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2
Restaurant 81. 견(犬)복과 인(人)복의 중첩
일을 하는 동안 강지한은 스마트폰을 무음으로 해놓는다.
워낙 바빠서 전화를 받을 여유가 없기 때문이다.
때문에 로버트 정에게 온 전화도 받지를 못했다.
한창 손님이 몰려드는 저녁.
검은색 고급 세단 한 대가 분식집 앞에 섰다.
그러고는 조수석에서 블랙 슈트를 입은 사내 한 명이 내리더니 웨이팅이 걸린 줄을 무시하고 안으로 들어섰다.
이를 본 최지민이 사내에게 얼른 다가가 물었다.
“포장하시려고요?”
그러자 사내가 대뜸 이렇게 물었다.
“테이블 하나만 따로 빼 줄 수 있습니까?”
“네?”
사내는 차창 밖의 세단을 가리키더니 귓속말을 전했다.
“민정욱 의원님께서 이 분식집 얘기를 듣고 궁금해서 찾아오셨습니다. 예약 손님이라 하고 자리 하나만 만들어 주세요.”
민정욱 국회의원.
춘천에서 그를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아니, 전국적으로 유명한 사람이었다.
툭하면 사건 사고에 막말을 서슴지 않으며 서민을 무시하는 발언들을 자주 내뱉는 트러블 메이커였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갑질을 자주 해서 구설수에 오르는 상황도 많았다.
그런 안하무인 민정욱이 가장 좋아하는 건 바로 미식(美食) 활동이었다.
이미 춘천의 맛집이라고 소문난 곳 중에서 그가 다녀가지 않았던 곳은 없었다.
그러다 지한 분식의 얘기를 듣고 직접 걸음한 것이다.
최지민에게 자리 하나를 마련해 달라 요구하는 정장 사내는 그런 민정욱의 수행비서였다.
민정욱이라는 이름은 워낙 유명하니 알아들었을 것이라 수행비서는 생각했다.
하지만 최지민은 반반하게 생긴 얼굴과 달리 머릿속이 좀 비어 있는 편이었다.
특히 정치, 경제, 시사, 상식에 관한 것들은 문외한이었다.
해서 민정욱 의원이 누군지도 몰랐다.
“죄송한데 우리는 예약 안 되거든요. 지금 웨이팅 걸린 거 보이시죠? 식사하시고 갈 거면 줄 서셔야 돼요.”
수행비서는 최지민이 자기 말을 잘 못 알아들은 것이라 생각해서 다시 말했다.
“저 차에 민정욱 의원이 타고 계시다니까요.”
“그게 누군데요? 유명한 사람이에요?”
“네? 민정욱 의원님 모르십니까?”
그때 저쪽 테이블에서 손님이 소리쳤다.
“여기 김치 좀 더 주세요!”
“네! 죄송한데 지금 바빠서요. 식사하실 거면 줄 서세요.”
수행비서는 최지민의 행동에 모욕적인 기색을 감추지 못하고 밖으로 나갔다.
한편 그 광경을 강지한은 주방에서 전부 지켜봤다.
“지민아!”
그가 최지민을 불러 자초지종을 물어봤다.
최지민이 방금 수행비서가 했던 말을 그대로 들려주었다.
얘기를 듣고 난 강지한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잘했어. 앞으로도 그렇게 해.”
“네!”
강지한의 지론은 사람은 음식 앞에 평등해야 한다는 것이다.
자신의 위치나 권력을 이용해서 부당한 혜택을 얻으려 하는 건 안 될 일이었다.
한편, 차로 돌아간 수행비서가 분식집에서 있었던 일을 민정욱 의원에게 전했다.
이를 듣고 난 민정욱 의원의 이마에 핏대가 섰다.
그의 노기 어린 시선이 차창 너머 지한 분식을 쏘아봤다.
“그렇게 나왔다 이거지?”
민정욱은 평소 하는 행동에서 보여주듯이 성정이 급하고 고약한 데에다 약자에게 강했다.
반대로 강자 앞에서는 바로 고개를 넙죽 조아리는 그야말로 비열한 인간이었다.
