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턴 투 플레이어-258화 (258/332)

# 258

258. 마지막 DLC(2)

뚜벅, 뚜벅.

고요한 마왕성 안을 걷는 우리의 발소리가 울려 퍼졌다.

다른 인기척이라고는 전혀 느껴지지 않는 고독한 마왕성.

솔직히 누가 살고 있다고는 짐작되지 않을 정도다.

그 정도로 이곳은 황폐했고 전혀 관리가 되어 있지 않았다.

뿌옇게 눈처럼 쌓여 있는 먼지들 때문에 사람이 지나간 발자국이 뚜렷하게 보일 정도다.

‘발자국이 남아 있는 걸로 보아 최근에도 드나든 사람이 있는 것 같은데.’

성인 남성 발자국으로 보아 신자운의 것이 분명했다.

최근 마왕인 나와 접촉한 적이 있는 것처럼 말했으니까.

‘근데 그분이라고 지칭했던 이의 발자국은 안 보여.’

녀석의 말대로라면 마왕성에 거주하는 또 한 사람의 발자국이 보여야 했지만 그런 건 전혀 보이지 않았다.

“이드라, 혹시 너는 발자국의 종류가 몇 개로 보여?”

“발자국? 나는 음, 두 종류로 보이는 구나.”

그런가.

나는 신자운이 ‘그분’이라고 지칭한 자가 내 기억 속의 잊혀진 존재라는 걸 깨달았다.

잊혀진 자에 관한 어떤 것도 인식되지 못하는 세계의 저주.

신자운이 말한 ‘그분’은 분명 지금 마왕의 곁에 있었다.

그리고 그가 내가 잊은 자였다.

“이곳인 것 같구나.”

어느 정도 걸은 우리의 앞에 거대한 문이 가로막았다.

이드라는 그것을 조용히 올려보았다.

이 문을 열면 무엇이 있을지 생각하고 있겠지.

광기의 마왕, 다른 루트의 나는 대체 어떤 모습으로 변해 있을까.

“……연다.”

나는 차가운 돌로 만들어진 문에 손을 댔다.

시린 한기가 손가락을 타고 올라왔지만, 나는 그것을 외면하며 손에 힘을 넣었다.

드드, 드드드!!

문이 열리며 땅이 미세하게 진동하는 게 느껴졌다.

그리고 그 진동처럼 내 심장도 쿵쿵 뛰기 시작했다.

‘드디어.’

다른 루트의 나를 만난다.

이 만남은 그런 단순한 의미만 있는 게 아니었다.

내가 과거로 올 수 있게 했으며, 1회차에는 이루지 못했던 수많은 일들을 가능하게 만들었던 DLC, 그것의 제작자를 만나는 것이다.

“어두워.”

문을 연 우리의 시야에 들어온 건 빛 하나 들어오지 않는 어두운 공간이었다.

하지만 나나 이드라의 눈은 어둠 따위에 시야를 방해받지 않았기에 이곳의 내부를 훤히 볼 수 있었다.

어두운 홀 끝에 있는 왕좌도.

“……예상보다 조금 늦었군.”

그리고 그 왕좌에 앉아 있는 검은 머리칼에 초췌한 인상의 남자도 말이다.

“네가, 광기의 마왕?”

“그래.”

나는 뭐라 말이 나오지 않았다.

왕좌에 앉아 있는 게 정말로 나인가? 라는 의문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나보다 나이가 많은 것 같은데.”

“내가 불노를 얻은 건 네 나이보다 더 많을 때이기 때문이지.”

나와 이드라는 조용히 녀석을 향해 다가갔다.

그제야 나는 기이한 점을 깨달았다.

놈은 눈을 감고 있었다.

마치 나를 보고 싶지 않다는 것처럼.

그런 내 생각을 읽은 것처럼 녀석이 말했다.

“왜 눈을 감고 있는지 궁금한 모양이야.”

“맞아. 나를 보고자 부른 것 아니었나?”

개발자 메시지를 통해 나를 이 세계로 부른 건 녀석이다.

이제 와서 나를 보지 않으려고 한다는 건 이해하기 힘들었다.

“그래 나는 너를 보고자 불렀다. 하지만 너의 곁에는 ‘잊혀진 자’가 있을 테지.”

“잊혀진 자? 이드라라면…….”

