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벨업 하는 식당-316화 (316/330)

# 316

Restaurant 315. 신선숙수의 증표

찰칵! 찰칵! 찰칵!

경합이 벌어진 이후 그 어느 때보다 격하게 기자들의 손이 움직였다.

이 무대의 주요 인물들 사이에 감추어진 비사 같은 것이 드러날 분위기가 연출되고 있으니 당연한 일.

어머니의 한을 갚기 위해 이 자리에 섰다 말하는 강지한.

그런 그를 노려보던 한남선이 씨근덕거리며 소리쳤다.

“네 어미는 신선정을 제 발로 나갔다. 나는 윤진이에게 아무 짓도 하지 않았는데, 무슨 한을 갚겠다는 것이야!”

“꼭 직접적으로 위해를 가해야만 가해자인 건 아닙니다.”

“그럼 말해봐라. 내가 무얼 어찌하였다고 이러는 것인지.”

“당신은 부정한 방법으로 신선숙수의 자리를 꿰찬 뒤 혀를 칼처럼 휘둘러 한돈선 대가님의 명예를 난자했습니다. 패권을 잡게 된 당신의 간악한 행위를 주변 사람들은 알면서도 동조할 수밖에 없었고, 결국 한돈선 대가님은 신선정에서 설 자리를 잃고 떨어져 나가야 했죠. 이처럼 칼바람이 몰아치는 신선정에서 제 어머니는 마음 편히 계시기 힘들었을 겁니다. 듣기로 한정신 명인께서 가장 실력으로 인정하는 사람은 다름 아닌 제 어머니, 설윤진이었다고 하더군요. 그러니 당신의 마수가 어머니 자신에게도 미치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었겠죠.”

강지한의 말이 이어질수록 한남선의 입가엔 비릿한 미소가 자리했다.

돌아가는 상황이 하나씩 이해되고 정리되다 보니 결국 별것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무슨 말인지 알겠다. 그러니까 넌 지금 오로지 추측 하나만으로 내가 네 어미를 신선정에서 스스로 나가게끔 만들었다 주장하는 것이지?”

“주장이 아니라 사실입니다.”

“그럼 입증해 보거라.”

벌써 30년도 더 된 시절의 일이다.

그런 사실을 입증할 방법은 없었다.

하지만 강지한은 애초에 그에게서 지난 시절의 진실 같은 걸 들을 생각이 없었다.

이렇게 나오리라는 건 진작에 예상 가능했다.

“다른 것을 묻겠습니다. 당신은 내 어머니의 재능이 그리도 무서웠습니까?”

“뭣이라?”

“어머니는 16년 전, 변해 버린 신선정의 뿌리를 바로 잡겠다며 한돈선 대가님과 손을 잡고 뜻을 일으키려 했습니다. 한데, 그런 마음을 먹은 지 얼마 되지 않아 큰 사고를 당해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저는 이게 우연이라 생각지 않습니다.”

갑작스러운 얘기에 초청된 명인들이 술렁였다.

기자들도 어마어마한 특종에 눈이 휘둥그레졌다.

강지한의 입에서 나온 발언이 사실이든 아니든 이토록 자극적인 내용들은 제법 팔리는 법이다.

여기저기서 플래시가 연달아 터져 나왔다.

그 빛을 고스란히 받고 있는 한남선의 얼굴은 마치 만들어 놓은 가면 같았다.

그가 멍청한 표정으로 강지한에게 물었다.

“윤진이가 죽었다는 거냐?”

“모르는 척하지 마시죠.”

“어쩌다가?”

“…….”

한남선의 뻔뻔한 연기에 강지한은 그냥 입을 닫았다.

한편 자라오면서 단 한 번도 이런 비사에 대해 듣지 못했던 한민국은 적잖은 충격을 받은 얼굴로 자신의 아버지만 바라보고 있었다.

‘대체 무엇이 진실입니까, 아버지.’

신성하게 치러져야 할 경합의 장이 흙탕물로 변했다.

그 중심에 선 한민국은 대체 무엇을 믿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확실한 건, 자신이 아는 아버지는 성공과 승리를 위해선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절대 사람의 목숨을 가지고 장난을 칠 정도로 추악한 이는 아니었다.

지금껏 그렇게 믿고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모르겠다.’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무엇이 거짓인지.

한남선이 강지한에게 향해 있던 시선을 한돈선에게 돌렸다.

“돈선이 너는. 너는 알고 있었어?”

한돈선의 두 눈에 증오가 가득 차올랐다.

그가 피를 토하듯 소리쳤다.

“대체 사람의 탈을 쓰고 어찌 그러시오!”

“나는 모르는 일이다!”

