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8
Restaurant 77. 세 가지 요리
강지한의 선택에 좌중이 술렁댔다.
하고 많은 부위 중 연골과 목이라니?
가장 요리하기 쉬운 부위를 강지한은 버렸다.
닭다리와 날개, 가슴살을 사용하면 얼마든지 맛있는, 그리고 많은 요리를 할 수 있었다.
본인에게는 선택의 폭이 넓어지는 반면, 다른 지원자들은 폭이 좁아진다.
그런데 강지한은 딱히 많은 조리법이 있는 것도 아닌 특수 부위를 택했다.
이건 스스로 받은 베네핏을 발로 걷어차는 짓이었다.
‘무슨 생각인 거지, 강지한?’
도근한은 대체 저 인간이 뭘 꾸미고 있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물론 연골과 목뼈로 요리를 할 수 없는 건 아니다.
그래도 쉽게 갈 수 있는 길을 왜 돌아가는 건지 이해하기 힘들었다.
심사위원들도 강지한의 선택이 의외라는 듯한 표정이었다.
지원자들은 한 차례 의아함과 당황이 쓸고 간 다음, 안도의 한숨을 내쉬기 바빴다.
그 모든 광경들이 카메라에 차곡차곡 담겼다.
세트 밖에서 이를 지켜보는 노영철 피디가 만세라도 부르고 싶은 걸 꾹 참았다.
‘대박이다, 대박이야.’
이미 1회 시청률이 생각했던 것보다 높게 나와서 배틀 셰프 관계자들은 축제 분위기였다.
한데 강지한이 계속해서 부탁하지도 않은 드라마를 만들어 주고 있었다.
노영철의 눈에 강지한이 어찌나 예쁘게 보이는지 다른 지원자들보다 출연료를 확 올려주고 싶을 정도였다.
‘자, 이제 특수 부위를 선택한 이유들 물어보시고.’
노영철이 속으로 그리 말하자 바로 최현식의 입이 열렸다.
“강지한 씨, 어째서 이런 선택을 하신 거죠? 혹시 1라운드 때처럼 요리를 하지 않고 그냥 프리 패스 하게 될 것이라 생각하는 건가요?”
만약 강지한이 그런 걸 계산했다면 그는 정말 방송을 잘 아는 사람인 것이다.
프리패스도 하고 착한 이미지도 누적되고 1석 2조니까 말이다.
하지만 강지한은 그런 것에 대해서는 조금도 생각하지 않고 있었다.
오로지 이번 경합에서 우승할 수 있는 확실한 무기가 되어줄 요리만 생각하고 있었다.
“아니요.”
“미리 말해두겠지만 이번 라운드에 프리 패스는 없습니다. 선택에 후회는 없습니까?”
“네, 없습니다.”
“……어떤 요리를 만들지 기대되는 군요.”
최현식은 강지한의 말을 믿지 못하는 눈치였다.
반면 한돈선과 레이먼 박은 강지한이 과연 어떤 요리를 만들어 낼 것인지 기대가 됐다.
저번 라운드에서 그는 프리 패스로 그냥 통과했고, 그 전까지의 미션들은 재료를 다듬거나 요리의 서빙 순서를 알아맞히는 것이 전부였다.
때문에 심사위원들은 한 번도 강지한의 음식을 먹어보지 못한 터.
물론 다른 지원자들 역시 요리라고는 한돈선이 만든 만두를 재현한 게 전부인지라 창의적인 요리를 만들게 되는 건 이번 라운드가 처음이었다.
그럼에도 그 와중에서 가장 기대되는 건 어쨌든 강지한이었다.
“그럼 한 시간 드리겠습니다. 연골과 목을 제외한 원하는 부위 두 가지를 택해서 요리를 만들어 내도록 하세요.”
한돈선의 말이 끝나자마자 출연자들이 바쁘게 움직였다.
팬트리에는 닭이 수북이 쌓여 있었다.
강지한은 닭 다섯 마리를 가져왔다.
그리고 닭 목을 잡아 등 쪽으로 이어지는 살을 부드럽게 포 떠 냈다.
그렇게 한 점이 나온 것으로 끝.
닭 한 마리에 그 이상의 살점은 얻을 수가 없었다.
이를 지켜보던 최현식의 눈이 살짝 커졌다.
‘혹시…… 세세리 야끼를 하려는 건가?’
그것은 한국 사람들이 잘 모르는 요리였다.
대부분의 한국인들은 닭 목에 먹을 만한 살이 거의 없다고 여긴다.
이유는 조리법에 있다.
백숙을 할 땐 닭모가지를 아예 떼서 버리는 경우가 많다. 버리지 않는다고 해도 비주얼이 좋지 않아 호불호가 많이 갈린다.
