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35
Restaurant 234. 멍청한 자객
“강 사장님, 저 왔습니다.”
손현중이 주방으로 다가와 씩 웃으며 말했다.
그의 뒤로 늘어선 네 사람을 강지한이 천천히 눈에 담았다.
우선 외모보다는 연기 실력과 친근한 이미지로 뜬 손현중과 달리 완전히 외모 하나가 열 일 해버린 듯한 사내가 가장 먼저 시선을 사로잡았다.
그는 올해 마흔을 넘긴 현존하는 최장수 아이돌 그룹의 리더이자 로맨스 킹이라 불리는 정혁이었다.
정혁은 단 한 번도 연예계 생활에 위기라는 것을 맞아본 적 없을 정도로 성공 탄탄대로만 밟아온 사람이다.
그가 속한 그룹 화신은 데뷔 앨범부터 지금껏 내는 족족 가요계 차트 1위를 기록하며 승승장구했다.
드라마에서 연기자로 데뷔했을 때도 기대 이상의 연기 실력으로 호평을 받았다. 시청률 또한 언제나 좋게 나왔다.
충무로 시장에서도 주연을 맡은 영화 세 작품 모두 500만 이상의 관객을 끌어모으는 저력을 발휘했다.
한마디로 그는 흥행보증수표 같은 인물이었다.
정혁의 머리 위에 떠 있는 국내 인지도 수치는 무려 93이었다.
그 옆으로는 검은 폭포수처럼 윤기 있는 긴 생머리를 허리까지 기른 여배우가 서 있었다.
바로 안방극장의 여왕 은하수였다.
몸에 딱 달라붙는 붉은색 원피스는 그녀의 맵시를 고스란히 살려주고 있었는데, 몸매가 장난이 아니었다.
얼굴 또한 몸매 못지않게 아름다웠다.
입가에 생기발랄한 미소를 머금고 있는 그녀의 머리 위엔 83이라는 수치가 보였다.
그 뒤로는 지상파와 케이블을 넘나들며 맹활약을 펼치는 국민MC 유석재가 서 있었다.
그의 얼굴을 확인하는 순간 정혁과 은하수를 보면서도 뛰지 않던 강지한의 가슴이 마구 뛰었다.
예능프로그램을 광적으로 사랑하는 만큼 강지한에게 있어서는 누구보다 국민 MC 유석재가 가장 연예인 같았기 때문이다.
유석재의 국내인지도는 96으로 가장 높았다.
유석재의 곁엔 배틀 셰프에서도 한 번 봤던 인물이 서 있었다.
바로 국민 작가를 넘어 세계적인 작가라 일컬어지는 김두찬이었다.
손현중이 김두찬과도 연이 있는 줄은 미처 몰랐었다.
김두찬의 국내 인지도는 72.
세계적인 작가라 해도 책을 읽지 않는 사람들에게 그는 관심의 대상이 아니었다.
때문에 국내 인지도가 상대적으로 낮은 것이 당연했다.
손현중은 네 사람을 강지한과 도근한에게 소개시켜 주었다.
한 명 한 명 돌아가며 짧은 인사와 함께 가벼운 악수를 나누었다.
도근한은 은하수의 손을 잡으며 가슴이 두근거렸고 강지한은 유석재와 악수할 때 가장 신이 났다.
김두찬은 강지한에게 일전의 연을 잊지 않고 알은체해 주었다.
다섯 명의 탑스타가 2층의 예약된 룸으로 들어가고 난 뒤, 홀에는 한바탕 정적이 일었다.
강지한의 어마어마한 요리도 탑스타들의 아우라까지 무시하도록 만들 수는 없었다.
“방금 뭐가 지나간 거야?”
“내가 지금 제대로 본 거 맞지? 은하수랑 유석재랑 손현중에다가 정혁까지.”
“김두찬 작가도 있었어.”
“우리 지금 탑스타들이랑 같은 곳에서 밥 먹는 거 맞냐.”
