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벨업 하는 식당-236화 (236/330)

# 236

Restaurant 235. 오래간만이다, 씹새야?

와장창!

“꺅!”

지한 레스토랑 1층 홀에 한바탕 소란이 일었다.

“뭐야, 지금!”

옷에 파스타 소스를 뒤집어 쓴 김이지가 바닥에 엎어진 홀 여직원 윤민아를 무섭게 쏘아봤다.

윤민아가 벌떡 일어나 황급히 고개부터 조아렸다.

“손님, 죄송합니다! 어디 다치신 곳은 없으…….”

짝!

“꺄악!”

사과를 하는 윤민아의 눈앞에 별이 번쩍하더니 뺨이 화끈거렸다.

김이지가 그대로 따귀를 날린 것.

윤민아가 도로 넘어지며 바닥에 엎어진 파스타를 깔고 앉았다.

순간 성재우가 난감한 시선을 김이지에게 던졌다.

‘미쳤어? 때리면 어떻게 해!’

성재우가 눈빛으로 물었다.

김이지가 어깨를 으쓱했다.

‘순간적으로 열 받아서 나도 모르게 그만.’

성재우가 한숨을 푹 쉬며 고개를 저었다.

이미 저질러진 판이니 일단은 밀고 나가야 했다. 그가 돌연 화난 얼굴을 하더니 홀이 떠나가라 소리쳤다.

“이거 지금 뭐하자는 겁니까? 오늘이 무슨 날인 줄 알아요? 우리 결혼기념일이에요. 그런데 이 중요한 날에 내 아내 옷을 저 모양으로 만들었으니 어떻게 책임질 건데요? 네?”

그에 따귀를 맞은 윤민아가 다시 일어나 아랫입술을 꽉 깨물고 성재우를 노려봤다.

그 반응에 성재우는 속으로 미소를 지었다.

‘반응이 오네.’

김이지의 따귀에 풀이 팍 죽어버렸을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풍기는 기세를 보니 여직원도 보통내기는 아닌 것 같았다.

“저기요, 손님…… 제가 음식 쏟은 건 정말 죄송한데요. 솔직히 손님께서 의도적으로 발을 거셨잖아요.”

윤민아가 억울한 어투로 항변했다.

‘물었다!’

바로 이럴 때 더 밀어붙여야 한다.

“네? 뭐요? 의도적으로 지금 뭐? 내가 잘못 들었나? 나 참, 어처구니가 없으려니까. 내가 뭐 때문에 결혼기념일 날, 맛있는 음식 먹고 분위기 내려고 레스토랑에 와서, 어떤 이유로 당신한테 발을 걸까요? 당신 나한테 억하심정 있어요?”

성재우가 날카롭게 쏘아붙이자 윤민아는 순간 갈등했다.

일단 이 레스토랑은 자신의 것이 아니다.

두 사장님들의 소유인 만큼 돈을 받고 일을 해주는 자신이 레스토랑의 이미지에 먹칠을 하는 건 안 될 일이다.

하지만 방금 같은 경우까지 그냥 참고 넘어간다는 건 너무 억울했다.

윤민아의 눈에는 분명히 보였다.

음식을 서빙하는 그녀의 앞에 의도적으로 내밀어지는 성재우의 다리를.

워낙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라 피하고자시고 할 여유가 없었다.

그리고 그녀가 쓰러질 때 김이지는 각도를 재더니 파스타 접시가 엎어지는 쪽으로 몸을 살짝 기울였다.

뭣 때문에 이런 짓을 벌인 건지는 알 수 없으나 악의를 가지고 한 행동을 그냥 넘어가는 건 같이 일하는 다른 직원들의 나중을 위해서라도 안 될 일이라는 판단이 들었다.

“손님이야말로 저한테 억하심정 있으신가요? 의도적으로 다리 거셨잖아요. 왜 발뺌하시는 건데요? 무슨 목적으로 이러시는 거예요?”

