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6
Restaurant 185. 어머니의 크림스파게티
강지한이 백상준과 천명옥을 번갈아봤다.
하필이면 본인이 나올 때 그녀의 아들을 같이 게스트로 섭외하다니.
‘내가 예민한 건가?’
하나, 그렇게 생각하고 넘기기엔 뭔가 탐탁찮은 부분이 있었다.
그때 서글서글한 인상의 사람 좋은 냄새를 풀풀 풍기는 삼십 대 남성이 다가와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세요, 강지한 셰프님. 프로덕션 이리의 대표 박동일이라고 합니다. 뵙게 돼서 영광입니다.”
“반갑습니다, 대표님.”
“얼마 전 지한 분식에서 식사했었어요. 진짜 맛있더라고요.”
“아, 그래요? 감사합니다.”
“한데 대표님은 안계시던데.”
“저는 지한 식당을 오픈해서 거기에만 있습니다. 지한 분식은 저만큼 실력이 좋은 후임 주방장이 책임지고 있어요.”
“어쩐지. 지한 식당도 곧 들러보도록 하겠습니다. 인터넷 방송은 처음이시죠?”
“네.”
“어렵게 생각하실 건 없고요. 곧 일반인 게스트 오실 거거든요. 그럼 게스트분께서 먹고 싶다고 하시는 메뉴를 만들어 주시면 돼요. 오늘 게스트분께서는 크림 스파게티를 원하실 거예요. 그걸 맛있게 만들어서 주시면 됩니다.”
일반인 게스트 섭외는 스스로 지원한 사람들의 사연을 제작진이 읽어본 뒤 선택을 하는 식으로 진행된다.
이번 일반인 게스트 역시 수많은 지원자들 중 가장 사연이 절절했기에 선택이 됐다.
“크림 스파게티를 제 마음대로 만들면 되는 건가요?”
“네. 맛있으면 되고요. 음……. 가끔 일반인 게스트분께서 사전에 합의되지 않았던 요구를 하기도 해요. 자기는 어떤 재료를 싫어하니까 넣지 말아 달라든지 하는 식으로. 악의가 있는 건 아니고 사전 인터뷰를 할 때 본인도 깜빡하고 말을 안 했던 거죠. 그때는 당황하시지 마시고 유연하게 대처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강지한은 이미 방송 경력이 있는 사람이다.
때문에 초짜들보다는 훨씬 안정적으로 임할 수 있을 것이라는 게 박동일의 생각이었다.
하지만 녹화 방송과 생방송은 또 달랐다.
진행 중에 어떠한 변수가 벌어질지 모르는 것이 바로 생방송인만큼 강지한의 노련함만 믿고 있을 수는 없는 법.
“만약 진행 중에 난감한 상황이 생기면 뒷머리를 티 나게 긁어주세요. 화면을 다른 분들에게 넘기고 스텝이 다가갈 테니 애로사항에 대해 말씀해 주시면 되겠습니다.”
“알겠습니다.”
그때 마침 일반인 게스트가 주방으로 들어섰다.
“일반인 게스트 오셨습니다!”
스텝의 알림에 강지한의 고개가 옆으로 돌아갔다.
주방에 들어선 일반인 게스트는 아직 어려 보이는 남학생이었다.
짧은 스포츠머리에 우울해 보이는 인상의 남학생은 어쩐지 주눅이 들어 있었다.
스텝이 남학생에게 달라붙어 마이크를 착용해 주고 얼굴에 분칠을 했다.
머리는 만질 필요가 없었다.
스포츠 머리였다.
박동일이 남학생에게 다가가 인사를 건넨 뒤 앞으로의 진행 상황에 설명해 주었다.
“……알았죠? 제가 사인 주면 그때 주방으로 들어가셔서 게스트 셰프님들 오른편에 서시면 되는 거예요. 그러니까 천명옥 대가님과 셰프님들 사이라고 생각하면 돼요. 알았죠?”
“네.”
“오케이.”
설명을 마친 박동일이 시간을 확인했다.
오후 5시 27분.
“자, 생방 시작까지 3분 남았습니다!”
