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5
Restaurant 194. 궁중떡볶이 대결
“그럼 지금부터, 외국인 심사위원 다섯 분께서 음식을 시식하겠습니다. 심사위원께서는 신중하게 평가를 내려 음식의 점수를 0점부터 최고 20점까지 매겨주시면 되겠습니다.”
한 명당 20점, 다섯 명이니 모든 사람이 만점을 주면 100점이 되는 것이다.
“우선 참가자 열네 분의 요리를 시식하시고 나서 백 셰프님의 음식을 마지막으로 시식해 주시면 되겠습니다.”
그것은 혹여라도 너무 급이 차이가 나는 음식을 먹었다가 다른 음식들이 맛없게 느껴질 것이 걱정되었던 주최 측의 배려였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백상준도 이미 사전 공지를 받은 상황.
음식이라는 것이 찬 음식이든 뜨거운 음식이든 방금 나왔을 때 바로 먹어야 가장 맛이 있는 법이다.
시간이 흘러가 버리면 그만큼 음식의 맛도 떨어진다.
하지만 백상준은 그래도 스스로의 요리에 자신이 있었다.
“그럼 1번 참가자 김준용님의 음식부터 시식을 하겠습니다.”
외국인 심사위원들은 개인 앞 접시와 수저를 들고 일어나 김준용의 조리대 앞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그가 만든 사골만둣국을 맛보기 시작했다.
만둣국을 시식하는 외국인들의 표정은 나쁘지 않았다.
전부 제법 입에 맞는지 잔잔한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한 그릇의 만둣국은 다섯 사람이 달려들자 순식간에 동이 나버렸다.
시식을 마친 외국인 심사위원들이 채점용지에 신중히 점수를 기입하고서 옆 조리대로 이동했다.
* * *
“정혜야. 나 진짜 변했어. 예전의 오만석이가 아니야. 너 그렇게 떠나고 애 둘 혼자 키우면서 얼마나 반성 많이 했는지 모른다.”
오만석은 어렵게 집 안으로 들인 서정혜의 손을 꼭 잡고 하소연했다.
하지만 서정혜는 그런 오만석과 눈도 마주치지 않으려 했다.
그녀의 기억 속에 오만석이라는 사람은 여전히 술과 도박에 미친 인간이었고, 자신에게 폭력을 가하는 무서운 남자였다.
“엄마, 진짜야. 아빠 이제 술 안 마셔. 담배도 안 피워.”
“엄마 나가고 우리 한 번도 때린 적 없어. 정말이야.”
오장호와 오나라는 혹시라도 서정혜가 다시 집을 나가 버릴까, 열심히 아빠의 말을 거들었다.
그런 아이들의 심정이 절절히 와닿아 가슴이 아픈 서정혜였다.
그러나 오만석에 대한 미움과 공포와 원망과 한이 쉬이 사라지지 않았다.
이를 눈치챈 오만석이 서정혜의 손을 놓고 벌떡 일어섰다.
“정혜야, 그럼 이렇게 하자. 내가 나갈게.”
“……네?”
그제야 서정혜에게서 반응이 왔다.
“나 더 이상은 애들 엄마 없는 자식 소리 들으면서 크게 하고 싶지 않다. 내가 집에서 나갈게. 뭐 찜질방에서 자든, 어쩌든 네 마음 편해질 때까지 집에 들어오지 않을게. 돈도 꼬박꼬박 일해서 부쳐줄게. 그렇게 지내다가 네 마음 풀리면 다시 합치자. 그렇게 하면 어떨까?”
오만석의 간절한 부탁에 오나라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싫어! 엄마랑 아빠랑 둘 다 같이 살고 싶어. 왜 자꾸 한 명이 나갈라고 그래? 진짜 둘 다 나빴다…… 흐아아아앙!”
오장호는 또다시 울음을 터뜨린 여동생을 품에 안고 토닥여줬다. 그러면서 자신의 부모들에게 살짝 야속한 시선을 던졌다.
그 광경을 지켜보는 오만석과 서정혜의 가슴이 타들어갔다.
“후우…… 나라야. 미안해. 아빠가 생각이 짧았다. 아빠 어디 안 갈게. 나라랑 같이 있을게.”
“진짜지? 훌쩍.”
“응. 진짜로.”
그렇게 서럽게 울던 막내딸은 아빠의 위로 한마디에 금방 마음이 진정되었다.
이 광경을 보고 있던 서정혜는 비로소 오만석이라는 사람이 정말 많이 달라졌다는 걸 체감했다.
