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벨업 하는 식당-227화 (227/330)

# 227

Restaurant 226. 강지한 찾아 삼만 리

손현중의 매니저 이준호는 산처럼 부른 배를 어루만지며 차를 몰고 있었다.

그가 내비게이션의 안내를 따라 이동하는 목적지는 지한 만두였다.

지한 식당에서 그 음식에 홀딱 반한 손현중이 춘천에 있는 강지한의 모든 음식점들을 전부 섭렵해야겠다고 선언했다.

그 바람에 지한 분식과 지한 김치전골에서 끼니를 두 번 더 때웠고, 지한 반찬에서 반찬을 스무 팩이나 사는가 하면 지한 김치 매장에 들러 모든 김치들을 종류별로 쓸어왔다.

이제 지한 만두가 마지막 코스였다.

오후 다섯 시.

지한 만두가 브레이크 타임을 끝내고 저녁 장사를 시작하기 위해 문을 열었다.

이미 그때는 지한 만두 매장 앞에 손님들의 줄이 길게 늘어져 있었다.

이제는 일상적인 광경에 박춘식은 당황하지 않고 미소로 손님들을 반기며 말했다.

“소중한 고객님들. 오늘도 우리 매장을 찾아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발걸음한 노고 실망 시켜 드리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어요. 지한 만두 저녁 장사 시작합니다.”

박춘식이 진심을 담아 인사말을 전했다.

마침 차에서 내리다 이를 듣게 된 손현중의 콧잔등이 시큰해졌다.

그가 옆에 선 이준호를 툭 쳤다.

“야, 내가 정말 나이를 먹긴 먹었나 보다.”

“형, 마흔이 넘었어요. 많이 먹었죠.”

“자식이, 말을 해도 꼭. 아무튼 저렇게 진심 넘치게 담긴 어르신들 목소리만 들어도 눈물샘 터질라 그래. 어휴.”

“감탄하는 와중에도 줄이 계속 늘어나는데요.”

이준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정신을 차린 손현중이 후다닥 움직여 줄을 섰다.

이번에도 손현중을 알아본 사람들이 사인과 사진을 요청했다.

강지한의 매장들을 둘러볼 때마다 똑같이 겪었던 일이었다.

그럼에도 손현중은 귀찮아하는 기색 한 번 없이 사람들의 요구를 친절히 들어주었다.

그러는 사이 줄은 빠르게 짧아졌고 드디어 손현중의 차례가 왔다.

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으니 젊은 여종업원이 나와 물었다.

“드시고 가실 건가요? 어머, 손현중 씨 맞아요?”

“네~ 바로 그 국민배우 손현중 맞고, 포장해 갈 겁니다.”

“테이블 비는데 드시고 가시죠!”

여종업원은 손현중을 조금이라도 더 보고 싶어 그리 권했다.

“그러면 좋겠는데 이미 배가 너무 불러서 들어갈 자리가 없어요. 포장해서 서울 가다 먹으려고요.”

“그러세요? 알겠습니다. 고기만두, 김치만두 있는데 어떻게 포장해 드릴까요?”

“각각 2인분씩 부탁해요.”

“네, 주문 받았습니다. 다음 분, 드시고 가실 건가요?”

여종업원은 손현중의 뒤로 줄을 선 다섯 사람에게도 주문을 받은 뒤, 다시 식당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잠시 후, 손현중이 부탁했던 만두를 가지고 나왔다.

매니저가 만두값을 카드로 계산한 뒤, 영수증을 넘겨받았다.

“안녕히 가세요.”

여종업원이 손현중에게 인사를 건넸다.

그에 손현중이 넌지시 물었다.

“그…… 강지한 사장님은 만두 가게에 계신가 보죠?”

“네?”

“아, 제가 지금 춘천에 있는 지한 푸드 관련 식당을 전부 돌아보고 오는 건데, 사장님 얼굴을 볼 수가 없어서요. 혹 안에 계시면 인사라도 드릴까 싶어서. 하하.”