* * *
“프로덕션 이리와 함께하는 인터넷 생방송 ‘무엇이든 만들어 드립니다’. 오늘은 특별한 게스트 두 분을 모셔봤는데요. 첫 번째 게스트부터 소개시켜 드릴게요. 첫 번째 게스트는 춘천 명옥정 분점의 주방장이자 제 친아들인 백상준 셰프입니다. 많은 환영 부탁드려요.”
천명옥의 소개 멘트에 백상준을 잡고 있는 카메라의 화면이 방송에 흘러나갔다.
“백상준입니다. 오늘 맛있는 요리 해 보이겠습니다.”
그러자 이를 시청하고 있던 시청자들이 빠르게 자판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와! 나름 훈남이네요.
-천명옥 아주매랑은 딴판 ㅋㅋㅋ
-백상준님! 저번에 명옥점 분점 가서 봤었는데ㅎㅎ
-존맛 요리 부탁 ㅅㄱ
-얼굴 비주얼 탈락.
-요리만 잘하면 되지 얼굴 가지고 ㅈㄹ. 본인은 거울보기나 함?
-파이팅!
백상준이 올라오는 채팅들을 보며 재미있어 하고 있을 때, 천명옥은 강지한을 소개했다.
“그리고 오늘 여러분께서 생각지도 못할 만큼 대단한 게스트 한 분을 더 모셨는데요. 바로 소개시켜 드릴게요. 춘천의 자랑이자 배틀 셰프의 우승자, 강지한 셰프님 모셨습니다.”
천명옥의 소개 멘트에 채팅창에 순간 혼돈이 찾아왔다.
-강지한? 레알? 이거 낚시 아니냐?
-와 ㅅㅂ;;; 실화냐?
-강지환이겠지.
-그냥 전화 연결 정도 추측해봅니다.
채팅창에 이런저런 추측 글들이 올라올 때, 천명옥을 잡고 있던 화면이 강지한의 원샷 화면으로 바뀌었다.
그러자 채팅창의 화력이 갑자기 폭발했다.
-강지한이 왜 거기서 나와?
-레알? 강지한?
-와! 제작진들 섭외력 오졌다;;
-공중파도 아니고 케이블도 아니고 인터넷 방송에서 강지한이 나온다고?
-비주얼 훈훈하다♥♥♥♥
-꺅! 너무 잘생겼어여~~~ ;`)
-어제 지한 식당 갔었는데, 실물 깡패임.
갑자기 폭발해 버리는 시청자들의 반응에 인터넷 채팅창의 글들은 읽기 버거울 만큼 빠르게 올라가고 있었다.
이런 상황은 처음인지라 천명옥와 박동일은 물론이고 다른 제작진들까지 살짝 당황하고 말았다.
시청자들의 난리법석을 자아내게 한 강지한은 카메라를 바라보며 인사를 건넸다.
“반갑습니다, 무엇이든 만들어 드립니다 시청자 여러분. 강지한이라고 합니다. 생방송은 처음이라 떨리네요. 그래도 맛있는 음식 만들어 보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강지한의 인사가 끝난 이후에도 빠르게 올라가는 채팅창의 화력은 식을 줄을 몰랐다.
아니, 그 목소리가 좋다며 한 번 더 난리가 났다.
‘강 셰프님 사이즈가 이 정도였어?’
백상준이 속으로 혀를 내둘렀다.
배틀 셰프 우승자라는 명함이 확실히 대단하긴 했다.
‘그래도 이렇게까지 차이가 날 거라고는…….’
백상준의 입맛이 약간 썼다.
본인도 춘천에서는 나름대로 잘나가는 사람이었다.
전국적으로 인맥도 괜찮은 데다 몇 번이나 방송 출연을 한 적이 있었다.
또한 나이에 비해 수준급인 요리 실력은 백상준이라는 이름을 잡지책이나 신문에 자주 실리게 만들어주었다.
하지만 배틀 셰프 딱 한 프로에서 얼굴을 알린 강지한보다 인지도가 현저히 떨어지는 현실이 영 불편했다.
천명옥이 그런 백상준의 안색을 살폈다.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은 듯 미소 짓고 있었지만 어딘가 자연스럽지가 않았다.
‘정신 차려라, 상준아. 여기서 속 좁아지면 네가 지는 거다.’
