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0
Restaurant 79. 지한 김치전골 오픈!
강지한이 이향숙의 컴퓨터로 INTV 홈페이지에 들어갔다.
그리고 ‘신비한 동물의 세계’ 프로그램을 클릭한 뒤, 설탕이가 나왔던 편을 다시보기로 시청했다.
“오빠 지금 뭐해?”
“이거, 설탕이가 가장 좋아하는 프로그램이거든.”
아니나 다를까, 신비한 동물의 세계 오프닝 시그널이 흐르는 순간 설탕이의 두 귀가 쫑긋하고 섰다.
강지한은 앞부분의 필요 없는 분량을 스킵하고 설탕이가 나오는 부분부터 플레이했다.
예소린의 애견 카페에서 VJ 정민석과 설탕이가 조우하게 되는 장면이었다.
-얘가 설탕이예요?
정민석의 익숙한 음성이 들려오자 쫑긋 선 설탕이의 귀가 살짝살짝 움직였다.
-네, 귀엽죠?
예소린이 화면에 잡혔다.
그걸 본 이향숙이 감탄을 흘렸다.
“와, 오빠 애인 진짜 예쁘다.”
“……어? 무슨 소리야.”
“오빠 애인 맞잖아.”
“그런 사이 아니야, 아직.”
“서로 좋아하는 게 뻔히 보이던데 왜 아직까지 아니래? 그냥 사귀지. 시간 아깝게.”
“향숙아, 지금 그것보다 중요한 문제가 있잖아.”
“맞다, 설탕이!”
향숙이가 설탕이를 쳐다봤다.
설탕이의 쫑긋 선 귀가 계속 꿈틀거리며 움직이고 있었다.
바로 그때.
-그럼 지금부터 천재견 설탕이의 재롱을 한 번 보시죠!
본격적으로 설탕이가 방송에 나오는 장면이 이어졌고, 더 이상 참지 못한 설탕이가 머리를 빼꼼 들어 올렸다.
“옳지. 설탕아, 이리 와서 아빠랑 같이 보자.”
이향숙이 잔뜩 기대하는 눈으로 두 손을 모아 가슴께에 대고 설탕이를 지켜봤다.
“설탕아~ 아빠한테 와야지.”
강지한의 음성에 다시 설탕이의 꼬리라 살랑살랑 흔들렸다.
“설탕아~”
마침 모니터에서는 정민석이 설탕이에게 점프를 시키는 중이었다.
-설탕이, 점프!
바로 그때!
브라운관 안의 설탕이와 현실의 설탕이가 동시에 점프를 했다.
왕!
높이 점프한 설탕이를 그대로 강지한이 품에 안았다.
“웃차.”
헥헥헥헥!
설탕이는 언제 토라졌냐는 듯 모니터 속 본인의 모습에 푹 빠져서 좋아했다.
꼬리도 프로펠러까지는 아니지만 바람개비 수준으로 돌아갔다.
그때 강지한이 이향숙에게 눈으로 신호를 줬다.
이향숙이 미리 준비하고 있던 애견용 쿠키를 가져와 설탕이에게 내밀었다.
“설탕아, 미안해~ 이거 먹고 우리 화해하자. 응?”
모니터에 고정되어 있던 설탕이의 시선이 이향숙에게 돌아갔다.
설탕이는 미안해하는 이향숙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코로 한숨을 킁 내쉬더니 들고 있는 과자를 먹었다.
아그작. 아그작.
“꺄아~ 설탕이가 과자를 먹었다! 내 사과를 받아준 거지? 그치?”
맛있게 과자를 먹고 난 설탕이에게 이향숙이 입술을 들이댔다.
“누나 뽀뽀~ 우쭈쭈~”
그런 이향숙의 입술을 설탕이가 할짝할짝 핥았다.
“뽀뽀했다! 설탕아, 기분 다 풀린 거야?”
왕! 헥헥헥.
설탕이의 얼굴이 다시 웃는 상으로 돌아왔고, 꼬리는 프로펠러처럼 휙휙 돌았다.
이향숙이 그런 설탕이를 품에 안으며 연신 사과했다.
“미안해~ 정말 미안해 설탕아! 이제 두 번 다시는 먹는 걸로 장난 안 칠게~ 이히힛.”
