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57
257. 마지막 DLC(1)
설마 이곳에서 송창우와 만나게 될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지구도 아닌 마계에 난데없이 나타나다니.
‘신격은…… 상급!’
송창우는 우리가 가는 길을 막으려는 것처럼 가로막고 있었다.
지금 송창우의 나이는 대략 오십이 넘었을 터였지만 느껴지는 힘은 전성기라고 불러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막강했다.
겉모습은 대략 30대 중년의 모습이었지만, 그건 신격이 노화를 막아줬기에 가능했으리라.
“성가시게 됐군.”
“그러게.”
신자운은 눈을 찡그리며 옷에 뭍은 먼지를 털었다.
단순히 겉으로만 보자면 신자운이 훨씬 강했지만, 문제는 송창우의 손에 들려있는 무기였다.
‘바르자이의 언월도.’
모든 차원과 경계를 가를 수 있는 무기.
저것만 있다면 요그소토스를 소환할 수 있을 정도의 신물이다.
일반적인 신이나 악마의 무기는 상대조차 되지 못한다.
저것과 정면에서 부딪치고 멀쩡할 수 있는 무기는 내가 알기로 단 하나.
‘리브라뿐인데, 그마저도 저쪽이 가지고 있네.’
나는 송창우를 경계하며 찬찬히 주변에 신격을 퍼트렸다.
‘혼자 온 게 아니군.’
민수아에게 들었던 정보에 의하면 송창우는 본인이 운용하는 부대가 따로 있었다.
디어사이드의 정예부대로, 길드 소속이 아닌 송창우 직속의 부대였다.
간단히 말해서 송창우와 홍가은에게 단련을 받는 제자들이라고 할 수 있다.
그들의 실력은 둘에게 단련을 받은 만큼 뛰어났고 플레이어들 중에서도 초일류로 평가받는 이들이었다.
‘다행히 다른 강자의 기운은 느껴지지 않아.’
물론 그건 일반적인 이야기고 내 입장에서는 송창우를 제외하면 아무래도 좋은 녀석들이었다.
다만 송창우와 함께 덤벼오면 상당히 성가실 것이 분명했다.
“오만의 영역은 이곳에서 북쪽으로 쭉 가면 나온다. 아마 루시퍼라면 네가 마계에 왔다는 걸 눈치챘을 테니 다른 건 신경 쓰지 말고 달리면 된다.”
송창우를 뚫고 어떻게 나아가면 되나 고민하고 있는데 신자운이 말을 걸어왔다.
“뭐?”
“이곳에 있는 녀석들은 내가 막지.”
“둘이 함께 싸우는 편이 낫잖아?”
“시간이 부족해.”
신자운은 손을 검게 물들이며 천천히 두 주먹을 쥐었다.
한쪽 얼굴을 가리고 있는 새하얀 가면도 점차 검은색으로 변색되어가기 시작했다.
저건 나도 아직 본 적이 없는 기술이었다.
“송창우가 왔으니 다른 녀석들도 곧 올 거라는 건가?”
“그렇다. 너라면 이유를 알겠지.”
지금 송창우는 바르자이의 언월도를 이용해 바로 경계를 가르고 자신이 이끄는 부대를 이끌고 넘어온 것이다. 아마 우리를 핀포인트로 막은 걸 보면 린에게 이야기를 듣자마자 이동했을 가능성이 컸다.
‘송창우가 이곳에서 시간을 버는 동안 린이 도착하게 되면 확실히 난감해져.’
그렇게 되면 린은 이곳에서 나를 끌고 지구로 돌아가려 할 것이다.
아니면 문답무용으로 박살을 내려고 하거나.
어느 쪽이나 내게는 좋지 않은 일이다.
“좋아.”
“다른 잡졸들은 뿌리칠 수 있으리라 믿는다.”
“나를 뭐로 보고.”
내가 씩 웃자, 신자운도 피식 웃었다.
