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0
Restaurant 49. 김밥이냐 김치찌개냐
강지한이 헐레벌떡 애견카페로 들어섰다.
그러자 강지한의 눈에 설탕이를 보며 박수를 치고 있는 손님들과, 그런 손님들 사이에서 장난감 공을 입에 물고 꼬리를 흔드는 설탕이의 모습이 들어왔다.
“설탕아, 아빠 왔다!”
강지한을 발견한 예소린이 말하자 설탕이가 공을 뱉더니 강지한에게 냅다 달려가 점프했다.
“읏차!”
강지한이 설탕이를 품에 안자마자 혓바닥 어택이 얼굴을 공격했다.
헥헥헥!
설탕이는 이 시간에 강지한이 올 줄 모르고 있었던 터라 반가움이 이루 말할 수 없을 만큼 컸다.
강지한이 설탕이를 바라보며 물었다.
“설탕아, 너 정말 말을 알아듣니? 응?”
대답은 예소린이 대신 했다.
“우리 설탕이 엄청 똑똑해요. 뭐든 조금만 가르쳐 주면 그 물건의 이름을 인식한다니까요.”
“정말이에요?”
“한 번 보실래요?”
강지한이 설탕이를 바닥에 내려놓았다.
그러자 예소린이 장난감 공과 티슈상자, 슬리퍼를 바닥에 놓고 설탕이에게 말했다.
“설탕아, 저기 있는 것 중에서 슬리퍼 가지고 와봐.”
예소린의 말에 설탕이가 망설임 없이 달려가더니 단번에 슬리퍼를 입으로 물어왔다.
“와~ 잘했어 설탕아!”
왕! 헥헥.
“봤죠?”
예소린이 짐짓 으스대는 얼굴로 물었다.
본인이 설탕이의 주인도 아니건만 괜히 뿌듯했다.
“정말 똑똑하네. 내 새끼.”
설탕이를 바라보는 강지한의 눈이 하트가 됐다.
카페에 있는 다른 손님들도 하나같이 사랑스러운 시선을 설탕이에게 던졌다.
“설탕이가 공이랑 슬리퍼를 정확히 인지해요. 얘 아직 한 살도 안 됐는데 이 정도면 천재견이에요.”
예소린이 말하며 설탕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지능이 올라간 영향인가?’
설탕이는 레벨이 10이 되며 지능이라는 항목이 추가됐다.
아무래도 그 덕분에 갑자기 영특해진 것 같았다.
“사장님! 강아지를 어떻게 키우면 이렇게 똑똑해져요?”
“분식집 오빠! 설탕이 나한테 하루만 맡기는 거 어때요? 대신에 제가 단골 한 명 늘려 드릴게요! 굿 딜?”
“설탕이 얘는 진짜 난놈이야. 벌써부터 이러니 나중에는 아주 난리도 아니겠어.”
“벌써 설탕이 강사춘 카페에서 유명한 거 아세요?”
애견 카페 손님들이 저마다 한마디씩 하기 바빴다.
그중 강자한의 귀에 가장 임팩트 있게 들어온 건 지한 분식의 단골이기도 한 스무 살 청년 고수찬의 말이었다.
“응? 강사춘이 뭐야?”
“형 강사춘도 몰라요? ‘강아지를 사랑하는 춘천 사람들’이라는 카페예요. 거기 회원수 제법 많은데 설탕이 사진이 하루에도 여러 장씩 올라온다니까요.”
“그랬어?”
“인터넷에 강사춘 치면 나오니까 한 번 들어가 보세요.”
“그럴게.”
강지한은 생각했던 것보다 대단한 설탕이의 인기에 내심 놀랐다.
강아지를 사랑하는 춘천 사람들의 카페에 사진까지 올라갈 정도라니.
자식 자랑에 강지한의 기분이 마냥 흐뭇해졌다.
마음 같아서는 여기서 더 머물고 싶었으나 브레이크 타임은 곧 끝난다.
강지한이 설탕이와 아쉬운 작별을 하고 카페를 나가자 예소린이 얼른 따라 나왔다.
“지한 씨 잠깐만요.”
“네?”
강지한을 급히 불러 세운 예소린의 손엔 박스테이프가 들려 있었다.
