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7화
“소환사 지원이 필요하다고 하더군. 아직 싸울 수 있다면 가지.”
“네?”
“소환사잖아. 황성 갑옷은 아니고, 지역에서 충원을 온 건가? 아무튼 빨리 와.”
그는 다짜고짜 나를 잡아끌었다. 나는 그에게 얼떨결에 끌려가면서 어찌 된 일인지 사정을 들을 수 있었다. 그는 고역스럽다는 듯이 말했다.
“이렇게 상황이 안 좋을 줄 몰랐군. 마물과 마족이 작정했다는 듯이 달려들다니. 인근 도시에서도 날뛴다고 하는데. 이 헤르간으로 더 충원은 어려울 거야.”
“어, 얼마나 이 도시에 사제들이 지원 나왔나요?”
“대략 오백 정도는 왔어. 수도에서 나이트가 둘이나 파견되고.”
그는 앞쪽에서 환한 빛을 뿜어내는 성기사 둘을 가리켰다.
“그에 못지않은 젊은 지휘관도 하나 포함됐지.”
그가 바라본 쪽에는 은빛 갑옷을 입은 성기사가 있었다. 멀어서 잘 보이진 않았지만 신성력이 번쩍일 때마다 빛나는 머리는 분명 황금색이었다.
‘……아론.’
나도 모르게 주먹을 꽉 쥐었을 때, 그가 말했다.
“작은 도시치곤 굉장히 많은 인원이 몰려온 편이야. 운이 좋았다고 할까? 상부의 입김이 작용했다는 말도 있고, 아무튼. 지진 않겠지.”
“…….”
“그래도 마물의 수가 너무 많아. 이상하게 작은 놈들도 성가시게 굴고, 괴생명체들도 날뛰다 보니, 확실하게 승리를 쟁취하려면 우리 소환사가 힘 좀 써야지.”
그가 도착한 곳에는 이미 소환사 수십 명이 지팡이를 든 채 주문을 외우고 있었다. 그는 대장에게 눈짓하고는 내게도 신성력을 보태라고 했다.
당황스럽지만 얼른 소환 영역에 힘을 보탰다. 지팡이를 쥔 채로, 신성력을 끌어내자 힘이 한데로 뭉쳐서 차원의 문을 그려낸다. 기사들은 우리의 움직임에 맞춰서 마물들을 몰아오고 있었다.
“됐어!”
마물들을 몰아넣는 순간 소환 영역이 작동하고 그들을 마계로 날려 보낸다. 마물들은 감쪽같이 사라졌고 기사들은 함성을 질렀다.
“잘했어, 승리는 우리 편이야!”
아닌 게 아니라, 선두에 선 강한 성기사들의 활약으로 강한 마족들이 제압된 상태였다. 마족들을 상대할 수 있는 강력한 신성력이라니. 기사들은 열광하며 그들의 이름을 부르짖고 있었다. 나는 아론의 이름을 듣고서 잠시 굳어져 있었다. 나를 데리고 온 소환사가 말했다.
“이제 쉬운 것만 남은 셈이야.”
“……쉬운 거요?”
“괴생명체들을 쓸어 버리는 거.”
소환사는 기분 좋게 웃고 있었다.
“그러고 나면 다리 뻗고 쉴 수 있겠지.”
나는 그를 멍하니 바라보고 말았다. 그가 왜? 라고 의아하다는 듯이 되물었을 때, 나는 아주 작은 소리를 들었고, 풀 속에서 뛰어다니는 공 마물 하나를 발견하고 말았다.
“근데 자네 이름이 뭔가?”
나는 무심코 대답하고 말았다.
“말레드레드……”
“말레드레드? 어디서 들어 본 것 같은데. ……어? 자네 갑자기 어디 가?”
소환사가 나를 불렀지만 공 마물을 잡는 게 먼저였다. 저것이 사람에게 들어가면 사람을 괴생명체로 변화시켰기 때문에 목표를 찾기 전에 잡는 게 중요했다. 그러나 공 마물은 영리했다. 신성력을 뿜어내는 사제들을 피해서 일반인을 찾고 있는 작은 마물은 여간 잡기 어려운 게 아니었다.
빗나간 신성력을 보면서, 나는 미간을 찌푸렸다. 공 마물이 근처에 위치한 숲 덤불로 뛰어들자, 나는 신성력을 크게 뭉쳐서 날려 버렸다.
퍽!
마물이 터지는 소리가 유독 크게 들려왔다. 확인하고자 덤불을 헤치고 들어갔을 때, 나는 어두운 형상 하나가 아프다는 듯이 머리를 흔들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
형상, 그것은 에레나에 의해 변해 버린 기사단장이었다. 나는 움찔했다. 괴이한 머리를 흔들던그는 방금까지 무언가의 목을 쥐어 뜯고 있던 중이었다. 그것이 갑옷을 입은 성기사라는 것을 확인하자 내 얼굴은 더욱 빳빳하게 굳어졌다.
“크그그흑.”
기사단장은 나를 발견하고 쇳소리 같은 음성을 흘렸다. 핏줄이 잔뜩 올라와서 기이하게 갈라진 얼굴은 괴생명체 중에서도 가장 두려워할 정도로 무서운 생김새였다. 나는 지팡이를 휘두르려 했으나 괴생명체로 변한 기사단장의 손이 더욱 빨랐다.
팍!
그가 쳐내 버린 지팡이가 저만치 굴러가는 것을 깨달았을 때, 그의 갈퀴처럼 변한 손이 날아왔다.
“아!”
