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벨업 하는 식당-255화 (255/330)

# 255

Restaurant 254. 인절미들

강지한은 정신이 없었다.

소금이가 설탕이의 아기들을 출산하다니.

그것도 여섯 마리나!

소금이는 지금 예소린의 집에 있었다.

오늘 새벽 소금이가 안절부절 못하는 것이 낌새가 심상찮았다. 해서 예소린이 예경천에게 소금이를 부탁하고 다른 강아지들만 데리고 나온 것.

예경천은 부동산 문도 닫아놓고 소금이를 돌보는 데 여념이 없었다.

그러다 오후 네 시.

드디어 소금이가 여섯 마리의 강아지를 출산했다.

이미 예경천은 강아지 전문가였다.

자의든 타의든 예소린이 들여온 강아지들과 몇 년이 넘도록 지내오다 보니 출산 시 어찌해야 하는지도 빠삭했다.

그는 우선 대야에 따뜻한 물을 받았다.

그러고는 손을 깨끗이 세척한 뒤, 소금이가 밀어내는 새끼들의 양막을 터뜨렸다.

막 안에서 흘러나온 새끼들을 잘 감싸 받은 다음 배에서 손가락 한마디 정도 되는 곳의 탯줄을 실로 묶고 가위로 잘랐다.

그러고는 새끼의 호흡을 확인 후에 미리 준비해 놓았던 물로 몸을 가볍게 세척했다.

마지막으로 수건으로 물기를 닦은 뒤 어미의 젖을 물게 하는 것으로 끝.

어미의 초유에는 각종 질병의 면역항체가 존재한다. 그래서 초유를 먹이는 것이 상당히 중요했다.

다행스럽게도 여섯 마리의 강아지 모두 어미의 젖을 빨며 안정적으로 쉬고 있었다.

소금이 또한 그런 새끼들을 애정으로 보살피며 자주 핥아주었다.

이를 보며 예경천이 흐뭇하게 미소 지었다.

그가 소금이의 머리를 천천히 쓸어주었다.

“고생했다, 고생했어. 하는 양을 보니 모성애 철철 넘치는 어미 되겠다, 우리 소금이. 흐흐흣. 그나저나 부모 얼굴이 훤칠하니까 새끼들 외모도 아주 남다르네, 응?”

아직 태어나서 눈도 못 뜬 새끼들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태 예경천이 보아왔던 새끼들과는 뭐가 달라도 다른 외모를 자랑하고 있었다.

“역시 예쁜 애기를 보려면 부모 유전자도 무시할 수는 없는 거야.”

혼잣말을 내뱉은 예경천이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그런 거 보면 우리 소린이도 훤칠한 남자 만나야 할 텐데.”

예소린은 누가 봐도 헉! 할 만큼 예쁘다.

예경천이 딸 하나는 아주 잘 길러놨다.

그러니 남편만 제대로 얻는다면 아주 어여쁜 손주를 안아볼 수 있을 터였다.

그런 생각을 하는 예경천의 머릿속에 불현듯 강지한의 얼굴이 떠올랐다.

“흠……. 강 대표 정도면 괜찮지. 훈훈하니 잘생겨서 키도 크고 허우대도 좋고. 게다가 잘나가기는 또 좀 잘나가?”

저도 모르게 중얼거리던 예경천이 정신을 퍼뜩 차렸다.

“헉! 아니, 아니지. 소린이는 아직 딴 놈한테 넘겨줄 수가…….”

예경천은 미처 말을 끝맺지 못하고 애기들에게 젖을 물린 소금이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아닌가. 이제 슬슬 우리 소린이도 보낼 때가 되었나. 근데 누가 있어야 보낼 거 아니냐 이 말이야.”

그러자 또다시 강지한이 떠올랐다.

예경천도 언젠가부터 은근히 강지한을 사윗감으로 마음에 두고 있었던 모양이다.

다만 본인 스스로 인정을 못했을 뿐이다.

“만약에 강 대표가 우리 소린이한테 마음이 있다고 한다면…… 그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은데.”

이미 둘이 뜨겁게 연애하고 있다는 사실은 꿈에도 모른 채 고민에 빠진 예경천이었다.

“에이, 모르겠다. 제가 알아서 하겠지.”

고개를 휘휘 저은 예경천이 어미 품에서 젖을 빠는 꼬물이들을 바라봤다.

낑낑 대면서 필사적으로 젖을 먹고 있는 모습이 그렇게 귀여울 수 없었다.

“소금아, 조금만 기다려라. 이제 곧 네 신랑 올 거야.”

* * *

설탕이가 오늘 영 평소답지 않았다.

강지한이 맡기고 떠난 이후부터 안절부절 못하고 있었다.

세상 처음 보는 설탕이의 그런 모습에 카페를 찾은 손님들도 하나같이 의아해했다.

원래부터 그런 애였다면 그러려니 했을 텐데, 안 그러던 아이가 그러니 어디 아픈 건 아닌지 걱정이 들었다.

예소린은 그런 설탕이의 모습을 보면서 혹시나 얘가 뭘 알고 저러는 건가 싶었다.

