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벨업 하는 식당-292화 (292/330)

# 292

Restaurant 291. 광어 숙성회

춘천에는 반년 전부터 꾸준히 인기몰이를 하는 칼국수 집이 있었다.

바로 후평동 공단오거리에 위치해 있는 공단솥칼국수였다.

이 칼국수집의 사장님 김정훈은 면을 족타로 직접 반죽한다. 그래서 면의 쫄깃함이 다른 칼국수집과 확연히 차이 날 정도로 쫄깃하고 탄력 있었다.

아울러 반죽에 흑임자를 섞어 고소함도 살렸다.

그렇다면 국물은 어떨까?

김정훈은 칼국수에 들어가는 해산물은 무조건 싱싱한 생물을 고집했다.

따로 마련한 수족관에 해산물을 받아 넣고 주문이 들어오면 바로 꺼내 손질해 내놓았다.

게다가 천연조미료를 사용했고 베이스 육수를 낼 때 한약재를 약간 넣어 해산물에서 조금이라도 풍길 수 있는 비린내를 잡았다.

이 집의 인기메뉴는 단연 짬뽕 칼국수였다.

점박이꽃게, 홍합, 새우, 오징어 등등의 해산물이 듬뿍 들어간 얼큰하고 진한 국물이 한 번 맛보면 다음에 무조건 또 걸음을 하게 만드는 매력이 있었다.

그래서 강지한도 예소린과 공단솥칼국수를 자주 방문하게 됐다.

두 사람은 한 달에 한 번 정도는 꼭 여기에 와서 짬뽕칼국수를 먹었다.

당연한 얘기지만 둘 다 대식가라 2인분으로는 성이 차지 않으니 무조건 6인분을 주문했다.

후루룩! 후룩!

냠. 꿀꺽!

두 사람이 정신을 놓고 짬뽕칼국수를 흡입했다.

진한 국물을 가득 품은 쫄깃한 면발은 입안에서 엄청난 탄력을 자랑하며 씹혔다.

잘게 자른 면을 삼키기 전, 얼큰한 국물을 들이켜서 같이 목으로 넘기면 그 맛이 배가됐다.

“크. 진짜 국물 최고다.”

“맞아.”

짬뽕칼국수의 국물은 그야말로 진국이었다.

그 맛이 지한 객잔에서 파는 짬뽕 국물과 비슷한 면이 있었다.

하지만 지한 객잔의 짬뽕처럼 고기의 풍미보다 해산물의 풍미가 더 강했다.

그럼에도 이토록 진하고 깊은 맛을 낼 수 있다는 것이 대단했다.

어지간한 노력이 없이는 힘든 일이었다.

그만큼 김정훈이 공을 들이고 있다는 얘기였다.

“난 여기 게가 젤 좋더라.”

예소린이 점박이꽃게의 살을 발라 먹으며 말했다.

“사장님이 싱싱한 놈들만 받아써서 그래.”

꽃게는 조금만 관리를 잘못하거나 오래되도 살에서 쿰쿰한 냄새가 나게 마련이다.

한데 이 집 꽃게에서는 한 번도 그런 냄새를 맡아본 적이 없었다.

홍합 또한 늘 신선한 맛이 가득했다.

다른 해산물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나저나 진짜 대단하긴 해.’

강지한의 눈에 짬뽕칼국수의 요리 레벨이 보였다.

무려 5였다.

그의 시선이 이번에는 옆 테이블의 다른 메뉴를 주문한 손님에게 향했다.

맑은 육수로 즐기는 바지락칼국수와 해산물이 가득 담긴 해물칼국수는 레벨 4였다.

그 외에 다른 메뉴들도 전부 그 이상을 넘어서지는 못하는 수준이었다.

즉 짬뽕칼국수를 유독 잘한다는 얘기다.

하나 그마저도 못하는 식당들이 수두룩한 마당이니 김정훈의 실력은 알아줘야 했다.

“요건 서비스!”

김정훈이 싱싱한 낙지 두 마리가 담긴 접시를 건네주었다.

“와~ 사장님 감사해요.”

예소린이 활짝 웃으며 좋아했다.

“저야말로 자주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아~ 하하하!”

김정훈은 웃음소리가 참 특이한 사람이었다.

웃을 때 깔깔대거나 하하, 호호 웃는 게 아니라 스타카토를 찍은 것처럼 딱딱 끊어 웃었다.

강지한은 그런 김정훈의 웃음이 듣기 좋았다.

“사장님. 서비스 잘 먹을게요.”

“에이 뭘 이런 걸 가지고. 제가 지한 식당 갔을 때도 서비스 많이 챙겨주셨잖아요. 아~ 하하하!”

기본적으로 지한 식당과 공단솥칼국수는 쉬는 날이 같다.

그래서 김정훈이 개인적 사정으로 문을 닫는 평일이 아니면 지한 식당에 방문하기가 힘들었다.

