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벨업 하는 식당-110화 (110/330)

# 110

Restaurant 109. 사랑은 설탕이를 타고

남춘천역에서 내린 강지한은 택시를 타고 집으로 향했다.

택시 안에서 그는 베네핏 배틀 당시 있었던 일을 떠올렸다.

‘설마 퀘스트가 그렇게 해결될 줄이야.’

이번 베네핏 배틀은 51명의 학생들을 대상으로 음식을 만들어주는 것이었다.

덕분에 강지한의 음식을 먹은 학생들 모두에게서 건강 수치를 1씩 얻을 수 있었다.

그 결과.

[퀘스트-건강 수치 80/80]

[퀘스트 완료. 보상으로 호칭 ‘건강 요리사’가 주어집니다.]

[건강 요리사: 호칭 사용 시, 음식을 먹는 손님들의 건강상태에 따라 그에게 필요한 영양소들이 2배로 섭취됩니다.]

퀘스트를 클리어해, 보상을 받게 됐다.

그는 이미 호칭의 사용법도 익혀둔 터였다.

호칭을 사용하겠다는 의지를 일으키면 눈앞에 사용 가능한 호칭 목록이 나타난다.

그중에서 사용하고 싶은 호칭을 선택하면 끝.

강지한은 현재 건강 요리사를 사용하는 중이었다.

집에 돌아오자마자 강지한의 눈에 비추어진 광경은 언제나처럼 김치를 담그는 조미옥 일행의 모습이었다.

“사장님~ 오늘은 다른 날보다 많이 늦었네?”

조미옥의 말이었다.

“네, 촬영이 조금 길어졌어요.”

“피곤하시겠네. 어서 들어가 쉬어. 사람이 열심히 사는 것도 좋지만 휴식도 중한 법이야. 브레이크 없는 자동차는 사고 나게 마련이라니까.”

“저번 주에 신나서 회식 자리 같이한 사람이 할 말이에요?”

독고진이 키득거리며 끼어들었다.

“그때는 나도 모르게 그만……. 아무튼. 우리 일도 다 끝나가니까 알아서 마무리 잘하고 갈게. 어서 들어가 쉬어.”

“네. 신경 써주셔서 감사해요. 근데 설탕이가 안 보이네요?”

그에 조미옥이 말했다.

“낮에 향숙 씨가 와서 봐주겠다고 데려갔어. 처자 얼굴 처음 봤는데 참 예쁘데.”

이향숙은 지한 김치의 온라인 몰을 만들어 준 덕분에 일주일 전부터 강지한과 함께 일하는 식구들의 단톡방에 초대되었다.

해서 이향숙을 직접 본 사람은 거의 없었지만 톡으로 대화를 나누며 친분을 다진 터였다.

“난 못 봤는데.”

옆에 있던 독고진이 중얼댔다.

하필이면 큰일이 급해 화장실에 들어가 있던 중 나타나서 설탕이를 데려간 것이다.

“그랬어요?”

“난 강 사장이랑 얘기가 된 줄 알았네.”

“저, 얼른 설탕이 좀 찾아올게요.”

그러자 독고진이 강지한을 만류했다.

“우리 엄마 말 못 들었어요? 사장님 쉬셔야 한다잖아요. 제가 다녀올게요.”

“부사장님께서요?”

강지한은 얼마 전부터 독고진을 부사장이라고 불렀다.

지한 김치의 규모가 커지면서 그에게도 직함을 하나 내어준 것이다.

물론 주먹구구식이긴 했지만 그래도 독고진은 기분이 좋았다.

“네. 주소만 알려주세요. 이번 기회에 얼굴도 보고 그러면 좋죠.”

“그래주시면 감사하고요.”

“바로 다녀오겠습니다! 아주머니들! 저 없어도 마무리 잘하실 수 있죠?”

“별로 하는 것도 없는 놈이. 어서 갔다 와!”

조미옥의 핀잔에 진경혜와 문정연이 킥킥거리며 웃었다.

