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벨업 하는 식당-317화 (317/330)

# 317

Restaurant 316. 아직 끝나지 않은 일

“강 선생님. 경합에서 이기신 걸 축하드립니다.”

진상명의 말이었다.

그는 당당히 신선정의 주방까지 들어와 축하의 말을 건넸다.

그런 진상명의 행동을 아무도 막지 못했다.

이제 신선정을 책임져 나가야 할 사람은 한남선이 아닌 강지한이었다.

한남선은 신선정에서 오래도록 전해져 내려온 규칙에 따라 신선정에 관련된 모든 권리들을 강지한에게 양도해야 한다.

괜한 강짜를 부리며 권리양도를 차일피일 미루려 하거나, 어물쩡 넘어가려하는 건 용서되지 않는다.

신선정의 중책들 중엔 한남선의 패망을 꿈꾸는 이들이 상당히 많았다.

그들이 기억하는 옛 신선정의 모습을 처참히 짓밟아 버리는 한남선의 폭정이 그들은 달갑지 않았다.

다만 그 장남 한민국은 아버지와 다른 성정인 만큼 어서 정권교체가 일어나기만을 바랐다.

물론 그럼에도 걱정은 있었다.

한남선이 아비란 명목으로 한민국을 뒤에서 조종이라도 하면 어쩌나 하는 점이었다.

마음이 약한 한민국은 휘둘릴 공산이 컸다.

한데 생각지도 못했던 제삼자가 새로운 신선숙수의 자리를 차지하고 앉았다.

바로 강지한이었다.

그에 대한 세간의 소문은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이미지 메이킹을 의심 안 할 수는 없지만 딱히 나쁜 이야기는 들려오지 않았다.

아울러 실제로 그를 만나본 사람들의 말에 의하면 성정이 곧고 바른 것을 바로 알 수 있다고 했다.

그런 이가 새로운 신선숙수로서 오게 되었으니 신선정의 정도(正度)를 바라던 이들은 은근한 기대감을 품을 수 있었다.

때문에 신선정의 모든 권한이 강지한에게로 옮겨지는 건 일도 아니었다.

아울러 강지한의 뒤엔 진상명이 있지 않은가?

한남선이 못된 수라도 쓰게 되면 이번에는 얼굴이 구겨지는 정도로는 끝나지 않을 터.

그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그런데 한남선은 애초에 어떤 수작을 벌일 엄두조차 못 낼 처지에 놓였다.

경합이 이루어지는 동안 몇 달 전 의원직을 내려놓고 수감 생활 중인 곽진묵이 양심선언을 했기 때문.

곽진묵은 한남선에게 뒷돈을 받고 조폭들에게 강지한의 청부살인을 의뢰했었다.

한데 진상명에게 모두 본인이 한 짓이라 자백하라는 강요를 받았다.

이유는 당시 강지한이 진상명에게 했던 부탁 때문이었다.

“어르신, 염치없지만 내년 봄, 경합이 다시 벌어질 때까지 신선정에서 오늘 같은 짓을 저지르지 못하도록 힘써 주실 수 있을까요?”

그 바람에 한남선은 법의 철퇴를 피해갈 수 있었다.

당시 강지한의 부탁을 듣고 난 진상명은 이렇게 대답했었다.

“한씨 일가를 혼내 달라고 할 줄 알았는데, 바람이 소박하시군요. 하지만 그만큼 강 선생님의 그릇이 크다는 것을 한 번 더 느꼈습니다.”

그러나 진상명의 짐작과 달리 강지한은 한남선을 그냥 둘 생각이 없었다.

강지한은 한남선이 죗값을 치르길 바라지 않는다 말한 적이 없었다.

경합이 치러지는 날까지만 일을 미뤄놓을 셈이었다.

이러한 뜻을 얼마 후, 진상명에게 다시 전했다.

한남선을 직접 만나보고 나니 성정이 극악무도한 지라 그대로 두기 싫었던 진상명이었다.

때문에 강지한의 말이 대단히 반가웠다.

결국 경합을 치른 날, 강지한이 바라던 일은 현실이 되었다.

진상명은 수감중인 곽진묵을 찾아가 양심선언하라 일렀다. 그리하면 아는 변호사를 붙여서 어떻게든 형량을 줄여줄 것이라 약조했다.

혼자 전부 덤티기 쓸 뻔했던 곽진묵의 입장에서는 나쁠 게 없었다.

그는 바로 진상명의 손을 잡았고 경합이 열리는 오늘, 진상명이 만들어 준 무대에서 양심선언을 했다.

이 모든 일을 꾸민 사람은 자신이 아닌 한남선이라고.