손님들은 한동안 식사에 집중 못하고 얼떨떨한 감상을 나누었다.
한편 강지한은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오늘 레스토랑을 찾은 탑스타 다섯 중 정혁과 유석재의 국내 인지도가 90 이상이었다.
때문에 저들이 식사를 마치고 밖으로 나가면 이번 스테이지의 목표는 완수하게 된다.
‘드디어 잃어버린 기억을 전부 찾을 수 있어.’
오래전부터 의문에 싸여 있던 기억들이 베일을 벗으려 하고 있었다.
* * *
좋은 사람들과 함께하는 자리는 언제나 즐겁다.
한데 그 자리에 맛있는 음식과 술이 있다면 그야말로 금상첨화다.
오늘, 손현중의 주최로 이루어진 지한 레스토랑에서의 모임이 그랬다.
식전빵부터 시작해서 샐러드와 스프, 에피타이저를 거쳐 파스타와 메인 메뉴에 이르기까지.
무엇 하나 떨어지는 음식이 없었다.
하나같이 개성적이면서 매력적인 맛을 가득 품은 요리들은 입안으로 들어올 때마다 매번 다른 감동을 안겨주었다.
특히 배틀 셰프에서 강지한의 요리를 먹어봤던 김두찬은 다른 이들보다 더욱 놀라고 있었다.
‘그 사이에 실력이 이렇게까지 늘다니.’
참 경이로울 지경이었다.
원체 참가자들 사이에서도 사기적인 실력으로 무쌍을 찍었던 강지한이었다.
한데 지금의 솜씨로 참가를 했더라면 다른 이들을 완전히 압살했을 터였다.
“와, 정말 맛있다. 현중 오빠가 그렇게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한 이유를 알겠네.”
은하수가 미디움으로 익혀져 나온 양안심 한 조각을 잘라 소스에 찍어 먹으며 말했다.
“나 이렇게 맛있는 양고기는 진짜 오래간만이야.”
“한우 스테이크도 어마어마한데?”
은하수의 말을 정혁이 받았다.
“오늘 현중이 형 덕분에 내 입이 너무 호사한다.”
유석재 역시 흡족하게 한마디를 뱉었다.
“석재가 술 한잔할 줄 알면 더 좋았을 텐데. 넌 이 맛을 모르지.”
손현중이 유석재를 놀리듯 와인 한 모금을 마시고는 그 맛을 음미했다.
“음. 여기가 바로 천국이네.”
“근데 이런 곳은 어떻게 알았어?”
은하수가 궁금해했다.
“너희들 지한 밥차 이용해 본 적 있어?”
“갑자기 밥차 얘기는 왜 꺼내?”
레스토랑에 대해 물었는데 밥차 얘기를 꺼내니 정혁이 의아해했다.
거기에 대해서는 김두찬이 손현중보다 한발 빠르게 대답을 던져주었다.
“제가 알기로 여기 강 대표님께서 밥차도 운영하고 있다고 해요. 아마 현중 형님이 촬영장에서 지한 밥차 음식을 먹어보고 반해서 여기까지 오게 되었나 봐요.”
김두찬의 정확한 추리에 손현중이 엄지를 척 세웠다.
“역시. 누가 작가 아니랄까 봐 바로 스토리텔링 나오네.”
“지한 밥차? 나도 다음 드라마 촬영 때 거기서 밥차 부르라고 해야겠다.”
은하수가 신이 난 어린아이처럼 좋아했다.
오늘 레스토랑의 음식을 먹고 나니 밥차의 음식 또한 대단히 기대가 됐다.
다른 사람들도 모두 같은 마음이었다.
“밥차 음식은 여기보다는 못해. 그런데 내가 먹어본 모든 밥차들 중에서 최고야.”
“아, 벌써부터 먹고 싶다.”
은하수의 눈이 초롱초롱 빛났다.
