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74
Restaurant 273. 천재 위에 덕후
강지한은 카메라를 주방에 설치한 뒤, 메밀국수를 삶아내고 시원한 쯔유소스를 만드는 것부터 송출을 했다.
개인 방송을 진행하는 건 처음이지만 그는 프로처럼 능숙하게 멘트를 하며 시청자들과 소통해 나갔다.
이미 프로덕션 이리에서 진행했던 ‘무엇이든 만들어 드립니다’로 많은 경험을 쌓았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현재는 ‘무엇이든 만들어 드립니다’와 강원TV에서 진행하던 ‘냉장고 파먹기’가 모두 촬영이 끝난 상황이라 강지한으로서는 간만의 방송 활동이었다.
그래서인지 은근히 신이 나고 재미있었다.
처음 방송을 켰을 때 들어온 시청자수는 10명이 채 되지 않았다.
그런데 강지한이 음식을 다 만들고 나서 보니 100명이나 되는 시청자가 방송을 보는 중이었다.
이어 본격적인 먹방이 시작되니 점점 시청자수가 늘기 시작했다.
사실 인지도가 낮은 초보 방송인들에게 중요한 것 중 하나가 썸네일이다.
썸네일은 현재 어떠한 방송을 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이미지 컷을 말한다.
한데 강지한의 방송 썸네일엔 메밀국수가 산처럼 쌓여 있었다.
먹방의 3요소라 함은 맛있게 먹기, 맛 표현하기, 많이 먹기라 할 수 있었다.
그 3요소 중 하나가 썸네일에 고스란히 담겨 있으니 시청자들의 호기심을 절로 끌었다.
과연 저 많은 메밀국수를 다 먹을 수 있을까?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초짜 방송인의 경우 아무리 썸네일이 대단해도 시청자들이 궁금해하기만 하고 그냥 지나쳐 버리는 일이 많다는 것이다.
그러나 강지한은 일반인 중에서는 나름 알려진 사람이었다.
방송 출연 경험도 있고 프로덕션 이리와 인터넷방송을 진행하기도 했다.
해서 썸네일을 통해 강지한의 얼굴을 알아본 시청자들이 반가워하며 들어왔다.
여태 강지한이 무언가를 만드는 것만 보아왔지 직접 먹는 건 보지 못했기 때문.
게다가 저 많은 메밀국수를 정말 다 먹을 수 있는 것인지 또한 궁금했다.
그렇게 하나둘 늘어가던 시청자가 방송 중반 무렵엔 700을 돌파했다.
그 700이란 숫자 속엔 뒤늦게 강지한의 메시지를 받고 들어온 유정미도 있었다.
그녀는 넋을 놓고서 강지한의 방송을 시청 중이었다.
“네, 귀요미님. 안녕하세요. 배틀 셰프 나왔던 강지한 맞냐고요? 네, 맞습니다. 반갑습니다. 아, 지금 많은 분들께서 메밀국수 다 먹을 수 있는 거냐고 묻고 계시는데, 다 먹을 수 있습니다. 형상준님께서 ‘저 양 실화냐?’ 하하하. 실화 맞아요.”
시청자들과 한차례 소통을 한 강지한이 메밀국수 면을 잔뜩 집어 쯔유장국에 푹 담가 후루룩 들이켰다.
강지한은 젓가락질 한 번으로 0.5인분 정도 되는 양을 해치우고 있었다.
우물우물. 꿀꺽.
“제가 만들었지만 진짜 맛있네요.”
강지한의 말에 채팅창의 화력이 거세졌다.
-아아. 이 더운 여름날 메밀소바라니ㅠㅠ
-지한 사마! 저도 한입 주세요!
-진짜 맛있게 먹는다…….
-이건 고문이네요.
아닌 게 아니라 강지한은 메밀소바를 너무나 맛있게 먹고 있었다.
입안에 한가득 넣고 야무지게 씹어서 크게 꿀꺽! 넘기고는 혀에 남은 은은한 풍미를 음미하는 표정까지.
그야말로 먹방의 정석이랄 수 있었다.
“저 오빠 뭐야. 내가 저런 스킬들은 가르친 적이 없는데. 아니지. 저번에 치킨 먹을 때를 생각해 보면 저건 스킬이 아니라 그냥 몸에 배어 있는 거야. 지한 오빠는 내추럴본 먹방러인 거지.”
