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
비키는 첫 승리에 도취되어 있었다. 이제 막 일하기 시작한 그녀에겐 전투를 승리로 이끌었다는 사실이 무척이나 뿌듯하게 다가온 모양이었다.
또 다른 마물과 또 다른 전투를 생각하고 있는 나와는 달리, 순수하게 현재를 즐거워하는 모습이 좋아 보였다.
나는 다른 사제들처럼 그러겠노라 고개를 끄덕이고는 다음 마을이 가까워지는 것을 보았다.
두 번째 마을만큼은 아니어도 세 번째 마을도 우리에게 호의적이었다. 외부인이 익숙지 않은지 경계하는 기색이 강했지만 우리가 내려서 무기와 방어구를 닦는 모습을 보자 무슨 일이 있었냐고 물은 뒤, 우리를 보는 시선이 완전히 호감으로 변했다.
마물을 처단했다는 이야기를 듣자 그들은 단번에 화색을 띠었고, 좋은 음식과 과일을 내왔다. 우리는 풍족하게 먹었고 푹 쉬었으며 광장을 돌기도 전에 그들의 손에 잡혀서 춤을 췄다.
웃음과 미소, 편안하고 아늑한 분위기는 그 순간을 아름답게 기억하게 만드는 마법이다. 나는 잠깐 멍해져서 그 광경에 젖어 있었다.
그리고 침대로 돌아와 눈을 감을 때 단 하나를 바랐다.
오늘만큼은 마왕이 나를 부르지 않아 이 편안함이 계속되길 바라면서.
‘……마계네.’
그러나 세상일은 원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나는 마왕의 성에서 늘 머무는 방 안에 있었다. 내가 누워 있는 곳은 크고 하얀 침대로, 늘 그와 몸을 부딪히고 타락한 교접을 행하는 곳이었다.
나는 잠깐 숨죽였다. 마왕을 떠올리자 바로 정사를 떠올린 나는, 그에게 익숙해진 게 확실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마왕도 없는 커다란 침대에 혼자 누워 있기는 어쩐지 썰렁했다. 그를 보고 싶지 않았는데, 막상 이곳에서 혼자 있으니 공포와 두려움이 올라와 그가 보고 싶어졌다. 그런 것을 보건대 내가 좋아하는 건 마왕과의 정사일 뿐, 마계나 마왕 성이 아닌 것은 분명했다.
‘설마 내가 마왕에게 의지하고 있는 건가.’
단순히 즐기는 수준을 넘어서 그를 믿고 따르는 정도까지 간 것일까? 그럴 리 없었다. 나도 말도 안 된다며 고개를 젓고는 천천히 주위를 둘러보았다. 고즈넉한 방 안의 광경 중에, 탁 트인 테라스가 보였고, 그 왼편에 서서 긴 검은 머리를 흩날리는 남자가 있었다.
그는 거만했다. 그 어떤 것도 그를 거스를 수 없다는 듯이. 오만하고 나태한 자세가 사람의 시선을 잡아끌었다. 그래서 매력적이었고, 그와 관계하는 것이 즐거웠다. 내 욕망 또한 자연스럽게 끌어내며 나를 이끌었으니까.
나는 그의 주변으로 검은 마기가 일렁이는 불빛처럼 우아하게 피어오르는 것을 보면서 그가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인가 궁금해졌다.
“……왔나.”
마왕은 잠깐 내게 시선을 주었다. 곧 붉은 눈은 테라스 아래, 넓게 펼쳐진 마계 어느 한 곳에 박혔다. 나는 그의 주변으로 마기가 응축되는 것을 발견했다.
어디에 그 힘을 쓰려는 건가, 문득 불안해져서 물었다.
“……뭐하는 거예요?”
“망가진 대지를 복구하려고.”
말이 끝나자마자 그의 몸에서 거세게 피어난 마기가 저 아래, 어둑한 대지의 숲을 향해서 날아갔다. 검은 기운이 덮치자 잠시 숲 전체가 진동했다.
곧 거기서 피어나는 폭발적인 꽃과 나무들을 보면서 나는 흠칫했다.
“마계의 균열은 이런 식으로 처리하지.”
“마계에도 균열이 생겨요?”
“내 영향을 받으니까. 내가 힘이 약해진 것을 따라서 마계도 부서지고 황폐해져 간다.”