독고진은 뻘쭘해서 얼른 그 자리를 떴다.

* * *

“설탕아~ 나 잊으면 안 돼. 우리 곧 다시 만나자. 흐윽!”

이향숙은 원룸 건물 현관 앞에서 설탕이를 안고 신파를 찍는 중이었다.

그 모습을 독고진이 넋 나간 시선으로 바라봤다.

강아지랑 헤어지면서 신파씩이나 찍은 이향숙이 꼴같잖아서가 아니었다.

간결하게 얘기해서 독고진은 지금 첫눈에 반한다는 것을 경험하는 중이었다.

‘예쁘다.’

이미 단톡방에서 그녀의 프로필 사진을 확인한 독고진이었다.

한데 프사라는 게 열에 아홉은 셀기꾼들이 찍은 사진에다 갖가지 효과를 덧입힌지라 믿을 수가 없었다.

이향숙도 그렇겠거니 생각했다.

그런데 아니었다.

오히려 실물이 더 아리따운 그녀였다.

이향숙은 분홍색 추리닝 차림에 머리는 편하게 말아 올리고서 뿔테 안경까지 쓰고 있었다.

게다가 신고 나온 건 분홍색 삼선 슬리퍼.

한마디로 전혀 관리를 하지 않고 자연 그대로의 모습이었던 것.

그럼에도 독고진의 눈에는 그녀의 모습이 요정처럼 투영됐다.

“여기요.”

정신이 나간 독고진에게 이향숙이 설탕이의 목줄을 건넸다.

“……네?”

멍해 있던 독고진이 멍청한 목소리로 물었다.

그러자 이향숙이 독고진의 손을 잡고 펴서 설탕이의 목줄을 손수 쥐어주었다.

그에 독고진은 짜릿한 전기에 감전이라도 되는 것 같았다.

고작 사람의 손과 손이 닿았을 뿐이었다.

그럼에도 심장이 벌렁거리고 얼굴이 상기됐다.

이향숙은 코에서 뜨거운 김을 팍팍 내뿜는 독고진을 보며 물었다.

“안색이 별론데. 어디 안 좋아요?”

“괘, 괜찮습니다.”

“흠……. 혹시 술 마시고 음주운전 하신 건 아니죠?”

“전혀요.”

“운전 조심해서 들어가세요. 사고 나서 우리 설탕이 다치면 안 되니까. 그치~ 설탕아.”

왕! 헥헥헥.

‘우, 운전 조심하라고? 날 걱정해 줬어.’

독고진은 자신의 듣고 싶은 말만 듣는 스타일이었다.

때문에 이향숙이 뒤에 한 말은 전부 날려 버리고서 마냥 설레는 중이었다.

“그럼 들어가세요.”

이향숙이 인사를 건네고 들어가려 할 때였다.

“향숙 씨!”

독고진이 그녀를 불렀다.

귀찮다는 듯 뒤돌아선 그에게 독고진이 모든 용기를 쥐어 짜내 물었다.

“저…… 이, 이따가 까톡 치, 친구 등록해도 될까요?”

이향숙이 단톡방에 있기는 하지만 아직 친구 등록을 해놓지는 않은 상황이었다.

지금 이향숙을 만난 것도 집 앞에 도착해서 개인적으로 연락을 취한 게 아니었다.

단톡방에서 도착했으니 나와 달라 말했던 것이다.

독고진의 질문에 이향숙은 머리를 긁적이며 한마디를 내뱉고 들어갔다.

“난 벌써 했는데?”

유리문을 열고 들어가는 이향숙.

그에 독고진이 두 주먹을 불끈 쥐고 파이팅 포즈를 튀했다.

‘날 친구 등록 해주셨어!’

독고진은 세상을 다 가진 것마냥 기뻤다.

그는 그 나이에 보기 드문 순정남이었다.

“하아, 우리 향숙 씨 얼굴 한 번만 더 봤으면 소원이 없겠네.”

그런 독고진을 본 설탕이가 난데없이 크게 짖었다.

왕왕!