“의도적? 참나. 그럼 CCTV 돌려 봅시다. 여기 CCTV 있죠? 나는 그쪽이 내 옆으로 지나가는 줄도 몰랐어요. 우리 아내가 화장실 가자기에 의자 빼서 일여나려다가 엉켰다고!”

성재우가 교묘한 말로 상황을 빠져나가려 했다.

애초에 그가 CCTV를 생각 안 했을 리 없었다. 식당에 들어오자마자 확인한 것이 CCTV의 위치였다.

그는 직원이 안내해 준 테이블에서 CCTV를 등지고 앉을 수 있도록 자리를 정했다.

그래서 한참 김이지와 대화를 나누다가 윤민아가 지나가는 타이밍에 의자를 빼며 몸을 옆으로 돌렸다.

이어서 마치 일어나려는 것처럼 꼬고 있던 다리를 펴며 앞으로 쭉 뻗었고 거기에 윤민아가 걸려 넘어졌다.

파스타가 쏟아지는 쪽으로 몸을 내민 김이지의 동작은 성재우를 따라 일어서려는 것으로 보일 터였다.

이를 잘 알고 있는 성재우가 CCTV를 확인하자며 계속 노발대발했다.

그러나 당사자인 윤민아는 그들이 계획적으로 움직였음을 확신했다.

윤민아가 다리에 걸려 넘어지기 전, 성재우는 분명 그녀를 보고 있었다.

고개는 돌리지 않았으나 시선은 윤민아를 주시하고 있었으며 넘어진 윤민아와 파스타를 뒤집어쓴 김이지를 보고 찰나지간 비릿한 미소까지 머금었다.

마치 ‘성공했다’고 좋아하는 듯한 얼굴이었다.

“손님, 저 지나가는 거 알고 계셨잖아요.”

“그러니까 끝까지 내가 당신 엿 먹이려고 그런 거다? 내가 찔리는 게 있었으면 CCTV 얘기까지 했을까?”

성재우의 테이블이 하도 소란스러워지자 홀에 있는 모든 손님들의 시선이 그쪽으로 집중되었다.

요리를 하고 있던 강지한과 도근한 역시 소란이 이는 곳을 주시했다.

“뭐야?”

도근한은 당장에라도 튀어나갈 것 같은 기세였다.

“내가 가볼게.”

그에 강지한이 먼저 나섰다.

도근한은 욱하는 성격이 강해서 괜히 일이 더 커질 수도 있었기 때문.

강지한이 주방을 벗어나는 와중에도 성재우의 행패는 계속되었다.

“지한 레스토랑? 여기 진짜 안 되겠네! 당신이 일하는 식당 매상 올려주려고 온 손님 이런 식으로 몰아가도 되는 거야! 어?”

성재우의 목청이 커질수록 손님들은 동요하기 시작했다.

“진짜 직원이 잘못했나 본데?”

“여자 옷 봐. 나 같았으면 더 뒤집어 놨다. 결혼기념일 날 저게 뭐야? 완전 하루 기분 잡치는 거지.”

“근데 직원은 뭘 잘했다고 저렇게 뻣뻣하냐.”

“아……. 여기 이미지 좋았는데, 다 망칠라 그래.”

성재우는 윤민아에게 윽박지르면서도 주변의 분위기를 포착했다.

그가 원하는 대로 아주 잘 돌아가고 있었다.

지금은 온라인 소통이 활발한 세상이다.

그럴수록 이미지 마케팅이 중요하다.

한 번 이상한 잡음이 나와 크게 걷잡을 수 없이 커져 버리면 불매 운동까지 가는 경우가 수두룩하다.

얼마 전에도 어떤 여인이 친목을 다지는 카페에 어느 식당의 불친절에 대해서 글을 올렸었다.

그런데 그 글을 지인들이 여기저기 퍼 나르며 화제가 되기 시작하더니 인터넷 뉴스를 시작으로 공론화되었다.

이로 인해 불친절의 온상처럼 되어버린 카페의 매출은 크게 감소했고 그 여파는 지금까지도 카페의 꼬리표처럼 따라다니며 괴롭히는 중이었다.

