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7
Restaurant 186. 박동일의 뜻
‘어라?’
박동일이 고개를 갸웃했다.
다른 스텝들도 강지한의 행동에 의아함을 느꼈다.
오직 천명옥만 뜻 모를 미소를 짓고 있을 뿐이었다.
강지한은 요리에 들어가기 전, 3분이면 만들 수 있는 즉석 양송이 스프를 집어 들었다.
‘설마 저걸로 크림스파게티를 만들겠다고?’
백상준은 강지한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었다.
‘다진 버섯에서 힌트를 얻은 모양인데. 설마 그런 걸로 만든 크림스파게티를 맛있다고 기억할 리가 없어.’
아무리 생각해도 오장호의 기억 속에 있는 맛은 추억 보정이 된 게 틀림없었다.
하지만 거기에도 정도가 있다.
단순히 시판용 양송이스프에 면을 말아버린 것만으로는 맛있다고 기억되기 힘들었다.
그러나 강지한은 양송이스프만 사용하려는 게 아니었다.
그는 큰 팬에 양송이스프를 끓여 완성한 뒤, 거기에 우유를 콸콸 부었다.
그러자 살짝 탁하던 스프의 색이 맑은 우윳빛이 되었다.
새하얀 크림소스에 다진 버섯이 들어가 있는 스프.
오장호가 말했던 것과 비슷한 비주얼이었다.
강지한은 소스를 약불로 천천히 졸이면서 시판용 생면을 끓는 물에 삶았다.
어느 정도 면이 익자 그것을 건져내어 졸이고 있던 소스에 담가 잘 버무렸다.
그리고 소금으로 모자란 간을 더한 뒤 접시에 잘 담아냈다.
참으로 간결한 크림스파게티였다.
백상준은 이미 크림스파게티를 완성시켜 놓고 강지한이 하는 양을 어이없게 지켜보고 있었다.
물론 겉으로는 그런 티를 내지 않았다.
속으로만 생각했을 뿐.
완성된 크림스파게티 두 접시가 오장호의 앞에 놓여졌다.
백상준은 크림스파게티를 정석대로 만들어냈다.
새하얀 소스 안에 잘게 다져진 양송이버섯들이 면과 함께 잘 버무려져 있었다.
먹어보지 않아도 풍미가 깊고 진할 것이라는 게 머릿속에 그려지는 비주얼이었다.
담아낸 플레이팅도 예뻐서 식욕을 더 돋웠다.
물론 강지한의 크림스파게티도 겉보기엔 아주 먹음직스러워 보였다.
하지만 3분 스프와 우유, 소금만으로 만든 크림소스가 과연 얼마나 맛이 있을지는 미지수였다.
누가 먹어도 백상준의 크림스파게티가 더 맛있다고 할 게 분명했다.
“자, 오장호 학생. 앞에 두 셰프님들이 장호 학생을 위해 만든 크림스파게티 두 접시가 있어요. 먹고 싶은 것부터 먹어보도록 해요.”
“네.”
오장호가 포크를 들고서 두 개의 크림스파게티를 번갈아보았다.
그러다 백상준의 접시로 먼저 손을 뻗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그가 보기에도 백상준의 요리가 만드는 과정이 화려했고 그만큼 정성이 들어간 것 같았다. 맛 또한 그만큼 더 있을 것 같았다.
오장호는 뽀얀 소스에 버무려진 면을 포크로 돌돌 말아 한입 크게 넣었다.
“으음!”
순간 연신 생기 없던 오장호의 눈이 초롱초롱해졌다.
크림스파게티가 입에 들어오자마자 말도 못할 풍미의 향연을 느낀 것.
고소하고 진한 크림은 뭐라 형언할 수 없는 깊은 향을 풍기며 오장호의 입과 코를 만족시켜 주었다.
“맛있다.”
오장호가 저도 모르게 한마디를 뱉었다.
같은 레시피로 만드는 크림스파게티라고 해도 루의 완성도와 들어가는 양에 따라 그 맛이 천차만별로 변한다.
