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벨업 하는 식당-194화 (194/330)

# 194

Restaurant 193. 한글날 요리대회

‘백상준이 왜 여기에?’

강지한은 아리송한 시선으로 그를 쳐다봤다.

이번 요리대회는 백상준이 참가할 만한 사이즈는 아니었다.

대회에 출전한 다른 14명의 사람들만 해도 크게 네임밸류가 없는 이들이었다.

강지한이 그런 의문을 품고 있는 동안 무대에 오른 진행자는 유려한 말솜씨로 대회의 포문을 열었다.

진행자는 오늘 요리대회의 취지를 간략히 설명하고 약속이라도 된 듯 백상준에게 다가갔다.

“여러분, 오늘 무대에 아주 특별한 분께서 함께해 주셨습니다. 아마 많은 분들께서 이분의 얼굴을 알고 계실 텐데요.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나이에 비해 월등한 요리 실력을 자랑하며 명옥정의 분점을 이끌어가는 춘천의 자랑! 춘천이 낳은 스타 셰프! 백상준 셰프님을 모셨습니다!”

“안녕하십니까, 백상준입니다.”

백상준의 뺨에 부착된 핀마이크가 그의 음성을 스피커로 쩌렁쩌렁하게 쏟아냈다.

“바쁘신 와중에도 춘천시의 부탁을 받고 이렇게 자리를 빛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불러주셔서 제가 영광이지요.”

“아마 대기실에 계신 참가자분들께서는 백 셰프님을 보고서 불만이 많으셨을 텐데요. 안심하시기 바랍니다. 오늘 백 셰프님이 만드는 음식은 순위 경합에서 제외됩니다. 하지만 막간의 재미를 위해 외국인 심사위원분들에게 채점은 똑같이 될 예정입니다. 그런데 조금 걱정이 되네요. 만약 다른 참가자들보다 낮은 평가를 받게 되면 이거 그야말로 망신살 뻗치는 거 아닙니까? 백 셰프님, 혹시라도 걱정되시면 채점하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진행자의 농담에 백상준이 고개를 저었다.

“하셔도 됩니다. 점수가 낮으면 순순히 인정하고 더 정진해 나가겠습니다.”

“크~ 역시 프로는 다르네요.”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난 강지한은 비로소 이 상황이 이해됐다.

‘정식 참가자가 아니었구나.’

그저 대회의 화제성을 위해 춘천시에서 초대를 한 것이었다.

진행자가 무대 아래 모여 있는 관객들을 보며 멘트를 쳤다.

“사실 오늘 주최 측에서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많은 분들이 자리를 채워주셔서 많이 놀랐습니다. 근데 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었네요. 역시 춘천의 자랑 백 셰프님이십니다.”

“부끄럽습니다.”

백상준이 멋쩍게 웃었다.

그러자 이를 지켜보던 많은 시민들이 술렁댔다.

“난 강지한 보러 온 건데?”

“저 사람 처음 보는구만.”

“강지한 안 나오는 줄 알았으면 안 왔지.”

“근데 무대 아래서 봤으니 개꿀.”

“저 셰프 그 사람이잖아. 인터넷 방송에서 강지한한테 완전 발렸던.”

사람들의 목소리는 다행스럽게도 백상준의 귀에 들어가지 않았다.

백상준과 몇 마디를 더 주고받은 진행자는 다른 참가자들과도 간단히 인터뷰를 나누었다.

무대에 선 조정호는 자신의 차례가 다가올수록 점점 더 긴장해서 주먹을 꽉 쥐었다.

‘인터뷰까지 하는 줄은 몰랐는데.’

대인기피증이 있는 조정호는 사실 무대에 올랐을 때부터 힘들었다.

사방이 트인 곳에서 수많은 사람들 앞에 선다는 것이 큰 스트레스로 다가왔다.

그런 와중에 인터뷰까지 해야 한다니 차라리 정신을 잃고 기절하는 게 속편할 것 같았다.