해서 정재계에서 제법 방귀 좀 뀐다는 실세들의 비위를 잘 맞춰 인맥이 좋았다.
그것이 그가 제멋대로 굴 수 있는 힘이었다.
그의 행동이 문제가 되어도 윗선들에게 사바사바하면 곧 유야무야 넘어갔기 때문이다.
아무튼 그런 입장이다 보니 이런 식으로 자기 기분을 더럽게 만든 경우 그냥 넘어가는 법이 없었다.
“김태영이한테 연락해.”
김태영.
춘천에서 알아주는 놈팽이로 나이 마흔이 넘어가는데도 변변찮은 직장 하나 없이 살아가는 인간이었다.
주로 단기 잡일을 하거나 누군가 돈을 주고 사주하는 더러운 일을 해주고는 했다.
일전에 강석호의 부탁으로 지한 분식의 안 좋은 소문을 퍼뜨리고 다녔던 주동자도 바로 이 인간이었다.
“알겠습니다.”
수행비서가 바로 김태영에게 전화를 넣었다.
* * *
지하 단칸방에서 이른 저녁부터 혼자 라면에 소주를 까며 텔레비전을 보고 있던 김태영.
빈 소주병이 두 병을 넘어가려는 순간 전화가 왔다.
발신인을 보니 ‘민정욱 따까리’로 되어 있었다.
“응? 어흠! 흠. 아유~ 우리 수행비서님. 오래간만입니다.”
전화를 받는 김태영의 목소리는 저열하기 그지없었다.
“네네. 네. 말씀하세요. 돈만 두둑이 주시면 뭐…… 하하. 네. 네. 네? 지한 분식…… 이요? 아, 아니요, 아니요. 할 수 있습니다. 네네. 알겠습니다!”
통화를 끝낸 김태영이 미간을 찌푸렸다.
“지한 분식이면…… 중만이 새끼가 건들지 말라 그랬던 곳인데.”
강석호는 지한 분식에 대해서 음해하며 돌아다니다가 우연히 만난 고중만에게 헛소문 퍼뜨리고 다니지 말라며 혼쭐이 날 뻔했다.
고중만의 주먹이 얼마나 무자비한지 아는 그였기에 이후부터 지한 분식일은 잊고 살았다.
당시에는 아직 고중만이 지한 분식에서 일을 하기 전이었다.
“에이, 민 의원에 비하면 중만이는 피라민데 별일 있겠냐. 돈도 많이 준다는데.”
김태영은 고중만이 지금 지한 분식에서 일한다는 걸 모른다.
그가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여기저기 아는 동생들에게 전화를 돌리기 시작했다.
* * *
집으로 돌아온 강지한은 로버트 정에게 온 부재중 전화를 확인하고 문자를 보냈다.
-아까 바빠서 전화 못 받았었어요. 주무세요?
문자를 보낸 지 일 분도 지나지 않아 바로 로버트 정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여보세요.”
-강 사장님! 잘 지내셨어요? 강 사장님의 귀염둥이 로버트 정입니다! 하하하!
스마트폰 너머로 들려오는 음성이 상당히 격양된 데다가 발음도 조금 꼬이는 것이 아무래도.
“술 한잔하셨어요?”
-네! 친구 만나서 한잔하는 중이었습니다.
“아, 그럼 다음에 통화할까요?”
-지금 통화해도 됩니다! 하하하. 실은 전화 드렸던 게 지금 만나고 있는 친구 녀석 때문이거든요.
“무슨 일이신지?”
-이 친구 할아버지께서 오늘내일 하시는데 뭔가를 자꾸 먹고 싶다 하신대요. 해서 가족들이 할아버지가 드시고 싶어 하는 음식을 찾아주고 있는데 번번이 아니라고 해서 고민이랍니다. 들어본 바로는 할아버지께서 계속 그릇 속에 호수가 담겼고, 그 안에 구름이 둥실 떠다닌다고 하신대요.
그 말을 듣고 난 강지한이 물었다.
“그럼 수제비나 만둣국 같은 게 아닐까요?”
