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54
Restaurant 253. 꿔바로우와 소금이의 출산
3박 4일이라는 시간은 화살처럼 지나갔다.
한국으로 돌아가는 비행기 안.
강지한과 예소린은 행복에 젖어 중국에 있었던 시간들을 회상했다.
“뭐가 제일 맛있었어?”
비행기가 막 떠오르기 시작했을 때, 예소린이 물었다.
하얼빈으로 떠날 때와 달리, 돌아올 때는 다른 항공의 이코노미 클래스에 앉았다.
민국항공의 기내식 수준을 알았으니 괜한 낭비할 필요는 없었다.
강지한이 창밖의 광경을 감상하며 대답했다.
“난 야시장에서 먹었던 것들은 다 괜찮았어.”
하얼빈의 야시장은 주로 대학교 앞에 형성되어 있다.
음식들의 레벨은 대부분 3 정도였고 정말 괜찮은 경우 4인 곳도 있었다.
기본적인 음식의 평균 레벨이 그리 낮지 않았다.
그만큼 맛도 확실했다.
“아, 야시장. 난 거기서 먹은 것 중에 그게 가장 신기했는데. 냉면구이.”
“그거 맛있었지.”
냉면구이는 하얼빈 야시장에서만 먹어볼 수 있는 별미다.
철판 위에 냉면을 주르륵 늘어놓고 계란을 얹어 범벅해서 전병의 피와 같은 역할을 하게 하고 그 안에 여러 가지 재료와 소스를 넣어 구워 먹는 간식이다.
이름만 들으면 생소한 음식이지만 먹어보면 입에 착 달라붙을 만큼 맛이 있었다.
“나흘 동안 우리 진짜 많이 먹었다. 이것저것.”
“응. 그것도 그렇고 그 동네 이색적인 분위기도 재미있더라.”
하얼빈은 러시아와 관통하는 철도 사업이 발달하며 서양의 문화가 곳곳에 묻어나는 도시다. 때문에 건축과 음식도 그 영향을 제법 받았다.
두 사람이 먹은 음식 중엔 정통 중식뿐만 아니라 서양의 것과 퓨전이 되어 있는 느낌의 음식들도 상당했다.
덕분에 강지한으로서는 대단히 많은 공부가 되었던 여행이었다.
아울러 중국 본토에 가서 음식을 먹으며 체험해 본 경험이 그의 중식 대가 여위용의 지식 레벨을 바로 한 단계 레벨 업 시켜 주었다.
이제는 한국에 가서 중식당을 오픈해도 괜찮겠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종종 이렇게 해외여행도 하자.”
짧은 여행 동안 상당히 즐거웠던 만큼 아쉬움 역시 큰 예소린이 강지한에게 제안했다.
“응. 좋아.”
강지한은 이를 흔쾌히 받아들였다.
타국에 직접 가서 그 나라의 음식을 먹어본다는 것이 스스로에게 얼마나 큰 발전을 가져다주는지 몸소 체험했으니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시간만 허락한다면 앞으로 더 자주 나가고 싶었다.
그러나 당장 그에겐 더 앞선 욕심이 하나 있었다.
바로 고국의 음식문화부터 제대로 섭렵하고자 하는 것이었다.
“근데 일단 우리나라 전국팔도 음식들부터 모두 공부하고 나갔으면 해.”
“그래. 그것도 나쁘지 않겠네. 한글도 아직 다 못 깨우쳤는데 영어부터 배울 필요는 없지.”
강지한의 실력을 아는 사람들이 들으면 혀를 내두를 말이었다.
이미 그의 솜씨라면 어디에 가서 식당을 차려도 충분히 대박을 칠 수 있을 터.
그럼에도 강지한의 요리 연구에 대한 욕심과 탐구심은 끝이 없었다.
그리고 예소린은 그런 강지한의 고집을 이해해 주었다.
강지한 역시 예소린을 있는 그대로 보아주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후에도 두 사람의 대화는 끊임 없이 이어졌다.
