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91
Restaurant 290. 1차 심사 합격
앤드류와 에이사는 ‘설탕이 온다’의 제작사와 감독 김상수까지 만나서 리메이크에 대해 구체적인 얘기를 나눈 뒤 돌아갔다.
조만간 앤드류의 차기작을 지원할 제작회사 측에서 설탕이 온다의 제작사와 합의하에 계약이 체결될 예정이었다.
그렇게 한 가지 큰일이 또 끝나고 보름이 더 지나 11월의 중순 무렵이 됐다.
강지한은 예정대로 육수와 양념장을 전문으로 만들어 지한 푸드 계열 식당에 납품해 주는 공장을 만들었다.
납품가는 기존 식당들이 자체적으로 만들어 내며 들었던 재료비보다 조금 더 쌌다.
그러니 전국의 지한 푸드 프렌차이즈 점주들은 절로 콧노래가 나왔다.
시간도 아끼고 돈도 아끼니 이것이야말로 일석이조가 아니겠는가.
아울러 강지한은 이 육수와 양념장을 일반 소비자들에게 팔 준비도 하는 중이었다.
해서 이미 ‘지한 소스’라는 상호명까지 미리 파놓았다.
인터넷에서 육수와 양념장은 ‘소스’라는 카테고리에서 통합적으로 판매되고 있는 것을 보고 이렇게 결정한 것.
판매 홈페이지는 따로 만들지 않고 ‘지한김치몰’을 확장하기로 했다.
지한 김치는 이제 명실상부 대한민국 판매 1위의 김치가 되었다.
그런 만큼 지한김치몰의 카테고리에 ‘소스’를 추가해서 팔면 알아서 광고가 될 터.
지한 푸드는 또 한 번 성장하고 있었다.
* * *
허이숙은 구일만과 이혼소송에 들어갔다.
이혼소송 과정은 소장 접수부터 시작해서 답변서 제출, 변론 기일, 조사 철자, 조정위원회 회부, 또다시 변론 기일, 판결 선고, 이혼 선고에 따라 최소 6개월에서 1년의 기간을 필요로 한다.
때문에 힘들고 어려운 싸움이 될 것이었다.
강지한은 그런 허이숙을 물심양면 도와주고 있었다. 덕분에 허이숙도 힘을 내서 소송에 임했다.
그러면서도 공장일에 소홀하지도 않았다.
그녀는 지한 식당의 주방에서 그랬던 것처럼 누구보다 열심히 일했고, 모든 이들에게 친절했다.
그 바람에 강지한이 예상했던 것보다 더욱 빨리 공장의 일이 정상궤도에 들어갈 수 있었다.
* * *
지한 식당 분점에 드디어 믿음직한 부주방장이 새로 들어오게 되었다.
덕분에 강지한은 다시 자유로운 일상을 보낼 수 있게 됐다.
물론 자유롭기만 할 뿐 한가한 건 아니었다.
그는 하루 대부분의 시간을 요리에 푹 빠져 사는 남자였다.
11월의 남은 보름 동안을 강지한은 전국 팔도를 돌아다니며 숨은 맛집들을 찾아내는 데 집중했다.
그런 맛집 유랑은 강지한의 견문을 넓혀주기에 더없이 좋았다.
물론 강지한이 여행을 떠나는 동안 설탕이와 소금이, 그리고 강아지들의 보호자는 따로 만들어둔 상황.
바로 예소린이었다.
강지한이 집을 비운 동안 그녀는 그곳을 자신의 집처럼 관리하며 살았다.
다른 강아지들도 모두 이곳으로 데려와 생활했다.
예경천도 그것을 딱히 반대하지 않았다.
이미 강지한을 사윗감으로 생각해서 결혼 날짜를 꼽고 있는 그였다.
되도록 내년 꽃피는 춘삼월에 두 사람이 결혼을 했으면 싶었다.
게다가 어차피 빈집이니 예소린이 가서 지낸다 한들 무슨 일이 있을까?
……뭐, 이제는 무슨 일이 생긴다고 해도 허허 웃으며 넘어가야 할 판이긴 하지만.
아무튼 예소린의 입장에서는 탁 트인 마당도 있고 집안 공간도 넓어서 강아지들을 데리고 있기에는 여기가 더 좋았다.
강아지들 또한 마음껏 뛰어놀 마당이 있으니 맘에 드는 눈치였다.
무엇보다 요즘 자주 볼 수 없었던 설탕이와 함께하는 것이 녀석들에겐 큰 행복이었다.
11월의 마지막 날.
예소린은 마당에서 뛰어노는 강아지들을 구경하며 강지한과 통화를 하고 있었다.
“그래서 지금 어디라고?”
-전라도 여수.
“여수까지 갔어? 좋겠다~ 너무 낭만 있지, 거기?”
