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1
Restaurant 110. 밥 한 술에 찢은 김치
6월의 첫날.
드디어 지한 김치가 김치 공장에서 만들어지는 날이었다.
조미옥과 진경혜는 이미 하루 전날, 미리 얻은 투룸에 살림을 풀어놓은 상황.
아침 일찍부터 김치 공장으로 나가 새로운 식구들과 얼굴을 마주한 조미옥이 간단한 인사말을 건넸다.
“안녕하세요. 오늘부터 여러분과 함께 김치를 맛있게 만들어 나갈 지한 김치 사장 조미옥이라고 해요. 내가 무식해서 멋진 말을 조리 있게 잘 못해요. 그냥 다 같이 얼굴 구기는 일 없이, 설령 그런 일이 생기더라도 대화로 지혜롭게 풀어나가며 밝고 즐거운 업무 환경에서 오래오래 함께하면 좋겠어요.”
“잘 부탁합니다.”
직원들이 박수로 조미옥을 반겼다.
이어 진경혜가 입을 열었다.
“안녕하세요. 우리 조 사장님이 우격다짐으로 전무 자리에 앉힌 진경혜라고 해요. 아직은 허울 좋은 직함뿐이지만 열심히 해서 모두에게 인정받을 수 있는 전무로 거듭나도록 노력할게요. 호호호.”
직원들의 박수가 다시 이어졌다.
“그럼 우리 힘차게 한 번 시작해 볼까요?”
짝짝!
조미옥이 박수로 첫 일과의 시작을 알렸다.
* * *
김치 공장 직원들은 최대한 위생적인 환경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
위생모자, 위생복, 마스크, 장화, 장갑을 신고 통일된 모습으로 열심히 각자의 할 일을 해나갔다.
특히 신장호가 연결해 준 직원들은 이 바닥 경력이 제법인 배테랑인지라 발군의 실력을 뽐냈다.
덕분에 공장일은 수월하게 돌아가는 중이었다.
현장의 총 진두지휘는 진경혜가 맡았다.
조미옥은 사무적인 일을 처리하는 한편, 들어오는 주문들을 어떻게 소화해야 할지 조율하며 열심히 계획을 짜고 수정했다.
이제부터 김치를 납품해야 할 곳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터였다.
당장 납품해야 하는 곳만 해도 지한 김치 매장과 지한 김치전골집, 지한 분식, 그리고 춘천의 고기집 20군데였다.
그 짧은 시간 동안 지한 김치에 대한 소문이 빠르게 퍼져 나가 거래처가 확 늘어난 것이다.
아울러 인터넷으로 주문이 어찌 들어올지 모르니 미리미리 여유분을 만들어 놓아야 했다.
지한 김치 온라인 사이트 ‘지한김치몰’에서는 익은 배추김치와 익지 않은 배추김치를 팔고 있었다.
익지 않은 배추김치는 만드는 족족 수급이 가능한데 익은 배추김치는 그럴 수가 없었다.
미리 만들어서 익혀야 하기 때문에 당장 주문이 없다고 손을 놀려서는 안 되는 일이다.
그런 것까지 조미옥은 전부 계산하며 김치 공장을 가동시키는 중이었다.
지한김치몰 주문 관리 역시 그녀가 직접 하고 있었다.
나이에 비해 머리가 굳지 않았고 센스가 있는 조미옥이었기에 컴퓨터나 스마트폰의 사용을 능숙하게 해오던 터라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첫날부터 활기차게 돌아가고 있는 김치 공장 사무실을 강지한이 예고도 없이 방문했다.
마침 사무실엔 잠시 조미옥에게 상황 보고를 하러 온 진경혜도 함께였다.
갑작스런 그의 등장에 두 여인이 놀라는 한편 기쁘게 반겼다.
“아니, 사장님! 어떻게 연락도 없이 왔어?”
“어머 사장님~ 반가워요! 어쩐 일이에요?”