최대한 다른 승객들에게 불편을 주지 않도록 작은 목소리로 속닥였는데 그것도 나름대로 재미있는 추억으로 남을 것 같았다.
* * *
오늘은 프로덕션 이리에서 촬영하는 ‘무엇이든 만들어 드립니다’의 생방이 있는 날이다.
프로덕션 이리의 대표 박동일은 촬영이 있기 일주일 전부터 섭외해 놓은 게스트가 누구인지에 대해 알려주곤 했다. 그리고 그 게스트가 먹고 싶어 하는 요리가 무언지 역시 사전에 말을 해주었다.
그럼 강지한은 그에 대비해 적당한 멘트와 요리를 준비해 가면 된다.
녹화 방송이 아닌 생방송인지라 돌이키지 못할 사고가 나지 않도록 이런 사전 준비는 더욱 철저히 해야 했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이번에는 게스트에 대한 어떠한 언급도 없었다.
그저 게스트가 먹고 싶어 하는 요리에 대해서만 전해줄 뿐이었다.
게스트는 중식을 특히 좋아해서 중식이라면 어떠한 요리든 상관이 없다고 전달을 받았다.
대체 게스트가 누구냐는 강지한의 물음에도 박동일은 함구한 입을 열지 않았다.
이번 게스트께서 자신의 정체를 꼭 감춰 달라 신신당부를 했다는 것.
박동일이 쓸데없는 일로 고집을 부리는 사람이 아니라는 건 강지한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더 캐묻지 않고 어떤 요리를 만들지만 생각했다.
마침 이번에 중국 여행도 다녀왔겠다, 여위용의 지식도 올랐겠다, 만들어 보고 싶은 요리가 많았던 참이었다.
강지한은 촬영에 들어가기 전날 밤 까지도 무얼 만들면 좋을까 고심했다.
고추기름과 두부의 고소한 맛이 뒤섞여 풍미를 폭발시켰던 건두부는 별미였다. 그야말로 밥도둑이 따로 없었다.
중국에서 빼놓을 수 없는 국민 음식 만두 또한 일품이었다.
찐빵처럼 생긴 빠오쯔부터 얇은 피에 소를 넣어 물만두, 군만두, 찐만두로 만들어지는 쟈오쯔, 고기와 찹쌀로 만든 소가 인상적인 샤오마이, 육즙 가득 머금은 샤오롱빠오까지.
어느 하나 맛이 떨어지는 게 없었다.
한데 만두의 경우 중국 지역에 따라 또 맛이 다 다르다고 하니 경이로울 정도였다.
‘춘빙도 맛있었지.’
춘빙은 밀가루를 물에 풀어 얇게 펴서 구운 것을 말한다.
거기에다 양념을 해서 볶은 돼지고기나 오리고기, 각종 야채들을 넣고 춘장을 싸서 먹는 요리다.
한국인 입맛에 잘 맞아서 춘빙을 준비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하지만 강지한이 오랜 숙고 끝에 만들기로 한 요리는 결국 다른 것이었다.
촬영 세트장에 도착한 강지한이 게스트를 기다리며 요리에 필요한 재료들을 살폈다.
그 재료들은 프로덕션 이리 측에서 준비해 준 것이 아니다.
강지한이 직접 공수해 온 것들이다.
요리는 신선하고 좋은 재료가 반이다.
때문에 재료 선별 작업을 다른 사람에게 맡길 수가 없었다.
물론 여기서 들어간 재료비는 프로덕션 이리 측에서 전부 비용 처리를 해주고 있었다.
빠진 재료가 없음을 확인한 강지한이 일단 밑 준비부터 들어갔다.
생방송이기 때문에 촬영에 들어가면서 밑 준비를 하려면 요리하는 시간이 너무 길어지기 때문.
그런 강지한의 모습을 지켜보던 박동일이 슬쩍 다가와 말을 걸었다.
“강 대표님, 오늘 꿔바로우도 대단히 기대됩니다.”
