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벨업 하는 식당-79화 (79/330)

# 79

Restaurant 78. 설탕이 삐졌다

하얀 접시 중앙엔 아주 좋은 색으로 튀겨진 연골튀김이 쌓여 있고, 그 위에는 불향이 모락모락 나는 목살구이꼬치가 살포시 얹혀졌다.

접시의 양쪽 가장자리엔 마요네즈를 섞은 데리야끼 소스와 고추장 소스가 아름다운 선을 그리며 발라져 있었다.

그리고 레몬 한 조각을 놓아 플레이팅에 포인트를 주었다.

접시 옆에는 작은 국그릇에 맑은 수제비가 담겨 있었다.

“요리에 대해서 설명해 보세요.”

“닭 연골튀김과 닭 목살구이꼬치, 닭 목뼈에서 우린 육수를 베이스로 한 수제비입니다.”

그러자 최현식이 바로 말했다.

“먼저 설명한 두 가지 요리는 난코츠 가라아게와 세세리 야끼군요.”

“맞습니다.”

“두 요리는 난이도가 높지 않지만 튀김과 구이라는 것 자체가 어떻게 조리하느냐에 따라 맛의 격차가 크게 나버리죠. 특히 이런 특수 부위들은 모 아니면 도예요. 재료의 특성을 제대로 이해해서 고스란히 살려주면 최고의 요리가 되겠지만 반대의 경우는…….”

최현식이 날카로운 시선을 강지한에게 던졌다.

그러자 한돈선이 한마디를 덧붙였다.

“강지한 씨가 조리하는 걸 눈여겨봤는데 개인적으로는 완벽하게 조리했다고 생각합니다. 최 셰프님께서도 함께 보셨잖아요? 일부러 기를 죽일 필요 있나요. 호호.”

“…….”

강지한에게 몇 마디 더 쏘아붙이려던 최현식의 입이 턱 막혔다.

“남은 이야기는 먹어보고 하도록 할까요? 어떻게 먹으면 되는지 설명해 주세요.”

“요리에 전체적으로 레몬을 짜서 목살구이꼬치는 볶은고추장 양념에 찍어 드시고, 연골튀김은 데리야끼마요네즈 양념에 찍어 드시면 됩니다. 수제비는 그냥 드시면 되겠습니다.”

“설마 우리가 수제비 먹는 방법도 모를까 봐? 호호호, 알겠어요.”

한돈선이 다른 심사위원들과 시선을 나눈 뒤 목살꼬치구이를 집어 들었다.

자신의 음식을 심사받는 상황에서도 강지한은 전혀 위축되거나 긴장하지 않았다.

요리에 나타난 등급이 보였기 때문이다.

[강지한의 대단한 닭 목살꼬치구이]

요리 등급: LV5

-밑간이 완벽하다. 불향이 속에 배도록 잘 구웠으며 육즙도 상당 부분 잡아냈다. 재료 본연의 맛과 질감을 90% 이상 살렸다. 볶은고추장 소스에 찍어 먹으면 더욱 맛있다.

무려 5레벨의 요리다.

맛이 없을 리가 없었다.

미야타케 카즈타카의 지식이 레벨 업 하며 레시피를 바꾸면서 4레벨로 예상했던 요리가 5레벨로 탄생한 것이다.

한돈선을 따라 다른 심사위원들도 꼬치 하나씩을 들었다.

그것을 양념에 찍어 입에 넣고 씹으며 천천히 맛을 음미했다.

“음.”

한돈선의 얼굴에 만족스런 미소가 어렸다.

레이먼 박도 기본 좋은 콧소리를 흘렸다.

최현식은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은 지금 닭 목살에서만 느낄 수 있는 특유의 쫀득한 식감을 즐기고 있었다.

아울러 다른 부위보다 더욱 강렬한 풍미가 입안 전체로 퍼져 나갔다.

게다가 밑간도 잘됐고, 소스와의 조합도 끝내줬다.

“좋군요. 닭 목살은 우리나라에서는 잘 사용되지 않는 부위지만 사실 다른 어떤 부위보다 식감이 재미있고 풍미가 좋습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도 엉망으로 조리를 하면 닭 목살의 특징이 전부 죽어버릴 텐데, 아주 조리를 잘했어요.”

“레몬즙을 뿌린 덕분에 느껴지는 약간의 산미와 상큼한 향이 라스트 테이스트를 너무 오일리하지 않게 잡아주네요. 그레이트해요.”

심사위원들은 이번엔 연골튀김을 데리야끼마요네즈 소스에 찍어 먹었다.

강지한은 그것도 자신 있었다.

연골튀김의 레벨 역시 5였기 때문이다.

연골튀김이 심사위원들의 입안에서 오독거리며 씹혔다.

너무 딱딱하지 않고 적당한 저항감을 주며 잘게 썰리는 연골과 짭짤하게 간이 배어 바삭하게 부셔지는 튀김옷이 상당한 만족감을 안겨주었다.