마무리되는 작은 소동을 지켜보며 강지한이 피식 웃었다.
* * *
설탕이와 귀가를 했을 땐 조미옥 일행이 김치를 다 담그고서 퇴근 준비를 하려는 중이었다.
“주말마다 쉬지도 못하고 안 피곤하세요?”
강지한이 걱정되어 물으니 조미옥에게서 돌아오는 대답이 가관이다.
“일하는 대로 버는데 피곤할 틈이 어디 있어? 재밌죠~”
“나도 일당 더 받아서 좋은데요?”
진경혜도 맞장구를 쳤다.
“그나저나 사장님. 이제 전골집도 하시니까 사람 한 명 더 써야겠어.”
“네. 안 그래도 그 부분에 대해서 말씀 드리려고 했어요.”
“구인광고 내셨어?”
“아직 못 냈어요.”
“그럼 이번에도 제가 한 명 데려올까 싶은데.”
이미 일 잘하는 진경혜를 데려와서 조미옥에 대한 강지한의 신뢰도는 높았다.
“그렇게 하세요.”
“그리고 삼겹살집 납품 건 말인데. 킬로당 6,000원씩 다달이 300킬로 받을 수 있으면 우선 세 달 계약해서 돌려보는 조건으로 진행해 볼 건데, 어때?”
“네. 그 부분은 조 사장님께 맡길게요.”
그때 독고진이 손을 들며 끼어들었다.
“저…… 사장님. 저도 건의할 게 하나 있는데요.”
“얘기하세요.”
“그…… 배추 장사 규모를 늘리는 김에 인터넷 판매도 해보시면 어떨까 싶어서요.”
“인터넷 판매요?”
“네. 홈페이지 만들어서 전국으로 택배를 쏴버리는 거죠. 사장님 김치는 한 번 먹어보면 70퍼센트 이상은 무조건 재구매하니까 분명 대박 터질 것 같은데요.”
진경혜가 독고진의 의견에 맞장구를 쳤다.
“어머 그렇네! 동네 삼겹살집만 공략할 게 아니라 전국을 무대로 장사해 보는 게 좋겠어요.”
“그렇지! 그러다 보면 전국에 있는 덩치 좀 있는 식당에서 계약하자고 손 내밀지도 모르고. 그때는 지금처럼 킬로당 6,000원으로 할인해서 한 달 물량 뽑아버리는 거야.”
김치 장사는 강지한보다 조미옥이 더 열정적으로 덤벼들고 있었다.
그녀는 김치 장사가 남의 사업이라 생각 않고 자기 일이라 받아들였다.
그렇기에 이 정도로 열심히 할 수 있었던 것이다.
물론 판매수익의 15%가 상당히 쏠쏠하기 때문이라는 이유도 없진 않았다.
“그걸 진행하실 수 있겠어요?”
“당장은 공장 돌릴 정도까지는 아니니까 상황 규모에 따라 내가 일할 사람을 추가로 들일게. 강사장은 인터넷 쇼핑몰인가 뭔가 그거만 어떻게 만드는지 알아봐 줘. 아! 택배 회사랑은 어떻게 계약해서 진행해야 하는 건지도 알아봐 주면 더 좋고.”
그 말을 듣자마자 바로 이향숙이 떠올랐다.
그녀는 온라인 쇼핑몰을 제작한 데다가 택배회사와도 계약을 해서 매일매일 물량을 전국으로 배송하고 있었다.
때문에 이향숙에게 물어보면 모든 것이 해결될 일이었다.
“알겠어요. 그 부분은 제가 해결할게요.”
“역시~ 듬직해, 우리 강 사장.”
“이제 얼른 들어가서 쉬세요. 고생 많으셨어요.”
“응~ 그럼 들어가 볼게. 푹 쉬고 내일 봐, 강 사장.”
“사장님, 쉬세요!”
“안녕히 계세요~ 설탕이도 담에 보자.”
왕!
조미옥 일행이 한 명씩 인사를 건네고는 떠나갔다.
집으로 들어온 강지한이 샤워를 마치고서 편안한 옷으로 갈아입고 소파에 앉았다.
“온라인 사업이라.”
설마 김치 장사의 규모가 이렇게까지 커질 줄은 몰랐다.
