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벨업 하는 식당-166화 (166/330)

# 166

Restaurant 165. 의외의 손님들

배틀 셰프는 끝이 났지만, 본선 출연자들이 함께하는 단톡방은 여전히 남아 있었다.

단톡방에서는 얼마 전부터 지한 식당에 식사를 하러 가겠다는 사람들이 날짜를 맞춰 보고 있는 중이었다.

그런 사람들 중에는 한돈선 대가도 섞여 있었다.

한데 대부분 본업이 있는 사람들인지라 시간을 맞춰 보는 게 쉽지 않았다.

결국 며칠에 걸쳐 이어진 회의는 따로따로 시간 되는 대로 가기로 하고 싱겁게 끝났다.

뭔가 흐지부지 되어버린 것 같은 기분에 강지한도 더는 신경을 쓰지 않았다.

오늘도 지한 식당은 활기차게 문을 열었다.

식당을 찾는 손님들의 표정은 하나같이 밝았고, 종업원들도 싹싹하게 그들을 반겼다.

“어서 오세요. 세 분이신가요? 이쪽으로 모시겠습니다.”

“반갑습니다. 네 분 이쪽 테이블로 안내해 드릴게요.”

홀 매니저 유지호와 홀 부매니저 설인아는 시종일관 미소로 손님들을 대했다.

두 사람은 이제 시선을 주고받는 것만으로 서로 의견을 주고받는 경지까지 올랐다.

그렇게 손님들이 많이 몰리는 데도 지한 식당이 아수라장으로 변하지 않고 차분하게 식사를 내어갈 수 있는 건 모두 이 두 사람의 조율 능력 덕분이었다.

그들은 손님이 홀 안에서 오래 기다리지 않으면서 주문이 대량으로 몰리지 않게 신경 썼다.

지금껏 큰 컴플레인 없이 무난하게 장사가 이어질 수 있었던 것도 그들의 덕이 컸다.

물론 주방에서 함께해 주는 한지민과 전덕진 아주머니, 강희주 아주머니 역시 많은 힘이 되어주고 있었다.

알바들 또한 문제를 일으키지 않고 성심성의껏 일을 해주는 상황.

강지한은 그들 모두에게 고마운 마음을 가졌다.

한데, 그게 가능할 수 있었던 건 강지한 본인이 먼저 종업원들을 배려하고 신경 써준 덕분이었다.

그 진실된 따스함이 종업원들로 하여금 최선을 다해 일하도록 만든 원동력이 됐다.

하지만.

‘아무래도 일손이 조금 부족해.’

갈수록 지한 식당을 찾는 손님들은 늘어갔다.

때문에 홀에서 최선을 다해 주문을 조율하고 주방에서 빠르게 메뉴를 만들어 내는 데도 점점 손님들의 딜레이 시간이 길어지고 있었다.

‘홀에 한 명, 주방에 한 명 정도 추가하면 딱 좋겠는데. 모집 공고를 또 내야겠네.’

강지한은 본점의 내실을 탄탄하게 다지고 싶었다.

그다음에 분점을 낼 생각이었다.

돈 문제는 해결됐다.

얼마 전, 배틀 셰프의 상금과 신푸드의 로열티가 들어왔다.

통장을 확인해 본 강지한은 말도 안 되는 금액에 헉 소리를 낼 뻔했다.

한 달 동안 무려 3억 정도 되는 돈이 입금되어 버린 것.

물론 그중 2억 8600만 원은 세금을 제한 배틀 셰프의 상금이었고, 나머지가 로열티였지만 그게 어디인가.

로열티만으로 달에 1400만 원 정도가 들어온 것이다.

달에 죽어라 일을 해도 오백 벌이가 힘든 사람이 수두룩하다.

그건 리어카를 끌어본 강지한이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런데 이제는 가만히 앉아 있어도 달에 돈이 1,000 이상씩 들어온다.

‘물론 이게 영원하리라는 법은 없지만.’