그런 조정호의 상태를 눈치챈 강지한이 속으로 응원했다.

‘힘내요. 정호 씨.’

드디어 진행자가 조정호의 곁으로 다가왔다.

“자, 그럼 마지막 참가자를 만나보도록 하겠습니다. 안녕하세요.”

진행자가 마이크를 조정호에게 넘겼다.

하지만 조정호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이를 살피던 진행자가 농담을 했다.

“지금 눈 뜨고 주무시는 거 아니죠?”

그에 시민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그러나 분위기를 전환시켜 보려는 진행자의 노력에도 조정호의 굳은 표정을 풀리지를 않았다.

“아~ 우리 참가자분께서 많이 긴장하셨나 보네요.”

“괘, 괜찮습니다.”

드디어 조정호가 용기를 내어 입을 열었다.

“아, 괜찮으신가요?”

그때 조정호의 입에서 갑작스런 말들이 튀어나왔다.

“제가…… 대인기피증이 이, 있습니다. 그래서 이 자리가 많이 힘이 듭니다. 그래도 피하지 않고 이, 이겨내려고 노력하는 중입니다.”

그것은 진심이 담긴 말이었다.

조정호는 조금이라도 빨리 자신에게 처한 문제들을 털어내고 싶었다.

오늘 대회에 나온 것도 그런 의지의 발현이었다.

자신의 요리 실력이 얼마나 성장했는지 확인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으나 그보다 더 컸던 건 대인기피를 극복하고자 하는 의지였다.

“아, 그러시군요.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텐데 용기 내주셔서 감사하네요. 조금 늦은 감이 있지만 자기소개 부탁드리겠습니다.”

진행자가 마이크를 들이대자 또다시 조정호의 말문이 턱 막혔다.

이 상황을 대체 어찌 헤쳐 나가야 하나 고민하던 조정호의 머릿속에 오늘 아침 일이 떠올랐다.

김상수 일행 사이에 껴서 식사를 하던 것이 불편했던 그가 설탕이에게 집중을 하면서 마음이 편안해졌었다.

‘아침처럼…… 다른 곳에다 집중을 하면…….’

조정호가 저도 모르게 설탕이를 떠올렸다.

동그랗고 새까만 눈. 촉촉이 젖어 있는 앙증맞은 검정코. 쫑긋 솟은 귀여운 귀와 팽팽 돌아가는 꼬리. 부드러운 갈색 털. 어느 한 구석 사랑스럽지 않은 곳이 없는 설탕이였다.

아침에 누구의 말도 듣지 않았던 설탕이가 자신의 말은 기가 막히게 따랐다.

그 일을 떠올리자 거짓말처럼 마음이 진정되기 시작했다.

그야말로 만능 설탕이었다.

긴장이 풀린 조정호가 비로소 입을 열었다.

“저는…… 지한 식당에서 주방 막내로 일하고 있는 서른세 살 조정호라고 합니다.”

조정호는 지한 식당 주방에 가장 마지막으로 들어왔다.

그러니 막내가 맞았다.

‘지한 식당?’

백상준의 시선이 절로 조정호에게 향했다.

요즘 그는 강지한으로 인해 어마어마한 스트레스를 받는 중이었다.

한데 그 식당의 주방 막내가 나왔다고 하니 속에서 불이 일었다.

백상준의 따가운 시선이 조정호의 뺨을 쿡쿡 찔러대는 가운데 진행자의 질문이 이어졌다.

“오늘 어떤 음식을 선보일 예정이신가요?”

“궁중떡볶이를 만들어 보려고 합니다.”

“아~ 궁중떡볶이 맛있죠. 우리나라 전통의 음식인 만큼 의미도 있겠고요. 오늘, 힘내주시길 바라겠습니다.”

진행자가 인터뷰를 마치고 다시 백상준에게 다가섰다.