“작작하세요, 형님. 지한이를 제자로 삼고 그 아이의 어미가 누구이며 어떻게 눈을 감았는지 들었을 때, 나는 피눈물을 흘렸습니다! 윤진이는 형님이 신선숙수로서의 본분을 다하지 못해 스러져 가는 신선정을 다시 살리자고 날 찾아왔었어요! 내가 얼마든지 뜻을 함께하겠다 했을 때 희망 가득 담아 고개 끄덕이던 그 아이의 얼굴이 아직도 눈에 선합니다. 하지만 뜻을 행동으로 옮기고자 다시 만나기로 했던 날, 윤진이는 내 앞에 나타나지 않았지요. 그리고 15년이 지나서야 그날의 사고를 듣게 되었습니다. 그 아이의 유일한 핏줄인 지한이로부터 말입니다.”

한돈선의 눈에 핏발이 섰다.

성난 야수와도 같은 그 모습은 강지한은 물론, 그 자리에 있는 모든 이들에게 낯설었다.

여태 단 한 번도 보지 못했던 모습이었으니.

“난 지한이와 내가 이리 맺어진 게 우연이라 생각지 않습니다. 한 서린 윤진이의 혼이 이승에 남아 자신의 억울함을 풀어 달라는 뜻일 것이라 믿습니다.”

“번지수를 잘못 찾았다. 나는 아무 짓도 하지 않았어!”

두 사람은 한남선이 그랬다 하고, 한남선은 자신이 그러지 않았다고 했다.

이대로는 진실공방이 끝 없이 이어질 터.

강지한이 잔뜩 흥분해 있는 한돈선의 손을 살며시 잡았다.

눈물이 그렁그렁 맺힌 스승의 시선이 제자에게 향했다.

제자는 이제 되었다며 고개를 천천히 내저었다.

“후우우…….”

그에 한돈선이 크게 숨을 골랐다.

그 누구도 막을 수 없을 것 같았던 한돈선의 분노가 강지한으로 인해 진정되었다.

마음을 다스린 한돈선이 바로 화제를 돌렸다.

“형님은 절대 신선숙수의 재목이 아니었어요.”

“사람을 모함하려다 안 되니 이제 격을 깎아내리려는 것이야? 그러는 넌? 그럴 재목이 되었더냐?”

“저 또한 부족했겠지요. 그러나 경합에서 더러운 수작질을 부리지는 않았습니다. 형님은 재 식재료들에 손을 대지 않았습니까.”

“헛소리. 당시에도 내가 그랬다는 정황이나 증거는 나오지가 않았다.”

“그러나 돌아가신 아버님 또한 저와 같은 생각이었을 겁니다.”

“웃기지도 않는구나. 그랬다면 애초에 내게 신선숙수의 자리를 내주지 않았을 테지.”

“신선숙수의 자리는 내주었지요. 하지만 가장 중요한 신선숙수의 증표는 물려받지 못했잖습니까.”

“그것은 내가 신선숙수가 되자마자 아버지의 병환이 악화되어 그럴 여유가……!”

“아니요. 아버지께서 앓아누우신 것은 더 이후의 일입니다. 충분히 증표를 전할 시간이 있었지만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미루다가 갑자기 쓰러지셨지요. 이후로는 심신이 혼미한 상태로 몇 달을 앓다 눈을 감으셨고요.”

“…….”

그것은 한돈선의 말이 사실이었다.

말문이 막힌 한남선이 끙하며 앓는 소리를 냈다.

둘의 썰전이 이어지는 동안 기자와 명인들은 대체 신선숙수의 증표가 무엇인지 궁금해졌다.

거기에 대한 답이 드디어 한돈선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신선숙수의 증표. 그것은 바로 신선정의 각종 김치를 담그는 비법이었지요. 한데 아버지는 그것을 형님께 전수하지 않으셨습니다. 이는 곧, 아버지께서는 형님을 진정한 신선숙수로서 인정하지 않았다는 말이 아니겠습니까?”

“닥쳐라, 이놈!”

고함을 버럭 지른 한남선의 살가죽이 파르르 떨렸다.

한민국은 생전 처음 들어보는 얘기에 어안이 벙벙했다.

한남선은 지금껏 장남인 그에게 신선숙수의 증표가 김치의 비법이라는 걸 말해주지 않았다.

아니, 증표라는 것이 있는 줄도 몰랐다.

자신의 아버지를 바라보는 한민국의 눈동자가 싸늘하게 식어갔다.

그래도 자신을 낳아주고 길러준 아버지라 여기며 존경해 왔던 그였다.

한데 마음속 한편에 있던 무언가가 와르르 무너져 내리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한돈선의 말은 계속 이어졌다.

“하지만 형님과는 달리 지한이는 진정한 신선숙수로서의 증표를 가지고 있습니다. 경합에서도 이겼지요. 이보다 더 신선숙수에 어울리는 사람이 있습니까?”

“이이……!”

한남선이 이를 빠드득 갈았다.

속에서 열불이 치밀어 올랐지만 반박할 말이 없었다.

한돈선은 초대된 명인과 기자들을 향해 말했다.

“여러분께서도 모든 것을 똑똑히 보고 들으셨을 것입니다. 이 경합은 정당하게 치러졌고 강지한이 이겼습니다. 이제 그는 신선정의 제4대 신선숙수가 될 것이며 한남선은 기꺼운 마음으로 물러나야 합니다. 아울러 한남선이 그러했듯 앞으로 신선정이 나아갈 모든 방향은 강지한 신선숙수께서 정하게 될 것입니다.”