그가 목을 움켜쥐자 살갗을 파고드는 고통이 격해진다. 괴물 같은 그의 동공은 무엇이든 죽여 버리겠노라 외치고 있었다. 죽음을 떠올리는 순간 갑자기 목이 시원해졌다. 기사단장의 팔이 잘라져 버린 것이다.
“크헉?”
빠른 움직임에 상황을 판단하지 못하던 중, 곧 기사단장의 몸이 대각선으로 비스듬히 갈라지기 시작했다.
“……!”
두 동강 난 몸이 바닥으로 무너져 내리고 그를 공격한 자가 드러났다.
아론. 그는 대검을 아래로 내리며 나를 보았다.
“…….”
그의 짙은 금빛 눈에 담긴 말들이 너무나 무거워서 숨이 쉬어지지 않는다. 나를 찾아 헤맸노라고 말하는 그의 눈을 보건대 나의 도망은 이대로 끝나고 마는 걸까.
“……무척이나 바랐어요.”
아론은 천천히 내 쪽으로 다가왔다. 마족과 마물의 피가 가득 묻은 갑옷을 입은 채로. 그의 목소리는 시선만큼 잠겨 있었다.
“저에게서 도망가지 못하도록 어딘가 한 군데 다치길.”
“…….”
그의 시선은 피가 흐르는 목에 쏠려 있었다. 이윽고 그의 팔이 움직였다. 장갑을 벗은 그의 커다란 손이 내 목에 닿자 빛이 뿜어진다. 동시에 쓰라림이 사라지고 따스함이 깃든다. 아론을 쳐다보자 그의 시선이 나를 꿰뚫는다. 황금빛 눈동자는 아파 보였고, 고통스러워 보였다. 마치 자신이 다치기라도 했다는 듯이.
“그러길 바랐는데.”
“…….”
“이상하죠? 다친 걸 보니 또 이렇게 속이 쓰라리니.”
아론은 어두운 얼굴로 말하고는 손을 뻗었다. 자신의 손을 잡고 일어서라는 몸짓에 나는 멍하니 그를 바라보았다.
“모, 몸은 회복된 거야?”
“제 몸을 걱정하는 사람이 그렇게 도망갑니까?”
쌀쌀맞은 대꾸에 나는 입술을 달싹이고 말았다. 아론은 잠시 머뭇거리는 내 표정을 보고는 인상을 찌푸리고 내 팔을 잡아서 강제로 일으켰다.
“아…….”
“어깨도 다친 겁니까?”
마족에게 당한 상처다. 에레나의 거지 같은 배려로 마기는 없었지만 상처는 여전하다. 아론은 신성력을 다시 한 번 쏟아내고는 치료 사제가 있는 곳으로 나를 데려갔다.
“저기.”
치료가 끝나자 나는 아론을 쳐다보았다. 뭐라고 말해야 할지 머릿속이 복잡했지만 결론은 가야 할 곳이 있다는 것이었다.
“차, 찾을 사람이 있는데…….”
“누구 말입니까.”
아론의 목소리는 낮게 울렸다. 맘에 들지 않는다는 태도였다. 나는 왠지 목소리가 떨리는 걸 느꼈다.
“어, 어린 소녀야. 이 헤르간의 주민…….”
“살아 있는 도시 주민은 없습니다.”
“뭐?”
나는 눈을 크게 떴다. 아론은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저희가 도착했을 때 도시에는 마물과 마족, 괴생명체만 가득했습니다. 살아 있는 사람들이 있었지만 극히 소수였고 전투가 시작될 땐 안전한 곳으로 보내졌습니다.”
“소수? 어, 얼마나.”
“서너 명이요. 그중에 아이는 없었던 걸로 기억납니다.”
“……!”
나는 흠칫 몸을 떨고 말았다. 결국 에레나의 실험이 성공하고 만 걸까. 거뭇했지만 선했던 소녀의 얼굴이 떠오르자 가슴이 서늘해진다. 나는 가슴을 진정하려 애썼다.
“……아론.”
아론은 이미 나를 유심히 쳐다보고 있었다. 나는 그와 눈을 맞췄다. 차분하게 말하려 하지만 목소리가 자꾸만 떨려 온다. 무서웠고 두려웠다. 그 감정은 눈앞의 그 때문이 아니었다. 그건 바로 사제인 내가 나를 도왔던 작은 손길조차 구원하지 못했다는 것 때문에……. 후회와 죄책감 때문에 올라오는 것이었다.
“에레나라는 강력한 마족이 도시 사람들을 상대로 실험을 했던 거야. 공 형태의 마족을 이용해서, 사람들을……. 주민들을…… 모두 괴생명체로 변하게 한 거지.”
“우리가 죽일 걸 아니까요?”
나는 처참해져서 고개를 끄덕였다. 아론은 잠시 고민하는 것처럼 보였다. 나는 알고 있던 것을 그에게 모두 이야기해야겠다고 판단했다. 처벌을 받는 한이 있더라도 모든 것을 말해야겠다고.
“직접 들었어. 도시를 상대로 실험을 한다고 했지. 인간이 인간을 죽이도록……. 스스로 자멸하도록 말이야.”
“그래서 갑자기 사람들이 없어진 거군요. 이상하다 싶었습니다. 도착했을 때 도시 전체가 유령 도시처럼 텅 비어 있었거든요.”
“내가 기절하기 전엔 사람들이 있었어……. 도시 기사들이 늘어난 괴생명체를 소탕하고 있었지.”
나는 아론이 죽인 시체를 내려다보았다. 아론은 나를 따라 괴생명체를 보았다가 눈을 가늘게 떴다. 갑옷 형태의 표피와 체격을 보고 무언가를 깨달은 모양이다.
“설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