“백 셰프님, 14명의 참가자 여러분께서 다양한 요리를 선보일 예정이십니다. 재미있게도 겹치는 메뉴가 하나도 없었는데요. 백 셰프님께서 준비한 메뉴는 무엇입니까? 혹 참가자분들 중에 겹치는 메뉴가 있었나요?”

백상준이 오늘 만들려고 했던 것은 떡국과 소불고기 전골이었다.

그런데 그는 조정호의 인터뷰를 들으면서 생각을 바꿨다.

“네, 있습니다.”

“그래요? 어떤 메뉴를 만들 생각이시죠?”

“궁중떡볶이를 만들어 보려고 합니다.”

“아! 조정호 참가자의 메뉴와 겹치는군요.”

“그렇게 됐네요.”

떡국과 소불고기를 만드는 데 들어가는 재료들이 궁중떡볶이에 들어가는 재료들과 비슷했다.

때문에 즉흥적으로 메뉴를 바꾸긴 했으나 만드는 데는 아무런 지장이 없었다.

“아, 조정호 참가자 부담이 조금 되겠네요. 하지만! 백 셰프님의 요리는 경합에서 제외된다는 것 아시죠? 긴장 풀고 요리에 임해주시면 되겠습니다. 자, 그럼 참가자 여러분께서는 준비해 온 재료를 가지고 각각 조리대 앞에 서주시기 바랍니다.”

참가자들은 진행자의 말에 따라 조리대 앞에 자리했다.

“지금부터 한 시간 동안 준비해 오신 요리를 열심히, 맛있게 만들어 주시면 되겠습니다. 저는 요리가 완성되는 동안 이쪽에 심사위원으로 모신 외국인 게스트 여러분과 인터뷰를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무대의 왼편으로는 오늘 심사위원이 되어줄 각국의 외국인 다섯 사람이 앉아 있었다.

진행자가 그들과 한국생활에 대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참가자들의 요리가 진행되었다.

조정호는 이제 긴장을 거의 떨쳐 버리고 온전히 요리에 집중하는 모습이었다.

그 덕에 강지한의 마음이 조금 놓였다.

조정호에게 향해 있던 그의 시선이 백상준에게로 옮겨갔다.

‘왜 하필이면 정호 씨랑 메뉴가 겹치는 거야.’

강지한은 설마 백상준이 즉석에서 메뉴를 변경했을 것이라 생각지 못했다.

‘그때는…… 내가 너무 방심했다.’

‘무엇이든 만들어 드립니다’에 출연했을 당시, 크림스파게티 자체의 맛은 백상준이 만든 것이 훨씬 좋았다.

하지만 오장호가 그리워하던 맛은 아니었던 것이 패인이었다.

오늘 이 무대에서 선보이는 요리는 강지한에게 다시 던지는 도전장이 될 것이었다.

그러나 투지를 불태우는 건 오로지 백상준뿐이었다.

강지한은 조정호는 그를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 * *

오장호와 오나라의 엄마이자 오만석의 아내인 서정혜는 지난 일요일 몇 년 만에 춘천 땅을 밟았다.

집을 나온 그날.

서정혜는 춘천을 떠나서 한 번도 돌아오지 않았었다.

그런데 자식들을 보고 싶은 마음에 결국 춘천으로 돌아오고 말았다.

하지만 막상 그녀가 살던 동네까지 오고 보니 집 안에 들어설 용기가 나지 않았다.

오만석이 정말 변한 것인지도 모르겠고 책임감 없이 떠나 버린 입장에서 몇 년 만에 보게 될 아이들을 어찌 대해야 할지도 알 수 없었다.

남편은 무서웠고 아이들에겐 죄인이 된 것 같은 마음에 미안할 뿐이었다.

그렇게 망설이다 정신을 차렸을 땐 다시 횡성 가는 버스에 올라 있었다.

그리고 오늘.

잠들 때마다 아이들이 꿈에 나와 눈물로 이틀 밤을 보낸 서정혜가 다시 춘천을 찾았다. 이번에도 최고의 난관은 낡은 대문이었다.