“사장님 여기 안 계세요.”

“그래요? 이상하네. 내가 여기저기 둘러보는 사이 길이 엇갈려서 다른 매장에 가셨나?”

“아니요. 그게 아니라 요즘에는 서울에 주로 계세요.”

“서울에는 왜요?”

“아, 거기에 레스토랑을 새로 오픈하셨거든요. 인터넷에 지한 레스토랑이라고 검색해 보시면 정보 많이 나올 거예요.”

“레스토랑을 오픈했다고요? 서울에?”

“네.”

전혀 몰랐던 얘기였다.

“아,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새로운 정보를 접한 손현중이 이준호와 함께 차에 올랐다.

꺼놨던 시동을 건 이준호가 조수석에 앉은 손현중을 불안한 시선으로 쳐다봤다.

“형. 설마…… 에이, 아니죠?”

“준호야, 서울 쏴라.”

“네! 집으로 갑니다.”

“지한 레스토랑 내비 검색해서 쏴.”

“형……. 저 진짜 배 터질라 그래요.”

“가는 동안 꺼질 거야.”

“그 사이에 배가 어떻게 꺼집니까.”

“형이 용돈 좀 주면 꺼질걸?”

“지한 레스토랑. 바로 검색 들어갑니다.”

* * *

참 사람이란 간사한 동물이었다.

서울로 출발한 지 한 시간 정도가 지났을 무렵.

이준호는 뱃속에 여유가 살짝 생기자마자 지한 레스토랑의 음식들이 기대되기 시작했다.

사실 손현중과 함께 지한 푸드의 모든 식당을 돌아다니면서 단 한 번도 실망한 적이 없었다.

배가 부른 와중에도 음식이 꾸역꾸역 들어갈 만큼 유혹을 뿌리치기 힘든 맛이었다.

“만두나 하나 먹어볼까?”

옆에 앉아 있던 손현중이 포장해 온 만두 한 알을 꺼내 들었다.

“형. 지금 레스토랑 가잖아요.”

“알아.”

“만두 먹으면 레스토랑에서 뭐 먹기나 하겠어요?”

“누가 그러더라. 위는 늘어나라고 하면 늘어난다고. 무엇보다 만두 더 식어버리면 안 돼. 그래도 열기가 있을 때 먹어야지.”

“지한 식당에서 한 상 차림에 만두 같이 나왔었잖아요. 그 맛이겠지.”

“이 자식아, 그거랑 전문점에서 파는 만두랑 같겠냐? 크기부터 다르잖아. 지한 식당 만두는 좀 큼직한데, 이건 한 입 크기라고. 어디. 냠.”

고기만두 한 알을 입에 넣고 씹는 순간 손현중의 눈이 크게 떠졌다.

만두피를 찢자마자 광활한 육즙이 쭉쭉 터져 나오는 게 아닌가.

그것도 육향을 가득 품은 아주 진한 육즙이!

육즙의 파도가 쓸고 간 다음에는 촉촉하게 젖은 만두소가 씹히며 좋은 식감을 안겨주었다.

“와, 이거 예술이다.”

손현중의 반응에 이준호가 넌지시 물었다.

“뭐…… 식당에서 먹은 거랑 좀 달라요?”

“한 두 배는 더 맛있다. 식당 만두는 육즙이 이렇게까지 많지는 않았는데, 대박이네.”

“형, 그럼 저도 하나만…….”

“옛다.”

손현중이 고기만두 한 알을 이준호의 입에 넣어주었다.

만두를 씹어 삼킨 이준호의 반응은 손현중과 크게 다를 것이 없었다.

“와. 이거 만두 완전 역대급인데요?”

“그렇지? 김치만두는 또 어떨까나.”

손현중은 바로 김치만두도 맛을 보았다.

고기만두가 육즙의 향연이라면 김치만두는 잘 만든 김치의 시원함과 깊은 맛, 그리고 감칠맛의 삼중주가 다른 부재료들과 완벽하게 어우러져서 입안을 휘몰아치며 명품 만두란 이런 것이다! 하고 외치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만두를 맛보고 나니 지한 레스토랑의 음식들이 더 기대가 되었다.