유정미가 고개를 주억거렸다.
시간이 갈수록 그녀는 점점 더 강지한의 먹방에 푹 빠져들었다.
* * *
강지한의 첫 번째 생방송 최종 스코어는 1,000명이 살짝 넘는 시청자로 마무리되었다.
그는 메밀국수 15인분을 홀로 다 먹어치웠다.
“그럼 내일 또 다른 메뉴로 찾아올게요. 시청해 주셔서 감사했습니다.”
강지한이 방송을 종료하고 난 뒤 유정미는 크나큰 충격에 빠졌다.
15인분을 마지막까지 맛있게 무리 없이 먹은 것도 충격이었이지만 그보다 더 놀라운 건 첫 방에 시청자 1,000명을 찍었다는 사실이었다.
“저 오빠 완전히 방송 천재네.”
유정미가 호랑이를 키웠다.
* * *
한정국이 삼영식품과 본격적인 계약을 체결했다.
그제야 한정국은 비로소 신푸드의 즉석식품을 직접 구입해서 먹어보고 평가할 자세를 갖췄다.
그런데,
“없다고요?”
“네, 들어올 때 바로 집어 가지 않으면 한 시간 내로 매진돼요. 인기 엄청나거든요.”
구입 실패.
“사장님. 여기 신푸드 즉석식품 안 들여놓나 봐요?”
“매일 들여놓죠. 근데 들여놓기가 무섭게 나갑니다.”
또 구입 실패.
“신푸드 식품 없습니까?”
“내일 다시 오셔야 해요. 다 나갔죠. 하하.”
이번에도 구입 실패.
“신푸드 즉석식품 좀 사려고 왔는데…….”
“아이고. 다 나갔는데, 어쩌나?”
연이은 구입 실패.
“저…… 신푸드…….”
“매진입니다.”
“…….”
무슨 놈의 신푸드 제품을 구하기가 하늘에 별따기였다.
이번 년도 상반기에 내놓은 신제품은 물론이고 그 이전에 선보인 제품들까지 일제히 매진을 이어나가는 중이었다.
사실 몇 달 전까지는 신푸드의 제품들도 그 열기가 조금씩 사그라지는 기미를 보였다.
그런데 강지한이 방송 활동을 열심히 하는 한편, 홈쇼핑에도 출연하면서 다시 대박 열풍이 불어닥치기 시작한 것.
이런 사실을 꿈에도 몰랐던 한정국은 허탈함과 불안함을 동시에 느꼈다.
‘아니, 고작 즉석식품 따위가 뭐 이렇게 잘나가? 그 정도로 맛있다고?’
그래 봤자 즉석식품이다.
한데 왜 이렇게 미치도록 잘 팔리는 건지 이해할 수 없는 노릇이었다.
‘거품이다. 분명 거품이야.’
간혹가다 홍보마케팅이 잘되어서 이런 식으로 거품이 붙는 식품들이 가끔 있었다.
정작 먹어보면 별것 없는데 구하기가 힘들 정도로 열풍이 불고 있다는 것에 혹해 너도나도 사 먹으려 하는 그런 일이 가끔 생기고는 했다.
신푸드의 제품들 역시 같은 맥락일 것이라 한정국은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은 일단 그의 예상일 뿐이고 정확한 맛을 판단하기 위해서는 직접 사 먹어봐야 했다.
한정국은 서울 시내 여러 곳의 마트와 편의점을 돌아 겨우겨우 남아 있는 신푸드 제품 몇 가지만을 챙겨올 수 있었다.
“젠장. 더럽게 힘드네. 내가 왜 이 짓을 해야 돼?”
별것도 아닌 강지한 하나 잡겠다고 무슨 고생인가 싶어 후회가 밀려왔다.
생각해 보면 이 모든 것이 한에어의 기내식 때문이었다.
여태 한에어의 기내식 레시피를 만든 셰프가 누구인지에 대해서는 아무도 알지 못했다.
한정국은 그 감추어진 셰프가 절대 강지한이 아닐 것이라 여겼다.
한데 한민국이 그런 한정국의 자존심을 건드렸다.
그로 인해 한정국은 실력으로 강지한을 눌러보겠다며 신푸드의 일에 뛰어든 것이다.