브라운관에서 비추어지는 섹시, 도도함과는 거리가 먼 광경이었는데, 이게 은하수의 진짜 모습이었다.
“우리 코스 요리만으로는 조금 부족하지? 단품 메뉴 좀 더 주문하자. 어때?”
자리에 모인 다섯 사람은 하나같이 대식가였다.
때문에 다들 배가 조금 덜 차 아쉬운 상황에서 손현중의 제안이 반가웠다.
“현중 오빠가 알아서 주문해 줘. 난 오늘 먹은 코스 음식들 좀 올릴게.”
은하수가 개인 SNS 계정에 찍어두었던 음식 사진들을 주르륵 업로드했다.
그러자 그녀의 사진 밑으로 사람들의 댓글이 무섭게 달려 나갔다.
지한 레스토랑의 위상이 더더욱 높아지고 있었다.
* * *
뜬금없는 메시지였다.
[설탕이가 물어오기 스킬로 선물을 물어오는 데 성공했습니다.]
‘응?’
요리를 하는 강지한의 눈앞에 그런 메시지와 함께 선물 상자가 나타났다.
‘설탕이가 또?’
설탕이는 지금 이향숙이 회사로 데려가서 봐주고 있는 중이었다.
한데 거기에서 선물 상자를 물어온 모양.
강지한이 상자를 톡 건드렸다.
그러자 상자의 뚜껑이 열리며 보랏빛 사탕이 튀어나왔다.
[축하합니다. 아이템 ‘타이틀 레벨 업 사탕’을 얻었습니다.]
타이틀 레벨 업 사탕은 일전에도 한 번 얻어서 건강 요리사 타이틀을 상향시킨 적이 있었다.
강지한은 타이틀 레벨 업 사탕을 입속으로 넣고 꿀꺽 삼켰다.
[레벨 업 할 타이틀을 선택하세요.]
1. 건강 요리사 LV2
2. 행복 요리사
건강 요리사는 한 벌 레벨 업 했으니 이번엔 행복 요리사의 레벨을 올리기로 했다.
[타이틀 ‘행복 요리사’가 레벨2로 업그레이드 됐습니다. 타이틀의 효과가 강화됩니다.]
[행복 요리사: 호칭 사용시, 음식을 먹는 손님들의 감성이 행복으로 물듭니다. 피로, 짜증, 우울, 분노 등의 안 좋은 감정들을 상당 부분 중화시킵니다. 효과가 운영 중인 모든 사업장에 적용됩니다.]
‘좋아.’
행복 요리사의 레벨이 올라가며 기존의 효과가 강화되었고 그것이 강지한의 모든 사업장에 적용되도록 바뀌었다.
강지한은 바로 행복 요리사로 타이틀을 교체했다.
‘뭔가 행운이 따라주는 것 같은 하루야.’
강지한이 그런 생각을 할 무렵 새로운 손님 두 명이 홀로 들어왔다.
한 명은 하얀 정장에 머리를 깔끔하게 뒤로 넘기고 무테안경을 쓴 삼십 대 초반의 남자였다.
동행한 이도 비슷한 연배의 여인으로 두 사람은 부부였다.
한데 부부의 인상이 딱 봐도 강렬했다.
어디서 지고 살 것 같지는 않을 포스가 팍팍 풍겼다.
그들은 1층에서 2층으로 이어지는 계단 근처 빈 테이블에 앉아 디너 코스 메뉴를 주문했다.
식전 빵과 찍어먹을 소스가 우선 테이블에 놓였다.
남자, 성재우가 빵을 대충 뜯어 먹으며 홀 내부의 분위기를 살폈다.
“여보, 여기 스타일 어떤 것 같아? 조금 올드하지 않아?”
남편의 물음에 부인 김이지가 고개를 모로 꺾었다.
“컨셉이 어중간하네. 고급스러운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소박하지는 않고.”
“그치? 우리 형님 식당에 비하면 별게 없지?”