“김치 공장 어찌되고 있나 궁금해서 와봤어요. 조 사장님이랑 진 전무님 타지로 발령 가셨으니 잘 지내시는지도 걱정되고 해서요.”
“우리가 자진해서 간 건데 뭘.”
“맞아요. 난 남편 밥 안 챙겨줘서 얼마나 편한지 몰라~ 그리고 춘천에서 횡성이 무슨 타지예요~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린데. 호호호.”
“뭐 불편하거나 힘든 건 없으세요?”
“이제 겨우 하루 됐는데, 뭐. 그런 일 있으면 물어보지 않아도 얘기할 테니까 걱정 말아. 강 사장 건강이나 챙겨. 우리 강 사장이 무탈해야 지한 푸드 식구들이 무탈한 거니까.”
조미옥의 말에 강지한이 눈을 빠르게 깜빡이며 물었다.
“지한 푸드요?”
“응~ 그냥 우리 지한 분식을 비롯해서 전골부터 김치까지 다 아우르는 말이야. 어때? 지한 푸드. 괜찮지?”
“좋은데요.”
지한 푸드.
별것 아니지만 입에 착착 붙는 게 참 마음에 들었다.
강지한은 당장 단톡방의 이름부터 지한 푸드라고 바꿨다.
“강 사장, 공장 구경 좀 해야지?”
“네.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궁금하네요.”
조미옥과 진경혜가 강지한을 김치 공장으로 안내했다.
“사장님, 일단 이것들 입으세요.”
공장 입구에서 진경혜는 강지한에게 위생관련 용품들을 건넸다.
“와, 이런 건 처음 걸쳐 보네요.”
강지한이 신나서 위생복 세트를 착용했다.
마지막으로 손까지 깨끗하게 씻고 공장 안으로 입장했다.
활발하게 가동되고 있는 김치 공장 내부 광경은 멈춰 있던 것과는 또 다르게 다가왔다.
“여러분~ 우리 지한 푸드 사장님 오셨습니다!”
조미옥의 우렁찬 음성에 일을 하던 직원들이 강지한을 보고서 고개 숙여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사장님!”
“일자리 주셔서 감사합니다!”
“어머나, 잘생기셨다.”
“아니, 근데 우리 사장님 동안인 거야, 젊으신 거야? 올해 연배가 어찌 됩니까?”
족히 마흔은 넘어 뵈는 남직원의 물음에 강지한은 멋쩍어하며 답했다.
“스물아홉입니다.”
“으따~ 젊네! 좋을 땝니다, 허허!”
“스물아홉에 벌써 사장 되시고 인생 열심히 사셨네.”
“존경스러워요~ 사장님!”
자기보다 연배 높은 어른들이 하나같이 추켜 세워주니 강지한은 몸 둘 바 몰라 했다.
그런 강지한의 옆구리를 조미옥이 쿡 찔렀다.
“직원들이 좋은 말 해주면 기분 좋은 티도 내고 그래. 목석처럼 굳어 있으면 어디 아부 떤 사람들 신이 나겠어?”
듣고 보니 맞는 말이었다.
사람이 늘 성격대로만 살 수는 없는 일이다.
특히 강지한처럼 많은 사람들을 책임지고 끌고 나가는 입장에서는 더더욱 그러했다.
자신의 일을 도와주는 직원들과 격 없고 친근하게 지낼 수 있어야 모든 일이 이상적으로 돌아갈 수 있지 않겠는가.
“노력해 볼게요.”
강지한은 진심을 담아 말했다.
그런데 직원들 중 그런 강지한을 살짝 아니꼽게 보는 이가 있었다.
올해 마흔두 살의 여직원 노일영이었다.
세 아이의 엄마인 그녀는 나름 손맛에 자부심이 있는 사람이었다.
어딜 가서도 음식 맛으로 빠지지 않는다는 얘기를 들어온 그녀였다.
그렇다 보니 강지한이 김치 공장과 두 개의 식당을 아우르는 사장이라는 사실에 괜히 배알이 꼴렸다.
