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벨업 하는 식당-197화 (197/330)

# 197

Restaurant 196. 만두 가게 오픈

“너 뭐하는 인간이니.”

천명옥의 음성은 낮게 깔려 있었다.

분점 휴게실에서 분을 삭이고 있던 백상준은 갑자기 나타난 엄마에게 냅다 고개를 조아렸다.

“죄송합니다, 어머니.”

“애초에 죄송할 짓을 왜 했지?”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동네방네 네 이야기로 엄청 시끄러운 건 알고 있어?”

“네?”

“인터넷에 네 기사로 도배가 되고 있단다.”

백상준의 태도와 욕설 논란에 관한 기사들이 우후죽순 올라오는 중이었다.

“네가 여태 인터뷰하고 촬영해서 나왔던 좋은 기사들보다 오늘 단 두 시간 만에 올라온 안 좋은 기사들의 수가 훨씬 많더구나.”

빠드득.

백상준이 이를 갈았다.

“감히 내 앞에서 이를 갈아?”

그러자마자 바로 천명옥의 서늘한 음성이 귀에 꽂혔다.

“죄, 죄송합니다.”

“계속 죄송할 짓을 반복하고 있구나. 너 그렇게 철없는 사람이었니? 내가 그렇게 키웠어?”

“아닙니다.”

“한 달 간 주방 나오지 마. 집에서 얌전히 근신해.”

“어머니! 그건……!”

백상준에게 주방은 그의 전부였다.

주방에 서지 못한다는 건 가장 치욕스러운 일이었으며, 그의 존재 가치를 짓밟아 버리는 것이었다.

때문에 백상준은 이에 불복하려 했다.

하지만,

“그건…… 뭐?”

“……알겠습니다.”

천명옥의 차갑게 가라앉은 눈동자를 보는 순간 더 어떤 말도 할 수 없었다.

괜히 대들었다가는 주방에서 쫓겨나는 정도가 아니라 평생 칼을 못 쥐게 될지도 모를 일이었다.

“근신하는 시간 동안 너란 존재에 대해 다시 한 번 통찰해 봐. 천명옥의 아들. 명옥정 분점의 부주방장 백상준. 그 백상준이 사회적으로 어떻게 비추어져야 할지.”

그 말을 마지막으로 천명옥은 냉정하게 등을 돌려 떠났다.

홀로 남은 백상준의 얼굴 위로 분노의 눈물이 줄줄 흘러내렸다.

* * *

차 뒷좌석에 앉아 본점으로 향하는 천명옥.

그녀가 조수석에 함께한 비서에게 말했다.

“정 비서님.”

“네, 사장님.”

“변노민 의원하고 약속 잡아요.”

변노민은 춘천 국회의원으로 춘천시 문화예술에 관련된 분야에서 상당한 입지를 자랑하는 이였다.

“알겠습니다.”

대답을 한 정 비서가 바로 스마트폰을 꺼내 들어 변노민의 보좌관에게 전화를 걸었다.

* * *

누군가에게는 지옥 같았던 사건이 다른 누군가에게는 호재로 작용했다.

조정호가 요리 대회에 나가 우승했다는 사실로 인해 지한 식당의 인지도가 확 높아졌다.

덕분에 후평동에서 얼마 전 오픈한 지한 식당 분점에도 손님들이 끊이지를 않았다.

아니, 오픈발이 무색할 만큼 갈수록 더 늘어나고 있었다.

덕분에 강지영은 연일 행복에 겨운 고민에 빠졌다.

오늘도 마찬가지였다.

주방에서 밀려들어오는 주문을 해결해 나가며 주방 직원들에게 투덜거렸다.

“아무래도 주방 일하실 분을 더 들여야겠어요. 매일 이러면 우리끼리 너무 힘들 것 같아요. 그렇죠?”

“사장님 주머니에서 머리 하나분 더 줄 돈 넉넉하면 들이세요. 그럼 우리야 좋지요.”

“저는 무조건 찬성입니다. 요즘 집에 들어가면 노가다 뛰고 온 것처럼 녹초가 돼서 쓰러져요.”