설마 내가 이 녀석과 함께 싸우는 날이 올 줄은 몰랐는데 말이야.
세상은 참 알다가도 모르겠다니까.
“마왕, 당신이 왜 지구에 왔었는지는 모릅니다만, 린의 말처럼 상당히 약해져있군요. 그러니 이 기회를 놓칠 생각은 없습니다.”
우리의 대화가 끝났을 때, 송창우도 천천히 우리를 향해 걸어왔다.
그가 한 걸음 걸어올수록, 주변에서 다가오던 다른 플레이어들의 속도는 한층 빨라졌다.
우리의 주위로 둥근 원형을 그리며 다가오는 기척은 마치 천라지망을 펼친 무림인들을 방불케 했다.
말하자면 하나의 거대한 진법.
아마 린이 알려준 비술일 테지.
그들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채, 숨을 죽이고 숨어있었다.
“너도 내 옷을 꽉 잡아.”
“알겠다.”
나는 왼손으로 이드라를 안아들며 오른손은 주먹을 움켜쥐었다.
바르자이의 언월도에 부딪치면 동강날게 뻔하니 꺼낼 만한 무기가 없었다.
백야를 사용한 프라가라흐라면 모르겠지만, 그냥 부딪치면 프라가라흐도 원샷이다.
“잘 생각했다. 저 아이는 지금 바르자이의 언월도를 제 수족처럼 다루고 있다. 한번 휘두를 때마다 경계를 발생시킬 가능성이 크니 결코 정면에서 부딪치지 말거라.”
나 역시 이드라의 말의 공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송창우는 내 예상보다 훨씬 강해져있었으니까.
“간다.”
신자운의 말과 함께 검은색 질풍이 휘몰아쳤다.
한걸음을 내딛자마자 신자운의 몸은 이미 송창우의 코앞에 접근해 있었다.
“역시 빠르시군요.”
머리를 노리며 휘둘러지는 신자운의 주먹을 송창우는 가볍게 허리를 젖혀 피했다.
분명 신자운의 속도는 송창우의 속도를 아득히 초월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송창우는 그런 신자운의 공격을 마치 예측한 것처럼 피했다.
‘심안이…… 몇 배로 발전했구나.’
시력을 잃은 대가로 얻은 능력, 심안.
송창우가 후천적으로 얻게 된 특별함은 30년이 흐른 지금 기적에 가까운 힘을 보유하게 만들었다.
‘분명 신자운의 발이 땅에 닿는 것보다 빠르게 몸이 움직였어.’
짧은 미래를 예지하는 게 분명했다.
혹은 그에 준하는 직감을 부여하거나. 민수아 만큼의 미래를 볼 수 있는 건 아니겠지만 오히려 그렇기에 전투에 특화된 능력이었다.
현재 필요한 정보만을 바로 얻을 수 있을 테니까.
콰콰콰콰!!
신자운의 주먹이 볼을 스쳐지나가기 무섭게 언월도가 반회전하며 신자운의 목을 노리며 휘둘러졌다. 보라색의 섬전이 스쳐지나가며 대기를 가르자 일시적으로 공간이 쪼개졌다.
“음?”
그조차 예상한 것처럼 몸을 굽히며 자세를 낮추던 송창우의 눈가가 찌푸려졌다.
그리곤 낮췄던 자세를 위로 올리며 양발을 지면에서 떼고 가볍게 점프했다.
촤라라락!
동시에 송창우가 내딛고 있던 바닥이 비단처럼 미끄러워지며 수 미터를 이동했다.
신자운에게 시선이 팔린 틈을 타, 내가 지면을 조작한 것이다.
“이 힘은?! 언제 이런 힘을 가진 겁니까!”
“처음부터.”
“큭!”
딱!
손가락을 튕기자 공중으로 뛴 송창우의 등 뒤에서 직사각형의 결정이 만들어졌다.
그것은 두어 바퀴를 회전한 뒤, 날카로운 칼날이 되어 창우의 등을 노리고 쏘아졌다.
