음을 흘리며 고개 를 돌려 아라 쪽을 바라보았다.

“다행이지 않은가 아라 양. 자네의 걱정은 이걸로……

“꺄아아아아악! 무, 무슨 소리를 하는 거예요 아저씨!”

길수의 말을 들은 아라가 창백해진 표정으로 길수에게 달려들었다. 그 녀는 길수의 목을 거칠게 조르며 비 명을 질렀다. 길수는 고통스러운 표 정으로 몸을 비틀었다.

영식은 그런 그들을 보며 대체 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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슨 말을 해야 할지 알 수 없다는 듯이 난처한 미소를 지었다.

* * *

길드 하우스로 돌아온 영식 일행은 티리아와 다른 길드원들에게 이번에 있었던 일과 영식의 정체에 대해서 얘기했다.

유진과 티리아는 처음에 당연히 그 의 말을 믿지 않았지만 영식이 직접 자신의 오른팔을 보여주며 증거를 보이자 그의 말을 믿을 수밖에 없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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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영식 씨는 지구인도 아니신 건가요?”

티리아는 믿기 힘들다는 표정으로 영식을 바라보며 물었다. 그녀의 말 에 영식은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그건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제게 지구에 대한 지식이 없는 것도 아니 거든요.”

영식은 알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 며 대답했다. 그의 말대로, 만약 그 가 지구인이 아닌 전혀 다른 존재였 다면 지구에 대한 지식이 있다는 것 자체가 말이 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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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지구에서 만들어진 기계 생 명 체라던가?”

“……그럴 리가 있겠냐.”

유나의 말에 유진은 한숨을 내쉬며 입을 열었다. 지구 과학기술로 영식 과 같은 기계를 만들어 낸다고? 말 도 되지 않는 개소리였다.

지구에서 몇 천 년이 흐른 미래라 면 몰라도 지금 당장은 영식처럼 인 간에 가까운 기계 생명체를 만들어 내는 것은 불가능했다.

“아냐! 혹시 NASA라면 가능하지 않을까?!”

가만히 그들의 말을 듣고 있던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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린이 한쪽 손을 번쩍 들며 눈을 빛 냈다. 유진은 그럼 그녀의 말에 머 리가 아프다는 듯이 한숨을 내쉬었 다.

“넌 입 좀 다물고 있어라 꼬맹이.”

“윽?! 꼬맹이 아니야!”

채린은 정곡을 찌르는 유진의 말에 발끈하며 소리 질렀다. 티리아가 나 서서 신경전을 벌이고 있는 둘을 말 렸다.

“진정해요. 지금 중요한 건…… 그 런 게 아니니까요.”

티리아는 어두운 표정으로 그렇게 말했다. 그녀의 말에 배한성은 무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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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예. 맞는 말씀이십니다. 지금 중요 한 건 그게 아니죠.”

이번에 그들은 라이트 실드 길드라 는, 대륙 동부에서 열 손가락 안에 꼽히는 거대한 길드의 습격을 받았 다. 영식의 도움으로 절망적인 상황 에서는 벗어나긴 했지만 아직 이 문 제가 완전히 해결된 것은 아니었다.

“길드장님, 이건 기회입니다. 길드 장과 핵심 전력들이 모조리 죽은 지 금의 라이트 실드 길드를 습격하면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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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말에 티리아는 표정이 어두워 졌다. 그녀는 조심스러운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그들은 저희들에 대해서 알고 있 었습니다. 더 이상 숨어 지내는 것 은 의미가 없습니다.”

배한성은 딱딱한 목소리로 그렇게 말했다. 그의 말에 티리아의 표정이 한층 더 어둡게 변했다.

현재 살바토르 길드가 처한 상황. 엘노트 왕국 전체에 지명수배가 된 자신들의 처지가 떠올랐기 때문이었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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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이르다고 생각했지만…… 이 제 슬슬 계획을 실행할 때라고 생각 합니다.”