백상준은 화이트루를 아주 잘 활용해서 완벽한 베샤멜소스를 만들었고 거기에 생크림을 섞어 크림소스의 풍미를 더했다.
아울러 다져 넣은 양송이버섯의 향이 크림소스의 고소함을 더욱 배가시키며 맛 자체도 깊어지도록 도와주었다.
그가 만든 크림스파게티는 최소한의 재료로 최대한의 맛을 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실제 강지한의 눈에 비추어지는 크림스파게티의 레벨도 무려 5였다.
몇 가지 재료를 사용하지 않은 것 치고 대단한 실력이었다.
그에 반해 강지한이 시판 스프를 사용해 만든 크림스파게티는 최대한 정성을 기울였어도 레벨3에 그쳐 있었다.
다른 사람이 만들었다면 결코 레벨2의 수준을 벗어나지 못할 요리였다.
“호로록! 우물우물. 꿀꺽!”
오장호는 백상준의 크림스파게티를 반 이상 먹어치웠다.
정말 맛있었는지 만족스러워하는 표정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이를 지켜보던 시청자들이 백상준의 이름을 연호하기 시작했다.
-백상준 업!
-ㅂㅅㅈㅇ!
-ㅂㅅㅈㅇ
-ㅂㅅㅈㅇ!!!
-백상준이 이겼네.
-강지한님 3분 요리 사용하시다니 대실망;;
-아니 기다려 봐 조급증환자새끼들. 반전이 있을 수도 있잖아.
-그렇지. 애가 기억하는 맛은 강지한이 만들어 준 저 맛일 수도 있음.
-님들 봉사임?ㅋㅋㅋㅋ 지금 개만족하는 얼굴 안 보임?^^*
이 상황에서 강지한을 옹호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러한 채팅상황을 고스란히 확인하면서도 강지한은 흔들리지 않았다.
“장호 학생, 맛이 어땠나요?”
“진짜 맛있었어요.”
“엄마가 해주던 그 맛이 났나요?”
“그것보다 더 맛있었어요!”
“어머나, 그랬군요.”
오장호의 말에 또 한 번 채팅창이 떠들썩해졌다.
-엄마가 해준 것보다 더 맛있다는데?
-게임 오버네.
-백상준 승!
“자, 그러면 강지한 셰프님께서 만들어 주신 크림스파게티도 맛을 한 번 보도록 할까요?”
“네.”
오장호가 거의 기대하지 않는 얼굴로 강지한의 크림스파게티를 돌돌 말았다.
백상준의 크림스파게티를 먼저 먹는 동안 강지한의 크림스파게티는 소스가 반쯤 굳어 있었다.
3분 스프를 베이스로 만든 것인지라 소스가 일반 크림스파게티보다 더 꾸덕꾸덕했고 빨리 굳었다.
‘식어버리니까 비주얼부터 좀 그렇네.’
세트 밖에서 상황을 지켜보던 프로덕션 이리의 박동일 대표가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귀한 몸을 게스트로 모셨는데 자신이 끌어가는 방송에서 망신을 당하면 기분이 영 찝찝해진다.
이미 채팅창의 여론도 너무 좋지 않았다.
그로서는 강지한의 음식이 반전을 일으켜 주길 바랄 뿐이었다.
오장호는 꾸덕한 크림스파게티를 포크로 돌돌 감아냈다. 그런데 오장호의 표정이 이상했다.
백상준의 크림스파게티를 접했을 땐 기대 가득한 표정이었는데 지금은 어딘지 모르게 굳어 있었다.
마치 강지한의 크림스파게티처럼.
-애기야. 먹기 싫으면 안 먹어도 돼.
-먹지 마! 도망쳐!
채팅창에서는 익살을 넘어서서 만든 사람의 기분까지 잡치게 하는 글들이 하나둘 올라오기 시작했다.
오장호는 포크에 둘둘 말린 스파게티면을 잠시 바라보다가 입안에 넣고 씹었다.