그나마 강지한은 1년 전쯤부터 개인 시간이 많이 생겨서 칼국수집에 자주 오는 것이 가능했다.

“다음에 시간 되면 술 한잔해요, 대표님.”

김정훈이 술 제안을 했다.

사실 두 사람이 알게 된 지는 제법 오래됐다.

강지한이 손님의 입장으로 공단솥칼국수를 방문했던 건 3년 전부터다.

그리고 둘이 정식으로 인사를 나눈 건 작년 겨울, 춘천시 식문화 알림이 요리대회 예선에서였다.

사실 그 대회는 천명옥이 변노민 의원과 손을 잡고 강지한의 날개를 꺾기 위해 마련한 것이었다.

한데 강지한은 두 사람의 계략을 비웃으며 당당히 1위를 차지했다.

당시 김정훈은 3위를 차지했다.

그만큼 실력이 대단한 요리사였다.

해서 강지한은 그를 늘 눈여겨보고 있었다.

언젠가 기회가 되면 더 친해지고 싶다고 생각했던 와중이라 그의 술 제안이 반가웠다.

“좋죠. 말 나온 김에 날을 잡을까요?”

“그러면 이번 주말 어떠십니까? 일요일에 우리 식당에서 한잔하시죠. 제가 대접해 드리고 싶은 안주가 있습니다.”

일요일이면 사흘 후였다.

강지한이 망설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요.”

“소린 씨도 같이 오시죠.”

“그래도 돼요?”

“애인이 보는 앞에서 술자리 제안을 했는데 대표님만 오라고 하면 이상하잖아요.”

“호호호. 알았어요. 같이 찾아뵐게요. 초대 감사해요.”

“별말씀을. 그럼 일요일 날 저녁 여섯 시에 보는 걸로 할게요. 아~ 하하하!”

김정훈이 특유의 스타카토 웃음소리를 남기고서 주방으로 들어갔다.

예소린이 낙지를 끓는 육수에 투하하며 말했다.

“지한 씨, 좋겠네? 여기 사장님이랑 친해지고 싶어 했잖아.”

“응. 좋지.”

“사장님이 무슨 안주를 만들어주시려나? 기대된다.”

“실력 있는 분이시니까 뭘 만들어도 맛있을 거야.”

두 사람은 일요일을 기대하며 계속 식사를 이어나갔다.

* * *

일요일.

강지한은 갈수록 시간의 흐름이 빠르게만 느껴졌다.

본래 무언가에 열중하는 사람의 시간은 늘 짧게 다가오게 마련이다.

그만큼 강지한이 요리에 더더욱 푹 빠져들고 있다는 뜻이었다.

물론 자신의 요리 실력을 발전시키는 것에만 몰두하고 있을 수는 없었다.

강지한은 지한 푸드의 대표인 만큼 여러 가지 사업에도 신경을 써야 했다.

다행스럽게도 유진아를 비롯, 사무실 직원들이 맡은 업무를 워낙 잘해주고 있었기에 강지한은 일주일에 한 번 정도 사무실을 방문해서 두 시간 정도 회의를 하는 것으로 족했다.

하지만 그것 말고도 신푸드의 신제품 개발과 개인 인터넷 방송을 꾸준히 해나가는 중이었다.

그리고 춘천의 식당들 같은 경우, 일주일에 한 번씩은 꼭 직접 들러 매장 상황을 확인하고는 했다.

딱 지금 정도가 강지한에게는 적당했다.

그 이상의 신경을 써야 했다면 강지한의 머리에 과부하가 걸렸을 테고 심적으로도 많이 힘들어졌을 것이다.

요즘에는 조금 더 바빠지긴 했다.

일식당의 오픈을 준비 중이기 때문.

한데 아직도 주방 직원을 구하지 못했다.

정확히 얘기하자면 주방에서 메인급으로 일할 사람 두 명 정도가 필요한데, 도통 구해지지가 않았다.

그 외의 주방 보조와 홀 직원은 언제든 들이는 게 가능했다.

리모델링도 이제 절반 정도 진행되었으니 강지한의 마음이 더 급해졌다.

“휴.”

자신의 방에서 연습에다 무언가를 열심히 적던 강지한이 한숨을 쉬었다.

그가 지금 적고 있는 건 새로운 요리의 레시피였다.

강지한은 요즘 다른 사람이 만들지 않은 요리를 창조하는 데 재미가 들렸다.

그래서 레시피 노트를 마련해 틈만 나면 떠오르는 아이디어들을 적어 보았다.

그렇게 쌓인 노트만 다섯 권이었다.

그 안에서 손님들에게 돈을 받고 선보일 만한 메뉴는 스무 가지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사실 강지한의 레시피 노트에 기록된 음식들은 전부 상당한 맛을 자랑하는 수준이었다.

그러나 강지한은 레벨 6 미만의 음식은 손님상에 내놓을 생각이 없었다.

