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1
Restaurant 80. 호수 속의 구름
한동안 강지한은 식당 입구에 서서 멍하니 홀을 둘러봤다.
홀에는 빈 테이블이 딱 두 개밖에 없었다.
50평이나 되는 넓은 공간에 있는 거의 모든 테이블이 가득 찬 것이다.
게다가 김숙자는 지인들에게 자신이 전골집을 맡아 운영하게 되었다는 걸 알리지 않은 상태였다.
만에 하나라도 첫날부터 성업을 해서 사람들이 몰려들었을 때, 김숙자의 지인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으면 다른 손님들이 기다리다가 돌아가는 경우가 생길 것을 우려했던 것이다.
사실 김숙자는 그런 말을 하면서도 스스로 너무 오버한다고 느꼈다.
그런데 오버한 게 아니었다.
첫 날부터 순수하게 ‘지한’이라는 이름이 간판에 붙은 것만을 믿고 찾아온 손님들이 홀을 가득 채웠다.
비로소 강지한의 마음에서 불안이 사라졌다.
그가 번잡한 홀을 가로질러 주방으로 다가갔다.
홀에서 일을 하던 종업원들이 강지한을 알아보고 눈인사를 건넸다.
강지한도 그에 하나하나 화답해 줬다.
“여기 반찬 더 주세요!”
“와, 전골 진짜 대박이다.”
“어? 지한 분식 사장님 아냐?”
“나 춘천에서 이렇게 끝내주는 전골 처음 먹어봐.”
“전골에 들어간 만두 작살.”
강지한의 테이블을 지날 때마다 손님들이 나누는 대화가 속속 귀에 들어왔다.
어느 한 테이블에서도 전골에 대한 혹평이 나오지 않았다.
강지한은 됐다 싶었다.
식당에서 가장 중요한 건 무엇보다도 맛이다.
한 번 온 손님들의 걸음을 다시 오게 하는 가장 기본적인 요건은 그 이상도 이하도 없다.
그다음으로 신경 써야 하는 것들이 청결과 서비스, 인테리어 같은 것들이다.
물론 강지한은 그 네 가지 중 어느 것도 놓쳐서는 안 된다는 입장이었고, 지한 김치전골은 그런 강지한의 신념을 고스란히 담아낸 매장이었다.
주방에 들어서니 주방 보조 아주머니 둘과 함께 정신없이 요리 중인 김숙자의 모습이 보였다.
셋 모두 앞치마에 머리카락이 빠지지 않도록 위생모자까지 정갈히 착용한 모양새였다.
“어머니, 축하드려요.”
강지한의 음성에 이제 막 전골 하나를 담아내던 김숙자의 시선이 휙 돌아갔다.
“지한 총각!”
강지한을 부르는 그녀의 목소리가 잔뜩 상기되어 있었다.
홀이 바쁘게 돌아가는 데다 불 앞의 열기에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지만 힘든 기색은 조금도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상당히 신나 있었다.
김숙자가 다가와 강지한의 손을 덥석 잡았다.
“지한 총각, 들어오면서 홀 봤지? 응?”
“네, 봤어요. 어머니. 손님들로 가득하던데요.”
“그러니까~ 대박이야, 대박! 지금 돌아오는 전골냄비가 하나같이 싹싹 비워진다니까! 거의 설거지한 수준으로 돌아온다고.”
“지금 피크 타임도 아닌데 이렇게 손님들이 많을 거라고는 생각 못했어요.”
“말도 마. 점심시간엔 줄까지 섰었어!”
“정말요?”
“그럼~!”
웨이팅까지 걸렸었다는 얘기를 들은 강지한의 기분이 하늘을 날 것처럼 좋았다.
“오픈빨이라는 게 있긴 하겠지만 내 기분에 오픈빨 효과 떨어져도 파리 날릴 것 같지는 않아.”
“저도 그래요, 어머니. 아, 제가 주방 일 좀 도와드릴게요.”