“우물우물.”
꾸덕했던 스프가 침과 섞여 살살 풀리면서 한 덩이처럼 붙어있던 면도 덩달아 풀렸다. 그리고 양송이스프에 들어 있던 작은 양송이 조각들이 조금씩 씹혔다.
“꿀꺽!”
천천히 크림스파게티를 음미하듯 맛보고 삼킨 오장호가 충격 가득한 얼굴로 눈만 도륵도륵 굴렸다.
그러다 다시 한 번 강지한의 스파게티를 돌돌 말아 입에 넣었다.
그렇게 몇 번을 더 큰 리액션이나 별다른 말 없이 스파게티를 맛본 오장호.
다들 오장호의 행동이 무엇을 의미하는 건지 파악하지 못하고 있을 때, 천명옥이 물었다.
“장호 학생, 맛이 어떤가요? 전에 먹었던 스파게티보다 더 맛이 좋은가요?”
오장호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전에 먹었던 게 더 맛있어요. 그런데…… 이 스파게티에서는 엄마가 해줬던 그 맛이 비슷하게 나요.”
오장호의 말에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하나같이 놀람을 금치 못했다.
설마 저렇게 대충 만든 크림스파게티에서 엄마의 손맛을 느낄 줄이야.
오장호 역시 생각도 못했던 일이었다.
그는 지금 꿈을 꾸고 있는 것 같은 기분에 젖어들었다.
“이 스파게티가 전에 먹었던 스파게티보다 맛은 없는데요……. 그런데 저한테는 이게 더 맛있어요. 이게 더 좋아요. 엄마가 해줬던 스파게티가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스파게티니까요.”
“후우.”
오장호의 얘기를 듣고 난 강지한이 비로소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오장호의 엄마는 한식 외에는 좋아하지 않았다고 했다. 그러니 베샤멜소스를 사용했을리 없었다.
그럼 우유와 치즈 같은 재료로 맛을 냈나 했는데 들어가는 재료는 양송이 밖에 없다고 한다.
그것만으로는 이렇다할 맛을 내기가 힘들었다.
게다가 시판용 크림소스와도 맛이 다르고, 식당에서 파는 크림스파게티와도 맛이 다르다고 했다.
단순히 들어가는 재료가 없어서 그럴 수도 있으나 이 경우 백상준처럼 베샤멜소스를 만들지 않는 이상 맛있다는 느낌을 내주기가 힘들었다.
그때 강지한의 머릿속에 번개처럼 떠올랐던 것이 3분 조리 양송이 스프였다.
그 스프 안에는 여러 가지 풍미와 감칠맛이 나도록 인공조미료로 감미가 되어 있었다.
거기에 우유를 넣어 꾸덕함을 덜어주고 싱거워진 간을 소금으로 잡아주면 제법 먹을만 할 것이라는 계산이 섰다.
게다가 잘게 다져진 건양송이 버섯도 들어 있었다.
그에 모험을 해보았는데 그것이 적중했다.
-역시 반전의 사나이!
-거봐! 강지한이 그렇게 무너질 리가 없지 ^^b
-지한님! 앞으로도 지한 식당 단골할게요! 충성충성!^^7
-캬아! 뭔가 사이다 마신 기분.
단번에 판세가 뒤집히자 채팅창의 분위기도 덩달아 바뀌었다.
한편 오장호는 엄마 생각이 나는지 울먹거리면서 남은 스파게티를 전부 먹어치웠다.
그에 백상준의 안면이 드디어 딱딱하게 굳고 말았다.
그 모습이 방송을 탔고 시청자들은 이를 놓치지 않았다.
-백상준 어쩌니.
-이렇게 역전패 당하나요?
박동일은 조금 전부터 그런 채팅창을 아예 신경 쓰지 못하고 있었다.
강지한이 만들어낸 이 마법 같은 상황이 그저 놀라울 따름이었다.
다른 스텝들 또한 그들의 대표와 같은 마음으로 강지한을 바라봤다.