무엇이든 유행하는 시기가 있다. 그 시기가 지나 시들해지면 덩달아 들어오는 돈도 줄어들 것이다.

강지한은 그렇게 들어오는 돈이 영원할 것이라 생각지 않고 계속해서 노력하고자 마음먹었다.

아무튼 분점을 내는 데 돈 문제는 해결된 상황이니 사람만 있으면 만사 오케이다.

한데 이 부분이 가장 문제였다.

분점을 이어받으려면 강지한만큼은 아니더라도 강지한의 요리 실력과 플레이팅을 어느 정도 흉내낼 수 있는 실력자가 필요했다.

한지민의 성장 속도가 무섭기는 하지만 그 정도까지 크려면 한참 멀었다.

‘결국은 사람인데…….’

고민 속에 시간이 흘러갔다.

* * *

점심시간이 거의 끝나갈 무렵.

생각지도 못한 사람 둘이 식당으로 들어섰다.

“지한아~! 나 왔어!”

홀에서 주방으로 넘어 들어오는 익숙한 음성에 강지한의 눈이 동그라졌다.

주방과 가장 가까운 테이블엔 배틀 셰프 탑3까지 갔던 강지영과 심사위원 한돈선 대가가 마주 앉아 있었다.

“한 대가님, 지영 누나. 어떻게 된 거예요?”

“지한 씨, 오래간만이에요.”

“단톡방에서 식당 찾아가겠다고 했었잖아.”

“난 그때 얘기가 흐지부지된 줄 알았지.”

대답을 하는 강지한의 시선이 한돈선에게 꽂혀 있었다.

설마하니 그가 정말 자신이 운영하는 식당에 올 줄은 생각도 못했다.

“야야, 저 사람 배틀 셰프 심사위원 맞지?”

“대박. 한돈선이야. 나 저분이 운영하는 식당 가봤는데 졸맛이야.”

“우와, 실물이 낫다.”

“소문에 게이라던데.”

“결혼해서 잘 살고 있는데 무슨 게이야. 자식은 없는 것 같지만.”

“강 사장님이 진짜 대단하긴 대단하구나. 한돈선까지 찾아오고.”

“맞은편에 강지영이다. 배틀 셰프 탑 쓰리!”

“어머……. 애 낳은 사람 맞아? 완전 존예. 스무 살 초반 같아.”

“괜히 미스 춘향 진이 아닌 거지.”

식당의 손님들이 두 사람을 알아보고 수군거렸다.

강지영은 그 반응을 모른 척하며 은근 즐겼고, 한돈선은 익숙한 듯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한 대가님, 와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지영 누나도.”

“지한 씨도 우리 식당에 와서 식사를 했잖아요. 그러니 나도 와서 먹어봐야 예의가 아니겠어요? 호호호.”

“어쩌다 한 대가님이랑 시간이 딱 맞아서 둘이 왔지 뭐야. 그나저나 여기 주문 방식이 조금 특이하네?”

그때 유지호가 눈치 있게 다가가 주문 방법에 대해 설명을 해주었다.

설명을 듣고 난 두 사람이 재미있어 하며 주문을 했다.

“음……. 그럼 나는 제육볶음에 된장찌개! 달걀말이는 참치 달걀말이로 바꿔주세요.”

“저는 소불고기에 김치찌개, 참치 달걀말이로 부탁드릴게요.”

유지호가 주방에 주문서를 넘기자 직원들의 손이 바쁘게 움직였다.

주문이 들어간 지 채 5분이 지나지 않아 오더 테이블에 상 두 개가 나왔다.

“와~ 빨리 나온다.”

“이 정도 속도로 음식이 나오면 회전률이 괜찮겠네요. 어디…….”

한돈선은 흐뭇한 얼굴로 미니 한정식 상을 살폈고, 강지영은 스마트폰을 꺼내 그것을 찍었다.

“그럼 먹어볼까요, 대가님?”