기름을 최적의 온도로 맞춰서 1초의 부족하거나 과함 없이 정확하게 튀겨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조리의 기본을 잘 알고 있는 데다 튀기는 재료의 특성을 확실히 이해하는 동시에 많은 경험이 뒷받침되어야 가능한 튀김이었다.

“이것도 환상적입니다. 저는 더 이상 얘기할 게 없네요. 완벽해요.”

한돈선이 만면 가득 미소를 짓고 말했다.

레이먼 박이 고개를 끄덕였다.

“동감해요.”

최현식도 침묵으로 동의를 표했다.

마지막으로 수제비는 강지한이 가장 자신 있게 내놓은 메뉴인만큼 그 맛이 일품이었다.

심사위원들은 하나같이 수제비에 감탄했다.

“강지한 씨, 자리로 돌아가세요.”

“네.”

극찬을 받은 강지한이 자리로 돌아갔다.

이제 두 번째 후보를 부를 차례였다.

“다음 후보를 호명하겠습니다.”

지원자들은 자신의 이름이 불리길 기대하며 침을 꼴깍 삼켰다.

도근한도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다음 순간 한돈선의 입에서 흘러나온 말은 그의 귀를 의심케 만들었다.

“다음 후보는 없습니다.”

도근한이 눈을 부릅떴다.

‘……뭐?’

* * *

이향숙은 배송해야 할 옷들을 포장하다가 잠깐 짬을 내서 설탕이와 놀아주고 있었다.

그녀가 강아지 비스킷 한 조각을 오른손에 감추고서 내밀었다.

“이 안에 무슨 간식이 있을까요~?”

왕!

“비스킷이라고? 정답!”

이향숙이 꽉 쥔 주먹을 열자 설탕이가 얼른 비스킷을 주워 먹었다.

아그작. 아그작.

설탕이가 비스킷을 다 먹자 장난기가 동한 이향숙이 이번엔 빈주먹을 내밀고서 물었다.

“다음 간식은 무엇일까요?”

왕!

“또 비스킷? 과연~!”

이향숙이 쥐고 있던 빈주먹을 펴고서 씩 웃었다.

“다음 간식은 없습니다.”

설탕이가 눈을 부릅떴다.

그 표정이 마치 ‘……뭐?’라고 하는 것 같았다.

* * *

한돈선의 충격적인 발언에 장내에 서늘한 기류가 맴돌았다.

분명 우승 후보 세 명의 음식을 먹어본 뒤 승자를 뽑는 시스템이었다.

그런데 강지한을 부른 뒤로는 더 호명할 사람이 없다고 하니 황당할 따름이었다.

“다들 놀라신 것 같지만 우리 심사위원들의 입장에서는 당연한 선택이었어요. 강지한 씨의 음식보다 뛰어난 음식이 있을 것 같지 않았습니다.”

심사위원들은 지원자들의 요리 과정을 단상 위와 따로 설치된 모니터 화면으로 전부 확인한다.

뿐만 아니라 종종 단상 아래로 내려와서 직접 다가가 지켜보기도 했다.

그런데 특수 부위를 선택한 강지한의 요리보다 맛있게 조리되고 있는 요리가 없었다.

그나마 도근한의 음식이 돋보였지만 누구나 쉽게 활용할 수 있는 부위를 가지고 강지한의 요리와 비슷한 맛을 낸다면 무조건 승자가 될 수 없었다.

그것은 다른 지원자들의 입장도 마찬가지였다.

때문에 지금 강지한이 내어온 요리와 비교를 할 수 있을 만한 것이 없었다.

시간 낭비였다.

“따라서 제2라운드 페일 배틀의 우승자는 강지한 씨입니다. 강지한 씨에게는 다음 라운드 탈락면제권이 주어집니다. 축하드립니다.”

“감사합니다.”

강지한이 맑게 웃었다.

그의 미소 가득한 얼굴이 카메라에 담겼다.

* * *

세트장에서 나와 집으로 돌아가는 길.

강지한의 뒤를 도근한이 따라붙었다.

“지한아.”

“응?”

강지한이 대답하며 뒤돌아봤다.

도근한은 무언가 답답한 얼굴로 그런 강지한을 바라보며 물었다.

“너 언제부터 요리 시작했냐.”

“얼마 안 됐어.”

“진짜야? 혹시 어렸을 때부터 요리에 취미 있었던 건 아니고? 남몰래 집에서 요리 공부를 했다거나…….”

강지한이 고개를 저었다.

“그러진 않았어.”

“근데 어떻게…….”

도근한이 말을 하려다 입을 닫았다.

생각하면 할수록 마음이 착찹해졌다.

‘나보다 늦게 시작했는데 날 앞서 나갔어.’

도근한 본인도 요리를 일찍 시작한 건 아니었다.