물론 자신이 이 일에 관여한 사실은 절대 비밀로 해 달라 신신당부를 한 상황이었다.
한민국의 귀에 들어가면 당장 불호령이 떨어질 게 분명했기 때문.
삼영식품 측에서는 사실 한정국의 이러한 제안이 영 못마땅했다. 그들이 한정국을 택한 이유 중 하나는 그가 현 신선숙수 한돈선의 차남이라는 점도 있었다.
신선정은 한국에서 유일무이한 한정식 최고의 브랜드인 만큼 그 이점을 이용해 홍보 효과를 얻으려 했다.
그런데 한정국은 오로지 실력으로 보여주겠다며 자신만만해했다.
맛만 있으면 무조건 신푸드 보다 삼영식품의 제품들이 더 잘 팔릴 테니 한번 믿어보라며 큰소리를 쳤다.
결국 공치산 부장은 그런 한정국을 믿어주었다.
이제 그 믿음에 보답을 해야 했다. 비록 신푸드의 음식을 구하러 다니는 과정이 적잖이 짜증났지만, 계약금도 받은 이상 할 일은 해야 한다.
한정국이 신푸드의 제품들을 가열해서 식탁에 늘어놓았다.
그런데,
“응?”
앞에 높인 순두부찌개하며 여섯 가지 나물 반찬, 그리고 제육볶음들이 어디선가 많이 본 듯한 비주얼이었다. 게다가 코를 통해 들어오는 냄새 또한 익숙했다.
‘아니 일단 그건 둘째 치고…… 인스턴트 특유의 역한 냄새가 없잖아. 이럴 수가 있나?’
한정국은 도저히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제육볶음부터 한입 먹어보았다.
인스턴트 제품들이 가장 취약한 부분이 바로 고추장이 들어가는 볶음 요리들이었다.
아무리 공을 들여 신경 써서 만든다고 해도 고추장볶음 요리에서는 즉석식품 특유의 향이 강하게 나곤 했다.
신푸드의 제품 또한 다를 것은 없을 터.
쩝쩝. 꿀꺽.
“……!”
하지만 제육볶음 한 점을 먹어본 한정국은 자신의 예상이 빗나감에 크게 당황했다.
“이럴 리가 없는데.”
제육볶음에서는 즉석식품의 역한 향이 조금도 나지 않았다.
이건 상식적으로 불가능한 일이었다.
아니, 한정국의 상식 안에서는 절대 일어날 수 없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그가 제육볶음을 다시 먹어보았다.
첫 번째 맛봤을 땐 즉석식품 같지 않은 그 맛과 향에 놀랐는데 두 번째 맛을 보고 나니 익숙함에 놀라고 말았다.
‘어디서 먹어봤는데, 이거.’
한정국은 이번엔 순두부찌개를 한술 떴다.
이것 역시도 즉석식품이 아니라 집에서 직접 만든 순부두찌개 같았다.
완성도가 대단했다.
그런데 순두부찌개의 맛까지 익숙했다.
‘내가 이걸 어디서…….’
고민하며 여섯 가지 나물들을 하나하나 집어 먹는 한정국의 뇌리에 번개가 쳤다.
콰르릉!
“이런…… 염병.”
드디어 기억이 났다.
우유나의 집에서 먹어봤던 음식들이었다.
우유나는 당시 전날 술을 먹고 들어온 한정국을 위해 아침을 손수 차렸다고 하며 상을 내왔다.
자기 어머니 손맛을 물려 받은 것 같다는 그 말을 한정국은 철썩같이 믿었다.
식탁에 놓인 음식들에서 인스턴트의 향이나 맛은 나지 않았고, 우유나가 한 번 자신을 속였다 들킨 이상 두 번은 그러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
그런데 그녀는 또다시 강지한의 음식들로 자신을 바보로 만들고 말았다.
쾅!
한정국의 주먹이 테이블을 강하게 내리쳤다.
그 바람에 테이블 위에 있던 음식들이 그릇에서 흘러넘치며 엉망이 되었다.
“우유나……. 네가 또 날 속여?”
연인에게 당했다는 배신감과 강지한의 솜씨가 보통이 아니라는 당혹감에 한정국은 화가 솟구쳤다.
“후우우…….”
