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벨업 프로게이머-202화 (202/226)

< 70. 달라진 풍경 (1) >

정명은 공황 상태로 30분을 보낸 후에야 겨우 진정할 수 있었다.

그동안 프로게이머 생활을 하며 산전수전 다 겪은 정명으로써도 이번 일은 그만큼 당황스러운 일이었고, 한참을 생각해봐도 어떻게 된 일인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차근차근 기억을 떠올려보자. 내가 어제 뭘 했지? 카페에서 게임을 했고, 그 다음에는 월챔을 구경했고 그 다음에는......아이템을 샀지.’

정명은 허겁지겁 시스템 창을 열었다. 이러한 상황에서도 시스템은 여전히 열 수 있었다.

[기도]

*####를 읽어올 수 없습니다.

*기도 스킬은 스킬을 사용하기 위한 준비시간이 무척 깁니다.

-####가 시전되기까지 남은 시간 : 12년 14일 23시

‘12년...?’

곧바로 컴퓨터를 이용해 12년 후의 달력을 찾기 시작한 정명은 이내 한 가지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12년 14일 후. 그것은 바로 기억을 잃기 전 자신이 카페에서 농땡이를 피우고 있던 바로 그 날짜였던 것이다.

‘대체 어떻게 된 일일까. 아니, 지금 상황에서 그런 걸 생각 해 봐야 의미 없을 것 같은데....’

이건 애초에 고민해봤자 답이 나오지 않는 문제이다.

결국 정명은 자신이 어떠한 상황에 처해있는지 점검해보기로 했다.

‘나이 18살, 여자 친구 없음, 돈 없음. 실력...없음. 그리고...’

교내 게임대회와 PC방 대회에서 연달아 우승했던 것, 그리고 그것에 자신감이 붙어 공부 때려 치고 프로게이머를 하겠다고 설쳤던 것, 그리고 집안 형편이 썩 좋지 않아 언젠간 큰 돈을 벌겠다고 다짐 했던 것까지.

별의 별 기억이 조금씩 떠오르기 시작했다.

정명은 그렇게 또다시 1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자신이 목이 마르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물이나 마시러 갈까.’

거실로 나오자 부모님의 얼굴이 보였다. 부모님의 얼굴을 자세히 들여다 보니 얼굴이 조금 젊어졌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리고 얼굴에 근심이 가득하다는 것도.

정명이 나오자 어머니는 조심스레 말을 걸었다.

“연습생 생활 힘들지?”

“....별로?”

연습생 생활은 기억도 안 나지만 무심코 그렇게 말해버렸다.

정명이 말에 부모님은 이상하다는 듯, 재차 물었다.

“응? 언제는 엄청 힘들어서 죽을 것 같다며?”

“어....내가 그랬었나?”

“그랬잖아. 코치도 선배들도 엄청 무섭다고. 기억 안나니?”

“어? 어. 그랬지 참. 이젠 괜찮아. 무서워 봐야 얼마나 무섭겠어.”

대화가 엇나가는 것을 느낀 정명은 대화를 적당히 마무리 하고 다시 방으로 되돌아왔다.

‘이제 뭘 어떻게 해야 하지? 지난번에는 처음에 뭘 했더라? 아, 그래....’

모든 것을 받아들인 정명은 몇 가지 작업에 매달렸다.

기존에 있던 자신의 비밀수첩에 내용을 더 적어넣는 일이 바로 그것이었다.

정명은 장장 몇 시간 동안 그 작업에 매달렸고, 그 결과 수첩은 본인이 아니면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빡빡하게 글씨가 적혀져 있었다.

[유명 아이돌, 일진 과거 경력이 밝혀져 퇴출.]

[비트코인 꼭 사라. 집 팔아서라도 사자. 무조건 돈 번다.]

[제약회사 엄브렐러에서 신약 개발에 성공해서 주식 엄청 오르더라.]

도움이 될 만한 것은 전부 적었다.

그런데 쉽게 돈 벌 수 있는 방법을 적던 정명은 돌연듯 펜을 내려놓았다. 모든 것이 허무해진다는 현자타임이 아주 강하게 왔기 때문이다.