강지한이 두 팔을 걷어붙이려는데 김숙자가 만류했다.
“아유, 됐어. 지한 총각도 계속 일하다가 여기 왔을 텐데. 그냥 가서 쉬어요. 그리고 처음부터 누구 도움 받으면 나중에는 아무것도 못한다고. 꿋꿋하게 혼자 해나가야지. 우리 지금 잘하고 있으니까 걱정 말고 가서 쉬어. 얼른.”
김숙자는 강지한의 등을 떠밀어 주방 밖으로 내보냈다.
결국 강지한도 그런 김숙자의 말을 받아들였다.
“알겠어요. 그럼 가볼게요. 다들 힘내세요.”
“들어가요 지한 총각~”
“사장님, 들어가세요.”
“파이팅이에요!”
주방분들의 인사를 받으며 강지한은 건물을 나서려 했다.
한데 그때였다.
허공에서 오래간만에 보는 메시지가 나타났다.
[Bonus Stage2. 김치전골 매장]
[목표: 일 매출 200만 원을 찍으세요.]
[성공 보상: 한국 요리 장인의 지식]
[오픈했습니다.]
[중급자의 난이도가 적용됩니다.]
[만족도는 일주일 동안만 습득 가능합니다.]
[보너스 스테이지에서는 전 단계에서 LOCK에 걸린 메뉴들의 해금이 불가하며 스테이지3에서 해금이 가능해집니다.]
생각지도 못했던 두 번째 보너스 스테이지가 열렸다.
‘김치 매장을 차릴 때는 이런 일이 없었는데?’
아무래도 새로운 식당을 오픈하거나 증축할 때에만 스테이지로 인정이 되는 모양이었다.
김치 매장은 식당이라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아울러 매장의 장식이나 기물들을 레벨 업 할 수 있다는 항목이 없었다.
‘내가 직접 손대지 않는 곳은 식당의 레벨 업이 불가한 모양이네.’
한 가지 더.
만족도의 습득일이 계속 늘어났었는데 이번에는 일주일로 확 줄었다.
이 역시 강지한이 직접 운영하지 않는 매장의 패널티인 듯했다.
그래도 일주일이 어디인가?
두 번째 보너스 스테이지에 대해서 파악을 마친 강지한이 식당의 문을 열고 나설 때 또 다른 메시지가 나타났다.
[지금까지 누적된 만족도 포인트 3,127을 흡수합니다.]
[매장을 방문할 때마다 누적된 만족도 포인트를 흡수할 수 있습니다.]
만족도 포인트가 흡수되는 방식 또한 누적된 것을 한 번에 가져가는 식이었다.
‘아직 세시 반이 조금 넘었는데 벌써 3,127이라니.’
김치전골집은 강지한의 우려가 헛일이었다는 듯 상상 이상으로 잘 돌아가고 있었다.
‘좋다, 좋아.’
식당 밖으로 나온 강지한의 발걸음이 가벼워졌다.
* * *
좋은 일이 연이어 터졌다.
저녁을 먹고 나가는 손님 중 한 명이 머리 위에 9/10이라는 단골지수가 10/10으로 바뀌며 단골로 인정됐다.
그로 인해 드디어 단골 포인트 50을 얻었다.
강지한은 요리를 하는 와중 단골 포인트 상점을 열었다.
그리고 50단골 포인트를 소모해 서양 요리 장인의 지식을 구매했다.
[서양 요리 장인의 지식을 구입하셨습니다. 50단골 포인트가 차감됩니다.]
[서양 요리 장인 고(故) 제이미 램지의 지식을 흡수합니다.]
[일부의 지식만 오픈됩니다. 경험치를 쌓아 레벨 업 할 때마다 새로운 요리들과 조리법에 대한 지식을 얻을 수 있습니다.]
메시지와 함께 제이미 램지의 지식들이 물밀 듯 머릿속으로 쏟아지더니 차곡차곡 정리되어 강지한의 것으로 변했다.