그의 말에 영식 일행을 제외한 살 바토르 길드원들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항상 해맑은 미소를 짓던 채린의 표정까지도 어둡게 변한 상 태였다.

“……진심이야?”

유나는 날카로운 눈빛으로 한성에 게 물었다. 한성은 고개를 끄덕였다.

“예. 진심입니다. 이건 티리아 님을 위해서라도……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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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쥐어짜내는 듯한 목소리로 그 렇게 말했다. 그들의 대화를 가만히 듣고 있던 영식이 입을 열었다.

“그 계획이라는 게 뭔지 들어봐도 되겠습니까?”

영식은 깊게 가라앉은 표정으로 그 렇게 물었다. 그의 말을 들은 한성 이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한성은 영식이 무엇을 할 수 있는 지, 그의 힘이 얼마나 어처구니없이 강한지 보았다. 물론 지금 그 힘을 마음대로 쓸 수 없다는 것은 들었지 만 그러한 잠재력이 있다는 것만으 로도 그의 가치는 랭커 이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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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그들의 계획을 말하는 것을 망설일 필요는 없었다.

“저희는, 엘노트 왕국을 상대로 싸 울 생각입니다.”

그의 말에 영식 일행의 표정이 딱 딱하게 굳었다. 그것은 고작 10명 남짓한 길드에서 감히 나올 수가 없 이 광오한 말이었다.

영식은 낮은 목소리로 그에게 물었 다.

“한 왕국을 상대로 싸우겠다고요? 고작 지금 인원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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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원에 관해서는 생각해 둔 것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도 쉽지 않겠 죠.”

“……이유가 뭡니까.”

영식은 날카롭게 눈을 빛내며 그에 게 물었다. 배한성은 불안한 표정으 로 이쪽을 바라보고 있는 티리아를 힐끔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

“길드장님의…… 가족을 구하기 위 해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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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말씀드렸다시피 현재 엘노트 왕국은 티리아 님의 가족을 인질로 잡고 그녀를 협박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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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한성의 말에 티리아는 어두운 표 정으로 입술을 깨물었다.

“저희 길드는, 엘노트 왕국과 싸워 인질로 잡힌 사람들을 구해낼 겁니 다.”

그때 한성의 말이 이어졌다.

“다시 과거와 같은, 아니 그보다 더 강대한 길드로 성장할 것입니다. 이제 두 번 다시 그 누구도 저희들 을 넘볼 수 없도록!”

_쿵!

배한성은 거칠게 발을 구르며 그렇 게 소리쳤다. 그의 눈빛에는 짙은 분노가 화산처럼 타오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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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외침을 들은 영식은 뒷목이 서늘해지는 감각과 함께 전신을 뒤 흔드는 ‘짜릿함’을 느꼈다. 자신은 살바토르 길드의 과거에 대해 알지 못했다. 그들이 얼마나 큰 세력을 일궈냈는지, 얼마나 처참하게 몰락 했는지 단지 말로 전해 들었을 뿐이 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배한성 의 말에서 전해지는 열기에 영식의 가슴은 거칠게 두근거렸다.

‘내가 이런 성격이었나?’

영식은 천태황을 만났을 때를 떠올 렸다. 지금 살바토르 길드로서는 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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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할 수도 없는 지원을 받으며 재능 의 날개를 활짝 펼치고 있는 그 모 습을 바라보며 영식은 묘한 패배감 을 느껴었다.

그런 그를 뛰어넘고, 지금은 감히 상상해볼 수도 없는 3대 길드의 세 력을 넘보고 싶다. 그런 욕구가 그 의 가슴속에서 끓어올랐다. 마치 본 능처럼. 아니, 처음부터 ‘그래야만’ 했다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처럼.

‘왜……?’

