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벨업 하는 식당-196화 (196/330)

# 196

Restaurant 195. 천재의 사이즈

그야말로 충격이었다.

춘천을 대표하는 한식 대가 천명옥의 아들이자 명옥정 분점의 주방장으로 있는 백상준이었다.

나름 춘천 요리사들 사이에서는 방귀 좀 뀌는 그였다.

어린 나이에 상당한 솜씨를 자랑하는 만큼 매스컴도 여러 번 탔다.

그런 그가 춘천의 작은 요리 대회에 나와서 지한 식당의 주방 막내라는 사람과 같은 점수를 받았다.

수치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백상준은 도저히 표정 관리가 되지 않았다.

그런 백상준의 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진행자는 계속해서 인터뷰를 이어나갔다.

“처음에 우려했던 상황이 벌어졌네요. 지한 식당의 주방 막내이신 조정호 씨와 동점이 되었는데 많이 당황스럽지 않으십니까?”

“하하. 지금 무슨 말을 하면 좋을지 열심히 찾고 있는 중이에요.”

백상준이 너스레를 떨며 웃었는데 입과 달리 눈은 전혀 웃고 있지를 않았다.

그는 지금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은 심정이었다.

어떻게 한낱 작은 식당 주방 막내와 같은 점수가 나올 수 있단 말인가?

이상하게 강지한과 연관되면 모든 일이 꼬여 버리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음식 맛을 제대로 알고 평가한 것은 아닐 테니 진정하자.’

심사위원은 어디까지나 한식에 대해 깊은 조예가 없는 외국인들이었다.

게다가 요리를 확실히 분석할 줄 아는 전문 심사위원들 또한 아니지 않은가.

백상준은 스스로에게 좋은 쪽으로 생각하며 마음을 계속 다스렸다.

“그래도 조금 충격이긴 하시겠어요.”

“아무렇지도 않다면 거짓말이겠죠? 저도 사람인데요. 하하. 근데 대단하시네요. 저랑 동점을 받으시다니. 저분 정말 주방 막내 맞나요?”

진행자가 조정호에게 마이크를 건네며 물었다.

“주방 막내 맞으시냐는데요?”

“네, 맞습니다.”

“실력이 아주 좋으시네요. 지한 식당 말고 다른 곳에서 일한 경력이 제법 짱짱한가 봅니다.”

백상준이 넌지시 조정호를 떠봤다.

‘내 말이 맞을 거야.’

그렇지 않고서야 지금 같은 상황이 벌어질 수는 없는 일이었다.

한데 조정호의 입에서 나온 대답은 백상준을 또 한 번 굳어버리게 만들었다.

“식당 주방에서 일을 한 건 이번이 처음입니다. 기간은 세 달 정도 됐습니다.”

“……뭐라고요?”

백상준이 놀라 되물었다.

조정호의 말은 사실이었다.

그는 요식업 사업에 뛰어들어 레시피 개발을 한 적은 있지만 직접 주방에 들어간 적은 없었다.

그리고 지한 식당에서 일을 하게 된 것이 8월이었으니 이제 주방 일을 한 지 세 달밖에 되지 않은 것 또한 맞았다.

‘고작 세 달 일했다고?’

백상준은 그런 조정호의 얘기가 영 믿기지 않았다.

그런데 그때 스텝 한 명이 다급히 무대 위로 올라와 진행자에게 뭐라고 소곤거렸다.

그 말을 전해들은 진행자의 입이 저도 모르게 살짝 벌어졌다.

스텝이 내려가자 진행자가 난색을 표했다.

“이것 참. 어쩌지요? 조정호 씨의 점수가 계산이 잘못됐었답니다.”

“아, 그런가요?”

진행자의 말에 백상준의 얼굴이 확 밝아졌다.

‘그럼 그렇지.’

역시 실수가 있었던 모양이다.

그렇지 않고서는 지금의 상황이 납득되지 않았다.