저녁 피크 타임이 끝나가는 시각.
지한 식당으로 전화 한통이 걸려왔다.
이라나가 전화를 받았다.
“네~ 지한 분식입니다! 네? 어디시라고요? 고중만 아저씨 와이프……. 아, 네! 안녕하세요! 저는 홀직원 이리나라고 해요. 반갑습니다. 호호. 네네. 바꿔 드릴게요. 중만 아저…… 꺅!”
이리나가 고중만을 부르려고 돌아서다 이미 뒤에 다가온 그의 얼굴을 보고 비명을 질렀다.
“거…… 사람 얼굴 보고 비명 지르고 너무하는 거 아니냐고.”
“죄, 죄송해요. 헤헤. 받아보세요.”
고중만이 전화기를 넘겨받았다.
“응~ 우리 여봉봉.”
순간 그의 입에서 튀어나온 나긋나긋한 말투에 모두의 얼음처럼 굳어버렸다.
어지간한 일에는 큰 반응 없이 넘어가는 강지한도 지금만큼은 냉정을 유지하기 힘들었다.
딱딱해진 그의 얼굴에서 미약한 경련이 일었다.
지한 분식의 직원들은 하나같이 머릿속으로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지금 내가 뭘 들은 거지?’
심지어 아직 홀에 남아 식사를 하고 있는 손님들마저 놀란 모습이었다.
하나 고중만은 주변 반응 따위 안중에도 없었다.
“그럼~ 열심히 했지. 응응~ 우리 여봉봉은? 아픈 데 없었고? 아구구~ 그랬쪄요~? 응? 뭐? 요즘에 왜 차에만 기름 넣고 자기한테는 기름 안 넣어주냐고? 아잉~ 뭐 그런 걸 전화로 물어봐~”
급기야 전화선을 손가락으로 비비 꼬기 시작하는 고중만.
“우욱.”
최지민은 더 보지 못하겠는지 헛구역질하며 등을 돌렸다.
이리나는 그새 적응해서 키득거리며 즐겼고 막내 이주희는 눈이 하트가 되었다.
“아내한테는 다정한 산적 같은 남자라니~ 너무 낭만적이다.”
“참 우리 주희는 너무 순진해.”
이리나가 이주희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자 그녀의 눈이 살포기 감겼고 입꼬리가 살짝 말려 올라갔는데 그 모습이 꼭 행복해하는 고양이 같았다.
“응~ 그래그래. 지금 일하는 중이니까 이따 집에 가서…… 응? 오구오구. 그래 준희야~ 응 아빠 곧 갈 거예요~ 아빠 목소리 듣고 싶어서 전화 걸어 달라 그랬어요? 하하. 금방 갈 테니까 조금만……. 준희야? 왜 기침을 해? 어디 아파? 준희야, 엄마 좀 바꿔볼래? 응, 여봉봉. 우리 준희 어디 안 좋아요? 아침까지는 괜찮았잖아. 가벼운 감기? 으음……. 그래요. 알았어요. 사랑해요, 쪽쪽.”
드디어 지옥 같은 시간이 끝나고 손님들은 마음 편히 식사를 할 수 있었다.
통화를 끝낸 고중만이 심각한 얼굴로 주방에 복귀했다.
강지한이 그런 고중만에게 말했다.
“중만 아저씨. 준희 아프대요?”
“아아, 그냥 가벼운 감기 같대.”
고중만은 애써 태연한 척 웃으며 말했다.
하지만 강지한은 마음이 편치 않았다.
“그만 퇴근하세요.”
“응? 아냐, 괜찮아.”
만류하는 고중만에게 강지한이 눈으로 자신의 말을 전했다.
‘준희는 다른 아이들과 다른 케이스잖아요.’
그 뜻이 고중만에게 충분히 전달되었다.
고중만의 가슴이 욱신거리고 코끝이 찡해졌다.
날 때부터 병을 달고 나서 여태 고생하고 있는 아이였다.
