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
“위대한 마왕이시여. 화가 나셨더라도 들어주십시오. 긴히 찾아뵐 수밖에 없었으니까요.”
이제 마왕은 내 엉덩이를 꽉 붙든 상태였다. 나는 긴장했다. 설마 했던 나는 그가 내 몸을 들어 올려 퍽 내리자, 막을 수 없는 환성을 터트리고 말았다.
“아……!”
적당히 하라고, 누가 와 있다고 해도 들을 그가 아니었다. 오히려 그런 존재 따윈 우리 정사에 방해될 수 없다는 듯이 그는 또 한 번 내 엉덩이를 잡고 성기가 푹 쑤셔 들어오게 내려놨다.
“흐, 으흣……!”
나는 온몸을 바르르 떨었다. 이런 강압적인 정사에서도 나는 느끼고 있었다. 그의 거대한 것을 들어올 때마다 내부가 좋아서 옴짝거리는 것이 느껴졌고, 음부가 오물오물 흡수하듯이 그의 뿌리를 빨아들이는 걸 느꼈다.
“읏, 아응……!”
어쩔 수가 없었다. 나는 그의 것이 좋았고 그와 하는 섹스가 좋았다. 남이 듣고 있어도 이렇게 쾌락에 몸부림칠 만큼, 이 행위에 열광했다.
“지난번 제가 했던 말을 기억하십니까. 저는 인간들의 저항이 거세어지고 있다고 했습니다.”
“아, 아……!”
신음이 들려오는데도 굵은 목소리는 꿋꿋이 말을 이어 나갔다.
“저는 제 말을 증명하려고 했습니다. 저주받은 신의 힘이 강해져 인간들이 강해진 것이라고요. 헌데 그 힘을 쫓다 보니 의외의 결과를 마주했습니다. 바로, 그 최악의 힘이 우리 마계에 어른거리고 있음을요!”
멈칫.
순간 내 허벅지를 쥐고 흔들던 마왕의 손길이 멎었다. 나는 배 속과 머릿속을 달구던 자극이 없자 눈을 흐릿하게 뜨며 그를 바라보았다. 마왕의 눈은 왠지 심각하게 굳어 있었다.
“정말 믿을 수 없는 일입니다! 전 우리의 힘이 약해지고 있다는 세가의 말을 믿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어떤 존재인데 감히 쇠약해진다니요! 건방진 인간들이 운 좋게 강해진 것이라고 생각했을 뿐입니다. 그래서 그날 세가의 판단을 비웃었는데, 그의 말이 맞았습니다!”
세가……? 나는 숨을 가쁘게 내쉬면서 그가 말한 그날이 언제인지 가늠해 보았다. 지난번 마왕성의 복도에서 몰래 엿들었던 때를 말하는 것인가?
그날 그의 측근들은 열띤 논의를 했다. 날카로운 목소리가 그들의 힘이 약해지고 있다는 것을 말하면서 힘을 강화해야 한다고 하자 굵은 목소리가 시간이 오래 걸린다며 반대했다. 둘은 옥신각신했고 요염한 목소리가 끼어들며 난투 같은 회의가 멈췄던 게 기억난다.
‘……저자가 그때의 굵은 목소리를 가진 자였던 건가?’
분명 마족일 터. 나는 그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우리의 힘이 약해서 신성력이 파고든 겁니다! 바로 이곳, 마왕성까지, 그 괴악한 힘이 공격해 버린 것입니다.”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가.”
마침내 마왕이 입을 열었다. 굵은 목소리는 반갑다는 듯이 얼른 반응했다.
“위대한 왕이시여! 저는 신성력이 이 마계의 존립을 위협하고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제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신성력이 이곳에 자주 출몰해 마기를 어지럽히고, 마계를 혼란스럽게 하고 있습니다! 다른 곳을 찾을 필요도 없습니다. 바로 이곳, 마왕님의 방에서 그러합니다. 믿으실 수 없겠지만 지금도 신성력이 어른거리고 있는…….”
“지금 내가 신의 힘과 공존하고 있다는 말이냐.”
마왕이 말했다. 태연한 어투였지만 그의 눈빛에서 짙은 마기가 일렁이고 있었다.