그녀가 박스테이프를 북 뜯어 돌돌 말아 붙이더니 강지한의 상의에 묻은 설탕이 털을 떼어냈다.
“요리하는 사람이 이러고 다시 식당 들어가면 되겠어요?”
“아, 그렇네요.”
예소린은 정성스레 털을 떼어내고 있는데 점점 강지한의 기분이 이상해졌다.
예소린의 고운 손이 자신의 상체 이곳저곳을 만지고 있으니 말이다.
강지한은 얼굴이 붉어져서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린 반면, 예소린은 꿋꿋하게 할 일을 다 마쳤다.
“이제 됐어요.”
“가, 감사해요. 소린 씨. 그럼 가볼게요.”
“네. 남은 시간도 파이팅 하세요.”
“소린 씨도요.”
강지한은 해맑게 미소 짓는 예소린을 일별하고 분식집으로 들어서며 생각했다.
‘진짜 담이 큰 여자야. 아무렇지도 않았나.’
* * *
강지한이 시야에서 사라지고 난 뒤, 예소린은 숨을 크게 몰아쉬었다.
“하아아.”
그러고는 손에 쥐어진 박스테이프를 보며 중얼댔다.
“너무 떨렸어.”
그녀는 떨림은 감추려고 더더욱 과격하게 강지한의 몸을 턱턱 만져댔다.
아직까지도 콩닥거리는 가슴을 가라앉힌 예소린이 총총거리며 애견 카페로 들어갔다.
* * *
3월 17일.
재오픈을 한 지도 20일이 지났다.
늘 그렇듯이 강지한은 영업을 끝내고 집에 들어가면 항상 요리 연구와 연습에 열중했다.
요즘 그가 주력하고 있는 메뉴는 수제비였다.
김치찌개와 된장찌개, 그리고 떡볶이의 베이스가 되는 육수가 수제비를 하기에 너무도 잘 어울렸던 것.
베이스 육수의 담백한 맛에 간만 조금 더하고 입에서 적당한 탄력을 주며 씹히는 수제비를 떠 넣으면 그야말로 금상첨화일 것 같았다.
문제는 수제비 반죽의 황금비율을 찾아내는 데 시간이 걸린다는 것.
우선 밀가루와 물의 비율은 2:1이 가장 좋은 것 같았다.
인터넷과 영상자료를 통해 공부해 보니 어디에서는 4:1이라 하고 어디서는 3:1이라고 하는 곳도 있었다.
한데 두 가지 경우는 반죽이 너무 되서 수제비를 얇게 떼기가 힘들었다.
분식집의 특성상 음식이 빨리빨리 나와야 하는데, 수제비가 두꺼우면 익히는 데 시간이 걸리고 딜레이가 생긴다.
아울러 너무 된 반죽은 삶아냈을 때 쫄깃하기보단 딱딱했다.
차라리 좀 묽게 해서 강한 불에 빨리 삶아내는 것이 쫄깃함 식감을 살리면서 다른 재료와도 조화롭게 어울렸다.
강지한은 거기에서 그치지 않고 달걀도 까 넣고 식용유를 조금 섞었다.
식용유는 반죽의 찰기를 더해주는 역할 했다.
아울러 소금물까지 첨가했다.
처음에는 그냥 소금을 뿌려서 반죽을 쳐댔는데 간이 전체적으로 조화롭게 배어들지 않았다.
해서 애초에 소금을 녹인 소금물을 넣게 된 것이다.
이렇게 완성된 반죽은 오래도록 쳐주는 게 포인트였다. 그럴수록 글루텐 성분이 많이 생겨 더욱 차지게 되기 때문이다.
사실 그 정도만 해도 충분히 좋은 반죽이 탄생했다.
그러나 강지한이 수제비를 만들어보면 나타나는 등급은 항상 레벨 4였다.
육수는 좋으나 수제비의 핵심인 반죽이 아쉽다는 평가였다.
강지한은 반죽에 들어가는 재료들의 비율이 문제가 아닌가 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해서, 물과 밀가루의 비율 외의 다른 모든 비율들을 조금씩 달리해 가며 반죽의 완성형을 만들어가는 중이었다.
그 연구는 아직도 현재 진행형이었다.