아울러 폭행 사주였던 것을 청부 살인으로 부풀렸다.

거기까지는 진상명이 지시한 게 아니었다. 한남선의 말을 들었다가 일이 꼬이고만 스스로의 앙갚음이었다.

상황을 마무리 지은 진상명은 신선정의 주방으로 찾아와 강지한을 축하했다.

강지한 또한 그를 반갑게 맞아주었다.

두 사람의 든든한 연대를 보며 한돈선이 흐뭇한 미소를 머금었다. 그런 한돈선에게 진상명의 시선이 옮겨졌다.

그에 한돈선이 먼저 고개를 숙여 인사 건넸다.

“지한이에게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한돈선이라 합니다.”

“반갑습니다, 대가님. 저 또한 강 선생님께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하하하.”

진상명이 시원시원하게 말하며 다가가 악수를 청했다.

한돈선은 그 손을 잡아 가볍게 흔들었다.

잠시 두 사람이 말없이 시선을 교환했다.

자연스레 강지한의 신경도 그런 둘에게 집중되었다.

한데 그들 사이에 미묘한 이상기류가 흐르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손을 놓은 둘은 별말 없이 떨어졌다.

곧 한돈선에게 다른 명인들이 다가와 축하의 말을 건넸다.

대화 상대를 잃어버린 진상명을 강지한이 챙겼다.

“일부러 걸음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어르신.”

“제가 좋아서 온 것인데, 어찌 그러십니까. 하하. 아, 그리고 일전에 말씀 주셨던 일은 잘 처리해 놓았습니다. 오늘부터 한남선은 정신없이 바빠질 겁니다.”

“매번 감사드립니다.”

진상명이 고개를 저었다.

“아버님 돌아가시기 전에 최고의 효도를 할 수 있게 도와주신 선생님의 은혜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이미 차고 넘치게 보답 받았다고 생각해요. 앞으로는 어르신께 절대로 힘든 일 부탁하지 않을 겁니다.”

“서운한 말이네요. 늙어가는 처지에는 벗 하나가 아쉬운 일인데요.”

“술벗은 얼마든지 되어드릴 수 있습니다, 어르신.”

“허허허. 서운한 마음이 싹 사라지는군요. 그럼…… 저는 이만 가보도록 하겠습니다.”

“벌써 가시게요?”

“얼굴 보고 축하드리고자 온 겁니다. 목적을 달성했으니 가봐야지요. 마중 나오지 않으셔도 됩니다. 무대의 주인공이 사라지면 되겠습니까? 하하하.”

진상명은 그리 말하고서 조용히 주방을 빠져나갔다. 신기한 것은 진상명의 등장에도 기자들이 셔터를 누르지 않았다는 사실이었다.

기자들은 알고 있었다.

어차피 진상명의 사진은 찍어봤자 싣지 못한다는 것을.

조용히 살고 싶다며 정계를 은퇴한 양반이다.

그런 그의 뜻을 거스르면서까지 사진을 게재할 만큼 간이 크거나, 진상명에 대해 잘 모르는 햇병아리 기자는 이곳에 없었다.

그가 떠나간 뒤 다시 카메라가 불을 뿜어댔다.

강지한은 한돈선과 함께 명인들의 축하인사를 받느라 바빴다.

그러는 사이 잠행단은 바람처럼 사라졌다.

이제 신선정의 주인이 바뀌었다.

* * *

신선정의 주차장에서 강지한과 한돈선은 작별 인사를 나누었다.

“그럼 들어가 보겠습니다.”

“그래. 오늘 여러모로 신경 쓰느라 힘들었을 텐데 운전 조심하려무나.”

“도착하면 연락드릴게요.”

“알겠다. 한데 지한아.”

“네?”

“진상명이라는 분에 대해 깊이 잘 알고 있는 것이니?”

강지한은 가만히 생각해 봤다.

진상명이 자신을 은인으로 생각하여 여러모로 도움을 주고 있긴 하지만 개인적인 얘기들은 나눠본 적이 없었다.

“아니요.”

강지한의 대답에 한돈선이 조금 어두운 낯빛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구나.”

“왜 그러시는지……?”

“그 분은…… 직접 마주해보니 네게 듣던 것과는 느낌이 좀 다르더구나.”

“그렇던가요?”

“아, 물론 물심양면으로 널 도와준 것은 나 역시도 매우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단다. 하지만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르는 법이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라는 걸 상기하렴. 누군가와 깊은 친분을 유지하려면 마음부터 열어서는 안 된단다.”

상대방에 대해 먼저 잘 파악한 이후 마음으로 대하라는 말이었다.