비로소 백상준이 여유를 되찾았다.

진행자는 이 상황을 부드럽게 넘기기 위해 괜히 우스꽝스러운 말투로 스텝들을 타박했다.

“거, 그러게 내가 계산할 때 자네들 머리를 믿지 말고 계산기를 믿으라고 말씀드렸잖아요. 아무튼 진행이 매끄럽지 못했던 점, 고개 숙여 사과드리면서 조정호 씨의 점수를 다시 발표하도록 하겠습니다. 조정호 참가자의 최종 점수는!”

진행자가 좌중을 한 번 슥 둘러보며 긴장감을 높였다.

다들 그의 입이 얼른 열리기를 바랐다.

특히 백상준의 마음이 가장 간절했다.

진행자는 사람들의 인내심이 바닥나기 직전, 점수를 밝혔다.

“96점입니다!”

순간 마음 놓고 있던 백상준의 얼굴에서 핏기가 싹 가셨다.

“……네?”

자신이 잘못 들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되묻는 백상준.

그러나 돌아오는 건,

“96점! 입니다!”

냉정한 현실이었다.

“아니…… 96점이라고요?”

“아, 백 셰프님 충격이 크신 것 같은 모습입니다.”

“…….”

백상준은 기가 탁 막혀서 말이 나오지 않아 입을 다물었다.

한편 무대 밑에서 이 광경을 지켜보고 있던 사람들이 술렁거렸다.

“뭐야? 백상준이 졌어?”

“춘천을 대표하는 스타 셰프라더니 지한 식당에서 세 달 일한 주방 막내한테 개 발렸네.”

“겁나 쪽팔리겠다. 처음에 은근히 폼 잡더니. 크큭.”

“아까 심사위원들 시식하러 왔을 때 기억나냐? ‘즐기세요~’ 푸하하.”

“어우, 내 얼굴이 다 빨개지네.”

“지금 완전 얼척 없는 얼굴인데. 아까 그 여유 다 어디 갔냐.”

“나 같아도 쪽팔리지.”

무대 위에서 굳어버린 백상준의 모습을 안타까워하는 이는 별로 없었다.

백상준에게서는 처음 볼 때부터 뭔지 모르게 으스대는 것 같은 기운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인터넷 방송을 진행할 때도 그랬다.

시청자들은 백상준이 등장하면서부터 그를 조금 불편해했다.

원인은 백상준이 살아온 삶 자체에 있었다.

본인은 최대한 겸손하게 행동한다고 하지만 어린 시절부터 천재 소리를 들으며 엘리트 코스를 밟아 성장하면서 항상 다른 이들을 내려다보기만 했던 그다.

때문에 저도 모르게 그런 오만함이 몸에 밴 것이다.

반면 조정호는 처음 인터뷰를 할 때 잔뜩 얼어서 스스로 대인기피증을 이겨내기 위해 노력중이라고 진솔한 말을 했었다.

그로 인해 두 사람의 메뉴가 겹친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사람들은 저도 모르는 사이 마음속으로 조정호를 응원하게 됐다.

“백 셰프님, 괜찮으세요? 힘드시면 앰뷸런스라도 불러드릴까요?”

진행자가 농담을 했다.

그것이 백상준의 귀에 고깝게 들렸다.

‘이분은 나한테 악감정이 있는 건가?’

왠지 모르게 자신이 위기에 처하는 걸 은근히 즐기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물론 백상준의 착각이었다.

진행자는 백상준이 누구인지 오늘 알았다.

아무런 연도 없던 이에게 악감정을 가지고 대할 이유는 없었다.

그는 그저 이 대회를 무겁지 않게 끌어가려고 노력하는 중이었다.

게다가 대회 초반에 백상준이 나름 성숙하고 여유로운 태도를 보여주었기에 이 정도의 액션은 받아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후우.”

백상준이 저도 모르게 미간을 찌푸리고 한숨을 내쉬었다.