‘잠깐. 이딴 건 별로 중요한 게 아니잖아. 돈 버는 게 대체 무슨 소용이야...’

돈이 사라진 것은 아무렇지도 않았다. 실력, 명예가 사라진 것 또한 별로 신경 쓰이지 않았다.

정명을 정말로 슬프게 하는 것은 친구들과 슬픔, 기쁨을 공유하며 차근차근 쌓았던 감정이 통째로 날아가 버린 것이었다.

‘만약 내 팀원들을 길에서 우연히 만난다 하더라도 걔네들은 나를 알아보지 못하겠지...’

그렇게 생각하자 급격한 외로움이 정명을 덮쳤다.

한국에 있지만 튼튼한 몸뚱아리 하나만 갖고 아무것도 모르는 외국으로 팔려온 기분이었다.

정명은 깊게 한숨을 들이쉬며 비척비척 집을 나섰다.

목적지는 없지만, 답답했기에 그냥 나온 것이다.

그런데 나오자마자 조금 문제가 생겼다.

‘에이씨, 갈 데 없잖아.’

일단 집에서 나오기는 했는데 갈 곳이 없다. 지갑을 뒤져보니 나오는 것은 만원짜리 한장 뿐.

이렇게 된 이상 갈 곳은 단 한 곳 밖에는 없었다.

PC방.

정명의 두 번째 고향이기도 한 곳이었다.

.......

[퍼스트 블러드]

[더블 킬!]

‘10년 전이라 그런가, 그래픽이 참...구리네.’

PC방에 온 정명은 별 목적 없이 솔로랭크를 돌리며 시간을 보내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때, 정명은 누군가의 시선을 느꼈다. 모니터에 반사된 뒷모습을 보니, 초등학생들이 둘러서서 자신의 플레이를 구경하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와, 이 형아 되게 잘 하는데? 무빙 쩔어!”

“저거 별 거 아니야. 내가 더 잘해.”

“너도 저거 할 수 있어?”

“당연하지. 골드 이상이면 다 할 수 있어.”

“우와아......”

‘이 꼬맹이들이 진짜....’

“내가 지금 보여줄게. 저기 자리 비었다. 저기로 가자!”

한 꼬마가 말하자 초글링들이 우르르 구석으로 몰려가기 시작했다.

‘다 갔나?’

정명은 한숨을 폭 내쉬며 다시 게임에 집중했다.

하지만 여전히 뒤에서 시선이 느껴졌다. 꼬마는 아예 옆 자리에 앉아 정명의 플레이를 구경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구경만 하던 꼬마가 눈을 빛내며 정명에게 말을 걸었다.

“오빠야, 이 게임 잘하나?”

“.....어, 응, 잘 하지.”

우물쭈물 한 끝에, 겨우 대답이 나왔다.

이 똘망똘망한 눈의 꼬마는 이미 아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옆으로 시선을 돌리니, 귀여운 꼬마가 커다란 눈으로 자신을 빤히 올려다보고 있었다.

정명은 떨리는 목소리를 가다듬으며 힘겹게 입을 열었다.

“너 이름이 뭐니?”

“송하니.”

‘역시나....그러고 보니 하니도 이 동네에서 살았었지.’

몇 년을 본 동료인데, 어려졌다고 못 알아볼까. 정명은 상당히 어려진 송하니를 한 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그런데 스스로의 말 대로 미소녀 아이돌이었던 전과는 달리 지금의 송하니는 젖살도 안 빠져서 얼굴이 통통한 것이 기껏 해봐야 10살도 안 되는 초등학생으로 보였고, 재빨리 나이를 계산해본 정명은 지금 하니가 10살도 안 된다는 것을 생각해낼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당히 친했던 사람을 만나자 정명은 아까 전에 느꼈던 외로움이 씻은 듯 없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하니가 바나나 우유를 좋아했지?’

좋아하는 것, 싫어하는 것, 취미, 특기 등등등. 정명은 과장 조금 보태서 팀원들의 집에 수저가 몇 개 있는지도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

정명은 곧바로 하니에게 바나나 우유를 하나 사 주며 이것저것 말을 걸었다.