놀란 독고진이 그런 설탕이를 달랬다.

“설탕아, 여기 주택가라 시끄럽게 굴면 안 돼.”

평소에 이런 일이 한 번도 없는 설탕이었다. 해서 지금 같은 돌발 행동이 당황스러운 독고진이었다.

한데 그때였다.

1층 우측 집 전면의 창문이 벌컥 열리더니 방범창 너머로 이향숙의 얼굴이 나타났다.

“설탕아~ 아직 안 갔구나! 왜 짖었니? 누나 보고 싶어서 짖었어? 응? 그런 거야? 우쭈쭈~”

독고진의 바람이 이루어졌다.

한 번 더 보기를 원하던 이향숙의 얼굴을 볼 수 있게 된 것.

헥헥헥!

설탕이가 독고진을 보며 꼬리를 흔들었다.

그 모습이 마치, ‘내가 소원 들어줌’이라고 하는 것 같았다.

‘설탕이 너…… 진짜 천재견 맞구나!’

세상에 이렇게나 영특한 강아지가 또 있을까?

설마하니 설탕이가 자신의 소원을 이루어 주리라곤 생각도 못한 독고진이었다.

독고진의 사랑은 설탕이를 타고 왔다.

* * *

집으로 돌아온 독고진의 머릿속에서 이향숙의 얼굴이 떠나지를 않았다.

그날 밤.

독고진은 늦도록 열병에 시달려 뒤척이다 겨우 잠이 들었다.

사랑하는 사람은 꿈속에서 찾아온다고 했던가?

독고진은 꿈에서나마 이향숙의 얼굴을 볼 수 있었다.

* * *

강지한의 품에 안겨 곤히 잠든 설탕이의 꿈속엔 소금이가 나타났다.

설탕이가 소금이를 반기며 달려가려 할 때였다.

“설탕아~”

뒤에서 강지한의 음성이 들려왔다.

순간 소금이와 강지한 사이에서 멈춰선 설탕이가 둘을 번갈아 보며 어쩔 줄 몰라 했다.

소금이는 자신에게 오라며 멍멍 짖었고, 강지한은 설탕이를 부르며 손을 흔들었다.

애견 카페에서 늘 짠내가 나, 설탕이가 보호해 줘야 하는 소금이.

언제나 사랑 1순위인 주인 강지한.

둘 사이에서 갈등하는 설탕이의 가슴이 타들어갔다.

끼이이…….

“으음……? 괜찮아. 설탕아, 자자.”

낑낑대는 설탕이로 인해 살짝 잠이 깬 강지한이 녀석을 꼭 안아주었다.

비로소 설탕이는 안정을 되찾고 캔사료 동산에서 뛰어노는 행복한 꿈을 꾸었다.

* * *

5월의 마지막 날, 목요일.

강지한이 건강 요리사 타이틀을 달고 일을 한 지도 나흘이 흘렀다.

그동안 강지한의 매장을 찾는 손님들은 알게 모르게 조금씩 음식의 도움을 받고 있었다.

한데 그것을 유독 민감하게 느끼는 이들이 있었으니 바로 근처 고등학교 농구부 학생들이었다.

오늘도 농구부 학생들은 학교 수업이 끝나고 어마어마한 운동량에 녹초가 되어 있었다.

농구부장 2학년 최태용은 지친 동료와 1학년 후배들을 이끌고 지한 분식으로 향했다.

그들은 항상 피크 타임이 끝나고 장사를 마치기 직전, 우르르 몰려들곤 했다.

“사장님, 안녕하세요!”

최태용의 우렁찬 음성이 홀을 쩌렁쩌렁 울렸다.

강지한이 홀로 들어서는 농구부원 여덟 명을 바라봤다.

하나같이 덩치가 좋고 키도 훤칠했다.

“오늘도 꾸준히 출근도장 찍는구나.”

최태용과 제법 친해진 최지민이 반갑게 말을 건넸다.

“이제 여기 말고는 다른 데 못 가겠어요.”

