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벨업 하는 식당-225화 (225/330)

# 225

Restaurant 224. 신선정

지한 레스토랑을 찾은 반가운 손님은 배틀 셰프 심사위원이었던 레이먼 박과 한돈선이었다.

특히 레이먼 박은 도근한의 요리 스승이었다.

해서 그를 바라보는 도근한의 가슴이 벅차올랐다.

밀려들어오는 주문만 아니었다면 버선발로 뛰어나가 맞아주고 싶었다.

한돈선을 보는 강지한 역시 비슷한 심정이었다.

두 사람은 마음과는 달리 함박웃음을 지어 고개 숙이는 것으로 반가움을 표했다.

한돈선과 레이먼 박은 주방 가까이 다가와 말을 건넸다.

“오래간만이에요. 두 분.”

“롱 타임 노 씨. 정말 반갑습니다. 하하하.”

“어떻게 연락도 없이 오셨어요?”

도근한이 물었다.

“미리 연락하고 가면 괜한 특혜라도 받을까 싶어서 갑자기 방문했지. 홀의 전체적인 무드가 판타스틱해. 오픈형 키친도 좋고.”

홀을 둘러보며 레이먼 박이 감탄을 표했다.

“감사합니다.”

“음식만 맛있으면 완벽하겠네요. 호호호.”

한돈선이 농담을 던지고서는 웃었다.

하지만 강지한과 도근한에게는 마냥 농담으로 받아들여지지는 않았다.

특히 한돈선의 식당 ‘아띠’에 가서 음식들을 직접 먹어본 강지한은 그의 수준이 얼마나 높은지 잘 알고 있었다.

과연 레스토랑의 음식이 두 사람의 입맛을 충족시킬 수 있을는지.

긴장을 하니 저도 모르게 마른침이 넘어갔다.

“이제 런치 타임 거의 끝나갈 시간이지요? 느긋하게 식사 마치고 얘기나 조금 나누는 게 어떨까요?”

“알겠습니다.”

“좋습니다.”

한돈선의 제의를 두 사람이 흔쾌히 받아들였다.

흡족해진 두 대가는 홀 직원의 안내에 따라 테이블로 가서 자리를 잡았다.

강지한과 도근한이 시선을 주고 받은 뒤 잠깐 멈췄던 손을 다시 움직였다.

* * *

지한 레스토랑을 오픈한 지 나흘째.

그동안 레스토랑의 매상은 꾸준히 올라갔다.

첫날 총 매출이 400이었는데, 둘째 날은 480으로 올랐고 셋째 날은 500선을 돌파했다.

물론 첫째 날 매출에서는 백진목이 따로 챙겨주었던 200만 원은 제한 것이다.

오늘은 다른 날보다 점심 손님이 더 많았다.

이대로 저녁 장사까지 탄력을 받으면 매출은 또 한 번 기록을 갱신할 상황이었다.

오픈한 지 나흘 만에 이렇게 장사가 잘되는 건 식당을 찾은 손님들의 재방문률이 아주 높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들은 다음에 올 때 새로운 지인을 꼭 데리고 찾아왔다.

식당의 맛이 좋으니 직접 소개를 시켜주고 싶은 마음에서였다.

내가 발견한 맛집으로 데려온 지인이 맛있게 식사를 하면 그것만큼 뿌듯한 일도 없었다.

물론 지인에게 점수를 따게 되는 것은 당연한 일.

때문에 직장인의 경우 직속 상사들을 모시고 오는 경우가 상당했다.

맛 하나만 확실해도 파급력이 이렇게나 좋아진다.

한데 지한 레스토랑은 가성비 또한 어마어마했다.

런치 타임 한정 메뉴 미니 코스는 28,000원으로 식전 빵, 스프, 샐러드, 에피타이저, 파스타, 메인 디쉬, 후식까지 한 상에 즐길 수 있었는데, 양이 결코 적지 않았다.