강지한의 인지도가 자신의 아들보다 높을 것이라는 건 예상했던 바.
다만 이렇게까지 현격한 차이가 날 줄은 몰랐다.
천명옥은 강지한이 백상준에게 훌륭한 자극제가 되어 주기를 바랐다.
강지한이 걸림돌이 되느냐, 디딤돌이 되느냐 하는 것은 전부 백상준 본인에게 달려 있었다.
“그럼 오늘 두 셰프님의 음식을 맛볼 행운의 주인공을 모셔보도록 할까요?”
천명옥의 멘트에 박동일은 대기하고 있던 남학생을 주방으로 들였다.
남학생이 천명옥과 셰프들의 사이에 자리를 잡고 섰다.
“간단하게 본인 소개 부탁드릴게요.”
천명옥이 남학생의 어깨를 쓸어내리며 부드러운 음성을 흘렸다.
“저는…… 중학교 1학년이고 이름은 오장호라고 합니다.”
“그래요. 우리 장호군은 어떤 음식이 먹고 싶어서 지원을 했죠?”
그 물음에 오장호는 잠시 회상에 잠긴 얼굴로 목울대를 꿀럭이다가 겨우 입을 열었다.
“크림스파게티가 먹고 싶어요.”
“크림스파게티, 참 맛있는 음식이죠. 왜 크림스파게티가 먹고 싶은 거죠?”
“그건…… 제가 많이 어렸을 적에 엄마가 만들어줬던 음식 중에 가장 맛있어서요.”
“어머니께서 양식 요리를 아주 잘하셨나 보네요.”
오장호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못하셨어요. 아니, 안 하셨던 것 같아요. 엄마는 한식을 좋아했어요. 중식도 일식도 양식도 안 좋아하셨어요. 그래서 한식 말고 다른 음식은 거의 만들어 주지 않았는데 어느 날 크림스파게티를 만들어 주셨었어요. 그게 정말 맛있었어요.”
“그랬군요. 그런데 엄마의 크림스파게티가 그렇게 맛있으면 집에서 만들어 달라고 하면 되지 않을까요?”
천명옥은 오장호의 사정을 전부 알고 있었지만, 대본에 쓰인 대로 모르는 척 물었다.
“엄마는…… 제가 초등학교 2학년 때 집을 나가셨어요. 오늘 여기 나온 것도 혹시 엄마가 방송을 보면 절 보러 다시 돌아와 주시지 않을까 해서 나온 거예요.”
말을 하는 오장호의 음성이 물기에 젖어 있었다.
“어머나……. 그런 사연이 있는 줄은 몰랐네요. 아줌마가 미안해요.”
“괜찮아요.”
“우리 장호군 씩씩하네요. 그럼 두 셰프님에게 엄마의 크림스파게티가 어땠는지 자세히 설명해 줄 수 있겠어요?”
오장호가 강지한과 백상준을 쳐다봤다.
“엄마가 만든 크림스파게티는 건더기가 거의 없었어요. 뭔지 잘 모르겠는데 다진 버섯이었나? 그런 것들만 가끔 씹혔고 하얬어요. 그리고 아빠나 친구들이랑 밖에서 사먹은 크림스파게티는 엄마가 만들어준 크림스파게티 맛이랑 조금 달랐어요.”
오장호의 설명이 끝나자 백상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대충 그림이 그려지는 것 같네. 형이 최대한 비슷하게 만들어줄게.”
“정말요?”
“그럼! 믿어봐.”
백상준이 자신만만하게 얘기하는 반면, 강지한은 말을 아꼈다.
‘씹히는 재료가 거의 없는 하얀 크림스파게티라.’
강지한이 생각에 빠져 있는 동안 백상준은 벌써 크림스파게티 조리에 들어갔다.
‘우선은 베샤멜소스부터.’
그는 프라이팬에 버터와 밀가루를 일대일 비율로 섞어 약불에 볶았다.
베샤멜소스의 농후제가 되는 루를 만들려 함이었다.
‘새햐안 크림이라 그랬지.’
백상준은 루의 색이 변갈되기 전에 가열을 멈춰 화이트루를 만들었다.
프라이팬이 조금 식은 뒤, 백상준은 우유를 조금씩 넣으며 화이트루를 살살 풀어주면서 다시 약불로 가열시켰다.