지금 한돈선의 목소리엔 큰 힘이 실릴 수 밖에 없었다.

분위기가 그렇게 흘러가고 있었다.

여론은 한돈선과 강지한을 응원했고, 한남선에게는 의혹의 시선을 보내고 있었다.

물론 강지한과 한돈선이 확실한 물증을 가지고 그를 몰아가는 것이 아닌지라 그저 의혹에서 끝날 뿐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 의혹 하나가 무서운 기세로 판도를 휘두르고 있었다.

무엇보다 한정신이 한남선에게 신선숙수의 증표를 물려주지 않은 것이 의혹을 크게 가중시켰다.

‘반드시 물려줘야 했던 김치의 비법을 왜 물려주지 않았을까?’라는 질문은 한돈선의 말을 타당하게 만들었다.

“일어나시지요.”

잠행단 중 한 명이 한남선에게 다가가 말했다.

한남선은 그를 죽일 듯 쏘아보았으나 곧 다른 아홉의 잠행단이 그를 둘러싸듯 다가와 압박을 가했다.

결국 한남선은 상처 입은 맹수처럼 으르렁거리면서도 어쩔 수 없이 자리를 내어줬다.

“한남선 대가님께 묻고 싶습니다.”

그때 강지한이 입을 열었다.

“우리 어머니일은 모른다고 칩시다. 그럼 날 해코지하려고 보냈던 괴한들에 대해서는 알고 계십니까?”

“……모르는 일이야.”

겨우 대답을 뱉어놓고 비틀거리며 주방을 나서는 한남선의 뒤를 한민국이 참담한 심정으로 따랐다.

열명의 잠행단은 강지한을 보고 서서 짧게 고개 숙여 새로운 신선숙수에 대한 예를 표했다.

강지한도 그들에게 고개 숙여 예를 받았다.

그 장면을 기자들이 카메라에 담았고, 명인들은 박수로 반겨주었다.

비로소 강지한이 신선정 제4대 신선숙수의 이름을 갖게 되었다.

하지만 한남선에 대한 복수의 칼날은 아직 전부 휘둘러진 게 아니었다.

* * *

주방에서 나온 한남선은 어떻게 해야 이 상황을 뒤집을 수 있을까 고민하며 신선정을 나섰다.

야차같은 그의 모습에 경합을 돕기 위해 출근한 직원들은 감히 말도 제대로 붙이지 못했다.

그 뒤를 따르던 한민국이 한남선의 팔을 붙잡아 세웠다.

“뭐야!”

한남선이 아들의 손을 뿌리쳤다.

“아버지. 제게 진실을 말해 주세요. 작은 아버지의 말씀이 사실입니까?”

“이제 너까지 날 의심하는 것이야?”

“저는 진실을 알고 싶을 뿐입니다.”

순간,

짝!

한민국의 왼쪽 뺨이 얼얼해지며 고개가 휙 돌아갔다.

한남선은 손을 휘두른 자세 그대로 호랑이처럼 소리쳤다.

“빌어먹을 새끼. 그동안 호의호식하며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게 누구 덕분인데 그따위 말을 지껄여!”

“…….”

한민국은 입을 다물었다.

서른 중반이 넘은 마당에 손찌검을 당한 것이 기분 나쁜 게 아니었다.

한남선은 말이 통하지 않는 위인임을 다시 한 번 깨달은 것뿐이다.

매몰차게 등을 돌린 한남선이 성큼성큼 걸어 신선정을 나섰다.

그때였다.

정장을 입은 노신사가 그의 앞을 가로막고서 빙그레 미소 지으며 말했다.

“얼굴이 죽상인 걸 보니 경합이 원하는 모양으로 돌아가지 않았나 보구만.”

“지, 진 어르신.”

난데없이 등장한 진상명을 본 한남선이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잘 지냈는가?”

“어쩐 일로 절 찾아오셨습니까? 약속대로 전 경합이 치러지는 날까지 아무것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랬지. 나 역시 그냥 인사만 하러 온 걸세. 아……. 그런데 말이야. 자네가 열심히 경합을 관전하고 있을 때 인터넷에서 한바탕 난리가 났던데?”

“난리라니요?”

“낸들 아나. 직접 확인해 보게. 그럼 난 만나볼 사람이 있어서.”

진상명이 껄껄 웃으며 경호원 두 명과 함께 신선정의 건물 안으로 들어섰다.

불안해진 한남선은 후다닥 스마트폰을 꺼내 꺼두었던 전원을 켰다.

그러자마자 갑자기 부재중에 온 메시지가 마구잡이로 쏟아졌다.

‘뭐야 이게 다?’

그는 메시지를 확인하기에 앞서 인터넷부터 접속했다.

그리고 가장 상단에 뜨는 뉴스기사에 하마터면 까무러칠 뻔했다.

-신선정의 제3대 신선숙수 한남선, 몇 달 전 강지한 후보를 살인청부 해.(종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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