이를 본 진행자는 그의 자존심이 상당히 구겨졌다는 걸 알았다.

‘아직 애구나.’

그렇게 판단한 진행자가 얼른 백상준에게 귀를 가져가 귓속말을 듣는 척했다.

“네, 백상준 씨. 네? 뭐라고요? 방금 연기 어땠냐고요? 아~ 진심으로 짜증나신 줄 알았습니…….”

진행자는 백상준의 이미지를 망치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그런데, 그의 연기가 채 끝나기도 전에 백상준이 몸을 틀어 무대 아래로 내려가 버렸다.

움직이는 걸음걸음이 과격한 게 화가 가득 담겨 있었다.

진행자는 멍해졌고 모여 있던 관객들은 어처구니없이 그런 백상준을 쳐다봤다.

“뭐야? 진짜 기분 상해서 간 거야?”

“대박이다.”

“아니 전문 심사위원들이 평가를 한 것도 아닌데 결과가 그렇게 나올 수도 있지 뭘 저렇게 예민하게 받아들여?”

“인성 진짜 오졌네. 하하.”

백상준을 흉보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아까와는 달리 상당히 컸다.

“……짜증나.”

무대 밑으로 내려가면서 그것을 듣고 만 백상준이 혼잣말을 흘렸다.

그런데 그 소리가 스피커를 통해 고스란히 흘러나왔다.

-짜증나.

“뭐야? 방금 저 사람 짜증난다고 한 거야?”

“미쳤네, 완전.”

‘아차!’

무대 뒤로 퇴장한 백상준의 다리가 후들후들 떨려왔다.

마음의 여유를 완전히 잃어버리는 바람에 아직 마이크가 채워져 있다는 걸 인지 못하고 말았다.

“백상준 뭐냐! 완전 실망!”

“다시는 명옥정 안 간다!”

“스타 셰프는 얼어 죽을! 인성부터 갖춰라!”

우우우우!

요리 대회를 보러 온 사람들은 어느새 한마음이 되어 백상준을 비난하고 있었다.

백상준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해졌다.

그가 핀마이크를 신경질적으로 떼어 버리고서 다가오던 스텝에게 던지듯 건넸다.

그리고 인사도 없이 자신의 차를 몰아 떠나 버렸다.

백상준이 보여준 예상 밖의 행동에 잠시 얼이 나가 있던 진행자가 빠르게 상황을 수습했다.

“아, 백 셰프님의 스케줄이 오늘 참 빡빡한 와중에 찾아주셨던 것인데 진행이 늘어지면서 급히 다음 스케줄을 맞추기 위해 가신 것 같습니다. 그럼 우승자 조정호 씨의 시상식을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규모가 큰 대회는 아니라서 1등에게만 시상을 해주지만, 다른 분들께도 전부~ 5만 원 상당의 참가상품이 주어지는 만큼 아쉬워하지 말아주셨으면 합니다. 참고로 1등상은 20만 원 상당의 상품권입니다. 얼마 차이 안 나죠?”

진행자의 말에 객석 구경꾼들 사이에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백상준에게 향해 있던 관심을 조정호에게 돌린 그가 부드럽게 시상식을 진행해 나갔다.

* * *

강지한의 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는 조정호의 얼굴이 풀려 있었다.

그의 눈앞에 계속해서 시상을 할 때의 광경이 떠올랐다.

‘내가 우승을 하다니.’

조정호의 손에는 작은 상장과 20만 원의 상품권이 담긴 봉투가 들려 있었다.

시상식의 순간에 사람들 사이에서 터졌던 박수와 함성이 환청처럼 귓전에 맴돌았다.

조정호의 입이 기분 좋은 호를 그렸다.

운전을 하다 그런 조정호의 얼굴을 힐끔 바라본 강지한이 덩달아 미소 지었다.

“정호 씨, 오늘 고생 많았어요. 그리고 정말 멋졌어요.”

“감사합니다.”

