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9
Restaurant 48. 설탕이와 전문점
설탕이는 요즘 기분이 좋았다.
한동안 울적했던 강지한의 얼굴이 다시 밝아졌기 때문이다.
동이 틀 무렵.
강지한의 품 안에서 한 이불을 덮고 자던 설탕이가 눈을 뜨는 시간.
끄으응.
짧은 발을 앞뒤로 쫙 펴고 기지개를 켠 설탕이가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사랑하는 주인의 얼굴 핥기.
할짝. 할짝. 할짝.
부드러운 혀로 뺨을 핥는 동안 앙증맞은 꼬리는 좌우로 마구 흔들린다.
“으음……. 설탕이 깼어?”
왕!
강지한이 눈을 뜨면 좌우로 흔들리던 꼬리가 팽팽 돌아간다.
주인의 기상이 반가운 설탕이는 강지한의 머리 주변을 우다다다 뛰어다니다가 다시 품에 안긴다.
“그래, 그래. 일어나자. 흐아암~!”
강지한은 몸을 일으키고 바로 화장실부터 들어간다.
쪼르르르르-
안에서 소변보는 소리가 들려오면 설탕이도 배변패드로 가 소변과 대변을 해결한다.
요의를 해결한 강지한은 바로 설탕이 밥부터 챙겨줬다.
헥헥헥!
밥그릇에 사료가 담기자 고소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설탕이는 흘러내리려는 침을 꿀꺽꿀꺽 삼키며 사료에 시선을 고정했다.
강지한이 그런 설탕이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며 말했다.
“먹어, 설탕아.”
아그작! 아그작!
설탕이는 정신없이 사료를 먹어댔다.
“아유, 귀여워.”
먹을 걸 챙겨주고, 따뜻한 공간을 마련해 주고, 자신을 어루만져 주는 사람.
주인 강지한.
그의 애정이 느껴질수록 설탕이의 내면에 무언가가 쑥쑥 자라나고 있었다.
설탕이가 사료를 먹는 동안 강지한도 간단한 아침을 준비했다.
그가 냉장고에서 옛날분홍소시지를 꺼내왔다.
그것을 한 입 거리로 자른 후, 계란 하나를 그릇에 깨서 휘휘 저어 풀었다.
타다다다- 화르륵!
이어 불이 오른 가스레인지에 프라이팬을 놓고 기름을 둘렀다.
프라이팬이 가열되는 동안 열 조각 정도 되는 소시지를 전부 계란물에 넣고 마구 섞었다.
그것을 달궈진 프라이팬에 하나하나 올렸다.
치이이이이-
계란물 입은 소시지가 기름에 구워지며 고소한 냄새가 거실 가득 퍼져 나갔다.
킁킁!
막 사료를 다 먹은 설탕이의 입에 다시 군침이 돌았다.
토다다다다!
설탕이가 강지한에게 다가가 폴짝폴짝 뛰었다.
“설탕아, 기름 튀어. 저리 가 있어.”
자신을 걱정하는 강지한의 마음이 전해지자 설탕이는 뒤로 멀리 물러났다.
그런데도 시선은 강지한이 프라이팬 위에서 뒤집고 있는 소시지에 고정되었다.
딸깍.
계란 옷 입은 소시지가 노릇노릇 익자 가스불을 끈 강지한이 대접에 밥을 떠서 물에 말았다.
구워진 소시지는 접시에 옮겨 담고 케찹을 적당히 뿌렸다.
밥과 구운 소시지를 상 위에 놓고 김치까지 꺼내는 것으로 간단한 아침상이 차려졌다.
헥헥헥.
설탕이가 상 앞에 앉은 강지한의 옆으로 다가가 딱 달라붙었다.
그러고는 혹시나 하는 눈빛으로 강지한과 소시지를 번갈아 쳐다봤다.
“안 된다, 요놈아.”
하지만 강지한은 얄짤 없었다.
사람 먹는 음식은 절대 설탕이에게 주지 않았다.
예소린이 강아지에겐 사람 먹는 것을 주면 안 된다고 신신당부를 했기 때문이다.
강지한이 물에 만 밥 한술을 크게 떠서 소시지 하나와 김치 한 조각을 위에 올리고 입에 가득 넣었다.
“아암-”
입안에서 싸구려 소시지와 극단적인 맛의 케찹, 김치와 밥이 어우러졌다.