한편, 얼마 전 새로운 요리로 내놓은 제육덮밥은 수제비를 연구하는 와중에도 계속해서 공부하고 발전시켜 드디어 레벨 5의 수준까지 끓어 올리는 게 가능했다.
고기를 조금 더 상품의 것을 사용하고 양념의 베이스 몇 가지를 바꿔 만들었더니 드디어 레벨 5의 벽을 넘어선 것이다.
한데 언제나 레벨 5의 수준을 유지하는 건 아니었다.
그날 그날 사온 고기의 상태에 따라 레벨 4에서 5 사이를 왔다 갔다 했다.
강지한은 나름대로 시중에서 파는 신선한 고기를 사온다고 하는데, 그게 미세한 차이가 있는 모양이었다.
식재료의 신선도를 확실히 구분할 수 있는 눈을 가져야 하는 것이 강지한에게 주어진 또 하나의 숙제였다.
강지한은 본인의 역량을 업그레이드시키는 것 외에 김치 사업에도 박차를 가했다.
그는 업체를 통해 이틀 전부터 숙성고와 저장고 공사에 들어갔다.
마당의 창고를 숙성고로 만들고 그 옆에 저장고를 만들 계획이었다.
작업은 생각했던 것보다 시간이 더 걸렸다.
우선 창고 자체가 너무 오래된 시멘트 건물이었다.
해서 뼈대만 남겨놓고 다 헐어버리는 일부터 진행해야 했다.
이틀간의 작업으로 깔끔하게 헐어냈으니 내일부터는 숙성고와 저장고를 짓는 작업에 들어갈 예정이었다.
김치숙성고는 기본적으로 패널을 사용하므로 공사가 그렇게 오래 걸리지는 않는다고 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바닥 시공인데, 평형을 잘 맞춘 뒤 스테인레스 처리를 한 바닥 패널을 깔아주면 녹이 잘 슬지 않고 환경 호르몬의 걱정을 줄일 수 있다는 것이 업체의 설명이었다.
바닥만 깔아놓으면 그다음부터는 일사천리라고 했다.
그래도 공사가 다 끝나려면 대략 일주일은 잡아야 했다.
그때쯤이면 맛나 통닭의 내부와 외부 리모델링도 전부 끝날 시기이니 시기적으로 딱 들어맞았다.
더불어 강지한은 조미옥의 조언을 받아 김치가격을 조정하고 함께 일할 사람 한 명을 더 들이기로 했다.
조미옥이 몇 번씩 계산해 봐도 김치에 들어가는 정성과 뛰어난 맛에 비해 킬로당 가격이 너무 싼 것 같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 상태로 흑자를 보려면 하루에 김치 50킬로 이상은 팔아야 하고 넉넉하게 남기려면 80킬로는 팔아야 했다.
보통 양념된 김장김치는 2킬로에 한 포기 정도가 나간다.
하루에 40포기를 담가야 80킬로가 되는 건데 강지한도 해봤지만, 그만큼의 김치를 담그기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니 김치의 킬로당 가격을 8,500원으로 상향하고 사람을 한 명 더 쓰는 게 현명하지 않겠냐는 의견이었다.
새로운 사람은 조미옥이 믿을 만한 아줌마를 데려오겠다고 했다.
아울러 조미옥은 장사를 오래하다 보니 장사꾼들과 친목을 많이 다진 터.
여기저기 다양한 유통망을 가진 사람들을 알고 있었다.
걔 중에는 품질 좋은 배추를 다른 곳보다 싸게 유통해 줄 수 있는 사람도 있었고, 양념 속에 필요한 재료들 역시 값싸게 구매하는 것이 가능했다.
그렇게 해서 계산해 보니 강지한이 생각했던 재료 원가가 확 낮춰졌다.
강지한의 입장에서는 원가가 줄어들고 김치 가격이 오르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일이었다.
한데 7천 원에 팔던 것을 8,500으로 올리면 과연 팔리겠느냐 하는 걱정이 들었다.
그에 조미옥은 이 정도 맛이면 더 올려도 사갈 테니 스스로의 실력에 자신감을 가지라 일렀다.
그녀는 장사꾼이기 전에 주부였다.
때문에 강지한은 그녀의 말을 믿고서 진행하기로 했다.