아이들이 저렇게 좋아하고 정을 주고 있었다.
전처럼 개망나니 같은 인간이라면, 변했다는 것이 말뿐이라면, 아이들이 이런 태도를 보일 리 없었다.
“정말…… 변한 거 맞아요?”
서정혜가 물었다.
오만석이 모가지가 부러질 듯 격하게 아래위로 끄덕였다.
“그럼그럼. 나 그때 그 인간 말종 오만석이 아니야, 정혜야.”
“나랑 애들한테 평생 손찌검 안 하겠다고 맹세할 수 있어요?”
“내 목숨을 걸고 맹세할게!”
“술은요?”
“술은 당신 나가고 나서 바로 끊었고 담배도 끊은 지 삼 년이 넘었어.”
“도박도 하지 않을 거죠?”
“그렇게 힘든 세월 당해놓고 또 도박하면 그땐 당신이 또 나간다고 해도 할 말 없지.”
오만석의 말에 오나라가 소리를 빽 질렀다.
“왜 또 나가도 할 말이 없다는 거야! 그냥 안 한다고 해! 씨이!”
“어어, 그래그래. 알았어, 우리 딸. 안 해. 절대로 안 해. 그러니까 엄마 집 나갈 일 두 번 다시 없을 거야.”
오만석이 깊이 다짐했다.
서정혜는 사실 그 말이 거짓이라도 믿어보고 싶었다.
더 이상은 아이들 곁을 떠나 있기가 힘들었다.
꼬로록.
그때 훌쩍이던 오나라의 배에서 천둥 치는 소리가 들렸다.
무거웠던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는 것 같은 타이밍이었다.
서정혜가 눈물, 콧물로 범벅이 된 딸의 얼굴을 소매로 닦아주며 물었다.
“나라야, 배고파?”
“……응.”
한참을 엉엉 울고 악썼더니 허기가 지는 모양이었다.
서정혜가 그런 오나라를 품에 꼬옥 안아주고서는 주방으로 들어갔다.
오장호와 오나라가 어미 쫓아가는 병아리들처럼 서정혜를 쫄래쫄래 따라갔다.
오만석은 차마 주방에 들어서지 못하고 고개만 빼꼼 내밀어 뭘 하나 살폈다.
“엄마가 맛있는 거 해주려고 뭣 좀 사왔으니까 조금만 기다려 봐.”
* * *
“와아.”
“맛있겠다.”
서정혜가 만들어 준 건 다름 아닌 크림스파게티였다.
조미옥이 틀어줬던 영상 속에서 크림스파게티를 먹으며 자신을 그리는 아이들의 모습이 그렇게도 가슴 아팠었다.
그래서 아이들을 만나자마자 해주겠다는 마음으로 재료를 사왔던 참이다.
사실 서정혜도 아이들이 보고 싶을 땐 가끔 이 크림스파게티를 만들곤 했다.
그러나 몇 젓갈 먹으면 눈물이 왈칵 차올라 반도 못 먹고 버린 적이 다반사였다.
오늘은 그럴 일이 없을 것 같았다.
“엄마! 진짜 맛있어. 엄마가 해준 크림스파게티가 세상에서 제일 맛있어.”
“나도. 지한 아저씨한테는 미안하지만.”
오나라와 오장호는 허겁지겁 크림스파게티를 먹어치웠다.
얼굴에 크림이 잔뜩 묻어도 닦을 생각조차 못했다.
사실 두 아이들은 엄마의 부재가 문제였는지 정서적으로 많이 불안정했고, 정신 발육이 미숙했다. 그래서 또래의 아이들보다 행동하는 것이나 말하는 것이 상당히 어렸다.
다시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았음에도 그런 것이 느껴져서 서정혜는 가슴이 아팠다.
아이들은 쉬지 않고 걸신들린 사람처럼 포크를 놀렸다.
이게 정말 두 아이들이 그리워했던 엄마의 맛이었다.
서정혜가 만들어 준 크림스파게티를 먹고 있자니 비로소 진짜 엄마가 돌아왔다는 것이 실감이 났다.
오만석도 마찬가지였다.
이 싸구려 크림스파게티가 세상 어느 스파게티보다 맛있고 따뜻했다.
낡은 상 위에 한가득 쌓여 있던 크림스파게티는 순식간에 동이 났다.
네 가족 모두 그 어느 때보다 배부르게 크림스파게티를 먹은 기분이었다.
“엄마, 이제 진짜 어디 안 갈 거지? 우리랑 계속 같이 살 거지?”