대단한 맛은 아니었지만 단순하면서도 어릴 적 추억이 가득 담겨 충분한 만족감을 주었다.
이 분홍소시지라는 것이 참 신기했다.
맛이 현란하거나 풍미가 대단한 것도 아닌데, 입에 들어가면 다른 음식의 맛들을 중화시켜 버린다.
강지한이 직접 담근 어마어마한 맛의 김치도 분홍소시지 앞에서는 존재감을 완벽하게 드러낼 수 없었다.
강지한은 밥 한 그릇을 순식간에 비웠다.
“잘 먹었다.”
배를 탁탁 두들기고 일어나 설거지를 바로 마치고서 다시 화장실로 들어가 씻는 강지한.
설탕이는 화장실 문 앞에서 그런 강지한을 기다린다.
샤워를 마치고 머리까지 말린 강지한이 다시 나오면 땅바닥에 붙어 있던 설탕이의 엉덩이가 벌떡 솟아오른다.
바쁘게 외출복을 입은 강지한이 설탕이를 품에 안으며 집을 나섰다.
“가자, 설탕아~!”
왕!
* * *
애견 카페에 가면 모든 강아지들이 설탕이를 반겨주곤 했다.
그중 가장 격한 반응을 보이는 건 단연 소금이.
자기보다 한참 어리고 덩치도 과하게 작은 설탕이 앞에서 드러누워 배를 까뒤집고 난리가 난다.
하지만 설탕이는 그런 소금이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대충 인사만 해주고서 다른 강아지들과 신나게 논다.
소금이는 그런 설탕이를 뭐에 홀리기라도 한 듯 쫓아다녔다.
그러다 보면 손님이 한 명, 두 명 애견 카페를 찾는다.
“설탕아~!”
“우리 왔어 설탕아~!”
“설탕아, 우쭈쭈.”
손님들은 너도 나도 설탕이를 차지하기 위해서 혈안이 된다.
그럼 설탕이는 이 손님, 저 손님들에게 적당히 찾아가며 애견 카페의 평화를 지킨다.
오늘도 설탕이로 인해 카페는 평화로웠다.
그런데 손님들과 예소린의 애정을 거침없이 흡수하던 설탕이가 자신의 안에서 무언가 큰 변화가 일어나는 것을 느꼈다.
설탕이는 강지한을 만난 이후로 이런 경험을 총 아홉 번이나 겪었다.
* * *
일을 하던 와중 설탕이의 레벨 업 메시지를 접한 강지한이 레벨 업 현황을 확인했다.
<레벨 업 현황>
[강지한]
.
.
.
[설탕이 LV10]
지능+5
교감도+10
핥기, 손, 앉아, 엎드려, 하이파이브, 빵, 굴러, 점프, 물어와: 행복+9
특수 능력: 물어오기 LV2 (숙련도 10/100)
명성: 37(동네에서 유명한 강아지)
‘못 보던 게 갑자기 확 늘었네.’
설탕이의 상태창에 전에 없던 지능과 교감도, 명성이라는 것이 생겼다.
교감이라 하면 주인, 혹은 사람과의 정서적인 교류로 인해 마음이 통하게 되는 것을 뜻한다.
이심전심(以心傳心)이라고나 할까.
설탕이에 대해 이것저것 생각하고 있자니 레벨 업한 녀석이 보고 싶었다.
하지만 하루 일과가 끝나서야 가능할 테니 그런 마음은 애써 외면하고 요리에 집중했다.
* * *
오늘부터 지한분식에 브레이크 타임이 적용되었다.
오후 3시 반부터 4시 반까지 딱 한 시간이다.
거기에 대해서는 손님들에게 며칠 전부터 공고를 해놓은 터였다.
식당의 홀과 문 앞에도 크게 메모를 붙여놓았었다.
그럼에도 소식을 접하지 못하고서 식당을 찾았다가 돌아가는 이들이 제법 있었다.
그때마다 강지한은 직접 문 밖으로 나가 고개 숙이며 정중히 사과의 말을 전했다.
브레이크 타임이 지한 분식 식구들에겐 한숨 돌리며 밥을 먹을 수 있는 시간이었다.
“성우야.”
“네, 사장님!”
“밥 네가 해볼래?”
“제가요?”
“응. 주문 들어간다. 나는 김치찌개.”