-그래서 친구 가족분들이 수제비랑 만둣국을 드렸는데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시더래요. 아, 그런데…… 수제비를 봤을 땐 잠깐 미소를 지으셨답니다. 한데 드시고 나서 이게 아니라고 하셨다네요.
“그래요? 음…….”
-해서 아무래도 요리 쪽 해서는 저보다 강 사장님께서 많이 아시니 뭔가 실마리가 나오지 않을까 하고 연락 드렸었습니다! 하핫!
“어쩌죠? 말만 들어서는 저도 감이 잘 안 오네요.”
-괜찮습니다! 어디까지나 혹시나 했던 거니 부담 가지지 마세요. 부담 가지시면 매일 밤 제 잠자리가 불편해질 것 같으니까~ 요! 뿅!
“네? 뿅……?”
전화는 그러고서 끊겼다.
아무래도 로버트 정은 술을 마시면 엄청난 조증으로 변하는 경향이 있는 모양이었다.
통화를 끝낸 강지한이 턱을 어루만지며 곰곰이 생각했다.
“그릇에 호수가 담기고, 그 안에 구름이 떠다닌다.”
* * *
다음 날.
인터넷과 서적에서 로버트 정의 할아버지가 말한 음식에 대한 정보를 찾던 결국 강지한은 벌게진 눈으로 밤을 꼴딱 새다시피 했다.
잠자리에 든 건 새벽 여섯 시쯤.
꼴랑 두 시간을 자고 일어났다.
이불의 버프 효과와 밖에서 들리는 부산스러운 소음이 아니었다면 절대 눈을 뜰 수 없었을 것이다.
강지한이 창문을 열고 밖을 내다봤다.
마당에서 열심히 김치를 트럭으로 나르는 독고진과 조미옥, 진경혜가 보였다.
그리고 처음 보는 얼굴이 하나 더 있었다.
“사장님! 안녕하세요!”
무김치가 담긴 상자를 트럭에 실은 독고진이 강지한을 가장 먼저 발견하고 인사했다.
그러자 다른 사람들도 차례로 인사를 했고, 조미옥이 새로 온 일꾼을 소개했다.
“지수 엄마, 인사 드려. 여기 우리 사장님.”
“안녕하세요, 사장님~ 지수 엄마 문정연이에요. 올해 서른여덟이랍니다.”
문정연은 나이에 비해 상당히 동안이었고, 얼굴도 다른 아주머니들보다 예쁘장했다.
그리고 유난히 콧소리가 강했다.
“네, 안녕하세요. 잘 부탁드릴게요.”
통성명을 마치고 나니 조미옥이 김치 상점 돌아가는 상황을 말해주었다.
“어제 말씀드린 대로 오늘부터 삼겹살집에 김치 납품 들어가. 그쪽에서 세 달만 해보자고 합의 봤어요. 김치전골 식당은 어제랑 비슷하게 물량 보낼 거고.”
“고생이 많으십니다.”
“우리 사장님이 툭하면 보쌈도 사오고 회식도 시켜주는데 고생은 무슨~ 즐겁지! 호호호. 그럼 오늘도 파이팅이에요!”
“네~ 다들 파이팅입니다!”
김치를 전부 실자 조미옥이 독고진이 모는 트럭 조수석에 올라탔다.
진경혜는 늘 출퇴근용으로 자신의 소형 자가용을 몰고 오곤 했다.
거기에 문정연이 합승했다.
진경혜와 문정연은 김치를 담그고 트럭에 실어주는 일만 함께하니 이제 퇴근할 시간.
조미옥 모자는 삼겹살집과 김치전골 식당에 김치를 배송해 줘야 한다.
그다음엔 지한 김치 매장에도 김치를 진열하고 고객들에게 판매를 해야 하루 일과가 끝난다.
강지한 못지않게 바쁜 그들이었다.
김치 팀이 떠나고 나서 강지한도 출근 준비를 했다.
샤워하고 옷을 입고 설탕이와 함께 밖으로 나서려는데.
왕!
설탕이가 허공으로 폴짝 뛰어 올랐다.
타탁!
바닥에 착지한 녀석의 입에는 선물이 물려 있었다.
물어오기 스킬을 성공시킨 것.
강지한이 반색하며 설탕이를 칭찬해 주었다.