“기분이 어때요?”

“꿈꾸는 것 같습니다. 그 정도로 좋습니다.”

“앞으로 더 좋은 일들 많이 생길 거예요. 그리고 이제 슬슬 부모님 댁에도 한 번 다녀오고 해야 하지 않겠어요?”

“……네. 이 상장이랑 상품권 들고 다녀오겠습니다.”

조정호의 부모님은 조정호가 서울에 있을 당시 춘천을 떠나 경기도의 시골에 새 보금자리를 마련했다.

그분들은 지금도 아들이 서울에서 사업을 하는 줄 알고 있었다.

이제는 조정호 스스로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아가고 있으니 사실을 알려야 할 때였다.

“휴가 좀 드릴 테니, 다녀와요. 그리고 만두 가게 바로 이어나가면 되겠네요.”

조정호는 곧 오픈할 지한 만두에서 박춘식 노인과 함께 매장을 꾸려나가야 했다.

박춘식은 셈이 빠르니 카운터를 맡고 조정호는 만두의 주방을 책임지게 됐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나저나 진짜 대단했어요. 명옥정 분점 주방장을 이겨 버리시다니.”

“운이 좋았던 것 같습니다.”

“절대 아니에요.”

백상준은 조정호에 대해서 잘 모른다.

그는 여전히 작은 한식당 주방 막내에게 졌다고 억울해할 테지만, 사실 조정호는 타고난 기질 자체가 다른 천재였다.

애초에 범인이 비벼볼 수 있는 사이즈가 아니었다.

물론 백상준도 범인의 범주는 넘어섰으나 조정호에게 비할 건 아니었다.

“정호씨는 앞으로 더 대단해질 겁니다.”

조정호와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다 보니 금방 집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런데 마당으로 들어서는 강지한의 앞에 반가운 얼굴들이 보였다.

“지한 아저씨~ 우리 왔어요!”

바로 오장호와 오나라였다.

그리고 오만석도 함께였다.

한데 그 세 가족의 곁에 낯선 여인이 서 있었다.

“아저씨한테 할 말 있어서 찾아왔는데 안 계셔서 돌아가려다가 강아지 가르치는 아저씨가 곧 올 테니 기다리라고 해서 기다렸어요!”

오나라가 씩씩하게 말했다.

강아지 가르치는 아저씨는 정현수 소장을 지칭하는 것이었다.

그때 오나라의 손을 잡고 있던 여인, 서정혜가 앞으로 나서서 고개 숙여 인사를 건넸다.

“제가 꼭 이렇게 인사드리고 싶어서 애들한테 부탁해 찾아왔습니다. 정말 감사드립니다. 강지한 선생님은 저랑 제 가족들의 은인입니다.”

그제야 이게 무슨 상황인지 알아챈 강지한의 얼굴이 밝아졌다.

엄마의 손을 잡고 선 두 아이의 얼굴은 여태 강지한이 보아왔던 그 어느 때보다 편안하고 행복해 보였다.

“나라야, 장호야. 정말 좋겠다. 아버님 축하 드려요. 그리고 어머님. 용기 내어 돌아와 주셔서 감사해요.”

말을 하는 강지한의 눈에 기쁨의 눈물이 맺혔다.

* * *

참 빠른 세상이다.

한글날 기념 요리 대회 ‘이것이 한식이다!’가 끝난 지 채 두 시간도 되지 않았다.

그런데 백상준이 그 무대에서 깽판을 친 이야기들이 우후죽순 기사로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점심 피크 타임을 보내고 명옥정 본점 휴게실에서 한숨 돌리고 있던 천명옥이 이를 확인했다.

‘상준이 네가…… 명옥정의 이름에 먹칠을 해?’

천명옥의 앙다문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그녀가 벌떡 일어나 휴게실을 나섰다.

그러자 눈치 빠른 기사가 바로 따라붙어 물었다.

“외출하십니까?”

“분점으로 가요.”

“알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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