강지한에 이어 이리나가 손을 번쩍 들었다.
“난 된장찌개!”
“저는 치즈라면 부탁드립니다!”
최지민도 싱글벙글 웃으며 말했다.
“어…….”
용성우가 입만 뻥긋거리자 강지한이 물었다.
“왜? 힘들 것 같아?”
“아니 그게 아니라…… 제가 만들면 사장님 음식이랑 차이가 너무 날까 봐.”
“성우야, 자신감을 가져. 다를 거 하나 없어. 내가 미리 육수랑 양념장 같은 거 다 준비해 놨잖아. 그리고 너 나랑 같이 한 달 넘게 일하면서 열심히 관찰했잖아. 어떤 타이밍에 뭘 어떻게 조리해야 하는지, 음식별로 완전히 숙지하지 않았어?”
“그렇긴 한데…….”
“그럼 해봐. 조리법만 제대로 지키면 비슷한 맛 나올 거야.”
어차피 들어가는 재료는 똑같다.
비법 양념장이나 육수도 강지한이 다 만들어 놓은걸 정량에 맞게 넣으면 그만이다.
그러니 강지한의 레시피만 충실히 따른다면 비슷한 맛을 내는 것이 가능한 상황.
그리고 레시피는 그간 강지한을 보며 공부해 온 용성우의 머릿속에 전부 들어 있었다.
강지한은 용성우에게 자신감을 심어주는 한편 시험하고 싶었다.
용성우가 어디까지 해줄 수 있는지.
“해보겠습니다!”
씩씩하게 대답한 그는 입을 꾹 다물고 주방으로 들어갔다.
그러고는 열심히 주문받은 요리들을 만들기 시작했다.
“오~ 성우 오빠 제법 태 좀 나는데?”
“그러게요.”
이리나와 최지민이 용성우의 모습에 즐거워했다.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아 주문한 메뉴 세 개와 용성우 본인이 먹기 위해 만든 김치볶음밥까지 테이블에 놓여졌다.
“잘 먹겠습니다!”
이리나가 가장 먼저 된장찌개를 한 입 떴다.
강지한이 만들어낸 특제 된장양념베이스에 직접 우린 육수를 사용했고, 들어가는 재료도 똑같았다.
아울러 된장찌개를 끓이는 시간 또한 정확히 맞췄다.
강지한의 말대로 모든 것이 준비되어 있으니 어려울 게 없는 조리였다.
“오!”
이리나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거의 비슷해. 와, 신기하다.”
“성우 형, 치즈라면도 퀄리티 괜찮은데요? 면빨만 좀 더 탄력 있으면 좋겠어요.”
라면 역시 강지한이 준비해 둔 특제 양념을 넣기에 물 조절만 잘하면 비슷한 맛을 낼 수 있었다.
다만 면발의 탄력을 최대로 끌어올려야 한다는 것이 좀 난제였다.
동료들의 연이은 칭찬에 용성우의 얼굴이 밝아졌다.
이제 남은 건 강지한의 평가였다.
그가 김치찌개를 맛보고는 빙그레 미소 지었다.
“훌륭해. 90점.”
“가, 감사합니다!”
“이 정도면 내가 조금 더 부려먹어도 되겠는데?”
“얼마든지 부려먹어 주십쇼! 뭐든 성실히 하겠습니다!”
“하하, 농담이야. 내가 늘 도움받아 고맙지. 정말 실력이 몰라보게 일취월장했어, 성우야.”
그러자 용성우가 머리를 긁적였다.
“아니, 그게…… 그렇게 말씀하시면 좀 부끄럽죠. 육수며, 양념장이며, 사장님이 전부 준비해놓은 걸 똑같은 레시피로 사용한 건데요.”
“그렇게 해도 이 맛 못내는 사람이 더 많을 거야. 음식이 레시피에 충실하고 똑같은 재료를 사용한다고 해서 같은 맛이 나오는 건 아니거든.”
그건 강지한이 근래 쉼 없이 요리 연습을 해오며 깨달은 사실이었다.
그리고 요리를 하는 사람들이라면 모두가 공감하는 것이었다.
“그렇게까지 말씀하신다면 칭찬 감사히 받아먹겠습니다!”
“칭찬도 좋은데 밥부터 먹자. 식겠다.”
지한 분식 식구들은 용성우가 만들어 온 요리들을 맛있게 먹기 시작했다.