“응. 근데 자기야. 정말 이렇게 해도 괜찮아? 아주버님이 아시면 어떻게 해?”
“우리 형이 뭘 어떻게 알아? 그리고 알게 돼도 나한테 고맙다 그럴 걸. 이게 다 우리 형 레스토랑 잘되라고 하는 일인데.”
성재우가 다리를 꼬고 흔들면서 껄렁껄렁하게 대답했다.
하는 행동이 가볍고 생각이 없어 보이는 데다 말도 튀어나오는 대로 뱉는 것이 얼마나 막살아왔는지가 한눈에 보였다.
김이지가 조금만 생각이 깊었더라면 그때라도 성재우를 데리고 레스토랑을 나갔어야 했다.
그러나 끼리끼리 어울리는 법.
그녀가 성재우의 부인으로 사는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그런가? 그럼 나도 아주버님한테 예쁨 받겠네?”
“당연하지. 그동안 뭐만 하면 쪽 주고 갈구고 서러움 받았던 거 오늘 한 방에 역전시키자고.”
“응. 좋아. 그렇게 하면 우리한테도 콩고물 떨어지겠지?”
“그럼 그럼.”
성재우는 자신의 형에게 잘 보일 생각에 신이 났다.
성재우의 형, 성재민은 지한 레스토랑과 멀지 않은 거리에서 레스토랑을 운영하고 있었다.
성재민은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그야말로 앞날이 막막한 양아치 건달이었다. 돈이 없으면 남의 돈을 빼앗고, 마음에 안 드는 인간이 있으면 주먹질부터 해댔다. 입에서는 말보다 욕이 더 나왔으며 여자 알기를 물건처럼 생각하는 말종이었다. 그런데 의외의 요리 실력을 갖고 있었다.
그것이 좋은 스승을 만나 개화했고 꾸준히 갈고닦아 결국 지금에 이르게 되었다.
겉보기에는 자수성가한 레스토랑 오너로 멋있어 보이지만 다른 사람들이 모르는 그의 과거는 추악했다.
성재민은 그런 과거를 모두 잊어버리고 레스토랑 운영에만 집중했다.
원체 실력이 있는지라 레스토랑은 오픈 이후부터 줄곧 장사가 잘됐었는데 지한 레스토랑이 오픈하고 난 다음부터는 손님들의 방문이 확연히 줄어들어 요새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이를 본 성재우는 기회다 싶었다.
성재우는 자신의 길이라도 일찍 찾아 넉넉히 돈을 버는 형과 달리 끝끝내 변하지 않고 망나니처럼 놀고먹는 양아치 한량이었다.
늘 어울려 다니는 건 건달패 비슷한 놈들뿐이었다.
그러다 보니 하는 일도 그쪽 관련한 질 나쁜 일들이 전부였다.
얼마 전까지는 사채도 돌렸었다.
하지만 원체 사업 머리가 없어 손해만 보고 말아먹었다.
성재민은 그런 성재우를 쓰레기 보듯 하면서도 동생이 손을 벌리면 마지못해 돈을 쥐어주곤 했다.
그러나 이제는 성재민도 지쳐 버렸다.
해서, 나중에 건물 한 채라도 자신에게 받으려면 정신 똑바로 차리고 살라 크게 혼을 냈다.
정신 차리기 전까지는 용돈이고 뭐고 없을 줄 알라는 불호령까지 떨어졌다.
가뜩이나 식당 장사도 예전 같지 않은데 동생이라고 하나 있는 놈이 겉멋만 잔뜩 들어 철딱서니 없이 사니 짜증이 났다.
“오늘 여기서 한바탕 제대로 하고 원룸 생활부터 탈출하자고.”
성재우가 슬슬 몸을 풀며 부지런히 서빙을 하고 있는 홀직원들의 동선을 살폈다.
그 무렵.
지인들과 한참 좋은 시간을 보내던 손현중이 요의를 느껴 화장실을 가기 위해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