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4
Restaurant 163. 치즈 인 더 트랩
새로운 한 주의 시작.
지한 김치전골로 출근한 장주희는 아침부터 기분이 좋았다.
‘드디어 내일이네?’
내일, 김숙자는 일이 있어 나오지 못할 것 같아 장주희에게 식당의 오픈과 마감을 맡긴다고 했다.
장주희가 주방에 들어서자마자 김숙자에게 물었다.
“언니, 내일 안 나오시는 거죠?”
“응. 주희 씨가 잘 좀 해줘.”
“아유~ 걱정 말고 맡겨만 둬요. 근데 저기…….”
장주희의 목소리가 은밀해졌다. 그녀가 김숙자에게 소곤댔다.
“주방에 중요한 게 있다고 했잖아요? 그게 뭐예요?”
김숙자는 저번 주, 장주희에게 식당을 부탁하며 주방에 중요한 것이 있다고 말을 흘렸다.
“그게 왜 궁금해?”
“아니, 중요한 게 있다고 그러면 궁금해지는 게 사람 아니겠어요?”
역시나 강지한이 말한 대로였다.
장주희는 사람이 가볍고 성격이 급한 것 같으니 미끼를 던지면 덥썩 물 거라고 했었다.
한데 생각보다 바로 물어보지 않아 조마조마했는데 드디어 미끼를 물어버린 것.
“호호호. 역시 자기는 이렇게 솔직담백한 게 매력이야.”
김숙자가 주방에 있는 다른 아주머니들의 눈치를 살피고는 장주희에게 귓속말을 건넸다.
“자기만 알고 있어. 그게 뭐냐면…… 우리 식당의 존망이 걸린 보물이야.”
“그러니까 그 보물이 뭔데요?”
“더 이상은 아무리 자기라고 해도 못 알려줘. 그냥 그렇게만 알고 있어.”
“……알았어요.”
장주희가 시무룩하게 대답하고는 자기 할 일을 해나갔다.
그러면서 속으로 생각했다.
‘분명히 레시피 노트야.’
* * *
장주희는 오늘 하루 종일 김숙자를 관찰했다.
그녀는 평소와 다름없이 음식을 만들고 주방을 총괄하느라 바빴다.
그런데 이따금씩 그녀의 시선이 주방 앞쪽 하단 선반으로 향했다.
앞쪽 하단 선반들은 식당 초기부터 검은 천으로 가려져 있었다.
그 안에는 자주 사용하지 않는 식기나 예비 식기 같은 것들이 정리되어 있었다.
힐끔.
‘또!’
김숙자의 시선이 또 천으로 가려진 선반으로 향했다.
그녀는 다른 사람들에게 들키지 않으려는 듯 찰나 동안 시선을 두었다가 빠르게 거두어들였다.
‘분명히 저기 뭔가 있어.’
전에는 그런 줄 몰랐다.
그런데 김숙자가 했던 말을 상기하며 관찰하니 무심코 지나쳤던 이상한 시선이 포착됐다.
‘저기부터 살펴야겠다.’
* * *
하루가 저물었다.
모든 직원들이 퇴근하고 난 뒤 김숙자는 장주희에게 식당 오픈 시 주의사항에 대해 알려주었다.
“다 기억했지?”
“네.”
“그리고 식당 비번은 1234야.”
“1234요?”
“응.”
세상에, 그런 비밀번호일 줄은 상상도 못했다.
‘아니, 누가 지나가다 실수로 누르기라도 하면 어쩌려고?’
1234는 김숙자가 전날 미리 바꿔놓은 것이었다.
원래 비밀번호는 김숙자의 큰 아들과 남편이 하늘로 간 날짜였다.
“원래는 지문부터 대조하고 비밀번호를 입력해야 열리는 시스템인데 내일은 비번만 입력하면 열리게 해놓을게.”
“아~ 지문도 있었구나. 알겠어요.”
“그럼 잘 부탁해, 주희 씨.”
“네. 믿고 맡기세요. 그럼 들어가 보세요.”
“응~”
멀어지는 김숙자의 뒷모습을 본 장주희의 입가에 미소가 어렸다.
김숙자가 멀리 사라지고 난 뒤, 집으로 돌아가는 척하던 장주희가 다시 나타났다.
그녀는 주변을 살피더니 도어락의 비밀번호를 입력하고 식당 안으로 들어갔다.
그때였다.