비단 그 카페의 일뿐만이 아니다.

이러한 경우는 얼마든지 있었다.

물론 개중엔 안 좋은 목적을 가지고 이런 수단을 이용하려는 자들도 존재했다.

성재우과 김이지가 바로 그런 경우였다.

이들이 바라는 건 오늘의 일이 공론화되어 지한 레스토랑이 마녀사냥을 당하는 것이었다.

한껏 성재우와 기싸움을 벌이던 윤민아도 상황이 너무 이상하게 돌아간다는 걸 알고 기가 확 꺾였다.

“직원 교육 이따위로 시킨 거 보니까 여기 사장 수준도 알 만하다.”

성재우가 강지한을 싸잡아 욕했다.

윤민아의 꽉 쥔 주먹이 바르르 떨렸다.

하지만 그녀는 곧 손을 풀어 앞에다 공손히 모았다.

“우리 사장님, 욕하지 마세요. 잘못을 저질렀어도 제가 저질렀고, 오해를 했어도 제가 한 거니까요.”

“아, 당신이랑은 할 말 없고 사장 나오라 그래! 사장 불러와!”

“아니요, 손님. 제가…… 제가 사과드릴게요.”

말을 하는 윤민아의 심정이 착잡해졌다.

자신은 잘못한 것이 없는데 잘못한 사람이 되어 버렸다.

그냥 처음부터 끝까지 나 죽었다 하고 사과나 할 걸.

억울하다고 항변했다가 세상 둘도 없는 친절한 사장님까지 욕보이게 만들었다.

자칫 잘못하면 지한 레스토랑 전체의 이미지가 깎여 나갈 판이었다.

그래서 결국 잘못한 게 없어도 잘못을 저지른, 그래 놓고도 뻔뻔하게 대들어 더욱 큰 잘못을 초래한 죄인이 되기로 했다.

그녀가 사죄의 말을 건네며 고개를 숙이려 할 때였다.

“손님, 정말 죄송합…….”

그런데, 갑자기 튀어나온 손 하나가 내려오려는 그녀의 이마를 턱 하고 받쳐주었다.

놀란 윤민아가 얼른 고개를 들어보니 강지한이 옆에 서 있었다.

“사장님……?”

강지한은 그런 윤민아를 옆에 두고 성재우와 김이지가 들으라는 듯 말했다.

“민아야, 정말 잘못한 게 없으면 사과하지 마. 네가 우리 식당 종업원이지 손님들 종은 아니잖아. 네가 여기서 해야 하는 건, 상식선 안에서의 가능한 서비스야. 그걸 벗어났는데도 억지로 고개 숙일 필요 없어.”

그것은 강지한이 평소에도 직원들에게 하던 얘기였다.

더 말하지는 않았지만 그는 늘 한 가지 덧붙이는 말이 있었다.

‘스스로에 대한 자긍심이 있는 사람만이 기분 좋게 남에게 고개를 숙일 수 있다.’

지금 윤민아는 자긍심을 버리고 자존감을 구겨가면서 고개를 숙이려 했다.

그것은 곧 스스로를 상처 입히는 행위밖에 되지 않는다.

강지한에게 자신의 음식을 먹으러 걸음해 주는 손님은 말로 다 표현 못할 만큼 소중했다.

하지만 자신의 식당이 바로 설 수 있도록 도와주는 직원들 또한 그 못지않게 소중했다.

해서 지금처럼 손님과 직원이 충돌했을 때는 옳은 쪽의 편을 들어주는 것이 맞았다.

그리고 강지한은 윤민아가 거짓말을 하고 있지 않다는 걸 알았다.

그간 겪어본 결과 윤민아는 지한 레스토랑을 오픈하며 뽑은 직원들 중 가장 심지가 곧고 착하며 열심이었다.

사람이 정직하고 밝았으며 삿된 마음을 갖지 않는 데다 어지간한 손해는 그냥 감수하고 넘어가는 성격이었다.

물론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르는 법이다.