“우리 사장님 음식이 환장하게 맛있긴 하지?”

“맛도 맛인데 뭐랄까……. 요즘에는 사장님 음식 먹고 나면 다음 날 몸이 더 개운해지는 느낌까지 들어요. 진짜 음식에 무슨 마약 같은 거 타는 건 아니죠?”

“들어가.”

“진짜요?”

“응. 사랑과 정성. 그것보다 더 한 마약이 어디 있냐?”

“아, 뭐예요, 형. 완전 아재스러워.”

“주문이나 해.”

농구부 학생들은 인당 2인분에서 3인분씩 주문을 했다.

최지민은 어마어마한 양의 주문을 주방에 전달했다.

그에 강지한의 손이 바로 움직였다.

열심히 음식을 만드는 강지한을 보며 최태용이 중얼댔다.

“사장님 요리하시는 모습 진짜 멋있지 않냐?”

“장인정신 같은 게 느껴져요, 선배님.”

“우리도 저런 걸 배워야 돼. 어떤 분야에서 일하든 장인의 마음가짐으로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알았어?”

“네!”

후배들이 입을 맞춰 대답했다.

하지만 후배 한 명의 반응은 영 심드렁했다.

‘무슨 음식 먹는 다고 몸이 더 개운해져? 그리고 요리하는데 무슨 장인정신까지.’

후배의 이름은 장학연.

농구부에 조금 늦게 입부해 사흘 전부터 운동을 시작한 풋내기였다.

장학연은 매번 고된 운동으로 도저히 식욕이 없다며 집으로 돌아가곤 했다.

아침에 일어나면 죽을 것 같은 근육통에 시달렸다.

특히 허리 통증이 심했다.

그 바람에 늘 아침도 거르는 중이었다.

몸이 아프니 도통 식욕이 일지 않았다.

운동을 하는 사람은 뭐니 뭐니 해도 끼니를 잘 보충해야 했다. 그래야 에너지 공급이 되고 몸에 근육이 붙는다.

한데 늘 식욕이 없다고 하는 장학연이니 최태용은 걱정이 됐다.

그러다 오늘, 장학연이 드디어 힘든 와중에도 식욕을 느꼈다.

몸이 적응을 해나가고 있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뿐.

욱신거리는 전신의 근육은 도통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농구부 괜히 들었나?’

그런 생각까지 일었다.

농구라는 것에 뒤늦게 취미가 붙어 동아리 활동 정도로 생각하고 입부한 것인데 이건 뭐 연습량이 살인적이었다.

장학연이 온갖 잡념에 휘말려 있을 때 음식이 나왔다.

그가 주문한 것은 된장찌개였다.

“맛있게 드세요~”

서빙을 마친 이주희가 생긋 웃으며 물러났다.

장학연은 된장찌개를 허겁지겁 먹기 시작했다.

‘오, 겁나 맛있는데?’

격한 운동을 하고 난 뒤라 그런지 된장찌개가 그 어느 때보다 꿀맛이었다.

하지만 장학연은 몰랐다.

운동을 하지 않고 먹어도 그 집 된장찌개는 꿀맛이라는 걸.

* * *

다음 날.

“어라?”

장학연은 기지개를 켜고 기상하다가 놀라고 말았다.

그가 천천히 허리를 어루만졌다.

약간의 통증은 있었으나 그 전보다 확실히 덜해졌다.

뿐만 아니라 전신의 근육통 또한 완화되어 있었다.

침대에서 일어나 스트레칭을 하던 장학연이 혹시나 싶어 어제 먹은 된장찌개를 떠올렸다.

그러나 이내 픽 웃으며 고개를 휙휙 저었다.

‘에이, 설마. 그냥 몸이 적응한 거겠지.’

표고버섯은 허리의 통증을 완화시켜 주는 데 탁월한 효능이 있다. 특히 말린 표고버섯은 비타민D와 엽산이 많이 증가해서 디스크 환자들에게 좋다.

강지한이 만든 된장찌개에는 건표고버섯가루가 들어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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