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26
Restaurant 225. 맛이라는 것이 폭발했다
“나는 신선정의 후계자 자리를 놓고 경합을 펼쳤었지요. 한데 그 경합에서 밀려나고서 정신을 차려보니 신선정에 내가 발붙일 자리는 단 한 곳도 남아 있지 않게 됐답니다. 내 형님이자 현재 신선숙수로 주방을 지키고 있는 한남선이 수작을 부린 것이지요.”
“수작이라니요?”
도근한이 물었다.
“형님은 태생이 근심 걱정이 앞서는 데다 의심이 많고 자기만을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혹여라도 내가 자신이 들어앉은 신선숙수 자리에 위협이 될까 봐 팔다리를 잘라 버린 겁니다. 뒤에서 사람을 시켜 말도 안 되는 소문을 퍼뜨리고 있지도 않은 일들을 사실인 듯 꾸며내어 음해한 뒤, 나를 신선정에 있어서는 안 될 인물로 만들어 버렸지요.”
한돈선이 누군가를 이토록 신랄하게 비난하는 걸 강지한과 도근한은 본 적이 없었다.
늘 온화하고 침착했던 그가 아니던가.
그런 한돈선이 분개하고 있었다. 그것도 자신의 핏줄인 친형을 거론하며,
“아니……, 친형님이신데 왜 그렇게까지 못쓸 짓을 하는 겁니까?”
도근한은 도통 이해가 되지 않아 물었다.
그에 한돈선은 침통한 얼굴로 얘기했다.
“도둑이 제 발 저린 법이지요. 형님은 나와의 경합에서 더러운 수작을 벌였습니다. 내 식재료에 몰래 장난을 쳤지요. 그게 벌써 28년 전 일이네요. 당시 스물여덟이었던 난 아직 많이 어리숙했었지요. 호호. 아무튼 형님이 벌인 짓을 알게 된 나는 당신 신선숙수인 아버지께 불같이 항의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아버지께서 말씀하시길 재료 관리를 제대로 못한 것 또한 너의 잘못이라고 하셨지요.”
한돈선의 말은 계속 이어졌다.
결국 재 경합은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한남선이 삼 대 신선숙수가 되었다.
그러나 한돈선은 도저히 이를 그냥 넘기기 힘들어 매일같이 항의했다.
그에 한정신은 작은 아들을 불러 이르기를, ‘네가 진정 신선정의 주인 될 재목이라면 늦어지더라도 어떤 식으로든 그 자리가 다시 돌아올 터이니 계속 정진하라’ 일렀다.
성격이 대쪽 같기로 유명했던 한정신인지라 한돈선은 더는 다른 말을 할 수 없었다.
바보같이 마음을 놓고 재료를 허술하게 방치한 본인의 잘못도 분명히 있었으니.
그렇게 이 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그간 한남선은 삼 대 신선숙수로서의 책무를 다하기 위해 후계자 수업을 받았고 한돈선은 언젠가 기회가 오리라 믿으며 홀로 칼을 갈았다.
그런데 그 해, 한정신의 건강에 적신호가 켜졌다.
한정신은 신선정의 발전에 이바지하기 위해 스스로의 몸을 돌보지 않고 노력해 온 사람이었다.
그로 인해 건강이 많이 쇠약해져 있던 그는 큰 병을 얻고 한 해를 넘기지 못하고서 죽음을 맞았다.
그때부터 한남선의 독재정치가 시작되었다.
그는 신선정의 기존의 체계와 이 대째 내려져 오는 방식, 고집들을 무시하고 온통 자신의 멋대로 바꿔 나갔다.
한돈선은 이를 좌시할 수 없어 어떻게든 막으려 목소리를 높였다.
안 그래도 한돈선이 눈엣가시였던 한남선은 자신의 친동생을 뒤에서 모함해 질 나쁜 인간으로 만들어 신선정에 발도 들이지 못하도록 만들었다.
결국 신선정을 완전히 휘어잡은 사람은 한남선이었다.