나는 숨이 막혔다. 그에게서 쏟아지는 마기는 가까이 있는 내게도 영향을 미쳤고, 나는 숨이 가빠오고 머리가 어지러워서 제대로 몸을 가눌 수 없었다. 내가 그의 쪽으로 완전히 수그러들자 마왕은 멈칫했다.
“예, 마왕이시여! 바로 그것입니다!”
굵은 목소리는 화색을 띠며 대답했다. 마왕이 자신에게 동조해 주어 너무 기쁘다는 듯이.
“그래, 그렇단 말이지? 내 성에, 내 방에 신성력이 자주 출몰하고 있다고.”
“네, 너무나 괴상하니 대대적으로 방을 조사해 보는 게 좋겠습니다!”
“그럴 필요 없다.”
마왕의 담백한 대답이 따라왔다. 나는 멍한 의식 속에서도 그 말에 의아해했다. 마족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출몰하는 신성력은 바로 나를 가리키고 있었으니까.
“어째서입니까.”
“네 말이 맞기 때문이다.”
“……네?”
마족이 멈칫했다. 그리고 그 순간, 마왕에게서 거대한 마기가 솟구쳐 문을 향해 쏘아졌다.
“크, 크극…….”
마기에 사로잡힌 마족은 거대한 덩치였다. 마치 황소를 연상시키는 거대한 몸체에는 기이학적인 무늬가 요란하게 그려져 있었다. 마족은 자신의 목을 조여 오는 마기에서 벗어나려 애쓰고 있었지만, 그건 가능하지 않았다.
“유능한 것은 좋으나 눈치가 없는 것은 치명적이구나.”
“와, 왕이시여, 이게 어떻게…….”
그는 마왕의 품속에 나신으로 달라붙어 있는 나를 보면서 무척이나 당황한 듯싶었다.
나는 더욱 고개를 수그렸다. 사제로서 마왕과 정사를 나누고 있다는 걸 마족에게 보이고 말다니. 잊고 있던 수치심과 참담함, 절망감이 치솟는다. 마족이 나를 보고 있다는 사실이 견딜 수 없었다.
“이게 내가 불러들인 신성력의 정체지.”
마왕은 그렇게 읊조린 뒤 무언가를 불렀다. 곧 그의 주변으로 알 수 없는 기운이 꿈틀거리며 나타났다. 나는 익숙한 기분에 잠깐 고개를 들었고, 그것이 그가 예전에 ‘룬’이라고 불렀던 생명체라는 것을 깨달았다.
“오늘 나를 찾아온 것을 잊게 될 것이다.”
“마, 마왕이시……!”
“그녀를 보았다는 것도.”
마왕의 말이 끝나자마자 룬이 그의 머리를 파고들었다.
“악……!”
괴성이 터져 나왔다. 그러나 그것도 곧 검은 마기에 먹혔다. 괴로워하던 그의 모습은 금세 눈앞에서 사라져 버렸다. 마왕이 손을 휘저어 그를 어딘가로 보내 버린 것이다.
“오늘은 이만 가 보도록.”
나를 먼저 놓아준 건 마왕이었다. 마왕은 문과 벽이 사라져 구멍이 뚫린 곳을 한 번 쳐다본 뒤 내게 고개를 돌렸다.
“다음에 이어 하지.”
슥. 내 어깨 위로 부드러운 천이 감싸졌다. 마왕의 배려였다. 놀라서 바라보니 왠지 모를 정도로 나른하고 진한 시선이 따라온다.
이내 마왕은 전혀 화내지 않는, 오히려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나의 말레드레드.”
그렇게 나는 내 세상으로 돌아왔다.
***
“하아, 하아…….”
왠지 모를 식은땀이 흐른다. 씻고 나와 침대에 누운 나는 쿵쾅거리는 심장을 느꼈다. 이 불안한 심박이 민망함으로 인한 것인지 두려움으로 인한 것인지 구분할 수가 없었다.
‘나의 말레드레드.’
그가 나를 그렇게 불렀다. 자신의 치부를 알아낸 마족을 처단한 그가 그의 치부인 나를, 나의 말레드레드라고.