한돈선이 자신을 걱정해서 해준 말임을 잘 아는 강지한은 이를 새겨들었다.

“그러도록 할게요.”

“그래. 사람을 첫인상만으로 판단해서는 안 되는 건데…… 노파심에 괜한 말을 한 건 아닌지 모르겠구나.”

“대가님께서 어떤 마음으로 하신 말인지 알고 있으니 그런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그럼 들어가세요.”

한돈선은 강지한의 배웅을 받으며 자신의 차에 올라 주차장을 나섰다.

“후우.”

비로소 한숨 돌린 강지한도 본인의 차를 몰아 춘천으로 향했다.

차창 밖으로 빠르게 지나가는 풍경들이 마치 요리를 시작하고 쉼 없이 달려온 자신의 시간처럼 느껴졌다.

3년이 어떻게 흘러간 것인가 싶었다.

요리를 시작하면서부터 여러 가지 일을 겪었고, 그로 인해 어머니의 억울한 사연 또한 알게 되었다.

한남선은 신선정을 잃었다. 그리고 자신을 해하려 했던 것에 대해 법의 철퇴를 맞게 될 것이다.

‘그럼…… 된 건가?’

다 끝났다고 생각했는데 이상하게 마음이 개운하지 않았다.

원인을 짚어보던 강지한의 머릿속에 문득 하경춘의 말이 떠올랐다.

“그 사람…… 오른쪽 팔. 오른쪽 팔에 동그랗고 푸르스름한 반점이 있었어요.”

그래, 이거였다.

하경춘에게 누군가를 증오할 부적을 만들어 달라 부탁했던 사람.

하경춘은 그 증오의 대상이 틀림없이 강지한의 부모라고 말했다.

강지한은 아직 그 푸르스름한 반점을 가진 사람이 누구인지 찾아내지 못했다.

정황상으로 봐서는 한남선이 분명했다.

경합장에서는 아무것도 모르는 척했으나, 필시 그가 무슨 수작을 부린 것이 맞을 터였다.

‘한남선의 팔을 확인해 봐야겠어.’

* * *

집으로 돌아온 강지한은 예소린에게 오늘 하루 있었던 일들을 모두 얘기해 주었다.

예소린은 큰일을 치러낸 강지한을 품에 꼭 안고서 등을 쓸어내렸다.

“고생했어, 지한 씨.”

“고마워.”

“근데 신선숙수 자리는 어떻게 할 거야?”

전부터 궁금했던 일이었다.

하지만 강지한은 그에 대해 얘기해 주지 않았었다.

아직 자신이 신선숙수가 된 것도 아닌데 괜한 설레발을 떨기 싫었기 때문이다.

오늘은 달랐다.

이제 그는 신선숙수가 되었고 계획했던 것을 실행에 옮기는 것이 가능했다.

강지한은 예소린이 전부터 듣고 싶어 했던 대답을 들려주었다.

“원래 거기 앉았어야 할 주인에게 돌려줄 거야.”

“한돈선 대가님?”

“응. 거긴 내 자리가 아니야. 소린 씨도 알잖아.”

애초부터 강지한은 이럴 생각이었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한남선의 몰락이었다.

그를 무너뜨림으로써 돌아가신 부모님과 세상에 빛도 보지 못하고 꺼져버린 동생의 넋을 달래주고 싶었다.

신선숙수의 자리는 그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예소린은 그런 강지한의 의견에 적극 동조했다.

“잘 생각했어, 지한 씨. 그런 거 쥐고 있어봤자 머리만 더 아파. 그런데 그 자리를 양도하는 게 가능해?”

“양도할 대상이 그만한 자질을 가진 사람인지 확인 절차가 필요하겠지.”

“그럼 문제없겠네.”

“그럴 거야. 누구도 반대하지 않을 것 같아.”

“복잡하고 어려운 일들 다 해결했네, 지한 씨. 근데 그다지 개운해 보이지 않는 건 내 기분 탓?”

“아니, 맞아. 아직 해결해야 할 일이 더 남았어.”

* * *

예소린이 잠들고 난 뒤, 강지한은 인터넷에 한남선의 이름을 검색했다.

그러자 그와 관련된 기사와 사진, 동영상들이 무수히 많이 나타났다.

그것들을 하나하나 살펴보던 강지한은 낮은 한숨을 내쉬었다.

‘오른쪽 팔에 반점이 없어.’

한남선은 하경춘에게서 부적을 사간 사람이 아니었다.

그렇다는 건…… 정말 그가 부모님의 죽음과 관련이 없다는 말인가?

머릿속이 복잡했다.

그날 밤, 강지한은 심신이 지쳤음에도 쉽게 잠들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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