“이름을 말해도 나는 듣지 못한다. 너도 알다시피 인식할 수 없기 때문이지. 네가 지금 내 곁에 있는 OO을 전혀 볼 수 없는 것처럼.”

“뭐?”

OO이라고? 나는 녀석의 말에 황급히 주변을 훑었다.

어디로 봐도 녀석이 지칭한 OO이라는 자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인식할 수 없다고 말은 들었지만 정말로 코앞에 있어도 볼 수 없다는 말인가?

“그럼 눈을 감을 필요도 없잖아?”

“네가 말해서 듣는 것과, 내가 직접 보는 건 다르다. 내가 눈을 뜨게 되면 모든 걸 알게 될 거다. ‘직접’ 보게 되는 거니까. 거기다 이 상황 자체가 타인이 아닌 내 의도대로 만들어진 상황이기 때문에 그럴 가능성이 더욱 크지.”

“……뭐가 다른가?”

“자의와 타의의 차이, 라고 할 수 있겠군. 아직 시스템의 속박을 벗어나지 못한 너는 보는 것조차 허락되지 않지만 적어도 나는 볼 수는 있다. 너와는 격이 다르니까.”

녀석의 말에 나는 조금 자존심이 상했지만 반박할 수는 없었다.

확실히 나는 마왕인 나에 비하면 부족했다.

그럴 수밖에 없다. 지금의 나는 힘도 제한되었고 열쇠를 지니지 못했다.

열쇠를 지닌 나의 힘이 얼마나 강할지 짐작하기 힘들었지만, 린이 이기지 못했다는 걸 생각하면 결코 내가 상대할 수 없는 수준에 올라 있을 것이다.

“그래서 그게 네가 눈을 감고 있는 것과 무슨 관련이 있는 건데?”

“내가 눈을 뜨면 모든 기억을 되찾고 ‘잊혀진 자’가 이 세계에 돌아올 것이다. 그렇게 되면 너희들은 강제로 너희의 세계로 귀환하게 된다.”

“어째서?”

“한 세계에 외신급 존재가, 그것도 같은 존재가 둘이나 존재할 수 있을 리 없기 때문이야.”

그럼 너와 나는? 이라고 말하려고 했지만 대충 이해할 수 있었다.

마왕인 나와, 지금의 나는 애초에 근본적으로 다른 존재라는 뜻이다.

혹은 내가 외신급 경지에 오르지 않았기 때문에 괜찮은 걸 수도 있다.

“고로 눈을 뜨기 전 할 일이 있다는 거로군.”

“그래.”

딱!

녀석은 그렇게 말하며 가볍게 손가락을 튕겼다.

그러자 어둡던 왕성의 안이 밝혀지며 허공에 둥근 구체가 떠올랐다.

둥근 구체는 점차 직사각형으로 변하며 거대한 스크린처럼 변했다.

“이제부터…….”

초췌한 안색을 하고 있던 마왕의 입가에 미소가 걸린 건 바로 그때였다.

“네가 궁금해하던 모든 걸 이야기해 주마.”

***

“창우 아저씨는?”

“현재 오만의 영역의 경계에서 신자운과 싸우고 있는 모양입니다.”

“알겠어.”

린은 아랫입술을 깨물며 다른 플레이어의 보고를 받았다.

완전무장을 한 그녀는 정의의 여신이라는 이명에 어울리는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의 뒤에는 수천 명의 플레이어들이 도열해 있었다.

마계와의 마지막 전투 이후 이 정도로 많은 플레이어들이 모인 건 오랜만의 일이었다.

“분명 샤이닝 트라페조헤드론을 빼앗긴 건 큰일이지만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어?”

“있어요.”

“민수아의 말 때문에?”

민아는 린에게 걱정스런 어조로 말했다.

길드타워에 침입했던 자가 있는 건 대사건이긴 했지만, 지금 린이 벌이는 건 그 이상으로 규모가 훨씬 컸다.

지금 모이기 시작한 플레이어뿐이 아니라 전 세계에서 속속 모여드는 플레이어들의 수를 생각하면 족히 수만 명까지 병력의 수가 늘어날 것이다.

그것도 정예로만 꾸려진.

이 정도면 전쟁을 일으킨다고 볼 수밖에 없었다.