무엇보다 강지한이라는 사람은 대체 어떤 인물인지 너무 궁금해졌다.

“준호야.”

“네.”

“밟아라.”

“네.”

두 사람을 태운 밴이 빠르게 고속도로를 질주했다.

* * *

지한 레스토랑.

하루의 영업이 거의 다 끝나가는 시각.

마지막으로 입장한 손님의 라스트 오더가 주방으로 전해졌다.

“오늘은 이걸로 끝이네.”

도근한이 주문지를 위에 붙이며 혼잣말을 흘렸다.

그런데,

딸랑-

말이 끝나기 무섭게 새로운 손님 두 명이 홀 안으로 들어섰다.

“아직 영업 안 끝났죠?”

헐레벌떡 안으로 들어와 그리 묻는 사내를 강지한은 대번에 알아볼 수 있었다.

‘손현중?’

강지한이 즐겨보는 예능프로에 손현중은 게스트로 자주 등장하곤 했다.

그는 친숙하고 편안한 이미지에 미친 연기력을 바탕으로 국민배우의 타이틀을 달게 된 만큼 예능프로에도 편안하게 자주 얼굴을 비추곤 했다.

‘진짜 손현중이 맞는 거야?’

그런 강지한의 의문은 손현중의 머리 위에 떠 있는 파란색 수치가 해결시켜 주었다.

‘94!’

국내 인지도가 무려 94였다.

이 정도의 인지도를 자랑하는 사람이라면 손현중이 분명했다.

“어? 야. 손현중 아니냐.”

도근한 역시 손현중을 알아봤다.

뿐만 아니라 주방과 홀의 다른 직원들도 모두 그의 존재를 눈치챘다.

식사를 하고 있는 손님들만 손현중에게 별다른 관심이 없었다.

그만큼 음식에 집중을 하고 있었기 때문.

반면 아직 음식을 받지 못한 손님들은 손현중을 보고서 수군거렸다.

손현중이 오늘 지한 푸드 소속 매장들을 다녀보며 매번 똑같이 겪었던 현상들이었다.

이준호는 이제 데자뷰를 보는 것만 같았다.

두 사람을 보고 잠시 넋이 나가 있던 홀 매니저가 얼른 정신을 차리고 다가가 빈자리로 안내했다.

손현중은 자리에 앉자마자 다급히 물었다.

“아직 라스트 오더 받을 수 있으니까 자리 안내해 준 거죠?”

“그럼요.”

“다행이다. 지금 춘천에서 오는 길인데 토요일인 걸 생각 못했다가 중간에 어찌나 막히는지. 조마조마했네.”

“그러셨어요?”

“어디…… 추천 메뉴 뭐가 있어요?”

“손님들께서 가장 많이 찾으시는 건 디너 코스 메뉴입니다.”

홀 매니저는 메뉴판을 펼쳐서 두 사람의 앞에 하나씩 놓아주며 말했다.

“그럼 그걸로 두 개 주세요. 파스타랑 메인 두 가지만 선택 가능한가요?”

“네.”

손현중이 무엇을 먹을까 고민했다.

그 모습을 주방에서 스테이크를 굽던 도근한이 신기하게 쳐다봤다.

“어떻게 손현중이 우리 레스토랑에 다 찾아오냐? SNS에 글 하나 안 올려주나? 그럼 대박인데.”

국민배우가 자신의 SNS에 여기서 식사를 했다는 글 하나만 올려줘도 그 파급력은 어마어마해진다.

도근한의 말을 들은 강지한 역시 손현중이 소문을 내주길 내심 바랐다.

그렇게 되면 연예인 동료들이 더욱 많이 찾아올 테고 네 번째 스테이지의 목표를 달성하는 일이 훨씬 수월해질 테니 말이다.

홀 매니저가 두 사람의 주문을 받아 주방에 넘겼다.