지한 식당 분점의 주방에서 일하는 직원들은 강지영을 제외하고 셋이었는데 남자 둘에 여자 한 명이었다.

하나같이 주방에서 10년 이상 칼을 잡아본 배테랑들이었다.

다만 시키는 건 잘하는데 스스로 주방을 이끌어 갈 깜냥은 되지 않아 늘 누군가의 밑에서 월급을 받고 일을 해왔었다.

그러다 지한 식당 분점으로 오게 되었다.

그들 덕분에 몰려드는 손님에도 딜레이가 길어지지 않을 수 있었다.

“조만간 지한 푸드 대표님한테 얘기해서 사람 더 들이도록 할게요.”

강지한은 이제 엄연히 여러 개의 매장을 관리하는 법인사업체 지한 푸드의 대표였다.

강지영은 그가 없는 자리에서 함부로 그의 이름을 부르거나 하지 않았다.

“아~ 감사합니다. 그리되면 좀 살겠네요.”

직원들의 얼굴에 비로소 안도감이 어렸다.

* * *

10월 13일, 토요일.

서정혜는 아침부터 횡성에서 춘천으로 내려왔다.

원래대로라면 김치 공장에 나가야 했다.

그런데 낡을 대로 낡은 단칸 셋방에서 출근 준비를 하는 도중 조미옥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정혜 씨, 오늘 공장 나오지 말고 춘천 내려가서 애들 봐.

“네? 그래도 돼요?”

-강 대표가 특명 내렸어. 내가 무슨 힘이 있어서 대표님 말을 거역해? 분명히 정혜 씨한테 도움 주려고 하는 걸 테니까 어서 가봐. 우리 강 대표 인성 잘 알지? 이미 만나봤다며.

“네. 알겠어요. 감사합니다.”

그렇게 서정혜는 특별 휴무를 받아 춘천으로 내려왔다.

그런데 그 휴무가 강지한을 만나는 순간 이직으로 바뀌게 될 줄은 몰랐다.

지한 식당의 브레이크 타임.

식당 근처 카페에서 서정혜를 만난 강지한은 그녀에게 이런 제안을 했다.

“곧 지한 푸드에서 만두 가게를 오픈할 예정인데 거기 주방에서 일해 볼 생각 없어요?”

“……만두 가게 주방에서요?”

“네, 주방장은 있으니 부주방장으로 함께하면 좋을 것 같은데요.”

서정혜는 지한 식당에서 파는 만두를 먹어봤다.

그녀가 춘천에 왔다가 다시 횡성으로 돌아가야 했던 한글날의 늦은 밤.

강지한은 그녀의 가족들에게 만두를 만들어 대접했었다.

그때 먹어보았던 맛을 서정혜는 도저히 잊을 수가 없었다.

강지한의 이름으로 만들어지는 김치의 맛도 엄청났는데, 만두맛은 그보다 한 수 위였다.

도대체 아직 젊은 사람의 어디에서 이런 실력이 나오는 건지 모를 일이었다.

아무튼 그 만두 맛을 떠올리자니 영 자신이 없어지는 서정혜였다.

“제가…… 그런 일을 할 수 있을까요?”

“그럼요. 얼마든지요.”

확답하는 강지한의 눈에는 서정혜의 상태창이 보였다.

이미 조미옥이 끌어가는 김치 공장에서 일을 하는 직원이니 이미 지한 푸드의 식구였다.

때문에 그녀의 능력치를 볼 수 있었던 것.