“하하. 기대에 못 미치면 어쩌죠?”
“엄살도. 그럴 일 없다는 거 다 알고 있습니다.”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히실라.”
강지한이 농담을 던지며 박동일을 바라봤다.
그의 얼굴에는 미소가 가득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강지한의 이름값이 날로 올라가며 무엇이든 만들어 드립니다의 시청자 수 역시 빠르게 증가하고 있었으니까.
본래 이런 프로는 이미 인기를 끌고 있는 전문 BJ가 참여하지 않는 이상 크게 인기를 끌기 힘들었다.
그런데 강지한은 전문 BJ가 아님에도 시청자 수를 기존 500에서 4,000까지 끌어 올리는 기염을 토했다.
요리사인 그가 이미 유명 BJ급으로 부상을 한 것이다.
그로 인해 프로덕션 이리는 자신들에게 일을 맡긴 식품 업체에게 큰 신용도를 얻게 되며 계약 연장에 들어갔다.
물론 강지한 역시 더욱 높은 몸값으로 방송 연장 계약을 맺게 되었다.
그러니 박동일의 눈에 그가 안 예뻐 보일 수 있겠는가.
재료들의 밑 준비가 끝나갈 무렵 스텝 한 명이 박동일에게 게스트가 도착했음을 알렸다.
“오케이, 자! 준비 들어갑시다!”
박동일의 사인에 스텝들이 분주하게 움직였다.
강지한은 여전히 게스트가 누군지 모른 상태로 큐 사인을 받았다.
“안녕하세요, 시청자 여러분. 강지한입니다. 오늘도 저는 게스트분께서 드시고 싶어 하는 음식을 무엇이든 만들어 드릴 겁니다.”
강지한은 카메라를 보며 능숙하게 멘트를 이어나갔다.
“사실 제가 지금 어떤 게스트분께서 나오시는지 잘 모릅니다. 그래서 너무나 궁금한데요. 빨리 모셔보도록 하겠습니다. 나와주시겠어요?”
강지한의 부름에 스텝 뒤에 숨어 있던 게스트가 후다닥 세트장 안으로 들어섰다.
“안녕하세요, 강 대표님!”
반갑게 인사를 건네며 포옹부터 해대는 여인의 얼굴을 본 강지한이 깜짝 놀랐다.
그녀는 다름 아닌 윤선아였다.
“선아 씨?”
강지한이 반가우면서도 놀라서 눈을 동그랗게 떴다.
요새 그녀의 스케줄은 살인적이라 할 정도로 많았다.
드라마 촬영에, 예능 프로 출연에, CF 촬영에 각종 매체와의 인터뷰는 셀 수도 없을 정도였다.
그런 그녀가 시간을 쪼개서 이곳에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어쩐 일이세요?”
“제 동생일로 크게 빚진 것도 있고 해서 여기 나가게 해 달라고 대표님한테 졸랐죠.”
“빚은 이미 다 갚았잖아요. 골든 벨 울려놓으시고서는.”
“그 정도로는 성이 안 차서요.”
윤선아의 등장에 채팅창의 화력이 강해졌다.
이제 그녀는 제2의 전성기를 누리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톱스타의 자리를 다시 꿰차고 앉은 상황.
때문에 그녀의 등장으로 인한 파급력은 대단했다.
시청자수가 4,000에서 곧바로 6,500까지 껑충 뛰었으니 말이다.
이를 지켜보던 박동일이 주먹을 불끈 쥐고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래서 오늘 무슨 요리 해주실 건데요?”
한참 서로 근황을 주고받던 와중 윤선아가 불쑥 물었다.
강지한은 미리 생각해 두었던 메뉴의 이름을 말해주었다.
“꿔바로우 좋아하세요?”
“어머. 나 환장해요.”
“다행이네요. 오늘 제가 준비한 음식은 중화요리 꿔바로우입니다. 하얼빈을 대표하는 음식이기도 하죠.”