그게 진짜 라스트 오더였다.

더 이상은 손님을 받을 수 없었다.

“국민배우가 찾아오니까 괜히 떨리네.”

주문지를 보며 도근한이 중얼거렸다.

그런 도근한과 달리 강지한은 일말의 동요 없이 잔잔한 호수 같은 마음으로 요리를 만들어 나갔다.

* * *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였다.

강지한의 손맛은 손현중의 혀를 실망시키지 않았다.

‘차가 막혔길 다행이지.’

예상보다 차로 이동하는 시간이 더 걸려서 그 사이에 소화가 조금 됐다.

덕분에 코스로 나온 모든 메뉴들을 후식까지 깔끔하게 맛볼 수 있었다.

만약 배가 불러 뭔가를 남겼다면 두고두고 후회할 뻔했다.

‘개인적으로는 지한 식당 음식이 조금 더 맛있었던 것 같은데 여기도 나쁘지 않아. 아니, 아주 좋아. 이 가격에 이런 호화스러운 맛을 즐길 수 있다는 게 거짓말 같아.’

손현중이 이준호의 눈치를 살폈다.

터질 것 같은 배를 문지르며 힘들어 하고 있었는데, 표정은 만족스러웠다.

“준호야.”

“네?”

“둘 중에 누가 강지한이냐?”

이준호가 주방에 서 있는 검은 조리사 복의 청년들 중 조금 더 키가 큰 쪽을 가리켰다.

“저 사람이요.”

“오, 훈남이네. 엉? 가만……. 어디서 본 적이 있는 것 같은데.”

“배틀 셰프?”

“나 그거 안 봤다니까. 어디더라… 아! 신 푸드 씨에프! 맞지?”

“아아, 맞아요. 씨에프도 찍었었어요.”

“와, 그랬구나. 아니 근데 되게 젊어 보이는데 요리를 이렇게 잘한다고?”

“그러게요. 대단한 것 같아요, 진짜.”

“결정했다.”

“네? 뭐를요?”

손현중은 이준호의 물음에 대답하지 않고 주방 쪽으로 저벅저벅 걸어가 인사를 건넸다.

“아주 잘 먹었습니다. 정말 맛있었어요.”

모든 주문을 마무리한 상황이라 정리를 하고 있던 강지한과 도근한이 활짝 미소 지었다.

“맛있게 드셔주셔서 저희야 말로 영광입니다.”

“설마 국민배우님께서 우리 레스토랑을 찾아주실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하하하. 음……. 실은 제가 방금 춘천에서 강 사장님이 런칭하신 모든 식당들을 다 들러보고 오는 길이거든요.”

“그러셨어요?”

강지한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네, 촬영 판에서 부른 지한 밥차 음식 맛에 반해서 춘천까지 찾아간 거죠. 그런데 정작 사장님은 서울에 계시다 해서 다시 여기까지 왔습니다.”

“고생하셨네요. 너무 감사한데 오늘 드신 건 저희가 서비스해 드리겠습니다.”

감동을 받은 강지한이 그리 말했고 도근한은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손현중은 이를 거절했다.

“아니에요. 이렇게 맛있는 음식 먹고 어떻게 돈을 안 내겠습니까? 그건 그렇고…… 좋은 식당 발견한 김에 여기서 모임을 좀 갖고 싶은데. 모임 예약도 받으시는지?”

“조용한 모임을 원하시면 2층에 룸이 세 개 있습니다.”

도근한이 잽싸게 대답했다.

“그런가요? 그럼 조만간 연락드리도록 할게요. 저랑 친한 후배들 데리고 또 방문하겠습니다.”

그 말에 강지한의 가슴이 두근두근거렸다.

원래 끼리끼리 어울리는 법이다.

국민배우 손현중의 친한 후배라고 하면 그만큼 잘나가는 연예계 쪽 사람들일 게 분명했기 때문.

‘이렇게 풀리다니.’

일이 생각지도 못한 방식으로 풀려 나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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