그러던 와중, 설탕이가 갑자기 문밖을 바라보며 마구 짖어댔다.

왕! 왕왕!

동시에 예경천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소금이가 출산을 했다고.

통화를 끝낸 예소린은 강지한에게 이 소식을 가장 먼저 전한 뒤, 설탕이를 놀란 시선으로 바라봤다.

‘얘는 도대체…….’

교감 능력이 얼마나 높으면 한참 떨어져 있는 자기 와이프가 자식들을 출산했는지 알 수 있는 것일까?

예소린이 전화통화를 끝낸 이후부터 설탕이는 문 앞에 서서 떠날 줄을 몰랐다.

마치, 한시라도 빨리 소금이 곁으로 데려다 달라고 시위를 하는 것만 같은 모습이었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에라도 설탕이를 집에 데려다 주고 싶었으나 카페를 비울 수는 없으니 강지한이 조금이라도 빨리 도착하기만을 바랐다.

다행스럽게도 강지한은 10분이 채 지나지 않아 카페문을 열고 들어섰다.

“소린 씨! 나왔어.”

왕왕!

예소린보다 설탕이가 먼저 강지한을 반겼다.

녀석이 폴짝 뛰어올라 강지한의 품에 덥썩 안겼다.

강지한이 설탕이를 반사적으로 받아들고서는 머리를 쓰다듬으며 예소린을 바라봤다.

“지한 씨, 일단 우리 집으로 어서 가봐. 아빠가 여섯 마리 전부 무사히 받았대. 설탕이 얘, 아까부터 뭘 아는지 계속 안절부절 못해.”

“그래. 바로 가볼게.”

강지한이 설탕이를 안고 카페를 나섰다.

그러자 카페에 있던 손님들이 예소린에게 질문 공세를 퍼부었다.

“사장님! 설탕이 아빠 됐어요?”

“그러고 보니까 오늘 소금이 안 보이던데.”

“설탕이가 소금이 임신시켰다면서요?”

“시바견이랑 골든 리트리버랑 그게 가능했대요?”

“설탕이 남자네! 하하하!”

그렇게 신이 난 손님들 사이에서 누군가가 스마트폰을 꺼내 어딘가에 글을 올리고 있었다.

그는 설탕이를 사랑하는 모임, 설사모 카페의 회원이었다.

* * *

설사모 카페는 게시글 하나로 한바탕 난리가 났다.

설탕이의 2세 탄생 소식에 순식간에 댓글이 100개를 돌파했다.

수많은 사람들이 설탕이의 2세가 순탄하게 자라기를 빌어주었다.

이향숙은 이런 소식을 모르고 있다가 뒤늦게 접하고서 난리가 났다.

“어머! 어머! 설탕이 2세? 설탕이 새끼들 태어났다고? 어떡해, 어떡해! 내가 가봐야 하는데.”

하지만 당장은 갈 수가 없었다.

이향숙도 한 회사의 대표인 만큼 당장 처리해야 할 일들이 산더미 같았다.

대신 그녀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하기로 했다.

설탕이 팬 카페에다 설탕이들 꼬물이 사진을 내일 중으로 업로드하겠다는 글을 올린 것.

그런 이향숙의 공지글은 팬가케 회원들의 열광적인 환호를 받게 되었다.

* * *

강지한은 생닭 두 마리를 사들고 예경천의 집으로 향했다.

그간 예소린을 집 앞에서 만난 적은 있지만 집 안으로 들어간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래서인지 현관 문 앞에 선 이 순간이 어쩐지 조금 긴장되었다.

띵동-

그가 초인종을 눌렀다.

잠시 후, 문이 스르르 열리며 예경천이 얼굴을 내밀었다.

“아, 강 대표. 왔구만.”

“네, 사장님. 소린 씨가 카페를 비워둘 수 없어서 대신 왔습니다.”

“연락 받았네. 설탕아, 오래간만이다?”

헥헥헥.

설탕이가 예경천을 반기며 꼬리쳤다.

“얼른 들어와요.”

예경천이 둘을 안으로 들였다.

강지한은 서른 평생 여자라고는 딱 두 번밖에 만나보지를 못했다.

그래서 애인이 사는 집을 방문하는 것도 이번이 처음이었다.

예소린이 사는 집에서는 마치 꽃향기가 나지 않을까 싶었다.

아니었다.

강아지 냄새만 가득했다.

사람보다 강아지들이 더 많이 사는 집이니 당연했다.

집으로 들어서니 거실 한편에 마련된 공간에 누워 있는 소금이의 모습이 보였다.

예경천이 산실 하나는 또 끝내주게 아늑한 분위기로 잘 만들어 놓았다.

강지한이 산실로 다가가자 소금이가 알아보고 꼬리를 쳤다.

그런 소금이의 배에는 꼬물이 여섯 마리가 달라붙어 젖을 빨고 있었다.

“와아.”

새로운 생명이 태어나 어미의 젖을 먹는 모습이 강지한에게는 경이롭게 다가왔다.

그가 감탄하고 있을 때, 뒤따라온 설탕이가 소금이에게 다가갔다.