달달한 것을 입에 물려줬기 때문인지 하니는 씩씩하게 대답을 무척 잘 했다.

하지만 모르는 사람이 친하게 지내자고 해 봐야 소용이 없다.

정명은 하니가 자신에게 흥미를 갖게 하기 위하여 멋진 모습을 보여주기로 했다.

[더블 킬!]

[트리플 킬!]

“오오! 오빠야 되게 잘 하는 것 같다. 민석이보다 더 잘하는 것 같다!”

“민석이?”

“우리 반에서 제일 잘 하는 애. 근데 잘난 척 엄청 심해! 진짜 짜증나는 놈이다!”

‘그런데 이 녀석, 사투리가 좀 있네. 같이 지내면서 사투리 쓰는 거 한 번도 못 봤는데.’

정명은 속마음을 숨기며 계속해서 말을 걸었다.

“구경만 하면 심심하지 않아? 쟤네들이랑 같이 안 해?”

“나 못 한다고 안 껴준다.”

“그래? 그럼 오빠랑 같이 할까?”

그런데 그 때, 정명과 하니의 곁으로 한 꼬마가 다가왔다.

아까 정명의 플레이를 보며 ‘저거 별 거 아냐.’ 어쩌고 떠들었던 그 꼬마이자 하니가 말했던 민석이라는 소년이었다.

“그 형 아는 사람이야?”

“응? 왜?”

“우리 내전하려고 하는데 두 명이 비어서.”

그러자 하니가 좋다고 손을 들었다.

“할래, 할래! 이 오빠야 진짜 잘한다! 진짜 짱이다!”

“나도 잘하는데?”

“너는 상대도 안 돼! 한 판 뜨자!”

그러자 민석이 발끈했다.

“형, 어디 리그야? 우리 반 애들이랑 내전 할 건데 같이 한 게임 할래?”

“마스터 리그. 내가 거기 끼긴 좀 뭐 하지. 너희들끼리 재미있게 놀아.”

민석은 마스터리그라는 얘기를 듣자 움찔 했지만, 귀여운 여자애 앞이라서 그런지 센 척을 했다.

“괜찮아. 골드나 마스터리그나 그게 그거지 뭐.”

“그래? 그럼 실버랑 골드는?”

정명이 피식 웃으며 묻자, 민석은 정색을 하며 말했다.

“그거는 엄청난 차이가 있지. 일단 실버는 테두리부터가 간지가 안 나고, 또 승리의 스킨도....”

한참을 씩씩거리며 말하던 민석은 하니를 슬쩍 보며 재차 물었다.

“그럼 같이 하는 거지?”

“그래, 같이 하자.”

정명이 고개를 끄덕였고 민석은 하니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야, 송하니 넌 저 형이랑 팀 해. 네가 우리 팀에 들어오면 너 때문에 질 걸?”

“잘 됐네. 나도 니랑 팀 하기 싫다! 여기 이 오빠가 짱이다!”

“나도 아는 형 있거든? 되게 잘 하는 형 불러올 거다!”

곧이어 초등학생 특유의 유치한 말싸움이 시작됐다.

하지만 아는 형이 있다는 것은 거짓말이 아니었는지 정말로 ‘동네에서 좀 한다는 형.’ 을 불러왔다.

티어를 보니 플래티넘 1.

그리고 잠시 후, 게임이 시작되었다.

.......

[미쳐 날뛰고 있습니다!]

‘이거 초등학생을 상대로 너무 심한가?’

정명은 ‘되게 잘 한다는 형’인 플래티넘 1의 누군가를 미드에서 그야말로 줘 패버렸다.

그리고 그에 따라 민석이의 얼굴이 점점 울먹거리는 표정으로 바뀌기 시작했고, 그와 대조적으로 하니의 얼굴에서는 점점 미소가 번져갔다.

“푸하하!”

하니는 통쾌하다는 듯 웃었지만 그 웃음은 오래가지 못 했다.

하니가 못 한다는 것은 그냥 하는 소리가 아니었는지, 하니랑 하니의 친구가 간 바텀 라인에서 점점 구린 냄새가 올라왔기 때문이다.