사실 김치 쪽은 조미옥이 발 벗고 나서서 전부 담당하고 있기에 강지한으로서는 크게 신경 쓸 일이 없었다.
때문에 강지한도 그녀의 제안을 받아들인 것이다.
가뜩이나 하는 일이 많은 강지한이었기에 자신에게 부담이 오는 상황이었다면 아마 사업 확장은 반려했을 것이다.
그만큼 일 잘하고 믿음직한 사업자를 얻는다는 건 중요한 일이었다.
꼬르륵.
이런저런 생각에 잠겨 있던 와중 뱃속에서 소식이 왔다.
‘뭐 좀 먹을까.’
강지한이 냉장고를 열었다.
그의 냉장고는 항상 신선한 재료들로 적당히 채워져 있었다.
강지한은 집에서는 늘 밥을 직접 해먹기에 식재료가 상해서 버리게 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보자……. 마늘이랑 고기, 칵테일 새우 큰 거.’
식재료들을 가만히 살피던 강지한이 손가락을 딱 튕겼다.
‘아, 그거 해 먹어볼까?’
강지한의 손이 마늘과 칵테일 새우를 집었다.
그가 만들려는 건 몇 년 전, 레스토랑에서 먹었던 냉파스타였다.
사실 돈도 잘 못버는 그의 입장에서는 주제 넘는 짓이었지만 그날따라 칙칙하고 무기력한 자신의 삶에 먹을걸로나마 기운을 주고 싶었다.
그때 먹었던 냉파스타는 정말 눈이 사르르 감길 정도로 맛이 있었다.
하지만 그 맛을 그대로 재현하기보다는 자신만의 무언가를 만들어 보고 싶었다.
강지한이 냉장고를 찾아봤다.
그러자 눈에 가장 먼저 들어온 건 저염명란이었다.
그는 일반 명란은 너무 짜서 저염명란을 선호했다.
‘저걸 냉파스타에 섞어?’
강지한이 머릿속으로 명란냉파스의 레시피를 한 번 그려본 뒤 부엌칼을 들었다.
그건 보통의 부엌칼이 아니었다. 럭키 박스에서 얻은 진화형 부엌칼이었다.
현재 부엌칵을 레벨 3까지 업그레이드시켜 [날이 선 부엌칼]의 형태였다.
숙련도는 78.
이제 22를 더 올리면 한 번 더 레벨업이 가능했다.
강지한은 도마 위에서 마늘을 편 썰고, 페퍼론치노 여섯 개를 이등분했다.
다음으로 프라이팬에 올리브유를 찰랑거릴 정도로 붓고 중불로 화력을 조절한 뒤, 편 썬 마늘과 페퍼론치노를 투하했다.
그 상태로 5분 정도를 두고서 기름만 걸러내고 건더기들은 버렸다.
마늘과 페퍼론치노의 향을 가득 머금은 올리브유는 고소하고 매콤했다.
이것을 냉동실에 넣고 빠르게 식히는 한편, 큰 냄비에 파스타면을 삶아냈다.
삶는 물에는 충분한 소금과 올리브유 약간이 들어갔다.
면이 7분 정도 삶아졌을 때 칵테일 새우를 투하해서 3분을 더 삶고 체에 걸러 찬물에 씻었다.
손이 얼 정도로 차가운 찬물에다 한참을 씻어내니 퍼진 듯했던 면의 탄력이 다시 살아났다.
‘딱 좋다.’
면의 상태를 확인한 강지한이 저염명란 세 알의 속을 칼등으로 발라냈다.
이제 큰 볼에다 식힌 올리브유와 차가운 면, 새우, 명란 속을 넣고 마구 섞어주었다.
그것으로 요리가 완성됐다.
잘 섞인 파스타면을 얼마 전에 구입한 파스타 접시에 보기 좋게 담아낸 뒤 파슬리 가루를 뿌렸다.
“어서 먹자.”
벌써부터 명란냉파스타의 고소한 기름 냄새가 식욕을 자극했다.
강지한이 포크로 크게 한 젓갈을 떠서 입에 넣었다.
“으음~”
시원하고 탄력 있는 면이 입안에서 춤을 추었다.