연신 서정혜의 곁에서 딱 달라붙어 있던 오나라가 간절한 눈빛을 보내며 물었다.
오장호가 질세라 서정혜의 손을 꽉 잡았다.
서정혜가 아이들의 얼굴을 한 번씩 바라보고서는 고개를 끄덕였다.
“응.”
* * *
외국인 심사위원들이 조정호의 조리대 앞에 섰다.
조정호가 긴장된 시선으로 자신의 음식을 맛보는 외국인 심사위원들의 안색을 살폈다.
가나에서 온 심사위원 샘이 가장 먼저 시식을 했다.
간장양념이 된 떡과 소고기 한 조각에 숙주를 같이 집어 입에 넣고 씹었다.
조정호의 떡볶이는 마지막으로 시식하게 되어 다른 음식들보다 상대적으로 좀 식어 있었다.
그런데도 샘은 여태 먹었던 그 어떤 음식보다 이 궁중떡볶이가 더 맛있었다.
“오~ 맛있다!”
샘이 능숙한 한국말을 뱉으며 엄지를 치켜세웠다.
저도 모르게 맛있다는 말이 튀어나올 만큼 앞선 음식들에 비해 수준이 월등히 높았다.
샘으로 인해 기대치가 한껏 높아진 다른 외국인 심사위원들이 급하게 떡볶이를 입에 넣었다.
“오~”
“판타스틱.”
“이거 혼또니 오이시. 완전 반했어요. 스바라시.”
“이게 코리아 맛이군요. 퍼펙트예요.”
심사위원들이 저마다 한마디씩을 내뱉었다.
그러고는 열심히 시식에만 집중했다.
한소끔 식었음에도 쫄깃함을 잃지 않은 떡은 달콤짭짤하면서 살짝 매콤한 간장양념을 입어 대단히 매력 있었다.
안에 들어간 소고기 또한 왜인지 모르겠으나 그 맛이 대단히 깊었으며 감칠맛이 살아 입안에 맴돌았다.
뿐만 아니라 다른 야채들도 각각의 개성과 존재감을 훌륭하게 뿜어냈다.
“잡채 맛이랑 비슷한데, 또 다른 매력이 있네요. 어떻게 만들면 이렇게 복잡하면서 조화로운 맛이 나는 건가요?”
외국인들 중 한국말을 네이티브 수준으로 하는 샘이 물었다.
“각각의 재료를 따로 양념해서 충분히 재워뒀다가 볶기 때문입니다. 떡은 끓는 물에 삶아 말랑해지면 건져서 유장을 발라줍니다. 유장은 간장과 참기름을 2:1 혹은 3:1로 섞은 것을 말합니다. 당근은 납작하게 썰어 소금을 조금 넣은 끓는 물에 데친 뒤 미리 만들어 둔 궁중떡볶이 간장 양념에 재웁니다. 이렇게 하면 나중에 다른 재료들과 볶을 때 상대적으로 딱딱해서 간이 잘 배지 않는 당근에 충분히 간이 배게 됩니다. 숙주는 찬물에 세척해 머리, 꼬리만 뗀 뒤 놓아두고 양파와 호박은 채 썰어서 마늘, 파를 다져 넣은 소금참기름장으로 버무립니다. 마지막으로 불린 표고버섯을 채 썬 뒤, 잘게 다진 불고기용 소고기를 섞어 함께 간장양념에 재워두는 것으로 밑 재료 준비를 마칩니다.”
조정호의 입에서 달달 외운 듯한 레시피가 줄줄이 흘러나왔다.
샘은 그렇게까지 자세한 설명을 바란 게 아니었던 터라 살짝 당황하고 말았다.
“밑 재료 준비를 마쳤다면 그다음으로는…….”
“아아, 됐어요. 괜찮아요. 거기까지만 들어도 될 것 같아요.”
아무튼 조정호가 만든 궁중떡볶이는 각각의 재료를 따로 조리해서 하나로 합쳐 완벽한 하모니를 이루어내는 음식인 만큼 손이 많이 갔고 그만큼 정성이 필요했다.
조정호는 이를 실수 없이 해냈다.
옆에서 조정호의 얘기를 듣고 있던 백상준이 미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제법 공부는 했네.’
그냥 아무것도 모르고 덤벼든 어중이떠중이는 아니었다.
하지만 같은 레시피로 음식을 만들더라도 개인의 손맛에 따라 그 수준은 천차만별이 되는 법.
백상준은 외국인 심사위원들이 자신의 궁중떡볶이를 먹으며 어떤 반응을 보일지 기대가 됐다.