“갈수록 실력이 느는구나, 우리 설탕이!”
선물을 터치하자 안에서 메시지가 튀어나왔다.
[축하합니다! 설탕이가 아이템을 물어왔습니다. ‘퀘스트’를 얻었습니다.]
[퀘스트-하루 안에 지한 김치전골의 인지도를 60 이상으로 올리세요.]
[퀘스트 보상: 손님 부스터.]
설탕이가 물어온 럭키 박스에서는 퀘스트가 나왔다.
내용을 살펴본 강지한이 손님 부스터라는 것을 자세히 살폈다.
[손님 부스터: 하루 동안 매장을 찾는 손님의 수가 1.5배 증가한다.]
‘오호라.’
설명을 읽어보니 구미가 동했다.
손님 부스터가 있으면 보너스 스테이지2의 목표를 달성하기가 수월해진다.
보너스 스테이지2의 목표는 일 매출 200만 원을 달성하라는 것.
어제 김숙자에게 들은 바로 일 매출이 150 정도 나왔다고 한다.
물론 오픈빨을 무시할 수는 없지만 하루 이틀 사이에 오픈빨이 사라지는 건 아니니 손님 부스터를 사용하면 충분히 200만 원을 충당할 수 있을 터.
강지한이 머릿속으로 계산을 끝낼 즈음, 메시지가 사라지며 허공에 퀘스트창이 떠올랐다.
[지한 김치전골의 인지도 32/60]
[남은 시간 23:59:57]
‘부족한 인지도는 28.’
문제는 시간이다.
하루 안에 어떻게 저 인지도를 확 올릴 수 있을지.
고민을 하고 있을 때 강지한의 머릿속에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그가 바로 유정미에게 문자를 보냈다.
-정미야, 좋은 아침~!
답장은 바로 날아왔다.
-오빠! 굿모닝~(??????)? 히힛. 어쩐 일이에여?
유정미는 올해 고3이 된 여인으로 대학생이자 인터넷 방송 BJ였다.
강지한과는 그가 리어카에서 장사를 할 때부터 연을 맺었고, 지한 분식이 강석호로 인해 이상한 소문에 휩싸였을 때 인터넷 방송으로 도움을 준 일이 있었다.
이후로 급격하게 친해진 두 사람은 사적으로도 연락을 주고받는 사이가 됐다.
유정미는 강지한의 성격이 담백하고 가식적이지 않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래서 보통 아침부터 연락을 하지 않는 사람인데 연락이 왔다는 건 뭔가 부탁할 것이 있다라는 걸 눈치챘다.
-응. 부탁할 게 좀 있어서.
역시.
유정미가 바로 전화를 걸었다.
강지한이 받자마자 통통 튀듯 유쾌한 음성이 들려왔다.
-뭔데요?
“어, 정미야. 내가 김치전골 식당 오픈한 거 알지?”
-알아요! 안 그래도 조만간 찾아가서 방송 한 번 켜려고 했었는데. 괜찮죠?
“괜찮은 정도가 아니라 내가 부탁하려던 게 그거였어. 근데 혹시 오늘 시간 되니?”
-오늘여? 음……. 오늘은 저랑 친한 춘천 BJ들 먹방 정모 있는데. 아! 오빠! 오늘 그럼 BJ들 데리고 전골집 가도 돼요?
BJ 먹방 정모.
그 말은 지한김치전골을 찾는 모든 BJ들이 자신의 방송을 켜고 먹방을 진행한다는 얘기였다.
그 정도 지식은 유정미에게 익히 들어 알고 있던 터였다.
강지한이 이 좋은 기회를 놓칠 리 없었다.
“당연히 되지! 너희들이 먹는 건 전부 서비스해 줄게.”
-와! 대박! 알았어요! 바로 얘기 전할게요. 피크 시간 피해서 오후 8시쯤에 BJ들 데리고 갈게요!
그때쯤이면 손님이 빠지고 테이블에 빈자리가 제법 생기니 딱 좋았다.
역시 유정미는 센스가 있는 아이였다.
“알았어. 고맙다, 정미야. 잘 부탁할게.”
-저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