아울러 창작을 했다고 해도 다른 사람의 요리와 조금이라도 비슷해 보이는 건 용납하지 않았다.

또한 너무 가격이 비싸게 책정되는 음식도 아웃시켰다.

그런 것들을 전부 제외하고 나니 다섯 권을 탈탈 털어 스무 가지 정도의 요리만이 살아남은 것.

강지한이 일식당에 대한 생각을 접어두고 떠오른 새 레시피를 마무리 지었다.

그리고 시간을 확인하니 오후 다섯 시.

이제 슬슬 공단솥칼국수로 떠날 준비를 해야 했다.

“씻자.”

레시피 노트를 덮은 강지한이 기지개를 켜며 욕실로 들어갔다.

* * *

약속된 시간.

강지한과 예소린이 공단솥칼국수에 도착했다.

김정훈은 아직 안주가 완성되지 않았는지 주방에서 후다닥 튀어나와 둘을 맞이했다.

“오셨어요? 지금 거의 다 됐으니까 앉아서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뭐 도와 드릴 건 없어요?”

예소린이 물었다.

“그냥 편히 계시면 됩니다. 아~ 하하하!”

김정훈이 다시 주방으로 들어갔다.

강지한과 예소린은 기본 찬과 수저, 잔이 세팅되어 있는 자리에 나란히 앉았다.

“킁킁.”

예소린은 주방에서 흘러나오는 냄새를 맡아보고 무슨 요리인지 맞춰보려 했다. 그런데 아무런 냄새가 나지 않았다.

“냄새가 안 나네?”

“응. 그리고 조용한데.”

주방에서 요리를 하면 도마 위에서 재료를 써는 소리라던가, 뭔가 끓는 소리, 혹은 지지고 볶은 소리라도 들려오는 법이다.

그런데 아무런 소리가 나지 않고 그저 고요했다.

‘어라? 혹시.’

그것만으로 강지한은 김정훈이 무슨 요리를 준비하고 있는 건지 눈치챘다.

예소린은 영 감을 잡지 못하고 있는 얼굴이었다.

‘칼국수집을 운영하는 사장님이 그걸 하고 있다고?’

의외였다.

강지한은 김정훈이 왜 그것을 안주로 택한 건지 아리송했다.

“거의 다 됐습니다!”

주방에서 씩씩한 사장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잠시 후.

김정훈은 큰 쟁반에 담긴 음식을 가지고 나와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쟁반 위에는 맑은 생선살이 가득 올라가 있었다.

그가 준비한 요리는 다름 아닌 광어회였다.

“아! 회였구나.”

회를 뜨고 있었기에 주방에서 이렇다 할 냄새도 소리도 나지 않았던 것.

광어회는 쟁반 위에 한 폭의 그림처럼 아름답게 플레이팅 되어 있었다.

“와아.”

예소린의 눈이 초롱초롱 빛났다.

너무 두껍게도, 그렇다고 얇게도 뜨지 않은 살점들이 자로 잰 듯 일정한 규칙에 따라 아름다운 문양을 그리며 펼쳐진 것이 절로 감탄이 나왔다.

“사장님, 진짜 의외네요. 회를 내오실 줄은 생각도 못 했어요.”

예소린의 말에 김정훈이 웃으며 말했다.

“그랬을 겁니다. 이게 그냥 회가 아니고 숙성회예요.”

“숙성회요?”

“네. 제가 대광어 한 마리를 공수해 왔거든요. 그걸 오늘 아침에 잡아서 10시간 숙성시켰거든요.”

숙성회는 물고기를 바로 잡아 회 쳐서 먹는 활어회와 달리, 떠놓은 살점을 0~2℃ 정도의 온도에서 4~10시간 저온 숙성을 한 다음 먹는 회를 말한다.

활어회는 신선하긴 하지만 힘줄이 살아 있어서 살이 좀 질기고 간혹 잘못 손질된 경우 비린내가 느껴지는 경우도 있다.

반면 숙성회는 연해진 육질로 인해 식감이 매우 부드럽고 감칠맛이 더 풍부하다.

이러한 설명을 김정훈에게 간략히 듣고 난 예소린이 감탄했다.

“와~ 그렇구나. 전혀 몰랐어요.”

“회를 정말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면 모르는 경우가 많죠. 우리나라는 주로 활어회를 먹거든요. 한 번 드셔보세요.”

“네.”

젓가락을 집어 든 예소린이 회를 먹으려다 말고 강지한을 바라봤다.

그는 아까부터 광어회를 뚫어져라 노려보고 있었다.

“지한 씨, 뭐해?”

“어, 어?”

“안 먹어?”

“아……. 먹어야지.”

강지한이 젓가락을 들고 다시 광어회를 바라봤다.

아니, 정확하게는 광어회의 정보창을 보고 있었다.

‘이건 정말…….’

정보창에 나타난 광어회의 레벨은 무려 ‘6’이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