한남선은 신선정을 뒤에 엎고서 한돈선의 인맥을 차단해 나가며 철저하게 고립시켰다.
하지만 한돈선은 마냥 당하고 있을 수 없었다.
“신선정을 나와서 무엇을 해야 하나 고민하다가 아띠라는 작은 한정식집을 차렸지요. 그리고 꾸준히 식당을 키워나갔어요. 물론 쉽지는 않았답니다. 내가 식당을 열었다는 걸 알게 된 형님이 주변 인맥들에게 절대 걸음도 하지 말라 이르기도 하고, 되도 않는 유언비어를 퍼뜨리는가 하면 누가 봐도 우리 식당을 저격하는 게 분명한 폄훼기사를 내보내기도 하더군요.”
“하.”
기가 차지도 않는 말에 도근한이 혀를 찼다.
강지한의 미간도 살짝 구겨졌다.
“하지만 거기에 대응할 시간에 저는 오로지 요리에만 매달렸지요. 결국 그 정성을 알아준 손님들께서 입소문을 내주기 시작했고 차츰차츰 발전해 지금의 아띠가 된 것이랍니다. 호호호.”
현재 아띠는 신선정에는 못 미치지만 그래도 한국에서 유명한 한정식 식당 중 하나로 자리매김했다.
거기에는 한돈선의 피나는 노력이 숨어 있었다.
“내가 방송 탈 기회만 있으면 어떻게든 나왔던 것도 아띠를 알리기 위해서였어요. 아무것도 없이 새롭게 시작한 내 손에 쥘 수 있는 가장 큰 무기는 매스컴이었으니까요. 사람들이 나와 아띠를 알아주고, 유명세를 탈수록 내 목소리에도 힘이 더욱 실리는 법이지요.”
한돈선은 이대로 끝났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는 언젠가 다시 한남선에게 대항해 신선정을 그의 아버지와 할아버지의 얼이 담긴 예전의 모습으로 돌려놓고 싶었다.
“지금의 신선정은 그 오랜 시간 동안 크게 발전하지 못했습니다. 사람들의 입맛이라는 것이 지속적으로 변하는 만큼 신선정 역시 이를 따라잡으려는 노력은 물론 필요하지요. 하지만 그것은 전통의 맥락을 보존하겠다는 것을 전제로 해야 해요. 지금의 신선정은 그런 것들은 다 버리고 유행을 따라잡기에 급급합니다. 이대로 가다가는 곧 별 특색 없는 한정식당으로 역사 속에 묻혀 버리고 말 겁니다.”
한돈선이 그렇게 비판하고 있었지만 그래도 신선정의 음식은 대단했다.
지금 강지한의 실력으로 비벼볼 수 있는 수준은 아니었다.
하나 한돈선은 강지한이라면 필시 이 년 안에 빠른 성장을 이룩할 수 있을 것이라 믿었다.
어차피 강지한이 겨루어야 하는 것은 신선정이 아닌, 차기 신선숙수를 노리는 후계자 후보들이었다.
이미 한남선은 자신의 아들을 후계자로 만들기 위해 하루하루 고된 훈련을 시키는 중이었다.
그러니 강지한은 한남선의 아들을 뛰어넘어야 한다는 것이다.
한돈선의 말을 다 듣고 난 강지한은 어떤 대답도 하지 못했다.
너무나 엄청난 비사를 알게 된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저 먹고살기 위해 요리를 시작했고, 레벨 업 시스템을 만난 이후부터는 요리 자체가 좋아져서 열심히 노력하며 성장했다.
그러다 정신을 차려보니 이제 한국 요리계의 정점을 찍고 있는 한정식당의 후보로 참가해 보지 않겠느냐는 제안을 받았다.
심각해진 강지한의 어깨를 한돈선이 가볍게 두들겼다.
“이거 내가 너무 내 욕심만 내세운 얘기를 한 것 같네요.”
“아……. 아닙니다.”
“아무튼 내 입장은 내 입장일 뿐이지요. 지한 씨에게는 지한 씨만의 삶이 있으니 반드시 경합에 뛰어들라 강요하는 건 아니에요. 외부인의 경합 추천 기한은 이달 말까지니 아직 시간은 많이 남아 있습니다. 충분히 고민해 보시고 연락 주세요.”