‘어디 금수저 집안 출신이라 대충 공장 하나 돌리면서 먹고살려는 거겠지. 고작 그 나이로 김치 맛이나 제대로 알겠어?’
노일영은 강지한을 완전히 오해하고 있었다.
오늘 오전 내내 김치를 버무리면서도 그 맛이 과연 어떨지 영 미덥지 않았다.
한편 강지한에게 모든 직원들을 소개시켜 준 조미옥이 시간을 확인하고서는 물었다.
“강 사장님, 점심 때 다 됐는데 식사하셔야지? 우리 직원분들이랑 같이 식당에서 한 끼 하고 가요.”
“네. 좋죠.”
“가만. 그러고 보니 오늘 일요일 아니잖아요. 분식집은 어쩌고 여까지 오셨대?”
“성우한테 맡겨놨어요.”
“그래도 돼?”
“이제 성우도 혼자서 주방을 책임질 정도는 되거든요.”
“와~ 성우 총각 멋지네. 이따 단톡방에서 으쌰으쌰 해줘야겠다.”
“그러면 성우 힘나서 더 잘할 거예요.”
“그래요. 일단 먹으면서 얘기합시다.”
* * *
김치 공장 구내식당.
공장 직원들이 길게 이어진 테이블에 주르륵 엉덩이를 붙였다.
거기에 조미옥과 진경혜, 강지한도 함께였다.
구내식당의 직원들 식사는 조미옥이 책임지고 있었다.
그녀는 점심시간이 되기 전, 이미 김치를 제외한 반찬 세 가지를 만들고, 밥을 짓고 냉이된장국을 끓여 놓은 터였다.
반찬 세 가지는 두부조림, 제육볶음, 계란말이였다.
공장 직원의 수가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많은 것도 아니었으니 음식 장사 하던 수완을 발휘해 뚝딱뚝딱 만들어냈다.
손맛도 제법이라 반찬들은 하나같이 맛있었다.
물론 조미옥의 입에는 그렇다는 것이고 아직 직원들의 평가를 받지 못한 상태였다.
“잘 먹겠습니다!”
“잘 먹을게요.”
직원들이 입을 모아 말하고서 수저를 움직였다.
강지한도 밥을 한 술 뜨고 반찬을 한 가지씩 맛본 뒤, 국물을 음미했다.
“와~ 조 사장님, 솜씨가 상당하시네요.”
“에이~ 아무리 그래도 우리 강 사장 솜씨는 못 따라가지. 그 손맛을 어찌 이겨? 괜히 강 사장 분식집이 불티나는 게 아니지.”
그 말에 반찬을 이것저것 맛보고 있던 노일영이 의외라는 듯 강지한을 바라봤다.
‘식당에서 직접 요리를 하나봐?’
노일영은 강지한이 분식집을 운영한다는 얘기에 주방장을 고용한 줄 알았다. 그런데 조미옥의 말을 들어보니 직접 요리를 하는 모양이었다.
‘그냥 띄워주는 거겠지.’
주방에 서는 건 의외였으나 맛이 그리 있을까 싶었다.
조미옥이 강지한에게 월급을 받는 입장이다 보니 적당히 기분이나 맞춰주려는 수작이려니 했다.
‘그나저나 조 사장님, 음식 간은 제법 볼 줄 아시네.’
노일영이 김치만 빼놓고 다른 반찬과 국을 싹 다 맛봤다.
돼지고기 전지살로 달달하면서도 적당히 칼칼하게 만든 제육볶음은 양념과 고기가 따로 놀지 않았다. 돼지 잡 비린내도 없었다. 워낙 많은 양을 만들다 보니 채소가 많이 누른 건 이해할 수 있는 수준.
두부조림은 간이 정말 좋았다.
한 번 노릇노릇 구운 다음 조려내서 입에 넣으면 매콤달달한 맛 안에 고소함이 확 퍼져 나갔다.
계란말이는 당근이나 햄, 김 같은 다른 재료를 사용하지 않고 오로지 달걀로만 잘 말았다.