영식은 자신의 이마를 짚으며 고민 에 잠겼다. 왜, 라는 의문이 그의 가슴에 앙금처럼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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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식은 욕심이 많은 성격이 아니었 다. 그가 욕망하는 것은 자신의 기 억을 되찾고, 안정적인 생활을 할 수 있는 힘을 갖추는 것뿐이었다.

대륙을 호령할 지배자가 될 생각 도, 그 누구도 무시할 수 없는 강대 한 세력을 만들겠다는 생각도 단 한 번도 한 적이 없었다.

하지만 지금 배한성의 말로 그는 깨달았다. 자신의 잃어버린 기억, 그 너머에 있는 본능이 그에게 더욱 강 한 힘을, 그 누구도 넘볼 수 없는 강대한 세력을 쌓으라고 울부짖고 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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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성아……

티리아는 그런 한성을 안타까운 눈 빛으로 바라보았다. 한성은 그런 그 녀를 무시하고 영식을 돌아보며 입 을 열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영식 씨의 힘이 필요합니다.”

“……이번에 보여드렸던 힘은 제 의지로 다룰 수가 없는 힘입니다.”

영식은 낮은 목소리로 한성의 말에 대답했다. 강제 해방이 가진 힘은 경이로웠다. 라이트 실드라는 거대 한 길드를 통째로 박살낼 수 있을 정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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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것은 영식이 다룰 수 없 는 힘이었고, 그 대가가 너무 치명 적인 힘이었다. 위기 상황 때마다 강제 해방을 사용하다가는, 그를 기 다리고 있는 것은 끔찍한 파멸뿐이 었다.

“하지만 이번 계획에는 저도 최선 을 다하겠습니다.”

영식은 분노로 이글거리는 한성의 두 눈을 바라보며 대답했다.

둘의 시선이 허공에 얽혔다.

“저도 이제는 살바토르 길드의 길 드원이니까요.”

영식은 씨익 미소를 지으며 그렇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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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했다. 그의 말에 한성은 만족스러 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길드장님. 이제 길드장님의 선택 만 남아 있습니다.”

한성은 딱딱한 목소리로 말하며 그 녀를 바라보았다. 길드원들의 시선 이 티리아에게 집중됐다.

그녀는 두 눈을 감았다. 그녀의 안 에는 불안과 기대, 기쁨과 슬픔의 감정이 복잡하게 얽혔다.

“알겠습니다.”

한동안 고민에 잠겨 있던 티리아가 천천히 두 눈을 떴다. 그녀는 굳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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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의가 담긴 눈빛으로 입을 열었다.

“이번 기회를 바탕으로…… 다시 일어섭시다.”

그녀의 말에 길드 하우스 내에 묘 한 열기가 피어올랐다.

한성은 씨익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 라이트 실드 길드에서 얻을 수 있는 보상은 상당할 겁니다. 특 히 길드장인 한철호. 그 인간은 온 갖 물품을 수집하는 것으로 유명하 니까요.”

한성은 둥그런 안경알을 쓸어 올리 며 말했다. 그의 말에 영식은 고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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를 갸웃거리며 되물었다.

“온갖 물품을 수집한다고요?”

“예. 레어 아이템부터 몬스터의 가 죽, 귀중한 보석 등 별의 별 물건을 수집하는 걸로 유명합니다.”

그의 말에 영식은 이해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한철호가 수집해둔 물품을 통으로 얻을 수 있 다면 길드를 되살리는데 큰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 분명했다.

“그런데 그놈 꼭 가치가 되는 물건 만 모으는 건 아니잖아? 듣기로는 블랙큐브처럼 쓸모없는 아이템도 엄 청나게 모았다던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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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나는 지나가는 듯한 말투로 그렇 게 말했다.

그녀의 말을 들은 영식의 눈이 반 짝였다. 그의 입꼬리가 비틀어 올라 갔다.

블랙큐브. 너무 가치가 낮아 역설 적으로 구하기가 힘든 그 물건을 손 에 넣을 수 있는 기회가 손에 쥐어 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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