“그럴게요.”
“말을 너무 많이 했더니 상당히 지치는군요. 그만 가보도록 할까요, 셰프님.”
한돈선이 레이먼 박에게 물었다.
“그러시죠.”
레이먼 박이 한돈선과 함께 일어섰다.
입구로 향하는 둘을 강지한과 도근한이 마중했다.
“그럼 우리는 가보도록 할게요. 지한 씨. 근한 씨. 다시 한 번 개업을 축하드려요. 그리고 음식 정말 맛있게 먹었어요. 호호호.”
“원 헌드레드 퍼센트 같은 심정입니다. 근한아, 넌 잘해낼 수 있을 거야. 지한 씨. 근한이 많이 도와주세요.”
“그럴게요. 대가님들, 오늘 감사했습니다. 조심히 들어가세요.”
“들어가세요. 한 대가님. 스승님.”
두 청년 요리사의 인사를 받으며 한돈선과 레이먼 박은 떠나갔다.
그러자 도근한이 강지한에게 어깨동무를 하고 한숨 섞인 말을 내뱉었다.
“너 겁나 복잡하겠다.”
“복잡하지.”
“할 거냐?”
“……모르겠어.”
“근데 신선정이면 우리나라 최고 한식당인데, 거기 후계자 되는 순간 인생 그냥 펴는 거잖아.”
“인생이 펴?”
“그럼 안 펴? 신선숙수의 칭호를 받는 것 자체가 한국 최고라는 뜻인데. 그리고 미슐랭 쓰리 스타 받은 곳이야. 세계적으로 유명해지는 거라고. 나 같으면 한 번 도전해 보겠다. ……아예 제안 자체를 하시지 않아서 잠자코 있었지만. 에이, 부러운 새끼.”
도근한이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말했다.
그러나 강지한에겐 그의 말이 들리지 않았다.
‘어떻게 해야 하나.’
과연 한돈선의 제안을 받아들여야 하는지, 고민이 깊어지는 강지한이었다.
* * *
2019년 1월 5일 토요일.
“어머어머. 손현중이야.”
“레알? 국민배우가 여길 왔다고?”
지한 식당에서 웨이팅을 하고 있던 사람들은 난리가 났다.
국민배우 손현중이 웨이팅 줄 사이에 서 있었기 때문.
“말 걸어볼까?”
“그러다가 쌩까면 어째? 방송에서는 이미지 좋은데 막상 실제로는 별로인 연예인 많잖아.”
“근데…… 그랬으면 이렇게 줄 서서 기다리지도 않았을걸? 매니저 시켜서 대신 줄 서 있게 하고 입장할 때 되면 그때서야 나타나서 들어갔겠지.”
줄을 서 있던 손님들이 제들끼리 수군거렸다.
그러다 한 사람이 용기내서 손현중에게 사인을 부탁했다.
“저…… 안녕하세요. 팬인데요. 혹시…….”
그러자 내심을 읽은 손현중이 말을 가로챘다.
“사인해 드릴까요?”
“어? 네!”
사람들의 걱정은 기우였다.
손현중은 기분 좋게 사인을 해줬고, 스스로 셀카까지 찍어줬다.
그러자 너도나도 손현중에게 사인과 사진을 찍어 달라 부탁했다.
“자자, 어차피 기다리는 동안 할 일도 없고 지루하겠다. 모든 분들 다 사인도 해드리고 사진도 찍어드릴 테니까 천천히 오세요. 천천히.”
손현중의 이런 친절이 익숙한지 곁에 있던 매니저는 사람들을 말리지도 않았다.
지한 식당 앞에서는 별안간 작은 팬 사인회가 벌어졌고, 그러는 사이 손현중이 입장할 차례가 되었다.
홀 부매니저 설인아가 문을 열고 손현중에게 물었다.
“몇 분이세요?”
“두 명입니다.”