꿔바로우는 기다란 모양의 탕수육과 달리 돼지고기 등심을 넓적하게 썰어 튀겨내는 요리다.
요즘에는 중식집에 대중적으로 많이 퍼졌으나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일반적인 중식집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메뉴였다.
강지한은 바로 꿔바로우 요리에 들어갔다.
좋은 돼지고기 등심을 넓적하게 슥슥 잘라냈다.
그것을 감자전분에 넣어 물을 섞어 반죽했다.
꿔바로우의 핵심은 속이 쫀득하면서도 겉은 바삭한 식감이다.
이 식감을 위해서는 무조건 감자전분으로 반죽옷을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새하얀 반죽을 입은 등심을 기름에 세 번 튀겨냈다. 한 번만 튀기고 말면 특유의 바삭한 식감을 살리기 힘들기 때문이다.
이제 잘 튀겨진 고기튀김을 각종 야채가 들어간 새콤한 소스를 만들어 같이 볶아냈다.
그것을 접시에 잘 담아내는 것으로 꿔바로우가 완성되었다.
“와아. 맛있겠다.”
자신의 앞에 놓인 음식을 바라보는 윤선아의 입에 군침이 고였다.
그건 박동일과 스텝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강지한의 먹음직스러운 요리를 직접 먹지 못하고 촬영만 해야 한다는 건 어마어마한 고문이었다.
“드셔보세요.”
강지한이 자신 있게 시식을 권했다.
“잘 먹겠습니다!”
그의 솜씨를 익히 알고 있는 윤선아가 꿔바로우 한 점을 들어 냄새부터 맡았다.
톡 쏘는 새큼한 소스의 향이 코를 강하게 찔렀다.
바로 그것이 꿔바로우의 매력이었다.
고기튀김에 달라붙어 끈적하게 떨어지는 소스를 황홀하게 바라보던 윤선아가 드디어 한입 베어 물었다.
바사삭.
소스에 완전히 범벅이 된 튀김인데도 바삭함이 사라지지 않았다.
그런데 튀김옷의 안쪽은 겉과 달리 쫀득했다.
치아가 튀김을 완전히 자르고 들어가니 속에 있는 고기가 부드럽게 잘렸다.
윤선아는 뜨거운 꿔바로우를 허~ 허~ 하고 숨을 뱉어가며 천천히 씹었다.
뜨거움이 가시고 고기와 튀김옷이 점점 더 씹기 수월해질수록 윤선아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넘 맛있당.”
윤선아가 저도 모르게 혀 짧은 소리를 냈다.
“어떻게 이래요? 지금 시청하는 분들. 이거 진짜 맛있어요. 튀김옷이 겉에는 바삭하고 속에는 쫀득한데, 고기는 또 살살 녹아요. 근데 믿기지 않는 사실. 세 번이나 튀겨냈잖아요? 그런데 고기 안에 아주 약간의 육즙이 살아 있어요. 소스도 새콤한 맛이 톡 쏘는 게 진짜 좋구요. 이 고기튀김이랑 너무 잘 어울려요.”
윤선아의 설명에 여기저기서 군침 삼키는 소리가 꿀꺽꿀꺽 들려왔다.
시청자들 또한 당장 저 꿔바로우를 가져다 달라는 둥, 지금 꿔바로우 주문했는데 과연 저 맛이 날지 모르겠다는 둥 난리였다.
그러거나 말거나 윤선아는 꿔바로우를 누구보다 맛있게 먹으며 과거 먹방 요정의 타이틀이 아직 건재함을 보여주었다.
* * *
촬영을 마치고 방송국 주차장으로 향하던 강지한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전화를 건 사람은 예소린이었다.
“응, 소린 씨.”
강지한이 반갑게 전화를 받았는데, 스마트폰 너머에서 다급한 예소린의 음성이 들려왔다.
-지한 씨! 소금이 강아지들 출산했어!
“……어?”
-모두 여섯 마리래! 설탕이가 아빠 됐어, 지한 씨.
“……대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