나는 무섭도록 뛰고 있는 가슴 위에 손을 올렸다. 그가 한 행동들. 마족이 근처에 있는데도 나와의 관계를 멈추지 않았다는 건 그의 짓궂은 성정을 고려하면 충분히 이해가 간다. 비록 내가 지금까지 민망해하고 있더라도.
‘하지만 수하를 해치다니.’
그는 마왕성에 직접 출입하는 마족이다. 즉 마왕의 최측근이라고 할 수 있는 자일 텐데, 진실을 알아낸 죄로 벌을 받게 되어 버렸다.
‘…….’
그게 지금 내가 두려움을 느끼는 이유였다. 마왕이 자신의 수하라고 할지라도 방해된다고 생각한다면 거침없이 죽일 수 있다는 것이, 그 냉혹한 결단력이 무서웠던 것이다.
물론 마왕이 그를 이유 없이 해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분명 이 유희를 외부에 노출시키고 싶지 않아서 그랬을 것이다. 마왕이 신의 사제와 놀아난다고 하면, 좋아할 마족들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마계를 이끄는 그의 입장에서도 마계를 통치하는 데 당장 문제가 생길 테니까.
‘하지만, 아까 신성력이 마기를 어지럽히고 마계를 혼란스럽게 한다고 했잖아. 그 말인즉, 나를 불러들이는 게 마왕에게도 좋지 않다는 것인데…….’
나는 입을 다물었다.
‘왜 나를 계속 불러들이는 거지?’
유희란 건 그에게 그만큼 의미가 강력한 것인가? 아니면, 내가 그의 ‘말레드레드.’이기 때문인가.
“…….”
전자일 것이다. 나는 엉뚱한 생각은 하지 말자며 고개를 흔들었다.
우리의 관계는 유희에서 시작했고 유희로 끝날 것이다. 이것 외에는 없다고 단호하게 생각하며 앞날을 고민했다.
‘……나는 어떻게 해야 하지?’
마왕과의 관계가 들통나면 곤란한 건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내가 위험하다고 판단해 그와의 관계를 끊어 버리는 건 불가능하다. 결정권은 마왕에게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그와의 관계를 마냥 이어 갈 수도 없고.’
나는 심란해져 새벽녘까지 잠들지 못하고 몸을 뒤척였다.
“말레드레드, 어디 안 좋아요? 안색이 조금 어두운데.”
그렇게 찾아온 아침 시간. 자연스레 내 방문을 두드리고 들어온 비키는 내 얼굴에 끼얹어진 먹구름을 읽었다.
“잠을 못 자서요.”
나는 비키의 머리를 매만지면 변명했다. 비키는 잠깐 고개를 비틀어 흘깃 나를 바라봤다.
“사실 저도 어제 잠이 잘 안 왔어요.”
내 얼굴에서 무언가를 공감한 것인지 그녀는 제 마음을 솔직하게 표현했다.
“실제로 본 전투가 제가 마냥 읽었던 동화 속의 전투와 다르더라고요. 이긴 것은 너무 좋았지만……. 또 그런 전투를 해야 한다는 건 큰 부담으로 다가왔어요.”
그녀의 목소리는 위축되어 있었다.
“제가 어리숙하면 사제들에게 큰 피해를 주잖아요. 그 피해는 당장 제국민들에게도 영향을 끼칠 거고요. 제가 잘못해서 수십 명의 사제가 죽고, 수백 명의 백성이 죽는다고 생각하면 정말로 끔찍해요…….”
상상해 봤는지 어조가 겁에 질려 있었다. 나는 얼른 끼어들었다.
“그렇지 않으려고 우리가 존재하는걸요. 마물 소탕이나 소거는 혼자서 하는 게 아니에요. 그러니 완벽해야 한다는 중압감을 느낄 필요는 없어요. 잘 싸워야 하는 건 맞지만, 협동 전투이니 위기 시에는 도움을 받을 수 있고, 자신도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걸 알아야 합니다.”
“아아, 그럴까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윽고 손질이 끝났다는 신호를 보내자 비키가 가만히 뒤로 손을 올려 제 머리를 훑어본다.
“감사합니다. 깔끔하니 예쁘네요.”
나는 가볍게 미소 지었다. 비키는 재빨리 다른 고마움도 표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