깊은 숨을 들이켜고 내쉬며 한참 동안 마음을 다스린 한정국이 이를 악물었다.
우선 우유나에 대한 생각은 머릿속에서 치워 버리기로 했다.
냉정을 찾은 그가 강지한의 레시피로 탄생한 신푸드의 음식들을 다시 차근차근 맛봤다.
“확실히 인스턴트 제품 같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대단할 것도 없는 맛이야.”
한정국은 당장 앞치마를 메고 주방 앞에 섰다.
그리고 신푸드의 제품에 대항할 수 있는 요리들을 연구해 나가기 시작했다.
반드시 강지한을 잡고 말겠다는 열의가 가슴속에서 활활 타올랐다.
* * *
다음 날.
지한 객잔에 출근을 한 강지한은 깜짝 놀랐다.
호중원이 그보다 먼저 출근해서 잠긴 문 앞에 서 있었기 때문.
“아니 중원 씨, 언제 왔어요?”
“아, 강대표님. 짜장면이 유독 땡기는 아침입니다, 후후.”
“얼마나 기다리신 거예요?”
“삼십 분 정도밖에 기다리지 않았습니다.”
“많이 기다리셨네요.”
“아닙니다. 마음속으로 중식 요리들 만드는 과정을 이미지 트레이닝 했더니 시간이 그렇게 흘렀는지도 몰랐습니다.”
“아…… 네. 그래도 앞으로는 제가 말씀드린 시간에 나오도록 하세요. 이렇게 일찍 나오실 필요 없어요.”
“노력해 보겠습니다만 장담은 못드리겠습니다. 지한 객잔의 주방에서 일한다는 생각에 기다리던 신작 애니가 개봉하는 전날 밤처럼 설레며 잠들었다가 새벽부터 눈이 떠지니 말입니다. 후후.”
강지한은 지한 객잔의 문을 열고 호중원과 함께 안으로 들어섰다.
호중원은 강지한이 주방을 정리하는 걸 열심히 도와줬다. 한데 그 몸놀림이 엄청나게 빠르고 날랬다.
천성이 게으르지만 중식과 관계된 일만큼은 열정적으로 임하게 되는 중식 덕후의 특성 덕분이었다.
호중원의 도움으로 주방 정리가 평소보다 삼십 분이나 일찍 끝났다.
이제 남은 건 출근하는 직원들에게 맡기면 될 일.
할 일이 없어진 강지한은 시간을 죽이기가 싫어서 호중원에게 특별 강습을 해주기로 했다.
“중원 씨, 지한 객잔에서 짜장면을 어떻게 만드는지 알려드릴까요?”
“아아! 알려주시면 영광으로 알겠습니다!”
호중원이 눈을 초롱초롱 빛내며 스마트폰을 꺼내 카메라 모드로 전환해서 녹화 버튼을 눌렀다.
강지한은 이런 호중원의 자세가 흡족했다.
“잘 보도록 해요.”
강지한이 호중원에게 짜장면 만드는 법을 친절한 설명과 함께 알려주었다.
“과연……. 제가 한 번 해봐도 되겠습니까?”
“그러도록 하세요.”
호중원은 자신이 본 것을 그대로 흉내 내며 짜장면 한 그릇을 금방 만들어냈다.
한데 완성된 짜장면을 살피는 강지한이 살짝 당황한 미소를 머금었다.
“무슨 문제 있으신가요?”
불안해진 호중원이 눈치를 살피며 물었다.
강지한은 고개를 젓고 대답했다.
“아니요. 그 반대예요. 완벽합니다.”
호중원이 만든 짜장면의 레벨은 6.
강지한이 만드는 걸 딱 한 번 보고 따라 했을 뿐임에도 완벽에 가까운 짜장면을 내놓았다.
“중원 씨.”
“네?”
“제가 수습 기간 몇 달이라고 했죠?”
“세 달이라고 했습니다.”
“정정할게요. 2주. 수습 기간은 2주예요. 이후에 바로 메인으로 일해주세요.”
“저, 정말입니까?”
“네. 그럴 실력이 충분합니다.”
“감사합니다! 믿어주세요, 강 대표님! 실망시켜 드리지 않도록 열심히 한 번 해볼라니까요!”
호중원이 주먹을 불끈 쥐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