루가 완전히 풀린 다음에는 양송이버섯을 집었다.
‘엄마가 해줬던 크림스파게티가 시중에서 파는 것과 맛이 조금 다른 이유는 들어가는 재료들의 부재 때문이겠지.’
크림스파게티라고 하면 최소한 베이컨과 버섯 정도는 들어가기 마련이다.
해산물이 들어가기도 하고 갖가지 채소가 들어가기도 한다.
특히 돈을 받고 파는 음식이라면 건더기가 실해야하는 법.
어떠한 재료가 들어갔느냐에 따라 크림소스의 풍미가 달라진다.
그런데 오장호가 먹었던 엄마의 크림스파게티는 버섯 건더기만 씹혔다고 했다.
그러니 시중에서 푸짐한 재료를 넣고 만드는 크림스파게티와 그 맛이 같을리 없었다.
백상준이 세척한 양송이버섯을 잘게 다졌다.
도마 위에서 움직이는 칼이 춤을 추듯 빠르게 움직였다.
이를 지켜보는 시청자들이 감탄의 말을 쏟아냈다.
-와아! 손놀림 보소.
-괜히 천 아주매 아들이 아니네+_+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진짜 대박이다!
-근데 강지한은 왜 돌됐음?
-헐, 설마 백상준한테 쫀 거?-_-
-진짜 그런 거면 개실망.
-생방송이라 얼었습니까? 예? 얼었냐고!!!!
백상준이 빠르게 크림스파게티를 만드는 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는 강지한을 시청자들이 질책했다.
게스트의 행동에 일희일비하며 기분에 따라 타자를 두들기는 것이 가벼움의 극치를 보여주고 있었다.
하지만 강지한은 그것을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이상한데.’
그는 계속해서 느껴지는 위화감에 그 해답을 찾으려고 애쓰다가 오장호에게 물었다.
“장호 학생, 어머니가 한식을 좋아하신다고 했죠?”
“네.”
한식 이외에 다른 요리에는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고 했다. 그런 분이 베샤멜소스 같은 것을 만들었을 가능성은 낮았다.
그럼 시판용 크림소스를 사용했을까?
“근데 밖에서 파는 크림스파게티는 어머니가 만들어준 것과 맛이 달랐고. 혹시 크림스파게티용 소스를 따로 사와서 만든 건 아니었어요?”
“그건 아니에요. 만드는 과정은 본 적이 없지만 저도 혹시나 해서 이런저런 소스들을 사서 먹어봤는데 그 맛이 아니었어요.”
“그렇구나. 고마워요.”
몇 가지 질문을 건넨 강지한은 또다시 생각에 빠졌다.
백상준은 그런 강지한을 힐끔 보고서 속으로 웃었다.
‘뭘 그렇게까지…….’
어차피 저 학생의 기억 속에 있는 맛은 추억 보정이 된 것이 분명하다.
때문에 어떻게 만들어도 그 맛을 재현하기는 힘들다.
그렇다면 가장 비슷한 비주얼로 최고의 맛을 구현해 주면 되는 것이다.
백상준은 크림소스의 간을 본 뒤, 시판용 치킨 스톡을 물에 풀어 조금 넣었다.
이후 끓는 물에 생파스타면을 넣었다.
그것 역시 시판용으로 진공포장되어 있는 반조리 파스타면이었다.
치킨 스톡과 파스타면은 같은 회사 물건이었으며 이 방송을 후원해 주면서 PPL을 넣는 중이었다.
백상준이 하는 양을 보며 현장에 파견되어 있던 후원사 관계자가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눈치가 빠른 백상준은 그것을 알아채고 미소 지었다.
채팅창을 슬쩍슬쩍 확인하니 하나 같이 그를 칭송하고 강지한을 야유하는 중이었다.
‘됐어. 이건 내 판이야.’
백상준이 기꺼워하며 면 꺼낼 타이밍을 재고 있을 때,
슥.
드디어 강지한의 손이 움직였다.
그가 요리를 하기에 앞서 전면에 놓여 있는 많은 시판용 재료 중 하나를 집어 들었다.
이를 본 백상준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저걸…… 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