게다가 맛의 수준은 일괄적으로 레벨 6이 되었다.

원래 파스타는 레벨 5였는데, 강지한이 요리 레벨업권을 주방 직원들에게 하나씩 사용해 준 덕에 6으로 오른 것.

그 훌륭한 음식들을 맛본 한돈선과 레이먼 박은 포근한 미소를 머금었다.

“어떠신지요?”

한돈선이 레이먼 박의 감상을 먼저 물었다.

“그레이트하네요. 확실히 두 사람이 손을 잡으니 발현되는 시너지가 큰 것 같습니다. 맛도 맛이지만 아이디어가 무척 좋아요.”

“그렇죠? 미니 코스라니. 회사원들의 넉넉지 않은 점심시간을 제대로 공략했어요. 이렇게 하면 회전률이 좋아질 수밖에 없지요. 가격 또한 거론 안 할 수가 없네요. 이 정도의 맛을 내면서 3만 원이 채 안 되는 가격이라니요.”

“Small profits and quick returns(박리다매). 사용된 재료원가를 생각하면 크게 남진 않아도 이 정도의 회전률이면 충분히 많은 수익을 볼 수 있을 거예요.”

“맛만 봤을 때 다른 일류 레스토랑과 비교하면 어떨까요?”

“여기보다 잘하는 레스토랑은 제법 있어요. 다만 지한 씨와 근한 씨가 잡은 컨셉은 고급화보다는 접근성인 것 같군요. 그럼에도 막상 음식의 수준은 친근하게 다가가는 패밀리 레스토랑보다 훨씬 웃돈다는 것이 매우 인터레스팅(Interesting)한 부분이죠.”

“한마디로 최고의 맛을 자랑하는 것은 아니지만 독보적인 행보를 보인다는 얘기겠군요.”

“그겁니다. 베스트 원보다는 온리 원. 기본적인 실력이 있는 사람들이니 아이디어를 잘 잡으면 무조건 성공한다고 봐야 할 겁니다.”

“저도 같은 생각이에요. 호호호.”

두 대가가 그들만의 품평을 나누었다.

그 모습을 도근한이 흘끔거리며 훔쳐봤다.

그에 반해 강지한은 이미 나가 버린 음식에는 관심을 두지 않고서 현재 만들어야 할 것에만 집중을 하고 있었다.

이를 확인한 도근한이 얼른 자신을 다그쳤다.

‘이러니까 지한이를 못 따라 잡지. 집중하자.’

* * *

브레이크 타임.

한돈선, 레이먼 박, 강지한, 도근한은 빈 테이블에 둘러 앉아 담화를 나누었다.

주제는 그간의 지난 얘기들과 오늘 두 대가들이 먹은 음식에 대해서였다.

대가들은 둘이서만 나누었던 평가에 대해 가감 없이 들려주었다.

특히 레이먼 박은 자신의 경험을 살려 레스토랑을 운영하는 데에 있어 필요한 조언들을 아낌없이 전수했다.

거기에는 요리 재료를 최상으로 관리하는 팁, 재료 본연의 특징과 맛을 더욱 끌어내는 방법, 그리고 자신만의 노하우가 담긴 요리 비법들까지 담겨 있었다.

하나하나가 주옥같은 말들이었다.

강지한과 도근한은 그 얘기들을 메모까지 해가며 깊이 새겼다.

특히 도근한은 무언가 큰 깨달음을 얻은 것 같은 표정이었다.

한 차례 열띤 대화들이 오고간 뒤, 잠시 소강상태가 찾아왔다. 짧은 침묵을 먼저 깬 건 한돈선이었다.

“사실 오늘 찾아온 건 레스토랑의 오픈을 축하하기 위함도 있지만, 한 가지 제안할 것이 있어서랍니다. 아, 이 제안은 내 개인적인 용무예요. 그리고 강지한 씨에게만 해당되는 얘기지요.”