물론 그건 미리 예지한 송창우의 바르자이의 언월도에 갈라졌지만 그것만으로 충분했다.
신자운의 주먹이 송창우의 복부에 파고들고 있었으니까.
“큭!!”
아무리 짧은 미래를 본다고 해도 한계가 있는 법이다.
주먹에 얻어맞은 순간 공기가 찢어지는 소리가 들리며 송창우의 신형이 멀찍이 날아갔다.
콰콰쾅!!
대략 수십 미터를 날아가던 송창우는 가까스로 지면에 발을 내디뎠지만 충격을 완전히 죽이지 못해 대지가 폭탄이라도 터진 것처럼 폭발했다.
“지금이다, 가라!”
“알아, 임마.”
제법 유효타로 보였지만 신자운의 주먹은 송창우의 방벽을 돌파하지 못했다.
호신강기처럼 전신을 보호하는 송창우의 강기는 수십 년의 세월동안 단련된 만큼 어떤 방패보다도 견고했다.
아마 긴 시간동안 방어를 단련하는데 전념했으리라.
바르자이의 언월도는 그 자체만으로 어떤 방어도 돌파하는 힘을 지닌 무기.
그렇다면 방어에 수련을 집중한다면 무적의 방패와 창을 동시에 가질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단순하다면 단순하지만 그것이야말로 정답이었다.
‘한계돌파를 사용한 신자운의 주먹을 맞고도 파괴되지 않는 방벽이라.’
어째서 신자운이 자신이 시간을 끈다고 했는지 알 것 같았다.
쓰러트릴 수야 있겠지만 상당한 시간을 소모하고 말리라.
“결코 이곳을 벗어나지 못하게 막아라!”
“개진(開陳)!!”
내가 이 장소를 벗어나려고 하기 무섭게 숨어 있던 플레이어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미리 알고 있었던 것처럼 둥글게 나를 둘러싸며 단번에 포위망이 좁혀들었다.
마치 올가미의 줄이 당겨지는 것과 같은 모습에 나는 혀를 내둘렀다.
“확실히 플레이어 수준이 많이 발전했네.”
뭐, 그렇다고 나를 막을 수 있는 건 아니다만.
쿵.
심장에 잠들어 있는 꿈의 조각을 일깨운다.
아주 조금, 조각에 담긴 힘의 일부를 개방하여 전신에 퍼트린다.
1회차 이드라가 남긴 힘의 조각.
외신의 가능성을.
콰콰콰콰콰!!
“이, 이게 뭐야!”
대지가 요동치며 사방으로 갈라지며 나를 향해 덤벼들던 플레이어들을 일제히 날려 버렸다.
자연이 내게 접근하는 걸 허용할 수 없다는 것처럼 그들을 방해했다.
갈라진 대지에서 난데없이 사슬이 튀어나오며 그들의 다리를 옭아맸고, 훈훈하게 불던 미풍이 소용돌이치며 거대한 허리케인을 만들어냈다.
“제, 젠장! 마법인가?! 마력이 움직이는 건 느끼지 못했는데!”
“앞이, 앞이 전혀 보이지 않아!”
이들도 꽤 실력이 있는 이들인지라 다리를 옭아매던 사슬을 부수는 건 성공했지만, 갑자기 생겨난 허리케인을 뚫고 나를 찾는 건 무리였다.
“린이 말했던 새로운 마왕의 힘이 설마 이 정도였을 줄이야!”
신자운과 싸우느라 내게 접근하지 못하는 창우가 경악한 어조로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간단하게 내 능력에 대해 이야기는 들었지만 자세한 설명은 듣지 못한 모양이다.
“나도 그쪽이 그렇게 강해졌을지 몰랐으니 쌤쌤이네.”
“쌔, 쌤쌤이라니, 그게 무슨 소리입니까!”