나는 멈칫했다. 내용이 예사롭지 않았다.
“히, 힘이 약해졌어요?”
“그대가 신경 쓸 바는 아니야.”
마왕은 단호하게 말했다. 어느새, 그는 내 쪽으로 몸을 돌리고 있었다. 그윽한 듯 흥미로운 눈빛이 나를 꿰뚫었다.
“그 일 이후로, 오는 게 내키지 않았을 텐데.”
“그거야 당연히…….”
나는 우물쭈물했다. 마왕은 그런 나를 조용히 응시했다. 나는 문득 억울해졌다.
“내키지 않아도 올 수밖에 없잖아요. 당신이 부르면!”
“그렇지. 그대에게 선택권은 없어.”
마왕은 붉은 눈을 암연하게 빛냈다.
“처음부터 그러했다. 오로지 유희의 권리만 있었을 뿐. 그대에겐 나를 거부할 권리도, 내 강대한 힘에 저항할 만큼의 신성력도 없었어. 나는 그대를 부러뜨리고 파괴할 수도 있는 존재니까.”
“……!”
흠칫한 내 얼굴을 향한 붉은 시선은 이상할 정도로 뜨겁게 타올랐다.
“그런데 이상하게 그대의 얼굴을 보면 그러고 싶지 않단 말이야.”
마왕은 스스로를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말했다.
“그대의 건방진 말이나 요구를 모두 들어주고 싶을 정도로.”
마왕은 이젠 웃고 있었다.
“참 괴이한 일이지.”
나는 그의 시선이 복잡하게 가라앉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라는 존재가 너무나 이상해 혼란스럽다는 듯이.
“그대의 고통스러운 얼굴을 보고 싶지 않다는 것 또한.”
나는 입을 다물었다.
“마왕으로서 그러면 안 될 텐데 말이야.”
그는 어느새 입가를 올리고 있었다.
“그렇지 않나, 말레드레드.”
마왕은 스스로에게 자조하는 것처럼 미소 지으며 나를 지나쳐 갔다. 나는 흑발의 그가 내 곁을 아무렇지 않게 지나서 멀어지자 일순간 멍해지고 말았다.
늘 육감적으로 나를 탐닉했던 그였다. 그런 그가 갑자기 무심하게 나를 지나쳐 가는 것이 낯설었다.
“내가 과연 그대에게 무엇을 바라고 있는 건지.”
마왕은 여느 때처럼 방 가운데에 놓인 긴 소파에 앉아 자신이 좋아하는 자세를 취했다. 등받이에 몸을 편안하게 늘어뜨리고 앉은 그는, 붉은 시선을 내게 주었다.
“나에게 알려 주지 않겠나.”
“……유희를 말하는 거예요?”
“그래, 아마도 그거.”
나는 마왕을 바라보았다. ‘아마도’라는 표현이 이상했다. 유희는 우리가 만나는 목적의 전부이지 않은가. 나는 그를 의아하다는 듯이 바라보았다.
붉은 시선이 나를 꿰뚫고, 그 안에 들어 있는 적막과 잔혹함도 나를 관통한다. 그러나 그 익숙한 것들을 따라서 질척거리고 끈끈한 이상한 감정도 전해졌다.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붉고 노골적이면서 적나라한 감정이…….
‘정욕일 뿐이야.’
나는 내키지 않았음에도 그에게 손을 뻗었다. 그가 혼란스럽다면, 우리가 어떤 관계인지 명확하게 가르쳐 주고 싶었다.
“하아……!”
얼마 후, 나는 그의 다리 위에 앉아 있었다. 그가 바라는 대로 유희만을 위한 존재가 된 나는 직접 엉덩이를 위아래로 움직이며 그의 커다랗고 욕망이 가득 찬 뿌리를 받아들였다.
“아읏, 흣……!”
음부로 쑤셔 들어와 위로 한껏 치받쳐 오는 성기는 내 장기까지 부숴 버릴 기세였다. 나는 그의 목을 꽉 잡고 연신 가없는 탄성을 터트렸다. 성기의 묵직함이 좋았고, 거대함이 훌륭했으며, 죽지 않는 정력이 나를 황홀하게 했다.
나는 아스라이 머릿속이 흐려지는 걸 느꼈다. 열기와 쾌감, 흥분과 자극만이 내 머릿속을 떠다니며 나를 뜨겁게, 정열적으로 몰아갔다.