-응, 정겨워. 무엇보다 음식들이 맛있어서 좋아. 지금은 간장게장 먹으러 왔어.
“맞아. 그 지역 음식들이 내 입에도 잘 맞아. 간장게장 진짜 맛있겠다. 춘천 복귀는 언제쯤이야?”
-일주일 안으로 돌아갈게. 보고 싶어.
“나도 지한 씨 보…….”
-아, 음식 나왔다. 이따 연락할게.
뚝.
예소린은 통화가 끊긴 스마트폰을 어이없이 바라봤다.
“진짜 이 사람은 가만 보면 나보다 음식이 더 먼저인 것 같다니까?”
혼자 툴툴거리던 예소린이 피식 웃었다.
“그게 매력이긴 하지만.”
* * *
12월 초.
한남선의 앞으로 하늘색 봉투 한 장이 전달되었다.
겉면에는 ‘신선정 제3대 신선숙수 한남선 앞’이라는 글씨만 적혀 있었다. 보낸 이의 정보는 없었다.
한남선은 1년 전 이것과 똑같은 봉투를 받은 기억이 있었다.
바로 잠행단에게서 온 봉투였다.
편지를 거칠게 뜯어낸 한남선이 서류를 꺼내 읽었다.
-신선정 제4대 신선숙수 후계자 경합 외부인 후보 강지한. 그의 식당을 잠행단 10인이 1년간 10번의 방문으로 총점을 통계 낸 바. 95.3점으로 1차 합격했음을 통보함.
“1차 시험에서 통과하셨다?”
그것도 상당히 높은 성적이었다.
하지만 한남선은 그것이 딱히 기분 나쁘지 않았다.
강지한이 예상외로 선방을 한 것은 인정하지만 그게 결국 제 발목을 잡을 것이기 때문이다.
“2차 시험에서 십중팔구 떨어지겠군.”
물론 만약이라는 것 또한 존재한다.
강지한이 천운으로 2차 시험에서 통과한다고 해도 한민국에게는 이길 수가 없었다.
이래도 저래도 한남선은 좋았다.
그가 지금은 철천지원수가 된 아우의 얼굴을 떠올리며 혼잣말을 뱉었다.
“돈선아, 아무리 발악해도 네 앞에 펼쳐질 건 지옥도밖에 없을 것이다.”
* * *
12월 중순.
강지한은 지한 일식의 오픈에 여념이 없었다.
적당한 건물은 강림대 후문 근처에 이미 계약을 해놓았다.
이번 매물도 당연히 예경천을 통해 계약한 곳이었다.
이제 사위가 될 사람이니 예경천은 전보다 더 각별히 신경 써서 아주 좋은 매물을 알아봐 주었다.
강지한은 50평 면적의 2층 건물을 매입해서 리모델링 공사부터 들어갔다.
이미 건물 외관에는 지한 일식이라는 간판이 달려 있었다.
리모델링 공사에 들어가기 전에 간판부터 달아야 한다는 것이 강지한의 지론이었다.
그래야 사람들이 오다가다 보면서 절로 홍보가 되기 때문.
이미 일식집의 컨셉과 메뉴는 전부 정해놓은 상황.
초밥과 회는 기본이고 튀김요리와 국물요리, 볶음 요리까지 전부 준비해 놓았다.
모든 메뉴를 단품으로 즐길 수도 있지만 코스 메뉴로 즐기는 것도 가능했다.
일정식인 만큼 코스 메뉴로 즐기면 아무래도 가격은 좀 나가는 편이었다.
그래도 식재료의 질과 맛을 따지면 크게 무리가 가는 정도는 아니었다.
정말 싼 코스메뉴는 인당 1만 5천 원짜리도 있었다.
그리고 가장 비싼 코스메뉴는 10만 원을 호가했다.
그 사이에 2만 원, 3만 5천 원, 5만 원, 7만 원의 코스 메뉴들이 끼어 있었다.
각 코스의 가격에 따라 나오는 음식의 가짓수와 서비스되는 회, 해산물, 초밥의 종류가 달라졌다.
한데 코스 메뉴 자체가 부담스러운 손님들을 위해 점심 한정으로 저렴한 메뉴도 서비스하고 있었다.
알탕이나 알밥, 우동, 튀김덮밥, 회덮밥 등등의 단품 메뉴들은 전부 6,000원이었다.
당연한 얘기지만 가격이 저렴하다고 맛까지 저렴하진 않았다.
그것은 강지한 스스로 용납할 수 없었다.
단품 음식을 접하는 손님들은 6,000원의 행복이라는 것이 무언지 느끼게 될 것이라 확신했다.
강지한은 리모델링이 삼 분의 일쯤 끝난 식당 안에 들어가서 완성된 이후의 그림을 이미지 해보고 있었다.