떠난 줄 알았던 김숙자의 얼굴이 길모퉁이 너머에서 쑥 하고 튀어나왔다.
그녀가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응, 강 사장. 강 사장 예상대로야. 비번 알려주니까 바로 따고 들어갔어. 어쩜 사람이 저럴 수가 있지? 나 지금 너무 소름 돋아. 응. 여기로 온다고? 응, 그래. 알았어.”
* * *
홀에는 CCTV가 설치되어 있었지만 장주희의 행동에는 망설임이 없었다.
밤중에 왜 식당에 들어왔느냐 따지면 지갑을 놓고 가서 그걸 찾느라 다시 들어왔었다고 하면 될 일.
“내가 레시피만 손에 넣으면 당장 여기 뜬다. 언제까지 남의 돈 먹으면서 일하겠냐고.”
주방으로 들어온 장주희의 행동이 기민해졌다.
그녀가 당장 주방 앞쪽 하단 선반의 천을 걷었다.
그러자 가지런히 정리된 식기들과 번호 자물쇠가 채워진 작은 함 하나가 보였다.
‘이런 게 여기 있었어?’
평소에 그곳은 들춰 볼 일이 없는 장주희였다.
시키는 것 이상의 일은 하지 않았기에 굳이 그 곳을 들춰 볼 생각은 하지 않았다.
“등잔 밑이 어둡다더니. 근데 자물쇠가 걸려 있네. 이러면 말짱 꽝이잖아? 비번을 알아야 이걸 열지……. 혹시?”
장주희가 혹시나 싶어 자물쇠의 버튼 중 1, 2, 3, 4를 누르고 휙 당겼다.
그러자 딸깍 하며 자물쇠가 열렸다.
“와……. 이 언니 진짜 허술하네. 사람 그렇게 안 봤는데.”
장주희는 희희낙락하며 함의 뚜껑을 열었다.
근데 함의 뚜껑이 달그락하면서 몸체와 분리되어 두 동강 나버리는 게 아닌가?
“어머, 어머. 이거 왜 이래?”
장주희의 얼굴이 노래졌다.
“아니, 뭐 이렇게 부실해? 그거 힘 좀 줬다고 망가져?”
사실 애초부터 망가진 함을 갖다놓은 건데 장주희는 자신이 망가뜨린 것이라 생각했다.
이제는 영락없이 누군가 이 함을 열어봤다는 게 들킬 판.
“됐어. 레시피만 챙기면 돼.”
장주희의 시선이 함 안으로 향했다.
거기엔 작은 노트 하나가 담겨 있었다.
노트를 집어 든 장주희의 가슴이 두근거렸다.
그녀가 마른침을 삼키며 노트를 열었다. 그리고 내용을 확인하는 순간, 머릿속에서 폭죽이 터졌다.
‘이거야!’
노트 안에는 김치전골에 들어가는 비법 양념과 육수, 그리고 지한 김치 양념의 레시피가 적혀 있었다.
드디어 보물을 손에 넣었다.
한데 뭔가 싸한 기분이 들었다.
뭔가가 너무 착착 맞아 들어가고 있는 느낌.
‘이거 설마……?’
의심이 든 장주희는 레시피를 가만히 바라보다가 거기에 적혀 있는 대로 김치전골의 특제 양념을 만들었다.
그리고 손으로 콕 찍어 맛을 봤다.
‘똑같아!’
그녀가 주방에서 일하며 맛봤던 특제 양념과 같은 맛이었다.
그제야 장주희의 의심이 걷혔다.
* * *
“어머어머. 쟤 하는 것 좀 봐.”
지한 식당 근처에 차 한 대가 주차되어 있었다.
강지한의 차였다.
운전석에는 강지한이, 조수석에는 김숙자가 앉아 있었다.
그들은 김숙자의 스마트폰으로 CCTV 영상을 보는 중이었다.
김치전골 매장의 CCTV는 직원들이 나오지 않는 휴일에 스마트폰과 연동이 되는 제품으로 바뀌었다.
이 작업을 위해서 장주희를 잡는 데 일주일의 시간을 허비한 것이다.
장주희가 식당으로 들어선 이후 김숙자의 연락을 받은 강지한은 차를 몰아 금방 도착했다.
그리고 김숙자의 스마트폰으로 CCTV의 위치를 조종해 주방 쪽을 비춘 것.