면 주변에 버무려진 명란 속이 자잘하게 씹히며 간을 딱 잡아주면서 올리브유의 고소하고 매콤한 향이 더할 나위 없는 만족감을 안겨주었다.
곁들여 먹는 새우도 최고였다.
“진짜 맛있다.”
그 말이 진심으로 속에서 우러나왔다.
“잘 먹었다.”
순식간에 파스타 한 접시를 싹 비운 강지한이 바로 설거지까지 마쳤다.
그러고는 바로 방으로 들어가 책상에 놓인 책 한 권을 펼쳐서 읽었다.
그것은 양식 관련된 책이었다.
그것 말고도 한식, 일식, 중식에 대한 책들이 수두룩하게 쌓여 있었다.
강지한이 이번에 파스타를 해먹은 것도 엄마의 레시피와 더불어 양식을 슬슬 만들어 보며 감을 익혀야겠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이는 비단 배틀 셰프 때문만이 아니었다.
갈수록 강지한 본인이 요리에 즐거움을 느끼고 있었다.
요리라는 것은 알면 알수록 신기했고 재미있는 분야였다.
더 알고 싶고, 더 공부하고 싶고, 더 만들어보고 싶다는 욕심이 그를 스스로 공부하게 만든 것이다.
강지한은 밤이 깊어가는 줄도 모르고 요리 공부에 푹 빠져들었다.
* * *
다음 날.
드디어 지한 김치전골이 오픈하는 날이었다.
모든 준비는 완벽했다.
강지한은 분식집 주방에서 요리를 만들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머릿속 한편에서는 전골집 상황이 어떤지 못내 신경 쓰였다.
아침에 출근하기 전, 전골집부터 들러보았다.
김숙자는 새벽부터 나와 이것저것 준비하며 부지런을 떨고 있었다.
매장에는 김숙자만 있는 게 아니었다.
그녀가 고용한 지인들도 함께였다.
첫날이니만큼 모두가 일찍 나와서 영업이 끝날 때까지 같이 행동을 하기로 했다는 것.
강지한은 김숙자의 손을 꼭 잡으며 잘될 것이라 말해주었다.
‘손님이 많아야 할 텐데.’
분식집을 찾는 손님들에게도 김치전골 광고를 열심히 해두었던 터다.
제발 파리만 날리지 않기를 바라며 일을 하다 보니 어느새 브레이크 타임이 되었다.
“중만 아저씨, 오늘은 중만 아저씨가 음식 좀 해보세요.”
강지한이 고중만에게 식구들의 식사를 책임지도록 했다.
고중만이 황소 같은 눈을 꿈뻑거리며 본인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내가?”
“네.”
“조미료 맛 가득한 음식 먹고 싶어? 그건 잘해.”
“되도록 제 레시피에 기준해서 만들어 보세요. 계속 해봐야 늘죠.”
“흠… 그러지 뭐. 대신 맛없어도 남기지 말고 먹어야 돼! 막내가 한 음식 남기면 알지?”
고중만이 눈을 부릅떴다.
지한 분식 식구들이 마른침을 꿀꺽 삼키며 고개를 마구 끄덕였다.
그에 고중만이 풀 죽은 얼굴로 툴툴댔다.
“아니 그렇게 진지하게 받아들이면 어떡해? 사람 너무 외모로 판단하는 거 아니냐? 나 농담한 건데! 에라이, 농담도 못하겠네.”
강지한은 픽 웃고서 앞치마와 모자를 벗었다.
“저는 잠깐 전골집 좀 다녀올게요. 식사들 하세요.”
그러고는 누가 말릴 새도 없이 분식집을 나가 버렸다.
“되게 신경 쓰이나 보네.”
차창 밖으로 멀어지는 강지한의 뒷모습을 보며 이리나가 중얼거렸다.
* * *
강지한이 차를 몰아 지한 김치전골 건물 앞에 도착했다.
건물 앞의 분위기는 생각보다 한산했다.
‘하긴……. 처음부터 웨이팅이 걸리길 기대하는 건 좀 욕심이지. 게다가 점심시간도 아니고.’
강지한은 약간의 아쉬움을 털어버리고 건물 안으로 들어섰다.
제발 빈 테이블이 거의 없기를 간절히 바랐다.
그런데, 그의 눈에 들어온 홀의 광경은 할 말을 잃게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