“그럼 자리를 피해드릴까요?”

사전에 아무런 얘기도 듣지 못했던 레이먼 박이 물었다.

한돈선은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같이 들어주셔도…… 아니, 같이 들으셔야 하는 얘기입니다.”

한돈선의 분위기가 그 어느 때보다도 진지해졌다.

그는 강지한을 지그시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지한 씨, 혹시 신선정이라고 들어보셨나요?”

“네. 알고 있습니다.”

신선정.

자타공인 대한민국 제일가는 한식집이라 일컬어지는 곳으로 그 역사는 100년을 자랑한다.

신선정의 본(本)은 200년 역사의 안동 고택에 자리하고 있다.

대지면적만 1,500평에 건물 총 면적 250평을 자랑하는 이 고택은 모든 건물들을 보수공사해서 식당의 홀과 주방으로 활용하고 있으며, 분점은 존재하지 않는다.

미슐랭 가이드에도 별 세 개를 받은 한국의 한정식당으로 소개되는 만큼 음식의 수준은 말할 것도 없으며, 장인 정신이 뛰어난 곳으로 오로지 실력 경합을 통해서만 후대의 주인이 정해지는 엄격한 식당이었다.

그리고 강지한이 한식 지식을 얻는 데 도움을 받고 있는 고(故) 한정신 역시 신선정의 주방을 책임졌던 사람이고 한돈선은 그 한정신의 핏줄이었다.

한데 한돈선은 지금 신선정에는 얼씬도 않으며 독립적인 식당을 만들어 새로운 네임밸류를 쌓아 나가고 있었다.

이런 정보들은 인터넷에서만 검색해도 쉽게 나오는 정도로 강지한 역시 익히 알고 있었다.

“아직 지한 씨에게는 먼 이야기겠지만 내후년 봄에 신선정의 새로운 주인을 가려내기 위한 경합이 열린답니다.”

“그렇군요. 한데 그 말씀을 왜 제게 하시는 건지……?”

“실은 일전에 지한 식당을 방문했을 때에도 이 얘기를 꺼낼까 말까 한참 고민했었더랬지요. 경합 자체는 내후년이라고 하지만 사실 경합을 벌일 자격을 얻기 위해서는 한씨 일가 직계 후손이 아닌 외부인일 경우 금년 1월이 지나기 전까지 후보자로 등록을 해놓아야 하거든요.”

신선정의 후계자를 뽑는다는 건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한식의 최정상 자리에 있는 사람을 가려낸다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때문에 신정정의 후계자는 엄격하고 깐깐한 심사 속에서 진행되어진다.

한데 여기서 특이한 점이 하나 있었다.

바로 한씨 가문의 사람들이 아니라도 경합에 참가할 수가 있다는 것.

한씨 가문의 사람들은 한식에 뛰어난 조예를 보이면 별다른 자격 없이 후계자 경합에 참여가 가능하다.

한데 외부의 사람이 후보자로 등록하려면 길고 어려우며 보이지 않는 심사를 거쳐야 했다.

한마디로 예선 심사 같은 것이다.

아울러 아무나 예선 심사를 치를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한씨 가문 사람의 추천이 필수였다.

일단 추천이 들어가게 되면 마치 미슐랭 스타를 검증하는 것처럼 그가 운영하고 있는 식당을 일 년 동안 꾸준한 간격으로 서로 다른 잠행단이 드나들며 총 10번의 평가를 매긴다.

그리고 그 10번의 평가에서 합격점인 90점 이상을 받아야만 1차 검증을 통과하고 2차 검증에 들어가게 되는데, 이 또한 꼬박 일 년의 시간이 걸린다.

이때 중요하게 보는 것은 일 년간 실력의 발전 유무다. 발전이 없으면 탈락하지만, 발전이 있어도 한씨 가문의 사람들과 대등히 겨루어 볼 수 있을 정도가 아니면 이 역시 탈락하고 만다.