프라이드 치킨을 만들 땐 모가지가 들어가긴 하나, 이것이 튀겨지면 살이 수축되어 그 양이 얼마 되지 않는다.
그래서 별로 선호하는 부위가 아니다.
하지만 생닭인 상태에서 포를 뜨면 마리 당 15~20그람 정도 되는 양을 얻을 수가 있었다.
비주얼도 나쁘지 않다.
게다가 이 부위는 다른 부위들에 비해 쫄깃해서 식감이 좋고 더욱 고소했다.
‘그걸 알고 일부러 닭 목을 선택했다고?’
최현식의 눈에 이채가 어렸다.
강지한은 다섯 마리의 닭에게서 다섯 개의 목살을 획득한 뒤, 가슴살에 붙어 있는 연골을 발라 한 입 크기로 절단했다.
‘잘되겠지?’
지금 그가 만들려고 하는 것은 연골튀김과 목살구이 꼬치였다.
일본에서는 연골 튀김을 난코츠 가라아게, 목살구이를 세세리 야끼라고 부른다.
일식에 붙는 이름 대부분은 재료+조리법으로 구성된다.
때문에 난코츠 가라아게는 연골+튀김이라는 뜻이고, 세세리 야끼는 목살+구이라는 뜻이다.
이러한 사실을 강지한은 일식 요리 장인의 지식으로 알고 있었다.
그가 난코츠 가라아게와 세세리 야끼라는 음식을 만들기 위해 특수 부위를 선택한 것도 이 장인의 지식 덕분이었다.
‘압도적인 맛을 보여줄 게 아니라면 다른 사람이 택하지 않는 재료를 가져와서 특별한 맛을 선보여야 한다.’
그게 강지한의 작전이었다.
일반적인 부위로 강지한이 요리를 할 수 없는 건 아니다.
꾸준히 요리 공부를 해온 만큼 만들어 낼 수 있는 음식은 얼마든지 있었다.
그러나 이런 요리들은 보통 4레벨 정도의 수준밖에 되지 않았다.
‘그게 탈락할 수준은 아니지만.’
이왕 해보는 거 가장 좋은 성적으로 2라운드를 통과하고 싶었다.
강지한이 우선적으로 한 건 물과 전분 가루를 1:1의 비율로 섞는 것이었다.
연골튀김을 만들기 위해서는 이 전분물을 30분간 둔 뒤, 위에 뜬 물을 버리고서 밑에 가라앉은 농도 짙은 전분 반죽을 연골에 입혀야 했다. 그동안은 연골튀김을 진행할 수가 없었다.
때문에 목살에 소금, 후추로 밑간을 해 재워놓은 후 곁들여 먹을 소스를 만들기로 했다.
연골튀김에 어울리는 건 달콤짭짤한 간장 소스였고, 목살구이꼬치에 어울리는 건 매콤달콤한 고추장 베이스 소스였다.
강지한은 한식과 일식의 지식을 섞어 두 가지의 장점이 조화롭게 어우러지는 간장 소스와 고추장 소스를 제조해 나갔다.
한데 그때였다.
[일본 요리 장인 고(故) 미야타케 카즈타카의 지식이 충분한 경험치가 쌓여 레벨 업 합니다.]
[일본 요리 장인의 지식이 레벨 2가 되었습니다.]
[레벨 업으로 인해 전보다 더 많은 지식이 오픈됩니다.]
생각지도 못한 타이밍에 일본 요리 장인의 지식이 레벨 업 했다.
강지한의 머릿속으로 수많은 요리 지식들이 파도처럼 쏟아져 들어왔다.
‘아…….’
그러자 지금 만들려고 했던 연골튀김과 목살구이꼬치의 조리법도 살짝 바뀌었다.
업그레이드가 된 것이다.
바뀐 조리법 자체에 큰 변화는 없었다.
하나 그 작은 변화들, 몇 초를 더 굽는다든지 기름의 온도를 1도를 더 높인다든지 하는 것이 맛의 그레이드를 훨씬 높여줄 터였다.
덕분에 강지한은 더욱 자신감이 붙었다.
소스 역시 기존에 만들려던 것에서 일정 부분을 수정했다.
‘쯔유를 조린 듯한 느낌으로 가려고 했는데…… 데리야끼로 소스로 걸쭉하게 만들자. 거기에 마요네즈를 만들어 섞는 거야.’
강지한이 팬트리로 들어가 데리야끼 소스를 만드는 데 필요한 재료들을 한가득 집어왔다.
데리야끼 소스는 생각보다 들어가는 재료가 많았다.