전골 매장의 주방은 오픈되어 있었기에 각도를 바꾸면 그 안에서의 움직임이 CCTV에 잡혔다.
장주희는 미처 그 부분까지는 생각하지 못했다.
강지한과 김숙자는 장주희가 하는 양을 고스란히 보고 있었다.
“레시피 보면서 양념장 만들고 있네요.”
“근데 정말 속을까?”
“네, 맛은 똑같을 거예요. 양념장 상태로 있을 때는. 하지만 가지고 가서 끓여보면 전혀 그 맛이 안 날 겁니다.”
“진짜 신기하네. 어떻게 그게 가능해?”
“요리가 과학이랑 비슷하거든요. 원래 제가 만든 양념장은 비법 육수와 지한 김치가 들어가면 더 폭발적인 맛을 내도록 구성되어 있어요. 근데 그 전까지는 그냥 달콤, 짭짤, 매콤한 양념장이에요. 맛이 너무 응축되어서 그대로 찍어 먹으면 강렬한 맛이 다른 맛들을 전부 감춰 버려요. 육수에 풀어주고 김치가 들어가 바글바글 끓어야 그 속에 숨어 있던 깊은 맛들이 드러나는 거거든요.”
“그런 거야?”
“네. 지금 주희 아주머니가 먹고 있는 양념장은 그 강렬한 맛만 재현해 놓은 거예요. 깊은 맛은 전혀 없어요. 봐봐요. 고개 끄덕이잖아요.”
스마트폰 영상 속의 장주희가 양념장을 찍어 먹고서는 고개를 주억거렸다.
이제 그녀는 노트에 적힌 다른 레시피들도 전부 진짜라고 믿게 될 터였다.
“이제 들어가시면 되겠어요, 어머니.”
“좋아. 내 저년을 다시는 얼씬도 못하게 만들어 버릴게.”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김숙자는 자신의 스마트폰을 강지한에게 맡겼다.
그러고는 성큼성큼 전골 매장으로 다가갔다.
* * *
딸랑-
‘뭐야?!’
갑자기 들려온 종소리에 주방에서 양념장을 만들던 장주희가 화들짝 놀랐다.
그녀는 반사적으로 레시피 노트를 주머니에 쑤셔 넣고 함을 닫았다.
어차피 함이 망가져 버린 이상 누군가 손을 댔다는 걸 알게 될 것이고, 가장 유력한 용의자로 자신이 지목될 터.
그렇다면 이왕 이렇게 된 거 그냥 훔치고서 내일부터 나오지 않을 참이었다.
양념장을 만들려고 꺼내놓았던 재료들을 후다닥 제자리에 갖다 놓고, 완성된 양념장이 담긴 종지와 사용한 숟가락은 핸드백에 넣었다.
그야말로 전광석화가 같은 손놀림이었다.
그러는 사이 김숙자가 주방으로 다가와 놀란 눈으로 장주희를 쳐다봤다.
“주희 씨? 왜 여기 있어?”
장주희의 등줄기에서 식은땀이 줄줄 흘렀다.
하지만 겉으로는 태연한 척하며 대답했다.
“아, 저…… 핸드폰을 놓고 가서요. 호호호.”
“그랬어?”
“근데 언니는 왜 다시 왔어요?”
“나도 스마트폰을 두고 간 것 같아서.”
말을 하는 김숙자가 망가진 함이 있는 하단 선반을 슬쩍 살폈다.
장주희의 심장이 덜컹 내려앉았다.
김숙자는 금세 시선을 거두고서 장주희에게 물었다.
“핸드폰은 찾았고?”
“네, 찾았어요.”
“그래, 그럼 먼저 들어가 봐. 나도 폰 좀 찾고 들어갈 테니까.”
“같이 찾아 드릴까요?”
“됐어, 피곤할 텐데 빨리 들어가. 내일 오픈까지 하려면 어서 쉬어야지.”
자신을 잡지 않고 나가라 등 떠미는 게 고마운 장주희였다.
“그럼 내일 봐요~ 언니.”
“응, 들어가.”
딸랑-
매장 문을 나서는 장주희는 두 번 다시 이곳에 올 일이 없을 것이라 다짐했다.
김숙자는 함을 열어보았다.
안에 있던 가짜 레시피 노트가 사라져 있었다.
“역시. 쥐 잡는 데는 치즈만 한 게 없지.”
함이 빈 것을 확인한 그녀는 매장 불을 끄고 밖으로 나와 도어락의 비번을 바꿨다. 2중 지문 보안 장치도 재가동시켰다.