“드시죠. 호호.”

“너무 예뻐서 젓가락 대기가 미안하네.”

강지영이 중얼거리면서 반찬들을 하나하나 공략해 나갔다.

미니 한정식이라는 말이 무색하지 않게 반찬과 음식들의 가짓수가 많았고, 플레이팅도 예뻤으며 맛 또한 고급스러웠다.

고급 파인다이닝 한정식당의 장점과 서민 한정식당의 장점들을 고루 잘 섞어놓은 훌륭한 한 상이었다.

한돈선도 천천히 음식들을 음미했다.

‘음, 맛있네.’

제철 재료들로 만든 반찬과 전채요리, 본식, 간단한 식사와 찌개, 정성 가득 담긴 만두까지 완벽했다.

도저히 9천 원으로 먹을 수 있는 상이라고는 생각되지 않는 퀄리티였다.

‘게다가 이 만두는 정말 재미있어.’

몇 번을 먹어도 자신이 만든 만두와 매우 흡사한 맛을 내고 있었다.

만두의 핵심인 만두피 또한 완벽하게 만들어냈다.

‘특히 이 찌개는 정말 극찬을 해주고 싶군.’

김치찌개의 맛은 가히 일품이었다.

이 김치찌개 한 그릇의 가격만 해도 9천 원 이상은 받아야 마땅하다고 느껴질 정도였다.

만약 레벨7의 김치찌개가 아띠로 옮겨간다면 족히 2만 원 이상의 가격은 붙게 될 터였다.

‘이런 작은 물에서 놀 사람이 아니야.’

강지한의 음식을 먹으면 먹을수록 점점 더 그의 재능이 탐나는 한돈선이었다.

‘더 큰 물에서 놀아야 돼.’

자신의 욕심은 그러하나 주방에서 일을 하는 강지한의 얼굴을 보니 차마 강요할 수가 없었다.

그는 진심으로 즐거워 보였기에.

한돈선은 사실 오늘 단순히 음식을 먹는 것뿐만 아니라 강지한에게 중요한 제안을 하려 했다.

그 제안이란 강지한을 자신의 후계로 들이는 것.

한돈선에게는 자식이 없고 앞으로도 계획이 없었다.

대신 심성이 올바르고 정신이 맑으며 정의롭고 무엇보다 요리 실력이 출중한 이에게 자신의 모든 것을 물려주고 싶었다.

그에 적합한 인물로 강지한만 한 이가 없었다.

그러나 일단 접어두고 나중을 기약하기로 했다.

지금은 제안해 봤자 거절만 당할 것 같았다.

‘한데 정말 신기해. 먹으면 먹을수록 우리 아버지의 손맛이 떠오르니…….’

한돈선이 감탄하는 사이 강지영도 속으로 다른 생각을 하는 중이었다.

* * *

강지영과 한돈선은 점심 마지막 손님이었다.

둘이 식사를 마치고 나서 지한 식당은 브레이크 타임에 들어갔다.

강지한은 직원들에게 밥을 챙겨 먹으라 이른 뒤, 둘을 이끌고 근처 카페로 향했다.

세 사람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이야기를 나눴다.

대화의 주제는 대부분 강지한의 음식에 관한 것이었다.

한돈선은 그 맛에 감탄했고, 강지영은 이를 넘어서서 크게 감격했을 정도였다.

한 시간 정도 수다를 떨던 와중 시간을 확인한 한돈선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개인 스케줄이 있어서 서울로 이동해야 했기 때문이다.

강지영과 강지한은 한돈선을 정중히 배웅해 줬다.

카페에는 둘만 남게 됐다.

그러자 강지영이 한참 전부터 꺼내려고 했던 이야기를 시작했다.

“지한아, 혹시 지한 식당은 분점 같은 거 안 내?”

농담처럼 툭 던지는 그녀의 말에 강지한이 장난스레 받아쳤다.

“내면 누나가 하려고?”

“응, 그러려고.”