[적에게 당했습니다.]

[적이 미쳐 날뛰고 있습니다!]

조급한 감정과 창피한 감정을 동시에 느낀 하니는 옆에 있던 정명에게 빽 하고 떼를 쓰기 시작했다.

“오빠야 힘 좀 내봐라! 마스터 리그라매!”

“뭐, 게임을 하다보면 좀 질 수도 있는 거지.”

“안 된다! 게임을 하믄 이기야지, 이대로 지면 밤에 잠도 몬 잔다!”

어느새 게임은 후반으로 접어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서포터가 물리는 것과 동시에 격렬한 한타가 열렸다.

“아우! 저게 안 죽네!”

상대 팀의 사람들은 딸피였지만 전부 살아남았다. 나름 어그로핑퐁을 잘 했던 것이다.

그에 반해 정명과 하니의 팀은 전멸.

때문에 하니는 다급하게 외쳤다.

“오빠라도 티라, 그러다 죽갓다.”

“안 죽는다. 잘 봐. 다 썰어버릴 거니까.”

-잘 보고 배우게!

뒤늦게 달려온 정명의 소드마스터 이가 궁극기를 켜고 달려들었다.

그런데 보통의 소드마스터 이와는 조금 달랐다.

보통 공격력을 올리는 캐릭터이지만, 정명은 주문력을 잔뜩 올렸던 것이다.

패치버전이 한참 옛날 버전이었기에 가능한 일이기도 했다.

[더블 킬!]

[트리플 킬!]

.....

[펜타 킬.]

[마무리]

열심히 추격하던 캐릭터들을 상대로 제대로 된 역관광을 보여줬다.

그와 동시에 정명의 옆에서 죽을 거라고 찡찡대던 하니의 입이 쩍 벌어졌다.

“스승님!”

“스승님?”

송하니는 어린애 특유의 어설픈 애교를 부리며 게임을 가르쳐달라고 조르기 시작했다.

정명은 큭큭 웃으며 알았다고 했다. 벌써부터 무척이나 친해진 느낌이었다.

‘다른 사람들도 이렇게 빨리 친해질 수 있을까?’

진심으로 그러길 바랬다. 안 그러면 무척 슬플 테니까.

첫 번째 회귀는 행운이었지만 두 번째 회귀는 그다지 달갑지 않은 것이 솔직한 심정이었다.

그리고 몇 시간 뒤.

신나게 기분전환을 한 정명이 집으로 돌아왔다.

######

‘잠이 안 오네...’

침대에 누웠지만 잠이 오지 않는다.

정명은 침대에 누워 온갖 잡생각을 떠올렸다.

‘내가 해야 할 일이라는 게 뭘까? 기도 스킬이 시전 되면 무슨 일이 일어나는 거지? 나는 이번에도 잘 할 수 있을까?’

생각을 할수록 고민이 깊어졌고, 정명은 쉽게 잠들 수 없었다.

결국 정명은 아침 5시에 겨우겨우 잠들었다.

.....

그로부터 4시간 후, 아침 9시가 되자 정명의 전화가 울리기 시작했다.

물론 알람은 아니었다.

정명은 은퇴하고 난 이후로는 핸드폰의 알람 기능을 거의 이용하지 않았으니까.

-Rrrr.....

-Rrrr....

‘뭐지, 은퇴한 뒤에는 알람 껐....아니지, 은퇴라니. 여기선 아니지...’

핸드폰을 들어보니 알람이 아니라 전화벨 소리였다.

하지만 핸드폰에는 낯선 사람의 이름이 떠 있었다.

[김필성 코치님]

‘김필성? 이놈은 또 누구지?’

기억나지는 않았지만 정명은 일단 전화를 받기로 하고 통화 버튼을 눌렀다.

그런데 전화를 받자마자 전화 건너편에서 욕설이 튀어나왔다.

-야 이 새끼야! 열심히 하겠다고 해서 연습생으로 받아줬더니 또 지각이냐! 빨리튀어나와! 요즘 애들은 근성이 없어 근성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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