벌써부터 주방에서 신나게 요리를 만들 생각에 기분이 들떴다.
‘그건 그렇고 지한 소스를 만들길 잘했어.’
허이숙이 관리하고 있는 지한 소스 공장은 아주 원활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춘천의 지한 푸드 산하 식당들은 물론 전국에 퍼져 있는 지한 분식, 지한 만두 프렌차이즈점에 육수와 양념장을 납품하는 일이 단 한 번 늦어진 적 없었다.
지한 만두에서는 두 달 전부터 어묵을 함께 팔고 있어서 육수가 필요했다.
그리고 만두소도 지한 소스에서 만드는 걸 받기 시작했다. 때문에 이제는 만두소를 직접 만들지 않고 빚어서 찌기만 하면 끝나는 식이었다.
프렌차이즈 점주들은 편해져서 좋았고, 강지한의 입장에서는 전국의 모든 프렌차이즈에서 거의 동일한 만두 맛을 낼 수 있으니 좋았다.
그야말로 일석이조였다.
강지한은 이미 일식당에서 필요한 양념장과 육수들의 배합 레시피를 허이숙에게 넘겨준 상황이었다.
그녀는 언제든 강지한의 오픈에 맞춰 그것들을 공급할 수 있도록 정신을 바짝 차리고 있었다.
이제 일식당의 주방에서 함께 일할 메인급 요리사 둘 정도만 구하면 모든 것이 완벽했다.
늘 그렇지만 좋은 실력을 갖춘 주방 직원을 구하는 일이 가장 힘들었다.
그동안 지한 푸드 홈페이지에 공고된 구인공고글을 보고 많은 이들이 면접을 보러 왔었다.
하지만 강지한의 눈에 차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직접 발 벗고 찾아봐야 하려나.’
그런 생각을 하며 건물 내부를 마지막으로 둘러본 강지한이 밖으로 나왔다.
“역시 안 나타나네.”
일식당에는 새로운 스테이지임을 알리는 메시지가 나타나지 않았다.
정말 중식당이 마지막 스테이지인 모양.
그곳의 목표는 지한 푸드 계열의 식당 중 어느 곳이든 미슐랭 스타를 받을 것.
지한 객잔을 오픈한 지 반년 정도가 흘러가는 데도 아직 완수하지 못할 정도로 어려운 목표였다.
‘열심히 하다 보면 언젠가는 되겠지.’
* * *
베트남의 하노이.
이 도시엔 미슐랭 원스타를 자랑하는 식당이 있었다.
각종 베트남 전통 음식들을 파는 레스토랑이었는데, 5년 전 미슐랭 스타를 받은 이후 점점 입소문이 퍼지며 지금은 거의 하노이의 명소처럼 자리하는 곳이었다.
그 식당의 2인용 식탁에 프랑스 남성이 홀로 앉아 식사를 즐기고 있었다.
그는 미슐랭가이드 인스펙터 장루이 바로였다.
그가 오늘 이 식당을 찾은 이유는 ‘재검증’ 때문이었다.
1년 전부터 이 식당의 음식들에 대한 손님들의 평가가 영 좋지 않았다.
그래서 장루이는 무슨 문제가 있는 건지 직접 알아보기 위해 찾아온 것.
물론 재검증은 미슐랭가이드에서 공식적으로 내려온 업무가 아니었다.
미슐랭 스타가 회수되는 경우는 셰프가 은퇴하거나 레스토랑의 메뉴가 바뀌었을 때뿐이다.
이번 방문은 오로지 장루이의 개인적 호기심에 의한 것이었다.
음식을 먹어본 장루이는 인터넷에 올라온 사람들의 평가가 잘못되었음을 알았다.
맛은 상당히 괜찮았다.
미슐랭가이드의 별 하나를 충분히 품을 만했다.
1년 6개월 전, 하노이에 비슷한 컨셉을 가진 새로운 레스토랑이 들어섰다는 정보를 알고 있는 그였다.
아무래도 그 레스토랑의 대표가 장난을 친 것 같았다.
물론 이것도 장루이의 생각일 뿐이었다.
확실한 건 아니었다.
‘하지만 음식 맛이 확실하면 그 어떤 유언비어에도 손님들은 흔들리지 않는 법이지.’
지금 레스토랑에 빈 테이블이 거의 보이지 않을 만큼 가득 찬 것이 그 증거였다.
비로소 안심한 장루이는 여유롭게 식사를 즐겼다.
그렇다 보니 불현듯 한참 글로벌 명성을 떨쳐나가고 있는 지한 푸드의 식당들이 떠올랐다.
장루이는 강지한의 인튜브 채널을 애청하고 있었다.
그는 자신에게 그 식당의 음식들을 평가할 기회가 오기를 간절히 바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