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5
Restaurant 164. 열무국수와 수박화채
8월 1일, 수요일.
설탕이의 CF 촬영이 있는 날이다.
촬영은 강지한이 쉬는 날로 맞췄다.
주인이 현장에 있어야 강아지들의 연기가 더욱 좋아지기 때문.
설탕이와 강지한의 편의를 위해서 촬영팀이 직접 춘천으로 넘어왔다.
아무래도 차를 타고 이동하다 보면 강아지가 피로해져서 연기하는 데 영향을 끼친다.
촬영 장소로는 사농동에 있는 화목원이 낙점됐다.
여름이라 꽃도 많이 피어 있고 생각보다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곳은 아닌지라 촬영 환경도 괜찮았다.
이미 시청에는 허락을 받아둔 상황.
강지한은 일찍부터 설탕이를 데리고 촬영장으로 향했다.
화목원에 도착하자 촬영 준비로 분주한 스텝들이 보였다.
도그 푸드 관계자 몇 명도 촬영장을 찾은 상황이었다.
이중견도 함께였다.
그가 강지한을 보고서 반갑게 인사하며 다가왔다.
“강 사장님! 오셨습니까?”
“먼 길 오시느라 고생하셨습니다.”
“고생은요. 우리 슈퍼스타 보러 오는 길인데, 오히려 설레는 맘으로 왔습니다. 네가 설탕이니?”
이중견이 바로 허리를 숙여 설탕이에게 물었다.
왕! 헥헥.
설탕이가 대답하고서 꼬리를 흔들었다.
그에 촬영 준비를 하고 있던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설탕이에게 향했다.
“어? 설탕이다.”
“어머나, 우리 갓설탕이 화면으로만 봤는데, 실제로 영접하다니.”
“우와……. 진짜 미치겠다. 강아지가 나보다 잘생긴 것 같냐.”
“사람을 오징어로 만드는 강아지라니.”
“어쩜 아무것도 안 하고 있는 데도 귀여워.”
사람들이 저마다 한마디씩 하며 우르르 몰려들었다.
그들은 설탕이를 빙 둘러싸고서는 쓰다듬고 어르고 말을 걸었다.
하나같이 설탕이에게 푹 빠져서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그런 사람들 틈바구니에는 촬영 감독도 있었다.
일전에 강지한의 CF를 촬영했던 그 감독이었다.
원체부터 강아지나 고양이를 환장하도록 좋아하던 감독인지라 종종 동물이 등장하는 CF도 찍고는 했다.
“어? 김 감독님 아니세요?”
설탕이에게 정신이 팔려서 강지한을 아는 체도 하지 않은 김다윗 감독에게 강지한이 먼저 말을 걸었다.
“아아, 강 사장님. 이거 결례를 범했네요. 설탕이가 너무 귀여워서 저도 모르게……. 하하, 아니, 강아지를 어떻게 키우면 이렇게 크는 겁니까? 우리 강아지들은 붙임성도 없고 좀 까탈스러운 데다가 어렸을 땐 모델감이었는데 크면서 역변이 일어나질 않나…….”
그때 누군가가 소곤댔다.
“강아지들은 주인 닮는다던데…….”
민망해진 김다윗이 바로 화제를 돌렸다.
“아무튼 또 만나게 돼서 반갑군요. 하하. 자자, 그럼 주인공이 왔으니 바로 촬영 들어가 볼까!”
* * *
설탕이를 지켜보던 촬영장의 사람들은 전부 입을 헤 벌리고 있었다.
“설탕아! 이번엔 누워서 행복한 한때를 보내는 기분으로! 액션!”
김다윗 감독의 액션 신호에 설탕이가 벌렁 드러눕더니 엉덩이를 이쪽저쪽으로 움직이며 헥헥 댔다.
이를 지켜보는 이들의 눈은 전부 하트가 됐다.
“설탕이 장난 아니다. 괜히 천재견이 아니었어.”
“어떻게 말을 다 알아들어? 무슨 교육을 시키면 저렇게 자라는 거야?”
“나 오늘부터 설탕이 팬 할래. 강아지가 저렇게 예뻐 보이는 건 첨이야.”