“참으로 음란해.”
마왕은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 그는 내가 흠뻑 젖을 정도로 성과 열을 다해 움직이고 있음을 알았다. 그의 시선이 쾌락에 점철된 내 얼굴에 닿았다가 이내 육감적으로 흔들리는 풍만한 가슴에 와 닿았다.
“흐르는 땀조차도 유혹적이지.”
얼마나 더운지, 그에게 올라타 스스로 몸을 움직이는 것은 나를 금방 땀에 젖게 했다. 마왕은 내 분홍빛 유두가 위아래로 살랑거리는 것을 보면서 곧 입을 열었다.
“아읏, 으…….”
빨아들이는 감각이 상상을 초월했다. 나는 가슴이 찌르르 울려 오는 것을 느꼈다. 한차례 먹음직스럽다는 듯이 유두를 빨던 사내는 이내 혀를 뻗어서 짐승처럼 그곳을 핥기 시작했다.
“흐응, 읏…….”
그러면서 그의 큼직한 손은, 하나는 내 풍만한 엉덩이를 꽉 쥐었고 다른 하나는 빨지 않는 가슴을 야릇하게 매만졌다.
“아, 아아……!”
나는 쾌락이 극대화되는 것을 느꼈다. 머릿속이 쑤실 만큼 온몸이 찌릿해져 왔다. 이런 완전하고 해방적인 감각이 정점을 향해서 달려가는 것을 느끼는데, 예상치 못한 목소리가 문밖에서 들려왔다.
“마왕이시여!”
그것은 굵고 확고한 톤이었다.
“……!”
나는 정말 깜짝 놀랐다. 쾌락의 섬으로 멀리 나가 있던 내 정신이 번쩍 돌아올 만큼, 명확한 목소리. 나는 두려워져 마왕을 바라봤지만 마왕은 여전히 내 가슴을 붉은 혀로 핥으며 냉담하게 반응했다.
나는 배 속이 움찔거려서 참을 수가 없었다. 내 동작은 멈췄지만 내 민감한 살을 애무하고 있는 그는 변치 않은 것이다. 배 속에서 점점 거대해지고 있는 그의 성기를 느끼면서 나는 나도 모르게 낮은 신음을 흘리고 말았다.
“읏……!”
나는 그 소리를 스스로 내고서도 흠칫했다. 나는 서둘러 그에게 감은 손을 풀고 내 입을 막았다. 마왕의 눈길이 잠시 나를 향했다. 괜한 짓을 한다고 질책하는 듯이 눈매가 약간 가늘어져 있었다.
“쉬고 계시는데 이렇게 다짜고짜 찾아와 건의함을 용서해 주십시오.”
굵은 목소리는 마왕이 대답하지 않자 불안하다는 듯이 말을 이었다. 나는 입을 막은 채로, 흐려지는 이성 속에서도 그의 목소리가 어딘가 익숙하다고 생각했다.
‘어디서 들어 봤더라?’
그러나 마왕이 다시 내 예민한 살을 머금는 순간 그 생각은 날아가 버렸다.
“음……!”
믿을 수 없이 아찔함이 몰려온다. 아까는 장난이었다는 듯이 훨씬 감도 높게 빨아 오는 동작 때문에 나는 눈을 질끈 감고 말았다. 몸이 바들바들 떨렸다. 동시에 긴장한 것처럼 허벅지가 조여졌고, 음부 또한 움찔거렸다. 그에 따라서 성기를 쥔 질벽이 좁아지자 마왕의 것은 더욱 커졌다.
“아! 읏……!”
손가락 사이로 신음이 터져 나왔다. 마왕은 내가 참기 힘들어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더욱 강하게 나를 자극했다.
“음, 음!”
입을 막은 손에 힘을 주었지만, 완전히 침묵하기란 어려웠다. 아니, 불가능했다. 나는 눈가를 왈칵 일그러뜨린 채 신음을 참으려 애썼고 그런 나를 괴롭히듯이 마왕은 더욱 자극적으로 나왔다.
그걸 참으려는 자와 자극하려는 자가 뜨겁고 능란하게 대립하고 있는 것과는 달리 방 밖에선 신중함과 죄송스러움을 머금은 누군가가 진중하게 이야기를 늘어놓고 있었다.
나는 깊은 수치심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