집안 형편이 넉넉했던지라 성인이 된 갓 스물에는 별생각 없이 노느라 바빴다.

성인으로서의 자유를 마음껏 누렸다.

그러다 무언가 직업은 하나 있어야겠다는 생각으로 가볍게 시작한 것이 요리였다.

집에서의 지원은 상당했으니 좋은 스승과 연결되는 것도 어렵지 않았다.

그가 바로 레이먼 박이었다.

도근한은 레이먼 박의 레스토랑에서 현장 경험을 단 4년만 하고 자신의 스테이크 하우스를 차렸다.

보통의 사람들은 막내부터 시작해서 기본 8년 이상 배워야 할 것을 초고속으로 클리어해 버린 것이다.

그게 자본주의의 힘이었다.

하지만 단순히 많은 지도비를 받았다고 해서 레이먼 박이 싹수도 없는 도근한을 키워준 건 아니었다.

그는 의외로 요리에 재능이 있었다.

레이먼 박이 나름 애제자라 생각할 정도로 말이다.

때문에 도근한은 요리에 대한 자부심이 상당했다.

강지한을 만나기 전까지는 말이다.

‘나보다 더 뛰어나다는 거지.’

결국 도근한은 최후의 자존심까지도 버리고 현실을 완전히 받아들였다.

강지한이 이 바닥에 자신보다 늦게 들어왔음에도 앞서 나간다는 건 결국 재능의 차이였다.

“간다. 다음 주에 보자.”

도근한이 강지한을 성큼성큼 걸어 강지한의 곁을 지나쳤다.

멀어지는 도근한의 뒷모습이 다른 날보다 유난히 우직해 보였다.

* * *

일요일이면 조미옥 일행이 강지한의 집에 와서 김치를 담근다.

때문에 설탕이를 따로 다른 사람에게 맡기지 않았다.

한데 오늘은 이향숙이 너무 설탕이가 보고 싶다 졸라대는 바람에, 그녀에게 맡긴 터였다.

강지한은 서울에서 내려오자마자 바로 설탕이부터 찾으러 갔다.

김숙자는 외출을 해서 없었고, 집에는 이향숙과 설탕이뿐이었다.

“향숙아~ 나 왔어.”

강지한이 문 밖에서 향숙이를 부르자 우다다다다! 하는 소리와 함께 문이 벌컥 열렸다.

그러고는 향숙이가 잔뜩 겁먹은 얼굴로 울먹이며 말했다.

“오빠, 어떡해. 설탕이가… 설탕이가…….”

순간 가슴이 덜컹한 강지한이 후다닥 안으로 들어가 이향숙의 방으로 향했다.

그 짧은 시간 동안 강지한의 머릿속에서 온갖 불안한 생각들이 마구 떠올랐다.

‘평소였다면 당장 꼬리치며 달려 나왔을 녀석인데.’

오늘은 조용했다. 게다가 평소답지 않은 향숙이의 호들갑까지.

“설탕아!”

강지한이 설탕이의 이름을 부르며 살짝 열려 있는 방문을 확 젖혔다.

그러자,

“엉?”

방문에서 등을 돌린 채 축 처진 어깨로 앉아 있는 설탕이의 뒷모습이 보였다.

그때 강지한을 따라온 이향숙이 울먹이며 하려던 말을 마무리 지었다.

“설탕이가아…… 삐졌어…… 흐아앙.”

“…….”

강지한의 마음속에서 처음으로 이향숙에게 알밤을 놓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하지만 꾹 참고 물었다.

“어쩌다 저렇게 된통 삐진 거야? 어지간해서는 안 그러는 앤데.”

그나마 강지한의 목소리가 들려오니 축 쳐져 있던 꼬리가 살짝 살짝 흔들렸다. 한데 그러다가 곧 멈췄다.

그건 자신이 지금 얼마나 삐졌는지를 어필하고 싶은 마음과 강지한이 반가운 마음이 충돌하며 벌어지는 현상이었다.

“응 그게…… 손에다 이렇게 비스켓 숨겨서 주는 척하고 몇 번 안 줬더니…….”

“허어.”

설탕이는 식탐이 그렇게까지 강한 녀석은 아니다.

그렇다면 토라진 포인트는 아마 먹을 것 같고 몇 번이나 장난을 쳤기 때문일 터.

“설탕아~ 이리와 봐. 아빠한테 와.”

강지한의 목소리에 다시 설탕이의 꼬리가 살짝 움직였지만 이내 힘을 잃고 툭 떨어졌다.

“아무래도 단단히 삐진 모양인데.”

“나 이대로 평생 설탕이한테 미움 받으면 어떻게 살지? 히이잉.”

이향숙은 무슨 사랑하는 남친한테 차이기라도 한 사람처럼 괴로워했다.

곰곰이 생각하던 강지한의 머릿속에 퍼뜩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그거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