강지한은 테이블에 놓인 음식들의 레벨을 살폈다.
[용성우가 만든 상당한 수준의 김치볶음밥]
요리 등급: LV4
-상품의 김치와 고슬고슬 지어진 밥을 강력한 불에 잘 볶아냈다. 볶는 스킬은 좀 떨어지지만 강지한이 담근 상당한 수준의 김치와 강지한이 지은 대단한 밥의 영향으로 레벨 4 수준은 된다.
[용성우가 만든 맛있는 치즈라면]
요리 등급: LV3
-강지한이 만든 대단한 특제 양념을 넣어 만들었으나 면빨의 탄력이 상당히 아쉬우며 물이 약간 많다. 그래도 맛있다.
[용성우가 만든 대단한 된장찌개]
요리 등급: LV5
-들어가는 재료와 레시피는 대단할 것이 없으나 강지한이 만든 환상적인 육수와 양념의 버프를 받았다.
[용성우가 만든 대단한 김치찌개]
요리 등급: LV5
-들어가는 재료와 레시피는 대단할 것이 없으나 강지한이 만든 상당한 수준의 김치, 환상적인 육수와 양념 버프를 받았다.
‘몇 가지만 가르쳐 주면 되겠어.’
강지한의 예상대로 용성우는 대부분 비슷한 맛을 낼 수 있는 수준까지 발전했다.
물론 그 베이스가 강지한의 육수와 특제 양념, 김치 덕이라는 건 부정할 수 없지만 말이다.
‘이 정도면 슬슬 괜찮겠지? 나만 발전하면.’
강지한은 지한 분식 외에도 따로 생각하는 것이 있었다.
바로 분식점의 인기 메뉴들을 활용한 전문점의 파생이다.
사실 지한 분식은 용성우의 실력이 아무리 발전했다 하더라도 강지한이 못해도 일 년 이상 자리를 지키고 있어야 한다.
때문에 분점은 초창기에만 생각해 보고 아예 계획에서 지워 버렸다.
강지한처럼 모든 메뉴를 퀄리티 있게 만들 사람을 구하기는 어렵기 때문.
해서 육수와 특제 양념만 있으면 누구든 레시피대로 만들었을 때 강지한과 비슷한 맛을 낼 수 있는 한 가지 음식 전문점을 런칭하기로 했다.
사실 이건 얼마 전 텔레비전을 보다 얻은 아이디어였다.
집밥 천선생이라는 강원TV 요리프로그램이었는데, 거기엔 춘천 요식업계의 유명인사 천명옥이 메인으로 출연하고 있었다.
그녀는 프로그램을 통해 만능 간장과 만능 양념, 특제 양념소스 등등의 비법들을 알려주었다.
그것들만 있으면 초보자가 요리를 해도 레시피에 충실할 경우 비슷한 맛을 낼 수 있다고 했다.
그에 강지한은 이런 아이디어를 낸 것이다.
자신이 만들어낸 특제 양념과 육수, 소스만 있으면 누구든 비슷한 맛을 구현하는 게 수월할 테니.
물론 아직 구체화된 계획은 없었다. 아직 어떤 음식을 전문점 메뉴로 내놓을지도 정하지 못한 상황이다.
그런 생각을 하며 식사를 막 마쳤을 때 강지한의 스마트폰이 울렸다.
발신인은 예소린이었다.
강지한이 바로 전화를 받았다.
“네, 소린 씨!”
평소답지 않게 격양된 강지한의 음성에 이리나가 어색한 미소를 짓다가 벌떡 일어나서 빈 그릇들을 치우기 시작했다.
그러자 용성우가 후다닥 일어나 그런 이리나를 도와줬다.
“리나야! 내가 할게! 좀 쉬어!”
“괜찮아요, 오빠.”
“아냐, 쉬라니까. 서빙하느라 힘들었잖아. 난 힘이 남아돌아서 괜찮아. 하하!”
그런 용성우를 지켜보던 최지민이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생각했다.
‘평소엔 헤헤 하고 웃더니. 리나 앞에서는 웃음소리가 달라지네.’
최지민이 젖은 행주를 가져와 빈 테이블을 닦았다.
근데 그때 강지한이 벌떡 일어서며 소리쳤다.
“네? 설탕이가요? 지금 갈게요!”
강지한이 앞치마를 벗고 다급히 식당을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