그래서 조금이라도 아프다는 말이 들려오면 하늘이 무너지는 기분이 들 만큼 힘들었다.
“……고마워, 강 사장. 나, 오늘만 일찍 좀 들어가 볼게.”
“들어가시고 내일 상황 봐서 나오기 힘들 것 같으면 연락 주세요. 괜찮아요.”
“내일은 별일 없겠지.”
“네. 저도 그럴 거라고 생각해요.”
“그럼 가볼게. 정말 고마워. 내일부터 막내 노릇 다시 잘할게.”
그리 말한 고중만이 바쁘게 식당을 나섰다.
빠르게 멀어지는 고중만의 뒷모습을 보며 이리나가 중얼거렸다.
“별일 없어야 할 텐데.”
* * *
로버트 정은 요새 기분이 좋았다.
실어증을 앓고 있던 그녀의 어머니가 말을 되찾고 나서는 하루하루가 축복 속에 사는 것 같았다.
그는 이 행복을 되찾게 해준 강지한의 고마움을 잊지 않았다.
해서 무언가 제대로 은혜를 갚을 길이 없을까 고민하고 있었다.
지한 분식에 대한 칭찬이야 만나는 사람들에게 입에 침이 마르도록 하고 있지만 그건 은혜를 갚았다고 하기엔 애매했다.
직접적인 도움을 주고 싶었다.
원래는 유명 잡지의 인맥을 동원해 인터뷰를 실을까도 생각했었다.
그런데 배틀 셰프에 강지한이 나오는 것을 보고 마음을 접었다.
공중파 예능에 나와 버리는데 그깟 인터뷰는 큰 도움이 되지 않을 테니까.
그렇다면 로버트 정이 할 수 있는 건 인맥을 만들어 주는 것이었다.
다른 건 몰라도 인맥 하나는 짱짱한 그였다.
정재계에 거물급은 아니더라도 힘 좀 쓴다는 사람들과 연이 많았다.
‘누구를 소개시켜 주면 사장님한테 도움이 되려나.’
고민을 하던 와중 그의 스마트폰이 울렸다.
발신인을 확인하니 ‘진석기’라고 되어 있었다.
로버트 정이 바로 전화를 받았다.
“석기~ 오래간만이네.”
-잘 지냈냐, 두식아.
“로버트라고, 로버트!”
-두식이가 더 정감 있잖아.
진석기는 로버트 정과 동갑내기로 3년 전 사교모임에서 친해진 남자였다.
정계 쪽에서 일하다 지금은 은퇴한 아버지 밑에서 부족한 것 없이 부유하게 자란 전형적인 금수저였는데, 성격이 좋고 수더분해서 친해지게 됐다.
“근데 어쩐 일이야? 술 먹자고?”
-그럼 내가 뭣 때문에 전화했겠냐.
“목소리가 침울한 게 무슨 일 있는 것 같다?”
-휴. 할아버지가 요새 안 좋아. 오늘내일 하시는 것 같은데 모르겠다.
“그래? 이거 어쩌냐. 내가 딱히 뭐라고 해줄 말이 없네. 그냥 술이나 살게, 나와라.”
그때 수화기 너머로 쇠를 긁는 듯한 음성이 들려왔다.
-그릇에 호수가 담겼고 호수 안에 구름이 둥실둥실…… 맛있겠다……. 한 번만 더 먹어봤으면 소원이 없겠다…….
“방금…… 할아버지?”
-어, 들렸어? 요새 저 말만 반복하신다. 그릇에 호수가 담겼고 호수 안에 구름이 둥실둥실. 그게 뭔지 도통 알 수가 있어야지. 넌 뭔지 알겠냐?
“모르겠다. 아무튼 일단 나와. 늘 보던 곳에서 8시까지 콜?”
-오케이.
통화를 끝낸 로버트 정이 퇴근 준비를 서둘렀다.
그러다 문득 강지한의 얼굴이 떠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