설탕이는 촬영이 들어간 이후부터 김다윗 감독의 요구를 척척 들어주고 있었다.
“이번엔 일어나서 즐겁게 달린다~!”
왕!
설탕이가 알겠다는 듯 대답하고서는 벌떡 일어나더니 신나게 거리를 내달렸다.
“좋다!”
김다윗은 그 장면을 촬영하면서 속으로 혀를 내둘렀다.
‘이건 뭐, 사람이랑 일하는 것 같네.’
연기 좀 한다는 성격 좋은 미남 배우 데려다 놓고 촬영을 하는 것 같은 착각마저 들었다.
강아지랑 설마 이렇게까지 의사소통이 잘될 줄은 생각도 못했다.
내심 설탕이를 잘 키운 강지한이 대단하게 느껴지는 그였다.
한데 사실 강지한도 한 건 별로 없었다.
설탕이는 자체로 똑똑한 녀석이었다.
촬영은 이후로도 한참 동안 더 이어졌다.
김다윗은 설탕이가 무리하지 않도록 컨디션을 봐가며 중간중간 휴식 시간을 충분히 가졌다.
한데 휴식 시간이 될 때마다 사람들이 설탕이에게 우르르 몰려갔다.
설탕이도 그런 사람들의 관심을 싫어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 애정을 듬뿍 받으며 에너지를 충전하고 있었다.
강지한은 모든 사랑을 독차지하는 설탕이를 예소린과 멀리서 지켜보고 있었다.
예소린은 한 시간 전쯤, 촬영 현장을 구경하러 나왔다.
애견 카페는 그녀의 카페에서 일을 배우는 연주연에게 맡겨뒀다.
“역시 설탕이 인기는 하늘을 찌르네.”
예소린이 그럴 줄 알았다는 듯 말했다.
“그치? 나보다 인기가 더 많아.”
“질투나, 지한 씨?”
“내 새끼 예쁘다는데 질투하는 사람도 있어?”
“호호, 농담. 그나저나 다들 배는 좀 채우고 일하는 거야?”
“그러게.”
듣고 보니 촬영이 진행되는 동안 통 무엇을 먹지 못했다.
강지한뿐만 아니라 전 스텝이 쫄쫄 굶고 있었다.
오전에 시작된 촬영은 정오를 넘어섰다.
현재 시각은 오후 1시 반.
누군가는 배고프다는 불평을 터뜨릴 만도 한데 아무도 그런 사람이 없었다.
그저 하나같이 뭔가에 홀린 듯한 얼굴로 설탕이만 보고 있을 뿐이었다.
촬영장에서 중간중간 배를 채운 건 설탕이가 유일했다.
‘배고픔도 잊게 만드는 귀여움이라니.’
여러모로 대단한 설탕이였다.
* * *
강지한의 집은 화목원에서 3분 거리에 있다.
그는 집 안 주방에서 국수를 삶는 중이었다. 그 옆에서는 예소린이 수박 세 통을 반으로 쩍 잘라 숟가락으로 속을 파내고 있었다.
“촬영장에 한 서른 조금 안 되게 있었지?”
예소린이 물었다.
“응. 넉넉하게 30인분 정도만 하면 될 거야.”
“세 통으로 되려나.”
“안 되면 되게 해줘.”
“지한 씨, 나를 마법사로 생각하는 거야?”
예소린이 어처구니없는 웃음을 터뜨렸다. 그러는 와중에도 수박을 파내는 손놀림은 멈추지 않았다.
붉은 수박 과육들이 한 입 크기로 툭툭 떼져서 큰 대야에 쌓여 나갔다.
그 사이 강지한은 15인 분의 면을 건져서 찬물에 박박 씻고 얼음물에 담가 한 번 더 헹군 뒤, 물을 쫙 뺐다. 그리고 참기름을 고루 발라두었다.
그렇게 하면 시간이 지나도 면이 쉽게 불지 않는다.
강지한은 대형 냄비에 다시 물을 한가득 받아서 굵은 소금을 팍팍 뿌리고 식초를 쪼르르 넣어서 끓였다.
소금과 식초가 들어가면 익은 면이 더욱 탄력 있고 쫄깃해진다.