그러고는 강지한의 차에 올라탔다.
“강 사장! 잘 해결됐어.”
“레시피 노트 가져갔던가요?”
“응, 아마 내일부터 나오지 않을 거 같아. 강 사장 말대로 했더니 일이 수월하게 해결됐네. 호호호.”
김숙자의 경쾌한 웃음에 강지한도 따라 웃었다.
‘어쩜 이렇게 완벽할까, 우리 지한 총각.’
갈수록 강지한이 큰사람으로 다가오는 김숙자였다.
* * *
집으로 돌아온 장주희는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훔쳐온 레시피 노트를 보며 열심히 비법 육수를 만들기 시작했다.
한밤중에 이것저것 만들며 부산을 떠는 바람에 잠에서 깬 세 아들과 남편이 투덜거렸다.
“아니 이 밤중에 뭐하는 거야?”
“엄마, 나 내일 학교 일찍 가야 한다고.”
“시끄러워! 지금 내가 우리 가문의 역사를 바꿀 음식을 만들고 있으니까 조용히들 좀 해!”
장주희가 무섭게 화를 내고서 일전에 집에 갖다 놓은 지한 김치를 꺼냈다.
그리고 완성된 육수와 비법 양념, 지한 김치, 그 외에 필요한 재료들을 전골냄비에 넣고 팔팔 끓였다.
“거봐. 레시피가 완전 다르잖아. 최민구 이 사이비 새끼.”
가짜 레시피에 속은 그녀가 애꿎은 최민구만 저주했다.
전골이 완성되자 장주희의 얼굴에 벅찬 감격과 기대가 차올랐다.
그녀가 전골냄비를 방 안으로 가지고 들어와 가족들에게 숟가락을 나눠줬다.
“자, 먹어들 봐.”
자신만만하게 말하는 장주희.
가족들은 두말없이 김치전골을 맛봤다.
“후룩.”
“쩝쩝.”
“냠.”
장주희가 가족들의 얼굴을 살폈다.
“어때?”
“으음……. 그냥 김치전골 맛인데?”
장주희의 남편이 솔직한 감상을 말했다.
“하여튼 맛도 몰라요. 이리 내!”
장주희가 남편의 숟가락을 빼앗아서 직접 전골을 맛봤다.
“후룩. 봐봐. 이게 그냥 김치전골 맛일 리가……. 왜 이래?”
매장에서 먹었던 것과는 천지차이인 김치전골 맛에 장주희의 눈이 홉떠졌다.
그녀가 다시 전골을 맛봤다.
“후룩. 어라? 후룩. 이게 왜 이래?”
레시피에 있는 그대로 전골을 만들었는데 그 맛이 전혀 나지 않았다.
당황하는 그녀를 남편과 아이들이 째려봤다.
“난 뭐 대단한 거 하신다고. 에이!”
“엄마 진짜 호들갑 좀 적당히 떨어.”
남편과 아이들이 짜증을 내며 다시 자리에 누웠다.
“이럴 리가 없는데. 이럴 리가 없다고. 내가 뭘 잘못 넣었나?”
그때, 장주희의 스마트폰으로 문자가 도착했다.
보낸 이는 김숙자였다.
-주희 씨, 엉터리 레시피는 왜 가져갔대? 남의 걸 그리 쉽게 얻으려 하면 안 되는 거야. 내일부터 나올 필요 없어. 내가 그간의 정을 생각해서 경찰에 고소는 하지 않을 테니 두 번 다시 매장 근처에 얼씬도 말아. 하지만 이 바닥에 주희 씨 소문을 쫙 퍼질 거야. 그 정도 각오는 하고 일 저지른 거라고 생각할게.
문자를 확인한 장주희의 뒷골이 뻐근해졌다.
“망했다…….”
레시피는 구하지도 못하고 직장만 잃게 됐다.
게다가 소문이라는 게 무서운 바닥에서 도둑년으로 낙인찍히게 생겼다.
앞으로 춘천에서 식당일을 구하는 건 꿈도 꾸지 말아야 할 터.
그녀가 그나마 가장 잘하는 게 그거였는데 눈앞이 노래졌다.
“아이고…….”
가슴이 턱 막힌 장주희가 신음을 흘렸다.
“아, 좀 자자, 이 여편네야!”
그에 돌아온 건 남편의 성질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