소금이는 강지한을 봤을 때보다 더욱 격하게 꼬리를 흔들어댔다.

설탕이가 소금이의 입과 코를 할짝할짝 핥아주고는 눈을 지그시 바라봤다.

그 모습이 마치 고생 많이 했다고 말해주는 것만 같았다.

강지한은 부부만의 시간을 방해하지 않으려고 슬쩍 일어나서 예경천에게 다가가 물었다.

“저, 사장님. 주방 좀 사용해도 될까요?”

“응? 안 될 건 없는데 왜?”

강지한이 손에 든 봉지를 내밀며 말했다.

“소금이 삼계탕이라도 해주려고 닭을 좀 사왔거든요.”

“아! 얼른 요리 해요, 해.”

예경천의 허락이 떨어지자 강지한은 빠르게 닭을 삶기 시작했다.

소금이가 먹을 것이기에 황기나 대추, 마늘 같은 것은 넣지 않았다.

그저 오로지 닭만 넣고 삶았다.

그러는 사이 설탕이는 자신과 소금이 사이에서 태어난 새끼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설탕이의 눈에 말로 다 설명할 수 없는 애정이 가득 담겼다.

소금이와 설탕이의 애정이 섞여 태어난 꼬물이들 여섯 마리를 설탕이는 가만히 보다가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갔다.

그러고는 핥으려다가 말고, 발로 건드려 보려다 말았다.

한 마리 한 마리가 너무 소중해서 함부로 건드릴 수 없다는 듯.

끼잉. 끼잉.

그러던 와중 젖을 빨던 꼬물이 한 마리가 뒤로 벌렁 뒤집어졌다.

그에 놀란 설탕이가 그 앞에서 어쩔 줄 몰라 하다가 닭을 삶던 강지한의 바지춤을 물고 끌었다.

“응? 설탕아, 왜?”

강지한이 설탕이가 이끄는 대로 따라가고 보니 꼬물이 한 마리가 젖을 빨지 못하고 뒤집어 져서 낑낑대는 것이 보였다.

“야. 네 새끼 젖 못 먹고 있다고 나 끌고 온 거야? 흐흐.”

왕!

설탕이가 맞다고 대답했다.

강지한은 그런 설탕이가 예뻐서 어쩔 줄 모를 지경이었다.

그가 뒤집어진 꼬물이를 조심히 들어 다시 어미의 젖을 물려주었다.

그러자 설탕이가 새끼를 곁에 배를 깔고 엎드렸다.

딴에는 자기 새끼들이 또 이리저리 뒤집어지지 않도록 하려는 것 같은 모양새였다.

이를 본 강지한이 피식 웃고서 설탕이를 쓰다듬어 주었다.

* * *

찹찹찹.

소금이는 강지한이 삶아준 삼계탕을 열심히 먹었다.

예경천이 그런 소금이를 보며 좋아했다.

“그래그래. 그렇게 먹어야 젖이 잘 나오지. 아이구 장하다, 내 새끼.”

반면 설탕이는 자기 앞에 놓인 삼계탕을 입도 대지 않았다.

그저 소금이와 꼬물이들을 애정과 걱정이 가득 담긴 시선으로 바라볼 뿐이었다.

“설탕아, 아빠 된 거 축하한다.”

강지한이 그런 설탕이의 엉덩이를 툭툭 두들겨주었다.

그러자 설탕이의 입꼬리가 미소 짓는 것처럼 양옆으로 주욱 말려 올라갔다.

한편, 삼계탕을 열심히 먹는 소금이를 지켜보던 예경천의 입속에 군침이 자꾸만 고였다.

‘그렇게 맛있나?’

강지한이 아무것도 안 넣고 닭만 삶았다는 걸 알면서도 소금이가 워낙 맛있게 먹으니 뭔가가 있나 싶었다.

결국 예경천은 참지 못하고 냄비에 남아 있는 국물을 조금 떠서 맛봤다.

그런데.

‘허어. 이 담백함은 뭐야?’

그냥 닭만 넣고 삶아낸 육수가 어마어마하게 담백하니 맛이 깊었다.

‘손맛이 없으면 똑같은 계란 프라이를 해도 맛이 없다더니…… 손맛이 좋으면 닭만 넣고 삶아도 달라지는구나.’

그리 감탄을 하는 예경천이었다.

그는 몰랐다.

강지한이 대단히 좋은 닭을 골라 왔으며, 그 닭을 삶는 동안 불 조절을 얼마나 열심히 했는지.

* * *

2주 후.

예소린의 집.

“꺄아~ 어쩜 좋아. 아빠. 나 아침에 얘들 볼 때마다 정말 행복해.”

“아효~ 고것들 정말 예쁘다.”

예소린은 요즘 아침에 눈을 뜰 때마다 어쩔 줄을 몰라 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꼬물이었던 녀석들이 이제는 인절미가 되어 나란히 몸을 맞대고 잠들어 있었다.

하나같이 금색 털을 가지고 태어난 녀석들인지라 저렇게 딱 붙어서 엎드려 자고 있으면 정말이지 인절미 여섯 개를 붙여 놓은 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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