<서정혜의 능력치>

직급: 지한 김치 공장 직원

등급: C

능력: 요리 LV 7, 서빙 LV 7, 청소 LV 10(MAX), 설거지 LV 10(MAX)

특수 능력: 한식 특화 LV 2

정직도: 95/100

신뢰도: 99/100

종합 평가: 정직하고 부지런한 사람이다. 사람에게 상처를 많이 받았음에도 자신에게 잘해주는 이에 대한 신뢰가 깊으며 은혜를 받으면 갚을 줄 아는 선한 성품을 지녔다. 개화되는 능력들의 잠재력이 크게 높지 않다. 청소와 설거지가 고작 레벨10으로 최대치를 찍은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그러나 요리에 대한 잠재력이 제법이다. 특히 한식에 관련된 부분들이 특화되어 있어 특수 능력으로까지 인정되었다. 따라서 많은 요리들 중에서도 한식 쪽으로 밀고 나가면 좋다.

서정혜는 능력들의 잠재력이 낮지만 요리만큼은 높았고 한식에 특화되어 있었다.

오장호가 말하기를 ‘엄마는 한식만 좋아했다’더니 그 말이 딱이었다.

만두는 전통 한식이라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으나 오래전부터 한국 사람들의 명절에 빠지지 않는 음식이 되었다.

그만큼 한국 사람들의 삶 속에 익숙하게 박혀 있으니 서정혜에게도 만두를 빚는 게 어려운 일은 아닐 터.

게다가 정직도는 95였고 신뢰도 또한 99나 됐다.

“만두는 잘 빚으시죠?”

“네, 먹는 것도 좋아해요.”

강지한의 물음에 만족스러운 대답이 돌아왔다.

“그럼 됐네요. 다음 주 수요일에 만두 가게 오픈할 거예요. 만두 가게는 서면에 있으니 출 퇴근 하기에도 좋을 겁니다. 걸어가면 먼데, 차 타고 가시면 금방이에요. 보니까 장호 아버님한테 낡은 소형차 하나 있던데, 그걸로 태워 달라고 하세요. 만약 힘드시면 아침마다 같이 일하게 될 조정호 씨 차로 카풀하시고요.”

강지한은 이미 조정호가 타고 다닐 중고차 한 대를 뽑아준 상황이었다.

“그렇게 할 수 있죠?”

강지한의 물음에 서정혜의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강지한이 왜 만두 가게 이야기를 꺼냈는지 비로소 알 것 같았다.

그는 서정혜가 아이들과 함께 지내도록 배려해 주려는 것이었다.

김치 공장은 횡성에 있다.

하지만 만두 가게는 춘천에 있다.

게다가 현재 오만석 일가가 머무는 동네에서도 크게 멀지 않은 위치이니 더없이 좋았다.

“사장님, 제가 이 은혜를 어떻게 갚아야 할지 모르겠어요.”

“만두 가게만 잘 이끌어 나가주세요. 그거면 됩니다.”

“그거야 당연히 제가 해야 하는 일인걸요, 은혜를 입어 놓은 마당에 게으름 피우면 그게 금수(禽獸:짐승)지 사람이래요? 손이고 발이고 쉼 없이 열심히 할게요, 사장님.”

“쉴 때는 충분히 쉬어가면서 하세요. 건강하게 아이들이랑 오래오래 보내셔야죠. 그럼 수요일부터 이직하는 걸로 생각할게요.”

“아, 그러면 횡성으로 내려가서 공장일 하다가 화요일 밤에 다시 내려오도록 할게요.”

“아니요. 그러지 마세요. 화요일까지 푹 쉬면서 만두 가게나 오픈 전에 구경 한 번 가보시고 그러세요.”

“네? 하지만 저 대신할 사람도 아직 못 구했고…….”

“제가 이미 조 전무님한테 얘기해서 구하라고 했어요. 거기는 발이 넓어서 금방금방 구해지니 걱정 말아요.”

서정혜의 눈에 이루 말할 수 없는 감동이 차올랐다.

어떻게 사람이 이토록 완벽할 수 있나 싶었다.

“감사해요, 사장님.”

그저 감사하다는 말만 계속하는 서정혜였다.

* * *

‘지한 만두’

새로 만들어 붙인 깔끔한 간판 아래 건물 입구는 드나드는 사람들로 문턱이 닳을 지경이었다.

식당 내부에 있는 6개의 작은 테이블은 이미 만석이었다.

하지만 그들의 식사가 끝날 때까지 기다려야 할 필요는 없었다.