부들부들 떨며 외치는 송창우에게 나는 그래도 강해졌다는 칭찬의 의미에서 원따봉을 날려줬다. 물론 그것을 상대가 어떻게 받아들였을지는 모르겠다만 난 진심이 담긴 칭찬이었다.
‘그럼.’
나는 심호흡을 하며 날개를 펼쳤다.
허리케인이 불기는 했지만 이 정도는 날아가는데 전혀 문제없었다.
‘드디어 만나겠군.’
마계로 나를 불러낸 ‘개발자’를.
***
신자운이 말했던 것처럼 오만의 영역을 진입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애초에 막는 자가 아무도 없었으니까.
루시퍼가 지배하는 오만의 영역은 완전히 텅 비어 있었고 보이는 것이라곤 높이 치솟은 성뿐이었다.
‘이전에 왔을 때는 저런 성이 없었으니 새로 지은 걸 테지.’
그런 것치고는 성은 상당히 만신창이였다.
멀리서 봐도 이곳저곳 부서진 부분이 눈에 띄었으며 보수하지 않은지 상당한 시간이 흐른 것 같았다.
“으스스한데, 그냥 들어가면 되나?”
성의 근처에 도착한 나는 적당히 바닥에 착지했다.
워낙 주변이 황량하다보니 제대로 온 건지 의문이 들 정도였다.
“이곳이 맞다. 그대도 느끼고 있지 않느냐, 이곳에서 흘러나오는 기운을 말이야.”
“알긴 알지. 근데 이렇게 어두운 기운을 내가 흘리고 있다고?”
“마왕이잖느냐.”
하긴 마왕이니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군.
“근데 이 문을 어떻게 열어? 그냥은 열리지도 않는데.”
“그건 내가 열어주마.”
말이 끝나기 무섭게 기다렸다는 것처럼 등 뒤에서 누군가가 말을 걸었다.
말을 건 상대가 누구인지는 굳이 뒤를 돌아볼 필요도 없었다.
“나타날 거면 미리 말해주면 안 되나?”
“내 일은 어디까지나 마계의 수호다. 길 안내는 본디 내 일이 아니야.”
차분한 어조로 말하는 자는 오만의 악마 루시퍼였다.
녀석은 무심한 얼굴로 나를 응시하며 중얼거렸다.
“도무지 같은 존재라는 게 이해가 되지 않는군.”
“시끄러우니 문이나 열어라.”
“건방진 건 비슷하다만.”
얼굴이 단번에 찡그려졌지만 루시퍼는 나를 어쩌지 못했다.
어찌됐든 나는 마왕이 직접 이곳에 부른 자.
철저하게 마왕에게 충성하는 루시퍼로선 감히 건드릴 수 없는 존재인 것이다.
“아, 그렇지. 아마 이곳에 린 테일러가 올지도 몰라.”
“……그건 의도된 일인가?”
“그래. 분명 마왕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거다.”
루시퍼의 표정은 좋게 말해도 그다지 좋지 못했다.
아무래도 내 말을 반신반의하는 것 같았다.
그런 녀석의 모습에 마왕인 내가 루시퍼에게 어떤 말도 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신자운은 뭔가 아는 눈치던데 너는 뭐 아는 것도 없냐?”
“나는 줄곧 마계를 수호하는 게 일이었다. 다른 명령은…… 특별히 들은 바가 없군.”
“그럼 그 일이나 쭉 해라. 어쨌든 린 테일러가 오면 막아야 할 거 아냐?”
“…….”
녀석은 표정이 묘해지긴 했지만 군말을 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왜 이 녀석에게 마왕인 내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는지 알 것 같았다.
‘말 잘 듣는 녀석에게 귀찮게 설명 같은 걸 할 필요는 없으니.’
거기다 솔직히 말해서 이해력이 좋아 보이진 않았다.
언제나 지닌 힘으로 간편하게 일을 해결하던 녀석이니 복잡한 계획을 설명해 봐야 저 무덤덤한 얼굴로 고개나 끄덕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