“샤이닝 트라페조헤드론은 외신이 만든 열쇠의 모조품. 하지만 모조품이지만 열쇠와 거의 동등한 힘을 지녔어요.”

“그건 알아. 하지만 누구도 사용할 수 없었잖아?”

“우리에게는 외신이 없으니까요. 아마 상대도 마찬가지였겠죠. 그렇지 않고서야 이렇게 긴 시간동안 그것을 방치할 리 없으니까.”

“그 이야기는…….”

“네. 지금 마왕은 샤이닝 트라페조헤드론을 사용할 방법을 찾은 거예요.”

마계로 통하는 문이 한 번에 열렸다.

그것만으로 대사건이었다. 아무리 린이라고 해도 그렇게 쉽게 차원의 경계를 흐트러트릴 수 없었다.

겨우겨우 맞추고 있던 지구와 마계의 균형이 무너졌다고 할 수 있었다.

“민수아는 뭐래? 아, 이제 미래를 볼 수 없다고 했나?”

“맞아요. 애초에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하나예요.”

“마왕이 샤이닝 트라페조헤드론을 사용하기 전에 저지하는 것.”

“네.”

이미 사건이 벌어지면 늦는다.

일이 터지기 전에 마계로 쳐들어가는 게 유일한 해답이었다.

“근데, 린.”

아랫입술을 깨물며 초조해하던 린에게 무미건조한 목소리가 들렸다.

목소리의 주인은 새하얀 머리칼을 가진 긴 뿔을 지닌 여성이었다.

이 세계에 존재하는 유일한 기린아. 바로 백설이었다.

“그때 저를 소환했던 존재는 마왕은 아니었습니다.”

“뭐? 그게 정말이야?”

“네. 마왕은 결코 그렇게 웃지 않으니까요. 환상으로 덮여 있어 본 모습은 보지 못했지만 그건 분명합니다.”

“……모든 건 마계에 도착하면 알게 되겠지.”

린은 천천히 하늘을 향해 손을 뻗었다.

그러자 하늘에 둥근 금빛 띠가 만들어지며 조금씩 갈라지기 시작했다.

‘앞으로 두 시간.’

그것은 플레이어들이 모두 모이고 마계로 통하는 차원문을 열기까지 남은 시간이었다.

***

“먼저 말하자면 나는 DLC를 지니지 못했다.”

녀석의 말은 첫마디부터 충격적이었다.

DLC를 지니지 못했다고? 그럼 애초에 회귀를 하지 못했다는 건가?

“회귀는 했다. 하지만 그건 DLC 때문이 아니야. 아마, ‘잊혀진 자’가 도와줬을 가능성이 크다.”

아마? 아, 그렇군. 잊혀진 자가 관련되어 있다면 녀석의 기억은 모호할 테니.

‘그러고 보니…….’

나는 1회차의 이드라를 떠올렸다.

녀석은 1회차부터 나를 쫓아 2회차로 넘어왔다.

그때 녀석이 보여준 기억을 생각하면 마왕이 말한 게 무슨 뜻인지 이해할 수 있었다.

‘나는 DLC가 없더라도 회귀를 할 수 있었어.’

1회차의 엔딩을 보았을 무렵 이드라는 잠시 나를 떠나 사라졌었다.

그때 녀석은 이 상황을 타파하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찾고 있었고, 그중에는 회귀도 포함되어 있었다.

‘하지만 본인이 힘을 쓰기 전에 내가 홀로 회귀했다고 했지.’

만약 내가 DLC를 통해 회귀하지 못했다면 이드라의 도움으로 회귀했을 가능성이 크다.

아니, 분명 그런 게 분명했다.

“즉, 너는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 회귀했고 나와 비슷한 전철을 밟았다는 건가.”

“2회차인 건 같다. 다만 조금씩 달라. 너보다 좀 더 긴 시간을 들였고 좀 더 많은 사망자가 나왔지. 그래도 중요한 이들은 전부 살렸지만.”

“비슷하지만 조금 다른 건가.”

“그래.”

마왕이 나보다 좀 더 나이가 많은 건 그런 이유였던 모양이다.

DLC가 없더라도 결국 나는 광기의 마왕에 도달할 수 있었다.

“정확히 말해서 내가 도달할 수 있는 한계가 광기의 마왕이 끝이었다.”

“뭐?”