테이크아웃을 해가면 되는 일이기 때문.

식당 앞으로 사람들의 줄이 제법 길었지만 빨리빨리 줄어들고 있었다.

대부분 10분 안에 만두를 사가는 것이 가능했다.

건물 안 카운터에서 계산하는 박춘식의 얼굴에는 함박웃음이 걸려 있었다.

홀에서는 직원 한 명과 알바 한 명이 열심히 서빙을 하고 포장한 만두를 건네주는 중이었다.

주방 역시 활기가 넘쳤다.

주방장 조정호와 부주방장 서정혜는 오랫동안 손을 맞춰 본 사람들처럼 환상의 호흡을 자랑하며 만두를 쪄냈다.

이미 아침부터 나와 만두를 한가득 빚어놓았기에 쪄서만 나가면 되는 일이었다.

그래도 혹시 만두가 부족할지 몰라 서정혜가 만두를 주로 찌는 한편, 조정호가 틈틈이 새로운 만두를 빚어냈다.

홀에서 만두를 먹는 손님들은 하나같이 만족하며 행복해했다.

그러한 광경들이 여러 대의 카메라에 고스란히 담기고 있었다.

프로덕션 이리의 직원들이 총출동해서 오픈 날의 모습을 촬영하는 중이었던 것.

강지한과 오만석 일가의 동영상이 화제가 되면서 그 아이들은 엄마를 만났냐는 문의가 프로덕션 이리에 계속 들어오는 중이었다.

그러던 와중 강지한에게 좋은 소식을 전해 듣게 된 대표 박동일이 당장 오픈 날 광경을 촬영해도 되겠느냐 물었다.

아이들의 엄마가 춘천으로 내려와 같이 살게 된 것은 물론 지한 만두에서 번듯한 직장까지 얻게 되었으니 그보다 더 좋은 소식이 어디 있을까?

오만석 일가의 소식을 기다려온 모든 이들에게 이 아름다운 이야기를 전해주고 싶었다.

강지한은 오만석 일가에게 박동일의 뜻을 전했고, 그들은 흔쾌히 이를 허락했다.

해서 오늘 촬영을 하러 나온 것이었다.

물론 강지한도 나와 홀에서 서빙과 계산을 도왔다.

오늘은 지한 식당이 쉬는 수요일이라 가능한 일이었다.

“안녕히 가세요. 지한 만두 많이 찾아주세요!”

강지한이 계산을 마치고 나가는 손님에게 인사를 건넸다.

“정말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손님.”

박춘식도 덩달아 감사의 말을 전했다.

“만두 정말 맛있어요, 할아버지!”

“다음에 또 올게요! 많이 파세요!”

“감사합니다, 손님. 감사해요.”

손님에게 연신 고개를 조아리는 박춘식의 가슴이 따뜻해지면서 뜨거운 것이 목울대를 치고 올라왔다.

맛있는 만두를 많은 손님들에게 파는 것.

아버지의 소원이었으나 급하게 세상을 떠나는 바람에 미처 이루지 못한 꿈이 되어 버렸던 그 일을, 아들 박춘식이 살아생전 자신의 아버지보다 훨씬 늙은 지금에서야 이루어 드리게 되었다.

‘아버지, 어머니. 하늘에서 보고 계시지요? 두 분이 계시던 식당에서 제가 만두를 팔고 있어요. 사람들이 맛있다고 하는 말들 들리시지요? 제가 그 소원 이루어드렸어요. 아주 늦었지만…… 두 분 소원 이루어드렸으니 이제. 이제, 정말로 편히 쉬세요.’

끝내 놓지 못하고 마음으로 잡고 있던 두 분을 이제는 놓아드리려 하는 박춘식이었다.

* * *

만두는 생각보다 훨씬 빠르게 소진되어 오후 4시에 완전히 동나고 말았다.

이제 슬슬 문을 닫으려는 와중, 지한 만두에 생각지도 못했던 사람이 찾아왔다.

“저기요. 강지한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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