“……진심이야?”

“백 퍼센트 진심이야.”

“갑자기 왜?”

“갑자기 네 음식 먹다가 여기 분점 내면 참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 분명히 장사 엄청 잘될걸? 나 가평 사니까 그렇게 멀지도 않아서 관리하는 것도 쉬울 테고.”

강지영의 표정을 보니 농담을 하는 게 아니었다.

그녀는 정말 지한 식당의 분점을 원하고 있었다.

‘가만, 이 누나라면…….’

강지영은 배틀 셰프 탑3까지 올라갔던 실력자다.

게다가 플레이팅 하나만큼은 강지한과 도근한보다 한 수 위였다.

그렇다면 지한 식당의 분점을 낸다고 했을 때 그녀만큼 적임자가 또 없었다.

“나쁘지 않은 것 같은데?”

강지한의 대답에 강지영의 얼굴이 밝아졌다.

“그치? 네가 생각해도 괜찮지?”

“근데 분점이라는 게 그렇게 막 쉽게 낼 수 있는 건 아니잖아. 이것저것 조율도 해야 하고…….”

“얼마든지 조율해. 되도록 네 조건에 다 맞추도록 할게. 나 사실 배틀 셰프 끝난 이후로 음식 장사하고 싶어서 죽을 것 같았어. 그런데 남편이 불안하다고 도통 날 밀어주지 않는 거 있지? 근데 배틀 셰프 우승자인 네가 낸 식당 분점 맡아 한다고 하면 분명히 밀어줄 거야.”

그 말에 강지한이 잠시 생각을 정리하고 물었다.

“그럼 누나, 최소한 세 달 정도 춘천 왔다 갔다 하면서 일 배울 수 있어?”

“당연하지! 차 몰고 40분이면 도착하는 거린데.”

“당장 주방부터 사람을 한 명 들일 참이었거든.”

“야, 내가 할게. 일하면서 배울게.”

“알았어. 그럼 내가 준비되면 다시 연락해 줄게.”

“최대한 빨리 연락해야 돼, 너. 나 조금이라도 일찍 장사하고 싶단 말야.”

“그럴게.”

* * *

저녁 장사가 시작됐다.

강지한은 음식을 만들며 저도 모르게 콧노래를 불렀다.

“선생님, 뭐 좋은 일 있어요?”

한지민의 물음에 강지한이 대답했다.

“응, 고민거리 하나가 해결됐어.”

“와~ 뭔지 모르지만 축하드려요.”

“고마워.”

강지한 본인도 일이 이런 식으로 풀리게 되리라고는 예상 못했다.

분점의 적임자를 찾는 건 정말 어려울 것이라 생각했는데 그 적임자가 제 발로 나타나 주었으니 횡재한 기분이었다.

지한 식당의 홀은 저녁을 먹으러 온 손님들로 빈테이블 하나 없이 가득했다.

그러다 테이블 하나에 자리가 났다.

홀 알바들이 테이블을 정리하자 강희주가 문을 열어 대기하고 있던 손님 한 분을 안으로 들엿다.

딸랑-

열린 문 너머로 들어온 손님은 삼십 대 초반 정도 되어 보이는 사내였는데 하고 있는 꼴이 꾀죄죄하고 머리는 봉두난발에다가 얼굴과 손에는 때가 가득했다.

옷도 한참을 입었는지 회색 티셔츠가 다 헤치고 목이 늘어났다.

청바지도 지저분했다.

강희주는 손님의 행색에 잠깐 놀랐지만 태연하게 그를 빈자리로 안내했다.

“손님, 우리 식당 이용해 보셨나요?”

강희주가 묻자 청년 조정호가 고개를 저었다.

“그럼 메뉴 주문하는 법부터 알려드릴게요. 우선은 드시고 싶은 메인 메뉴가 두 가지 있는데요.”

그때 조정호가 그녀의 말을 잘랐다.

“그냥 아무거나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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