사람을 잘 들이면 수고로움이 덜하면서 주변 상황이 좋아지는 법이다.
강지한은 조미옥과 함께하길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 * *
정유곤과 정민석은 같은 INTV 방송국에서 일하는 동료다.
정유곤은 예능프로그램의 피디고 정민석은 동물예능프로의 VJ다.
두 사람은 형제다.
정유곤이 형이고 정민석이 동생이었다.
세 살 차이 터울이었는데 정유곤의 성격이 불같아서 어린 시절에는 정민석이 항상 기죽어 살았었다.
한데 서른을 넘긴 이후부터는 친구처럼 맞먹고 지냈다.
그들은 지금 정민석의 차를 타고 춘천으로 향하는 중이었다.
정유곤은 요섹남녀의 두 번째 촬영지 사전 답사차, 정민석은 모처럼 오프인 날이라 형의 운전기사 핑계를 대고 머리나 식힐 겸 따라왔다.
춘천이라는 도시는 대부분의 동네에 교통 체증이 없었다.
출퇴근 시간만 피하면 어딜 가든 차가 쌩쌩 달릴 수 있었다.
신나게 운전을 하던 정민석이 혼잣말을 흘렸다.
“배고프네.”
그걸 들은 정유곤이 눈을 반짝였다.
“배고프냐? 나도 고픈데. 김밥 먹을래?”
“에이, 춘천까지 와서 무슨 김밥이야.”
“너 먹어보면 그런 말 안 나온다. 춘천에 기가 막힌 김밥집이 있어, 인마.”
“됐고. 춘천에 김치찌개 끝장나게 맛있는 분식집 있거든. 거기 가자.”
“후회하지 말고 형 말 들어.”
“형이야말로 후회하지 마. 인정이 형이 인정한 맛 집이야.”
정민석과 같은 프로그램 선배 최인정은 수더분한 성격과 달리 맛에는 엄격했다.
그는 음식이 맛없으면 맛없다고 바로 말해버렸다. 그렇다고 음식을 남기느냐 하면, 다 먹는다.
웃으면서 독설을 하고 남김없이 다 먹는 특이한 긍정주의자가 바로 최인정이다.
정민석은 얼마 전, 그런 최인정과 춘천에 온 일이 있었다.
춘천에 사람처럼 웃는 개가 있다는 제보를 받았기 때문인데, 과장된 제보였다.
결국 허탕을 치고 돌아가는 길에 어느 분식집에 들러 김치찌개를 주문했고 인생 김지치찌개를 접하게 됐다.
그러나 정유곤은 그런 동생의 말을 들을 생각이 없었다.
요섹남녀의 촬영 도중 윤선아에게 한 줄 얻어먹었던 그 김밥 맛이 잊히질 않았다.
마침 춘천에 다시 왔으니 꼭 그 김밥을 먹고야 말겠다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운전대는 정민석이 쥐고 있었다.
“야야. 너 까불지 말고 형이 가자는 곳으로 가. 김밥 먹어야 돼.”
“김밥 같은 소리 좀 그만해. 김치찌개 맛집 거의 다 왔어.”
“야 이 씨! 김치찌개 그렇게 먹고 싶으면 집에 가서 끓여먹던가! 사방에 널린 게 김치찌개야.”
“김밥도 널렸어. 아니 그리고 왜 자꾸 욕을 해?”
“씨도 욕이냐? 에이비씨! 씨! 전생에 김치찌개 못 먹고 죽은 귀신이 달라붙었나.”
형제가 티격태격하는 사이 차는 정민석이 원하는 목적지에 도착했다.
“다 왔어.”
정민석은 형이 뭐라고 하기도 전에 차에서 내렸다.
“어휴.”
결국 정유곤도 어쩔 수 없이 내리니 정민석이 분식집 하나를 손으로 가리켰다.
“여기야.”
정민석이 분식집 간판을 살폈다.
그런데 그 이름이 아주 익숙했다.
“지한 분식……? 어?”
“왜?”
“내가 말한 곳이 여긴데?”
“김밥 맛집?”
“어. 설마 네가 말한 김치찌개 맛집이…….”
“여기야.”
두 형제는 서로를 바라보며 한 동안 말이 없었다.
그러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식당을 향해 잰걸음을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