물이 끓는 걸 기다리는 동안 예소린을 도와 수박 속을 전부 파냈다.
그러고는 대야에 한 가득 담긴 수박 과육을 몇 줌 집어 믹서기에 넣고 갈았다. 그러자 과육은 붉은색이 맛깔나 보이는 수박주스가 됐다.
거기에 아카시아 꿀과 레몬즙을 짜 넣고 대야에 부었다.
수박 주스는 과육 사이사이로 스며들어 바닥에 잔잔히 깔렸다.
그 사이 예소린은 메론도 두 통을 썰어서 씨를 바른 과육을 적당한 크기로 썰어 투하했다.
초지일관 붉은색만 가득하던 대야 안에 연두색 과육이 어우러지자 그 비주얼이 더욱 맛있어 보였다.
마지막으로 사이다 한 통과 딸기 우유도 부어 넣으니 끝내주는 화채가 완성됐다.
강지한은 국수 15인분을 더 삶아내고서 30인분의 국수를 또 다른 대야에 담았다.
이어 김치 냉장고를 열더니 잘 익은 열무김치를 꺼내왔다.
뚜껑을 열자마자 새콤하면서 시원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열무 한 줄기를 집어 입에 넣었다. 아삭거리며 씹히는 식감과 충분히 익어 새콤, 시원한 맛이 일품이었다.
국물을 조금 마셔 보았다.
“호록. 크으.”
맛이 아주 제대로 들었다.
강지한은 망설일 것 없이 열무 한 통을 전부 대야에 부어버렸다.
애초에 열무국수를 만들 요량으로 국물이 많이 생기도록 만들어 둔 터였다.
여름 내, 두고두고 해 먹을 생각이었는데 오늘 하루 만에 전부 동이 나버렸다.
국수와 열무를 잘 뒤집어 섞은 뒤, 통깨를 잘 갈아서 뿌려 넣었다.
그것 말고 다른 건 넣을 필요가 없었다.
이대로 열무국수는 가장 완벽했다.
음식이 다 완성됐을 때, 독고진이 친구들을 데리고 들어왔다.
“사장님! 우리 왔습니다!”
30인분의 열무국수와 수박화채가 담긴 거대한 대야 두 개를 들어줄 사람이 필요했기에 강지한이 SOS를 친 것.
덕분에 큰 힘 들이지 않고 음식을 촬영장까지 나를 수 있었다.
* * *
촬영은 막바지에 접어들었다.
이제 한 컷만 뽑아내면 끝나는 상황.
애초에 생각했던 스케줄은 오후 7시 종료였는데, 3시가 되기도 전에 끝날 판이었다.
그만큼 설탕이가 열연을 해주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잠시 쉬었다가 합시다!”
김다윗의 말이었다.
그제야 비로소 한 사람 두 사람 허기를 느끼기 시작했다.
“아, 배고프다.”
누군가 배고프다는 말을 입 밖에 꺼냈다.
그러자 그 말이 전염되듯 사방으로 퍼져나가 모든 이들에게 잊고 있던 허기를 상기하도록 만들었다.
김다윗도 비로소 시장한 속을 느끼고 뭔가를 먹어야 하나 생각하던 그때, 장정들이 큰 대야를 가지고 촬영장으로 다가오는 게 아닌가.
“자, 여기 놓고.”
강지한의 말에 장정들은 대야를 바닥에 내려놓았다.
여섯 장정이 들고 온 건 대야뿐만이 아니었다.
국자 네 개와 일회용 젓가락, 숟가락, 국수를 담을 큰 일회용기, 화채용 종이컵까지 챙겼다.
“여러분, 열무국수 만들어 왔어요. 식사하세요.”
“오! 열무국수!”
“무려 배틀 셰프 우승자가 만들어준 열무국수입니까?”
“횡재했다, 아싸.”
“꺄아~ 저 국수 넘 좋아하는데!”
강지한의 말에 사람들에게서 열광적인 반응이 쏟아졌다.
김다윗은 기다렸다는 듯 후다닥 달려와 배급을 기다렸다.
이미 한 번 강지한의 음식들을 먹어봤기에 벌써부터 군침이 꼴딱꼴딱 넘어갔다.