제대로 된 맛을 내려면 기본적으로 다시마, 간장, 맛술, 설탕, 양파, 대파, 마늘, 올리고당 정도는 있어야 했다.
그래도 만드는 과정은 간단했다.
다시마 육수를 우려낸 다음, 모든 재료들을 필요한 양만큼 넣고 끓여서 졸여주면 끝.
데리야끼 소스가 졸여지는 동안 고추장, 케첩, 설탕, 올리브유, 다진 마늘, 우스타 소스, 올리고당, 맛술을 섞어 프라이팬에 약한 불로 볶아 고추장 소스를 만들었다.
다음으로는 데리야끼 소스에 들어간 마요네즈를 만들 차례.
노른자와 소금을 넣어 핸드믹서로 섞은 뒤 식초를 넣고 다시 섞었다. 거기에 식용유를 조금씩 분할해서 넣어주며 계속해서 섞어나갔다. 올리브유를 사용해도 좋지만, 그 특유의 향은 호불호가 갈리기에 그냥 식용유를 택한 것이다.
완성 된 마요네즈는 냉장을 해두고 다음 작업으로 들어갔다.
‘튀김과 구이로는 너무 평이해. 한 가지를 더 만들자.’
미야타케 카즈타카의 지식이 업그레이드되면서 본인이 택한 재료로 만들어 낼 수 있는 한 가지 요리가 더 그려졌다.
강지한이 살을 발라낸 닭 목뼈 다섯 개와 양파 껍질, 무 껍질, 월계수 잎 4분의 1조각을 작은 냄비에 넣고 육수를 끓이기 시작했다.
목뼈의 개수가 워낙 조금이라 물은 많이 받지 않았다.
‘목뼈를 우려내면 깔끔하고 진한 맛을 낼 수 있다.’
그것이 새로 얻게 된 지식 속에 있는 내용이었다. 아울러 목뼈와 함께 우리면 좋은 재료들도 알게 됐다.
이렇게 만든 육수는 칼국수에 제격이다.
‘칼국수 대신 수제비로 가자.’
강지한은 본인의 특기인 수제비 반죽을 만들기 시작했다.
강지한의 비법 반죽이 제대로 된 식감을 살리려면 24시간 숙성을 해야 하지만, 30분만 숙성해도 일반 수제비보다 훨씬 좋은 식감을 자랑한다.
그렇게 강지한이 생각한 세 가지의 음식이 차례차례 준비되어 가고 있었다.
* * *
제한된 한 시간이 다 되어가고 있었다.
36명의 지원자들은 서서히 자신이 생각한 요리들을 완성해 나가고 있었다.
튀김과 구이, 찜부터 시작해서 닭다리살을 이용한 프랑스식 요리 프리카세와 코코뱅. 중식풍의 유린기, 찌꿍빠오. 닭날개에서 다리살로 만든 소를 넣어 쪄낸 닭날개 만두, 일본식 닭고기 교자, 맑은 수프 등등 그 종류도 다양했다.
이 요리를 만든 사람들 중에서 여섯 명은 탈락하고 30명만 3라운드에 진출할 수 있었다.
이번 라운드는 심사위원이 모든 음식을 먹어보지 않는다.
눈에 띄는 음식을 만든 사람 세 명을 호명해 시식하고 그중 우승자를 가려낸다.
탈락자의 경우 조리과정이 엉망이던 하위권 여덟 명을 불러내 시식한 다음 여섯 명을 탈락시키는 방식이다.
우선은 호명된 건 탈락자 후보 8명이었다.
심사위원 세 명은 그들의 요리를 맛본 후 하나같이 신랄한 독설을 뱉어냈다.
심장이 떨리는 칼날 같은 시간이 흘러가고 드디어 여섯 명의 탈락자가 나왔다.
그들은 하나같이 눈물을 흘리며 앞치마를 벗고 배틀 셰프 키친을 떠나갔다.
조금 전까지 곁에 있었는데 거짓말처럼 사라지는 동료들을 보는 다른 이들의 마음은 결코 편치 않았다.
다음 주에는 자신이 저렇게 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이제 남은 30명의 인원 중에서 우승자를 가려낼 때였다.
“호명하는 지원자는 앞으로 나와 주세요.”
한돈선이 지원자들을 훑어보며 천천히 첫 번째 후보의 이름을 호명했다.
“강지한 씨.”
강지한이 자신의 요리가 담긴 쟁반을 들고 앞으로 나섰다.
그를 보는 지원자들의 눈에는 역시나 그럴 줄 알았다는 기색이 어려 있었다.
강지한은 단상 아래에 놓인 심사 테이블에 접시를 내려놓았다.
그러자 심사위원 세 명이 단상에서 내려와 테이블에 가까이 다가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