때문에 윤민아가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강지한의 눈에 비추어지는 윤민아의 상태창은 그녀의 말이 사실임을 더욱 믿게 만들었다.

<윤민아의 능력치>

직급: 지한 레스토랑 홀직원

등급: C+

능력: 요리 LV 5, 설거지 LV 3, 서빙 LV 15, 청소 LV 15, 화술 LV 13, 회계 LV 12

정직도: 100/100

신뢰도: 98/100

종합 평가: 홀에서 근무하는 데 적격인 타입. 정직하며 남을 속일 줄 모른다. 그 바람에 고지식하다는 말도 종종 듣는다. 본인보다 남을 더 생각하며 어진 심성으로 어지간한 손해나 피해는 그냥 넘어간다. 하지만 정말 아니다 싶을 때는 자기 목소리를 내며, 불의를 참아 넘기지 못한다.

윤민아의 정직도는 100.

종합 평가 역시 그녀가 경거망동할 성격이 아님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었다.

그러니 강지한은 윤민아를 더더욱 믿었다.

해서 사과하려는 그녀의 행동을 제지했다.

이를 본 성재우가 속으로 만세를 불렀다.

제 발로 나선 사장이 사과는 않고 싸움을 더 불리는 격이니 성재우로서는 이보다 좋을 수가 없었다.

소란의 사이즈가 커질수록 안 좋은 소문은 더욱 빨리 퍼져 나갈 테니 말이다.

“사장님, 지금 뭐하세요? 직원분이 사과하려는데 그걸 못하게 하시네. 여기 손님 대접 이렇게 개판으로 해도 되는 겁니까? 내가 결혼기념일에 좋은 마음으로 왔다가 이게 지금 무슨 봉변인지 모르겠네요!”

성재우의 목소리는 끝도 없이 커졌다.

점점 흔들리는 손님들의 반응을 등에 업고 기세등등해졌다.

거기에 김이지가 양념을 쳤다.

“오빠, 나 진짜 속상해. 무슨 결혼기념일이 이래? 진짜 최악이야. 히이이잉.”

김이지는 엉망이 된 옷을 보며 울음을 터뜨렸다.

이를 보는 손님 몇몇의 입에서 조금 불만스런 말들이 흘러나왔다.

“누가 봐도 직원 잘못 아니야?”

“강지한 사장님 그렇게 안 봤는데, 전후 상황 보지도 않고 너무 직원만 감싼다.”

“손님 입장에서 서러워 살겠냐.”

“아, 갑자기 밥맛 없어졌어.”

그것은 분위기에 잘 휩쓸리는 일부 몇몇 손님들의 반응이었으나, 고작 그 정도만으로도 장내의 분위기는 싸늘하게 식었다.

이는 곧 이 사건이 밖에서 공론화되었을 때의 상황을 보여주는 것과 다름없었다.

‘됐다.’

성재우는 이제 쐐기를 박기로 했다.

“하아, 불쾌하고 억울해서 더는 여기 못 있겠고요. 나 오늘 일 그냥 안 넘어갑니다. CCTV 확인해서 직원 잘못 확실하면 바로 고소 들어갈 테니까 그렇게 아세요. 가자, 자기야.”

성재우가 울고 있는 김이지의 손목을 끌고 자리를 벗어나려 할 때였다.

“이상하네. 내 눈이 잘못됐나? 내가 봤을 때도 그쪽 남자가 의도적으로 다리를 걸던데.”

이게 무슨 잘 지어진 밥에 모래 뿌리는 소리인가?

계단 쪽에서 갑자기 들려온 훼방꾼의 목소리에 성재우와 김이지의 시선이 홱 돌아갔다.

그런데 거기엔 예상 못했던 인물이 히죽 웃으며 서 있었다.

바로 국민배우 손현중이었다.

“혀, 현중이 형?”

성재우가 튀어나올 듯 커진 눈을 하고 떨리는 음성으로 그의 이름을 불렀다.

손현중이 능글맞게 대답했다.

“오래간만이다, 씹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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