맛소금으로만 간을 해서 예쁘고 통통하게 말아낸 계란말이는 퍽퍽하지 않고 촉촉해서 케찹이 없어도 계속 손이 가는 매력이 있었다.
냉이된장국은 평범했다.
다만 냉이가 정말 싱싱했는지 입에 한술 들어가는 순간 특유의 냉이향이 확 퍼지며 혓바닥 위에 봄을 옮겨 놓는 것만 같았다.
밥도 맛있게 잘 지었다.
대부분의 음식에 만족한 노일영의 시선이 김치로 향했다.
김치는 식판에 따로 담지 않고 한 테이블에 익은 김치와 막 버무린 김치를 반 포기씩 놓아둔 상태였다.
‘어디.’
노일영이 익지 않은 김치 대가리를 잡고 이파리 하나를 쭉 찢었다.
그리고 고슬고슬한 밥 한술을 떠 김치를 돌돌 말아 입안으로 집어넣었다.
‘맛만 없어봐라.’
맛이 없다고 자기가 뭘 어떻게 할 수 있는 입장은 아니었다.
그냥 속으로 비웃어줄 심산이었다.
하지만,
아삭!
김치가 입안에서 씹히는 순간 그런 마음은 눈 녹듯 사라졌다.
‘아…….’
예상치 못한 김치맛의 기습에 노일영의 가드가 완전히 파괴됐다. 그러자 김치는 더더욱 위협적으로 그녀의 혀를 농락했다.
‘대체 양념을 어떻게 한 거야?’
노일영은 진심으로 궁금했다.
그녀는 컨베이어 벨트에서 밀려오는 배추에 양념을 바르는 일을 책임지고 있었다.
양념혼합기에서 양념 배합을 하는 직원은 따로 있으니 그 비밀을 알 수가 없었다.
‘아……. 된장 넣고 푹 삶은 보쌈에 소주 한 잔 땡긴다.’
진심으로 보쌈과 소주의 조합이 간절해지는 맛이었다.
노일영이 이번에는 익은 김치를 맛봤다.
익은 김치는 직원들 맛 좀 보라고 강지한이 춘천에서 가져온 것이었다.
김치 한쪽을 죽 찢어서 밥 위에 얹어 한입 크게 넣었다.
아삭. 아삭.
‘미치겠다.’
익은 김치는 특유의 시원한 맛과 진한 풍미로 노일영의 정신을 쏙 빼 놓았다.
‘이건 삼겹살이랑 같이 구워 먹어야 돼. 물론 소주도.’
노일영의 눈앞에 보쌈과 삼겹살, 소주가 아른아른거렸다.
그때쯤 김치를 맛본 다른 직원들도 하나같이 탄성을 내뱉고 있었다.
“와~ 나 김치 공장에서 일한 경력만 10년인데, 이 정도로 맛있는 김치는 딱 세 번밖에 못 먹어봤어요.”
“젊은 사장 솜씨가 우리 시어머니보다 낫네.”
노일영은 그들의 말에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 보니 식판에 다른 반찬은 그대론데 밥만 전부 사라졌다.
‘참을 수가 없어.’
오늘부터 다이어트 하기로 했는데, 김치 맛을 보는 순간 망하고 말았다.
노일영이 배식대로 가서 국그릇에 밥을 두 주걱 크게 담더니 물에 말아 가져왔다.
그러고는 다시 김치 한쪽을 찢어 물 말은 밥에 얹어 야무지게 입에 넣었다.
우적. 우적.
그런 노일영을 본 다른 직원들이 너도나도 물에 밥을 말았다.
물 말은 밥에 맛있는 김치만 있으면 다른 반찬이 필요가 없었다.
“이 김치 대박이네. 무조건 잘되겠네. 사장님, 미리 축하 드려요!”
“조 사장님. 앞으로 다른 반찬 하지 말아요. 김치만 있으면 되겠어요.”
직원들의 말에 강지한의 마음이 흐뭇해졌다.
특히 누구보다 잘 먹는 노일영의 모습이 가장 그를 뿌듯하게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