“지금 네가 도달한 엔딩은 광기의 마왕이 아니야. 광기의 마왕이었다면 애초에 이곳에 올 수 없었다. 그렇지?”

마왕은, ‘나’는 그렇게 말하며 웃었다.

“……맞아. 나는 광기의 마왕의 엔딩은 아니야. 하지만 그보다 최악이지. 배드엔딩이 되고 말았거든.”

“하지만 아직은 아니잖나.”

“그건 그렇지.”

“크크크.”

마왕의 입에서 억눌린 웃음이 새어 나왔다.

그 웃음에는 참을 수 없는 희열과 슬픔이 담겨 있었다.

“……너와 나의 다른 점을 알려줄까.”

“다른 점?”

“나는 DLC가 없었어. 그래서 너보다 진도가 느렸다고 했었지.”

“그게, 문제가 있나?”

“있고말고. 나는 너보다 놀이동산에서 좀 더 오래 갇혀 있었어.”

“까마귀자리, 카라스에게?”

마왕은 천천히 고개를 느릿하게 끄덕였다.

“아마 몇 주…… 조금 더 잡혀 있었을 거다. 물론, 놀이동산만이 아니지. 나는 여러 가지로 시간을 계속 지체했고 그건 하나의 분기점을 만들었다.”

“그게 무슨…….”

“지체된 시간 때문에 나와 OO가 엇갈린 거야.”

OO라는 건 아마 내가 잊은 자.

“그 탓에, OO는 너와 달리 어떤 물건을 얻지 못했다. 바로 라플라스의 모래시계를.”

그 작은 엇갈림.

그것으로 인해 내가 잊은 누군가는 라플라스의 모래시계를 얻었고, 마왕의 OO은 얻지 못했다.

“그 작은 차이로, 하나의 선택지가 사라졌다. OO가 루시퍼를 이기는 길이 사라졌어. 즉, 녀석은 루시퍼를 이기지 못했고 마왕의 자리는 내가 차지했다.”

“만약 차지하게 되면 그 누군가가 루시퍼를 이기는 거냐?”

“이겼으니 네가 모두 잊은 거겠지.”

확실히 그 말이 맞았다.

만약 이기지 못했다면 마왕은 내가 됐을 것이다.

“그럼…….”

“그래, 그게 시작이다. 아마 너도 알 거야. 이후 내가 미친 이유를.”

뒷이야기는 나도 알고 있었다.

나는 마왕의 시험을 통과하지 못했다.

이 세계에서 사라질 뻔했고, 그것을 이드라가 막았다.

대신 이드라는 모두의 기억 속에서 사라졌으며 나 역시 그것을 잊었다.

“이미르는 막았다. 하지만 어째선지 나는 가슴 속에서 흘러넘치는 분노를 참을 수 없었어. 누군가를 잊어버린 나를. 그리고 세계의 모두를.”

마왕은 기억하려고 했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기억하려고 했고, 그 발버둥은 증오가 되었고 광기가 되었다.

지구를 침략했고, 세계를 적으로 돌렸다.

“긴 시간, 아주 긴 시간 동안 미쳐 있었다. 광기의 마왕에 걸맞은 미친새끼였어. 린이 더 이상 나를 믿지 못하는 것도 이상한 게 아니야.”

“……근데 지금은 멀쩡하잖아?”

“솔직히 멀쩡하진 않다. 아직도 광기가 내 몸을 지배할 때가 잦아. 이건 고칠 수 없는 병이다. 하지만 이렇게 겨우 제정신을 유지할 수 있는 시간도 생겼지.”

“어떻게?”

이해할 수 없었다. 녀석의 광기는 단순한 게 아니다.

본래라면 나는 사라졌어야 했고, 이드라가 사용한 편법 덕에 살 수 있었다.

‘광기의 마왕’이 지닌 광기는 거기서 발생한 오류이며 에러였다.

근본적인 원인, 이드라를 기억하지 않으면 결코 사라지지 않는 저주.

나는 그것을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아마 마왕도 그걸 모를 리 없었다.

“어떻게냐고?”

녀석은 내 질문에 피식 웃었다.

그리곤 자신의 옆에 있는 ‘누군가’를 보았다.

“네가 잊어버린 소중한 이가. 나를 계속 지켜줬으니까.”

따뜻한 어조로 말하는 그의 말에 어쩐지 나는 가슴이 꽉 막히는 기분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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