저 문만 밀고 들어가면 되는 일인데 여전히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집 근처 길목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던 그녀가 안타까운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아.”

결국 이번에도 마지막 용기를 내지 못하고 돌아서려 할 때였다.

왕!

어디선가 강아지 짖는 소리가 들려왔다.

“설탕아~ 어디가? 설탕아. 이리 와! 멈춰! 이리 와야지? 설탕아?”

그리고 애타는 한 남자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설탕이와 정현수 소장이었다.

이어 저 멀리 몇 백 미터 떨어져 있는 집에서 귀여운 강아지가 열린 대문 너머로 뛰쳐나왔다.

그 뒤를 키 큰 사내가 따라붙었다.

“설탕아~ 또 말 안 듣네! 이러면 나 속상하다! 설탕아! 너 지금 아침부터 나에게 모욕감을 주고 있어!”

왕왕! 헥헥헥.

서정혜는 자신과 점점 가까워지는 설탕이를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다 설탕이가 지척까지 다다랐을 때, 그냥 곁을 지나가겠거니 했는데 아니었다.

녀석은 오만석의 집 대문 앞으로 가서 굳게 닫힌 철문을 박박 긁어대며 크게 짖어댔다.

왕! 왕왕!

그러자 대문 안쪽이 소란스러워졌다.

“어? 설탕이 목소리다!”

“설탕이 왔니?”

오만석의 가족이 강지한의 집에 왔다간 후 설탕이는 종종 그들의 집에 찾아가고는 했다.

반대로 오장호와 오나라가 강지한의 집에 놀러와 설탕이를 보고 가는 일도 있었다.

오늘도 그런 일상적인 상황이 벌어진 것뿐이었다.

그런데,

덜컹.

“설탕아~!”

“나 보러 왔구나!”

대문을 열고 밖으로 나온 두 아이의 앞에는 일상 대신 기적이 찾아와 있었다.

“……어?”

“엄…… 마?”

자신을 대번에 알아보는 아이들을 보며 서정혜의 눈물샘이 분수처럼 터져 버렸다.

“장호야…… 나라야…….”

“엄마! 엄마야? 진짜 엄마야?”

“엄마아! 흐아아아아앙!”

“아빠! 아빠! 엄마 왔어! 으아아아앙!”

두 아이는 목이 터져라 소리치며 서정혜에게 달려가더니 엄마의 옷깃을 꽉 움켜쥐고 서럽게 울었다.

마치 다시는 엄마를 어디로 보내지 않겠다는 양, 고사리 같은 손에 힘이 꽉 들어가 있었다.

서정혜가 무너지듯 주저앉아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자신의 아이들을 품에 안고 같이 엉엉 울었다.

“미안해…… 엄마가 미안해……. 엄마가…… 정말 너무너무 힘들어서 그랬는데. 그래 놓고서도 장호랑 나라가 많이 보고 싶었어. 매일매일 숨막히도록 보고 싶어서 죽을 것 같았어. 미안해, 엄마가.”

그때 아이들의 고함을 듣고 오만석이 맨발로 뛰쳐나왔다.

그의 두 눈에 자식들을 품에 안고 눈물 흘리는 아내의 모습이 들어왔다.

‘이게 꿈이야, 생시야……?’

너무 놀란 오만석은 화석처럼 굳어버렸다.

한편 설탕이를 잡으러 왔다가 뭔가 엄청난 광경을 목격해 버린 정현수는 어찌할 바를 몰라 어정쩡하게 서 있었다.

* * *

“한 시간이 다 됐습니다. 자, 그럼 모두 두 손을 머리 위로 올려 주십시오!”

요리를 위해 주어진 한 시간은 빠르게 흘러갔다.

“후우.”

생각했던 대로 무사히 궁중떡볶이를 완성시킨 조정호가 두 손을 머리 위로 올렸다.

백상준도 궁중떡볶이를 제대로 만들어 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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