게다가 1차와 마찬가지로 후보자 본인이 검증을 받는지도 모르게 은밀히 진행된다.

그렇게 2차 심사까지 통과한 후에, 비로소 후계자로서 경합을 벌일 수 있는 무대에 서게 된다.

이러한 제도는 초대 신선정의 주인이 만들었다.

이유는 한씨 일가라고 해서 실력이 없어도 무조건 신선정을 물려받을 수 있을 거란 안일한 생각을 경계토록 하기 위함이었다.

한데 여태 이 심사과정을 무사히 거쳐 경합 무대에 섰던 외부인은 딱 한 명밖에 없었다.

말인즉, 한씨 일가가 이 제도를 두려워해 스스로의 발전을 게을리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경합을 마치고 신선정의 주인이 되면 그에게는 신선숙수라는 칭호가 내려진다.

신선정을 대표하는 숙수(熟手-음식을 만드는 사람)라는 뜻으로, 이들에겐 초대 신선숙수로부터 대물림되어 온 신선숙수의 증표가 하사된다.

그 긴 얘기들을 한돈선에게 전부 듣고 난 강지한은 여전히 모르겠다는 얼굴로 그를 쳐다봤다.

아니, 이미 그가 무슨 얘기를 하려는 건지 짐작은 갔지만 설마 하는 마음이 더 커서 애써 모른 척했다.

결국 한돈선은 더 말을 돌리지 않았다.

“이번 신선정의 후계자 경합에 참가해 보지 않으시겠어요?”

역시나.

그것은 마른하늘에 날벼락 같은 제안이었다.

강지한의 실력이 뛰어난 것은 맞지만 감히 대한민국 최고의 한정식 대가라는 타이틀을 욕심낼 정도는 아니었다.

“……제가요?”

“네.”

놀라 음성이 떨리는 강지한과 달리 한돈선은 담담하게 말했다.

“하하. 이거…… 너무 갑작스러운데요.”

“그렇겠지요. 나는 오래전부터 이 고민을 안고 살았지만 지한 씨에게는 그렇지 않을 테니까요.”

“오래전부터라 하심은?”

“배틀 셰프를 치를 때, 아마 네 번째 경합에서부터 그런 욕심이 자라나기 시작했던 것 같군요.”

“아…….”

놀라 벌어진 강지한의 입이 다물어질 줄을 몰랐다.

설마 한돈선이 자신을 그렇게까지 생각하고 있을 줄이야.

가슴이 벅차면서도 한 편으로는 약간의 부담감이 따랐다.

“근데 왜 절 선택하신 건가요? 대가님의 주변에는 저 말고도 훌륭한 요리사들이 많을 텐데요.”

그 말에 한돈선이 씁쓸한 웃음을 머금었다.

“생각보다 내 인맥이 그리 좋지 않습니다. 실상 방송에 자주 얼굴을 내비치고 있는 것도 다 잘려 나가 버린 인맥을 다시 이어 붙이기 위함이지요. 호호호.”

약간은 음울한 대가의 음성에 믿을 수 없다는 듯 반론한 건 도근한이었다.

“에이, 설마요. 방송에서 보면 인맥이 어마어마하시던데.”

“그래서 매스컴이 무서운 겁니다. 거지도 왕으로 만들어 버릴 수 있는 것이 바로 매스컴이지요. 매스컴에서 술자리 안주거리처럼 자주 회자되는 내 여러 인맥들……. 그래요. 한때는 정말 나와 함께할 연이라 생각하고 자주 교류했었어요. 하지만 내가 힘을 잃고 나서는 모두 거짓말처럼 등을 돌려버렸지요.”

한돈선의 옆에서 잠자코 얘기를 듣고 있던 레이먼 박의 미간이 살짝 구겨졌다.

그는 이미 익히 들어 알고 있었기에 이어질 내용이 결코 유쾌하지 않으리란 걸 짐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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