“정말 잘 먹었습니다. 아주 맛있었어요.”
“궁중떡볶이 최고야, 최고!”
“베리베리 딜리셔스.”
“고치소-사마데시타.”
외국인 심사위원들이 방금 먹은 궁중떡볶이의 점수를 빠르게 채점했다.
다른 음식들을 먹을 땐 신중하게 점수를 내더니 이번에는 하나같이 전광석화로 점수를 매겼다.
“자~ 그럼 대망의 백 셰프님 음식을 시식할 시간이군요.”
진행자의 멘트와 함께 심사위원들이 백상준의 조리대 앞에 섰다.
백상준은 자신만만한 미소로 그들을 반겼다.
“즐기세요.”
그가 여유롭게 말을 흘렸다.
심사위원들은 기대를 가득 품고 백상준의 궁중떡볶이를 먹었다.
“오! 이것도 정말 맛있는데요?”
“와우.”
“오이시.”
역시나 천명옥의 아들이었다.
확실히 백상준은 맛을 제대로 낼 줄 아는 정통 한식 요리사였다.
심사위원들은 하나같이 감탄하며 백상준의 음식을 전부 먹어치웠다.
조정호의 궁중떡볶이도 맛있었는데, 이것 역시 눈이 번쩍 뜨일 만큼 맛이 있었다.
심사위원들의 열렬한 반응이 백상준은 흡족했다.
그런데,
“으음…….”
시식을 마친 심사위원들이 점수를 어떻게 매겨야 하나 고민에 빠졌다.
그 이유가 무언지 알 수 없는 백상준이 고개를 갸웃했다.
심사위원들은 하나같이 장고 끝에 겨우 점수를 매겼고, 그것을 주최 측 스텝에게 넘겨주었다.
스텝이 총합 점수를 계산해 순위를 매기는 동안 떠버린 공백을 진행자가 멘트로 때워 나갔다.
“자, 과연 오늘 영예의 1위는 누가 안게 될지! 그리고 우리 백 셰프님의 점수는 과연 몇 점일지? 정말 기대가 됩니다. 아, 지금 결과가 나왔다고 합니다.”
진행자가 스텝에게서 결과 용지를 넘겨받았다.
그런데 이를 넘기는 스텝의 표정이 조금 애매했다.
“어디 볼까요?”
스텝이 왜 그런 얼굴을 하고 있었는지 의아했던 진행자가 얼른 결과 용지의 내용을 확인했다.
그리고 진행자 역시 스텝과 똑같은 얼굴이 되고 말았다.
“아……. 으흠. 그렇군요. 네, 결과 발표하도록 하겠습니다. 한글날을 기념하여 춘천시가 주최한 한글날 기념 요리 대회. ‘이것이 한식이다!’의 우승자는 바로 총합 95점을 획득한 지한 식당 주방 막내 조정호 씨입니다! 축하드립니다!”
“……아.”
조정호의 입에서 낮은 탄성이 흘러나왔다.
동시에 객석의 시민들에게서 우레와 같은 함성과 박수가 파도처럼 터져 나왔다.
강지한도 그 속에서 손바닥이 터져라 박수를 치며 소리를 질렀다.
“정호 씨! 잘했어요! 멋있었어요! 정호 씨 최고!”
그는 조정호의 우승이 진심으로 기뻤다.
“역시 지한 식당이네.”
“지한 식당 막내 클라스 보소.”
조정호를 축하하던 시민들이 그럴 줄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무대 위의 다른 참가자들도 그런 조정호를 축하해 주는 와중, 백상준만이 놀라 눈을 희번덕거렸다.
‘95점? 100점 만점에 95점이라고?’
생각했던 것보다 점수가 너무 높게 나왔다.
이렇게 되면 백상준이 100점을 맞는다고 해도 조정호와 큰 차이가 없어 보이지 않는가.
그때 진행자가 백상준의 요리 점수를 재차 확인하고 마이크에 입을 가져갔다.
“자, 그럼 번외격으로 채점을 했던 백 셰프님의 음식 점수를 발표하겠습니다.”
꿀꺽!
백상준이 저도 모르게 마른침을 삼켰다.
“백 셰프님의 궁중떡볶이에 매겨진 점수는!”
진행자는 잠시 말을 끊어 긴장감을 고조시킨 뒤 드디어 점수를 발표했다.
“95점! 조정호 씨와 동점을 받으셨습니다.”
“……!”
자신의 점수를 듣게 된 백상준은 피가 거꾸로 도는 것만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