“네, 자리로 안내…… 헉. 소, 손, 손…….”
“네, 손현중 맞아요. 알아봐 주셔서 감사해요.”
“아…… 네. 저, 안내해 드릴게요.”
설인아는 손현중을 홀의 빈자리로 안내했다.
손현중과 매니저 이준호가 마주 보고 자리에 앉자, 설인아는 떨리는 마음으로 간신히 주문하는 법을 설명해 주었다.
이준호는 그런 설인아의 반응을 즐기면서 귀를 활짝 열었다.
‘이제 슬슬 시끌벅적해져야 하는데?’
그래야 맞는 건데 예상과 달리 이상하게 조용했다.
보통 손현중이 등장하면 여기저기서 난리가 나야 했다.
‘뭐지?’
매니저 이준호가 홀 내부를 둘러봤다.
몇몇 손님들이 손현중을 보며 신기해하는 눈빛을 보내긴 했다. 한데 대부분이 밖에서 손현중과 함께 웨이팅을 했던 이들이었다.
그들 말고는 전부 음식에만 집중하고 있었다.
옆에 손현중이 들어왔는지 어쨌는지도 몰랐다.
다들 온전히 음식의 맛을 느끼기 바빴다.
‘얼마나 맛있길래.’
이준호의 마음속에 기대감이 어렸다.
그때쯤 설인아가 주문하는 법에 대한 설명을 마쳤다.
“음……. 저는 제육이랑 김치찌개요. 아, 참치 계란말이로 바꿔 주세요. 우리 매니저는 소불고기에 된장찌개 먹을 거지?”
손현중이 제발 그렇게 먹어 달라는 눈빛을 이준호에게 보냈다.
이준호가 흐흐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네. 주문 받았습니다.”
설인아가 주문지를 주방으로 넘기며 속삭였다.
“지금 홀에 손현중 왔어요.”
그 말에 강희주 아주머니의 눈이 두 배로 커졌다.
“국민배우 손현중? 어디어디? 어머머머! 정말이네?”
강희주가 호들갑을 떨자 요리에 집중하던 한지민과 서정혜의 시선도 덩달아 손현중을 찾았다.
“어머나, 실물이 더 멋지다.”
“너무 젠틀해 보이는데요?”
두 여인이 한마디씩 뱉었다. 그러는 와중에서도 손은 쉬지 않고 움직였다.
이제 지한 식당의 음식이라면 눈 감고도 만들 수 있는 경지에 오른 그녀들이었다.
“이따 혹시 분위기 봐서 사인 받아다 줄 수 있으면 부탁 좀 할게요, 인아 씨.”
“어? 나도!”
“내 것도 부탁해~ 인아야.”
주방에 있는 세 여인이 똑같이 사인을 부탁했다.
설인아가 난처하게 미소 지었다.
* * *
손현중과 매니저는 눈앞에 놓인 한 상 차림을 보며 침을 꼴깍 삼켰다.
“여기가 강지한 사장이 가장 최근에 낸 식당이란 말이지.”
“근데 주방에 강지한 씨는 안 보이는 것 같은데요?”
“그 사람이 운영하는 식당이 몇 갠데. 한 곳에만 붙어 있겠냐? 여기저기 왔다 갔다 하겠지.”
“아, 그렇겠네요.”
손현중의 예상은 틀렸다.
강지한은 지금 지한 레스토랑에 있었다.
손현중이 얻은 정보는 최신 정보가 아니었다.
“그럼 어디…….”
손현중이 경건한 마음으로 찌개에 숟가락을 가져갔다.
지한 밥차를 접하고 나서 영화 촬영이 얼른 끝나기만을 손꼽아 기다린 그였다.
그러다 촬영을 마치자마자 매니저를 대동해서 바로 춘천에 온 것이다.
밥차의 음식들도 그렇게 맛있었는데 과연 식당 음식은 어느 정도일지 기대가 됐다.
손현중이 벅찬 마음을 안고 김치찌개를 한술 떠 입에 넣었다.
그 순간,
“……!”
입안에서 맛이라는 것이 폭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