천명옥은 새어나오려는 한숨을 속으로 삼켰다.
오장호는 강지한의 크림스파게티를 거의 설거지하듯 해치우고서는 쭈뼛거리며 말했다.
“아저씨, 저…… 조금만 더 만들어주시면 안 될까요?”
“더 먹을 수 있겠어요?”
이미 한 접시 반을 먹은 오장호였다.
덩치도 왜소한 아이가 과하게 먹었다가 체하는 건 아닌지 걱정되는 강지한이었다.
“제가 먹으려는 게 아니고…… 포장해 가서 동생도 주고 싶어요. 동생도 엄마가 만들어줬던 크림스파게티 얘기를 자주 했어요. 가져다주면 분명히 좋아할 거예요.”
“아.”
오장호의 부탁을 들어주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여기서 만들어 포장해 가면 집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차갑게 식어 팅팅 불어 있을게 뻔했다.
상황만 허락된다면 차라리 오장호의 집에 찾아가서 만들어 주고 싶은 강지한이었다.
잠시 고민하던 강지한이 오장호에게 물었다.
“그러면 아저씨 집에 동생이랑 놀러오지 않을래? 오늘 밤에도 괜찮고 내일도, 모레도, 글피까지 아저씨 식당 쉬거든. 전화번호 알려줄 테니까 미리 연락만 해주면 아저씨가 데리러 갈게.”
“……정말요?”
생각지도 못했던 강지한의 제안에 오장호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응. 강아지 좋아해?”
“엄청 좋아해요.”
“동생은?”
“음……. 요새는 말 안 들어서 조금 미워요.”
“응? 아니……. 크큭, 동생도 강아지 좋아하냐고.”
“아, 헤헤. 동생도 강아지 좋아해요. 생일 때마다 아빠한테 강아지 사달라고 조를 정도로.”
“우리 집에 엄청 귀엽고 재주 많은 강아지도 있어.”
“대박. 그럼 오늘 가도 돼요?”
“그럼~! 아저씨가 집에도 태워다 줄게.”
강지한과 대화를 나누는 오장호의 얼굴에서는 어느새 우울함이 사라져 있었다.
한편 밖에서 돌아가는 상황을 지켜보던 스텝 한 명이 박동일에게 걱정스레 말을 건넸다.
“대표님, 이대로 괜찮습니까? 대본에는 없던 상황인데. 얘기 더 길어지기 전에 깔끔하게 끊어버리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그러자 박동일이 채팅창을 손으로 가리켰다.
상황 정리를 제안했던 스텝의 시선이 박동일의 손끝으로 향했다.
-대박 감동 ㅠㅠㅠㅠ
-강 셰프님, 진짜 낫닝겐. 날개는 어디에 두고 오셨나요.
-내가 이래서 강지한을 좋아할 수밖에 없다.
-아까 놀려서 미안합니다. 반성합니다. (__)
-장호야, 그 아저씨 따라가서 동생이랑 맛있는 파스타 많이 먹고 와 ㅠㅠ
-지한님, 애들 신경 써주시는 마음씨 진짜 대박♥
-갓지한이다 시바.
-강지한 업!
-ㄱㅈㅎㅇ
-ㄱㅈㅎㅇ
-ㄱㅈㅎㅇ!!
방송을 보는 시청자들의 반응이 상당히 좋았다.
넋 놓고 채팅창의 글을 읽고 있는 스텝에게 박동일이 말했다.
“오늘 이 방송 끝나고 2부 이어간다.”
“2부요? 그런 거 없었잖아요.”
“특별 편성해. 애들 강 셰프님 집에 가서 크림스파게티 먹는다잖아. 우리도 양해 구하고 같이 가서 영상 내보내자고. 분명히 반응 좋을 거야.”
“우리끼리 찍으면 돈도 안 될 텐데 굳이…….”
스텝의 딴지에 결국 박동일의 얼굴이 사나워졌다.
“조회수 많이 나오면 쟤가 엄마 찾을 가능성이 더 높아지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