‘촬영하면서 대충 만든 음식 맛이 기가 막혔는데, 집에서 제대로 만들어온 국수는 과연 어떨까?’
김다윗과 스텝들이 촬영장에서 먹었던 음식은 레벨4~5 수준.
지금 강지한이 만들어온 열무국수는 열무 자체의 레벨이 높은 데다가 소면을 기가 막히게 삶아내서 무려 레벨 6의 음식이었다.
강지한이 일회용기에 열무국수를 두둑하게 담아 내밀었다.
“감독님, 다 드시고 화채도 꼭 드세요.”
“먹지 말라고 해도 먹어야죠. 누가 만든 음식인데. 하하.”
김다윗이 용기를 얼른 넘겨받아 국물부터 한입 삼켰다.
“호로록. 크하아!”
땡볕에서 땀 뻘뻘 흘려가며 촬영했던 피로가 한번에 가시는 것 같은 시원한 맛이었다.
이번엔 쫄깃한 국수에 열무줄기를 함께 집어서 먹었다.
“후루룩. 쩝쩝. 꿀꺽! 어허!”
김다윗의 온몸에 전율이 흘렀다.
이건 그야말로 천국의 맛이었다.
‘아니, 면을 대량으로 삶았을 텐데 어떻게 이리 쫄깃해? 열무김치는 완전히 미쳤다. 미쳤어. 이거 김치 좀 따로 구해갈 수 없나?’
맛있는 걸 먹으니 집에 있는 와이프와 애들 얼굴부터 떠오르는 그였다.
하나 그것도 잠시.
그는 곧 열무국수 천국에 빠져 정신없이 젓가락을 놀려댔다.
이후로 열무국수를 배식받은 다른 사람들도 전부 김다윗과 같은 반응을 보였다.
예소린과 도근한이 배식해 주는 수박화채도 달달하면서 톡 쏘는 탄산의 맛이 끝내줬다.
얼음도 동동 떠 있어서 시원하기까지 하니 금상첨화였다.
게다가 새콤한 열무국수와의 조화도 좋았다.
수박화채의 레벨은 3.
크게 특별할 것 없는 레시피였기에 높은 수준의 음식은 아니었다. 그나마 레벨 3이 된 것도 상품의 수박을 사용한 덕분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더운 날씨에는 최고의 음식임을 부정할 사람이 없었다.
배식을 끝낸 강지한이 자신의 음식을 먹는 사람들의 모습을 감상했다.
전부 판으로 찍어 박은 듯 행복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진짜 배틀 셰프 1등 할 만하네요.”
“내가 여태껏 먹었던 열무국수는 가짜였던 거야.”
“둘이 먹다 하나가 죽어도 모르겠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이제 알겠다.”
단 한 사람도 예외 없이 강지한의 솜씨를 칭찬했다.
그 모습을 강지한과 예소린이 뿌듯하게 바라봤다. 음식을 날라준 독고진의 가슴도 덩달아 뿌듯해졌다. 마치 자신이 국수를 만들기라도 한 것처럼 어깨에 힘이 팍팍 들어갔다.
모두가 식사를 하고 있자니 설탕이는 강지한의 앞에서 이리 뛰고 저리 뛰며 애교를 부렸다.
강지한이 그런 설탕이를 품에 안아주자 당장 보드라운 혀가 뺨을 핥았다.
“흐흐, 아빠가 그렇게 좋아?”
왕!
설탕이가 눈을 감더니 머리를 강지한의 가슴에다 마구 비볐다.
* * *
“컷! 수고했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오후 2시 40분 경, 드디어 CF촬영이 끝났다.
촬영 중간중간 포장지에 들어갈 사진 촬영까지 마친 상태.
설탕이는 천만 원 이상의 값어치를 충분히 해내주었다.
CF는 신제품 출시에 맞춰 빠르게 배포할 예정이라고 했다.
“잘되어야 할 텐데요.”
걱정하는 이중견에게 강지한이 호언장담했다.
“우리 설탕이 별명이 갓설탕입니다. 왜 그렇게 불리는지, CF 나가고 나면 알게 될 겁니다.”
그도 어쩔 수 없는 팔불출 아빠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